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핵태세검토(NPR) 보고서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핵 선제 불사용이란 핵보유국이 자국이나 동맹국이 핵무기로 공격당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미국은 지금까지 이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적이 없다. 뒤집어서 말하면 미국이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지지해왔고 대선 공약으로도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일부 고위관료들도 이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그러나 이번 NPR에서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천명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등 동맹국들의 반대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를 연상시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첫해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핵 선제 불사용을 공식화하는 방향으로 NPR 발표를 검토했었다. 하지만 미국 내 보수파와 일본 등 동맹국의 반대에 직면해 이를 포기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기류가 일어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12월 초에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채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외신들의 보도도 있다.
이는 곧 이번 NPR에서도 미국이 핵무기 사용 문제를 "전략적 모호성"으로 남겨둘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서 전략적 모호성은 핵무기 선제 사용 여부를 모호한 영역으로 남겨둠으로써 적대국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은 이러한 정책이 미국의 핵 억제 전략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주된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안보, 특히 핵군비경쟁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쪽에서 핵무기 선제 사용 정책을 공식화하거나 핵 선제 불사용 정책 채택을 꺼려하면 상대도 유사하게 반응할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방식의 핵무기 현대화 경쟁과 경보 즉시 발사 시스템의 유지·강화를 피할 수 없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우발적인 핵전쟁 발발의 위험도 커지게 된다. 이러한 작용-반작용에서 급성장한 것이 바로 미사일방어체제(MD)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군사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반대하고 이로 인해 격화되는 핵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를 이용해 MD를 비롯한 새로운 거대 무기 사업을 합리화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핵무기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모호한 언사를 핵 선제 불사용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이번 NPR를 통해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5대 핵보유국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가운데 유일하게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공식화해오고 있다. 러시아도 이를 두고 좌고우면해왔다. 1월 초에는 이들 다섯 나라가 "핵무기 확산을 막고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을 공식화한다면, 이를 국제 조약으로 만들자는 논의에도 물꼬를 틀 수 있다.
일찍이 대소 봉쇄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조지 케넌을 비롯한 여러 전략가들은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이 지구촌의 핵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제도화·법제화하는 것이야말로 핵무기와 MD 등 전략무기 경쟁과 확산을 통제하고 일촉즉발의 준비태세를 완화함으로써 핵전쟁을 방지하는 데에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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