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part 4 변방의 정치는 변방이 아니다
㊳ 들어가는 글 변방으로 밀려난다는 건 창조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바로가기)
㊴ 넬슨 만델라 上 27년 6개월의 투옥, 교도소의 핵인싸가 되다(☞바로가기)
㊵ 넬슨 만델라 下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 우분투!(☞바로가기)
㊶ 레흐 바웬사 上 공산당은 한국에서 과연 좌파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바로가기)
노회찬, 폴란드에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흔적'과 마주치다
"사회주의의 꿈 자체가 원래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5년 3월 8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은 국회 해외사법제도 시찰단의 일원으로 출국해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 하원 입법위원장과 위원들, 상원의 입법준법위원회 위원장단, 법무부 차관과 면담했다. (노회찬, 「새벽에 쓰는 편지」, <난중일기>, 2005.3.10.)
이어 노회찬은 폴란드의 이라크 파병 병력 감축에 대해 전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질타했다.
노회찬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연히' 스탈린과 마주쳤다. '뜻밖의' 만남에 대한 소감을 노회찬은 <난중일기>(2005.3.9.)를 통해 이렇게 피력했다.
※ 2004년 17대 총선을 마치고 <신동아> 황호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공포정치, 개인숭배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탈린을 조용히 호명했다. 이어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도 피력했다.(「[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빨강이든 파랑이든 색깔 진하게 가져야"」, <신동아>, 537호, 2004.5.27)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회찬은 '좋아하는 정치인' 3인 중 한 명으로 레닌을 꼽은 적이 있다. 레닌은 <유언장>으로 알려진 편지에서 스탈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본래 이 편지는 1923년 4월로 예정되어 있던 볼셰비키 제12차 당대회에 보내려던 것이었다. 이 문서가 작성되었다는 사실은 단지 크룹스카야와, 레닌의 구술을 받아 기록했던 두 명의 비서 M.A. 볼로지체바와 L.A. 포치예바 만이 알고 있었다.
1923년 3월 10일 레닌이 뇌일혈을 일으켜 쓰러진 직후, 크룹스카야는 이 문서를 비밀에 부쳐 보관했는데, 레닌의 타계 다음 해(1924년)의 제13차 당대회 직전에야 공개하였다. 이 편지가 레닌의 <유언장>으로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훗날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스탈리나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노회찬은 전원책과 인터뷰를 하면서 스탈린과 박정희와 헌법 119조를 함께 불러온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 노회찬의 '안나 까레니나는 누가 썼나'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폭넓은 생각을 위한 역사 속 말빨 사전 101>(웅진지식하우스, 2015)은 66번째 '말빨'로 작가 솔제니친의 말을 추천했다.
'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12.11.~2008.8.3.)은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1945년 11월에 투옥되어 8년 동안 강제수용소 생활을 한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197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솔제니친은 1973년 유형지에서의 인권유린 실태를 생생하게 고발한 <수용소군도>의 출간으로 이듬해 체포, 추방되었다. 오랜 추방생활 끝에 1994년 러시아로 돌아온 후 솔제니친은 옐친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1998년 옐친 정부가 그에게 훈장을 서훈하기로 했음에도 그는 "몇몇 권력자들 때문에 러시아는 실패한 국가로 전락해버렸다. 나는 이 상을 수여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2008년 솔제니친이 타계하자 <에이피>(A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이렇게 전했다.
한편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알려진 <동물농장>(Animal Farm)은 영국의 작가이자 영국 독립노동당의 당원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1945년에 출판한 풍자 소설이다. 전체 줄거리는 존스 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가혹한 생활에 못 이겨 주인을 쫓아내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만, 결국은 혁명을 주도했던 권력층의 독재로 농장이 부패해 버린다는 이야기이다.
'메이저 영감'은 레닌을 상징하는, 농장의 모든 동물의 존경을 받았던 늙은 수퇘지다. '나폴레옹'은 독재자 돼지로 스탈린을,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상징한다. 이들은 '매너 농장'(농노가 해방되지 않은 제정 러시아)에서 봉기를 일으켜 농장주 '존스 부부'(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를 상징)와 일꾼들을 쫓아내고 동물농장을 선포한다.
봉기 이후에 각종 단체를 조직하는 열성적 혁명가 스노볼과는 반대로 나폴레옹은 비밀리에 '블루벨'이 낳은 개(비밀경찰) 9마리를 친위대로 키운다. 나중에 스노볼과 풍차 건립 문제(경제개발 문제)를 두고 크게 대립하게 되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위대인 9마리의 개들로 스노볼을 축출하고 독재자의 자리에 오른다.
'독재자 스탈린'의 시대에 대해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안나 까레니나는 누가 썼나」(2008.8.1.)는 글을 올렸다. '오래된 얘기 하나'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질식시킨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를 주된 무대로 한,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이다.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미소 냉전시절 서방측에서 소련을 폄하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공세 차원에서 만들어낸 '유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리는 것은 바로 KGB가 담당한 실제 역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시민들은 재선이 불가능했던 옐친이 다시 당선된 것은 스탈린의 도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6년간의 실정으로 낙선이 확실시 되던 옐친을 구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TV채널은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와 KGB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를 선거기간 내내 틀어댔다는 것이다.
이어서 노회찬은 "이 무더운 여름 우리나라의 KGB는 무엇을 하고 있나?"면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개혁에 대해 꼬집었다.
"한국에도 '아우슈비츠'가 있었다!" :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한국판 아우슈비츠, 부산 형제복지원'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 폴란드 오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출입구에 걸려 있는 글귀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아우슈비츠 기념관 벽면에 새겨져 있는 글귀이다.
아우슈비츠는 원래 강제 노동 수용소였으나 나중에 절멸 수용소(Vernichtungslager), 죽음의 수용소(Todeslager)로 바뀌었다.
2005년 11월 1일 유엔은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된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 1945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Holocaust)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Auschwitz, 소장: 루돌프 회스)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세운, 전체 28동으로 이뤄진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다. 규모가 큰 데다 무엇보다 증거가 되는 시설이 상당 부분 남았기 때문에 절멸 수용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우슈비츠는 고유 명사로 쓰이기보다는 '나치의 절멸 수용소'를 뜻하는 보통 명사로 쓰인다.
이곳에서 처형된 수백만 명 가운데는 유태인을 비롯해 공산주의자, 장애인, 동성애자, 로마니(집시)가 있었다. 절멸 수용소에서 살해당한 유태인의 수는, 폴란드 국내에서의 거의 모든 유태인을 포함하고, 나치스의 대량학살로 살해당한 유태인 전체의 약 반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 주목할 대목은, 나치 독일이 장애인과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가 달랐다는 점이다. 익히 알다시피 유대인 학살의 배경은 순혈주의와 인종주의라는 정치적 동기다. 아리안 독일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자들'을 제거한 것이다.
반면, 같은 혈통의 장애인들을 학살한 까닭은 독일 사회의 합리성, 효율성, 생산성 때문이다. 노동할 수 없는 자들, 참전할 수 없는 자들, 그래서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자들, 한 마디로 '살 가치가 없는 생명들'을 제거해야 국가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논리였다. (<「장애인 학살의 역사도 기억하라!」, <에이블뉴스>, 2018.1.26.>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도 아우슈비츠였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가족도 다른 유태인 1015명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수용되었다. 그중 절반에 이르는 어린이, 노인 549명은 곧바로 가스실에서 학살됐다. 안네의 어머니 에디스는 1945년 1월 6일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안네와 언니 마곳은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졌다가 1945년 3월 티푸스와 굶주림으로 숨을 거뒀다. (<경향신문>, 2010.8.4.)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이것이 인간인가-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돌베개, 2017)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 2016년 폴란드 정부는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폴란드 수용소'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최고 징역 3년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 나치 강제수용소 운영에 폴란드가 관여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향신문>, 2016.8.18.)
19대 국회 때인 2012년 11월 27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함께 한종선·전규찬·박래군이 쓴 <살아남은 아이-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문주, 2012) 출간 보고회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었다. <살아남은 아이>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할 수 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이들은 묻는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업가' 대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부랑인, 노숙인, 고아. 각자 서로 다른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어느 쪽 말을 더 신뢰하고, 비호해왔을까."
'제2의 삼청교육대'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은 공무원이 동원돼 1975~87년 '부랑자 선도' 명목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무고한 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켰던 곳이다. 1987년 당시 수용자만 3975명, 연인원 2만1685명인 전국 최대 규모의 허울뿐인 '부랑인 보호시설'이었다.
20대 국회 때인 2016년 7월 6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국회의원은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노회찬도 뜻을 같이 해 총 73명의 공동발의자에 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만이 아니라 불과 수십년 전 한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2020년 7월 부산시 차원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추진위원회'가 발족, 활동에 들어갔다.
※ 201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2018년 인권의 날' 기념식이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노회찬에게 추서됐다.
뒤이어 우리 사회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세계인권선언문의 주요 조항을 참석자들이 낭독하는 순서가 마련됐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실종자, 유가족) 모임'의 대표 한종선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반되는 어떠한 차별과 그러한 차별의 선동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제7조를 낭독했다.
한종선의 낭독을 듣는 순간, "대한민국에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만 평등하다"고 질타하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세상"에 대해 분노했던 노회찬의 모습이 스치듯 겹쳐 지나갔다.
닫는 글 : "10.08㎡ 대 2.58㎡"
2019년 4월 24일 대한민국 20대 국회의 70명 국회의원들(자유한국당 67명, 대한애국당 1명, 무소속 2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청원하는데 느닷없이 '아우슈비츠'가 등장했다. '아우슈비츠', '잔인한 폭력' 등 자극적인 단어를 동원하면서 박근혜와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정농단이라는 본질을 덮으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의 사설 「박근혜 수감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하다니 제정신인가」(2019.4.25.)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요구는 무엇 하나 요건에 맞지 않는다"면서 하나하나 짚어본 뒤 이렇게 질타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청원서에 이름을 올린 70명 국회의원들이 과연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린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대표발의: 진선미)에 대해 어떤 의사를 표명했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졌을 때 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청원서 제출 며칠 전인 2019년 4월 1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민들의 바람' 운운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참고로 2019년 4월 전후의 여론조사에 드러난 '국민의 바람'은 황교안의 발언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석방 반대 의견이 훨씬 더 많게 나온 것이다.
- (2018.12.7. 리얼미터 조사) '박근혜 석방·불구속 재판…반대 61.5% vs 찬성 33.2%'
- (2019.4.19. 리얼미터 조사) '박근혜 석방, 반대 62.0% vs 34.4%'
- (2020.2.3. 리얼미터 조사) '박근혜 석방 논의, 반대 56.1%, vs 찬성 39.3%'
그에 앞서 황교안과 고교 동창인 노회찬 20대 국회 정의당 원내대표는 2017년 10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하면서, "변호인 접견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권리이지만 일반 수용자들은 변호사 비용 등 때문에 1일 1회 접견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국정농단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돈과 권력이 있으면 매일 변호인을 접견을 하며 '황제 수용생활'을 할 수 있다는 특권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구치소 수감 생활에 대해 꼬집었다.
8월 24일 기준으로 박근혜는 구금일수 147일 동안 148차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78일 동안 237회,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5일 동안 209회, 최서원(최순실)은 285일 동안 226회에 걸쳐 변호인을 접견했다.
노회찬의 지적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일반 수용자들이 머무는 수용실보다 넓은 면적의 수용실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TV, 사물함, 싱크대, 침구, 식기, 책상, 청소도구 등이 갖춰진 10.08㎡ 면적의 수용실을 혼자 사용하고 있다. (이효상 기자, 「노회찬 "박근혜 구치소에서 하루 1번 꼴로 변호인 만나…황제 수용생활"」, <경향신문>, 2017.10.9.)
2017년 10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감사원 국감장. 노회찬은 황찬현 감사원장을 향해 "지난 12월에 헌법재판소가 서울구치소 내 과밀수용에 관해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수용자 1인당 가용면적은 1인당 1.06㎡(약 0.3평)에 불과했다. 알고 있나"고 물은 뒤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드러누웠다.
이는 박근혜가 유엔 인권기구에 "구치소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노회찬이 "더럽고 차가운 시설을 고치지 않은 책임은 (대통령이었던) 본인한테 있다"고 비판하기 위해 직접 선보인 퍼포먼스였다.
노회찬은 "제가 한번 누워보겠습니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누운 걸 보셨겠지만, 옆 사람과 맞닿습니다. 구치소에서 수용자에게 지급하는 일인용 매트리스가 있는데 매트리스 면적이 이것(1인당 면적)의 2배입니다. 6명이 수용되면 6개가 지급되는데 안에 다 깔 수가 없어 3개를 깔고 삽니다"고 일반 수용자들의 과밀수용 문제를 감사원이 직무감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인권침해라고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사는 거실 면적은 10.08㎡로 일반 수용자의 10배입니다. 제소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수용자입니다"고 꼬집었다. (이승준 기자, 「노회찬 의원이 국감장에 신문지 깔고 드러누운 사연은」, <한겨레>, 2017.10.20.)
오늘의 기록이야기 <바웬사와 노회찬> 편은 노회찬의 <난중일기> 중에 첼로 연주와 함께 '아우슈비츠'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노회찬이 떠나고 사흘 뒤인 2018년 7월 26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노회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손석희가 말한 2005년의 연주는 5월 1일에 이뤄졌다. 노회찬은 미공개 <난중일기>(2005.5.1.)에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아우슈비츠를 슬며시 끌고 와 당시의 곤혹스런 심경을 밝혔다.
"강제로 켜는 첼로, 아우슈비츠에서도 없던 일"이라는 노회찬의 말글과는 달리, 사실 아우슈비츠에는 강제로 켜는 첼로, 첼리스트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타 라스커-발피슈(Anita Lasker-Wallfisch)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유대인 음악인들이 수용되는 감옥 '블록15'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가스실로 끌려갔고 두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락스(1901~1983)와 여자 첼리스트 아니타 라스커-발피슈는 1948년 회고록 <다른 세상의 음악>으로 끔찍한 수용소 시절을 고발했다. (정상영 선임기자, 「아우슈비츠서 살아남은 두 음악가 이야기」, <한겨레>, 2013.9.9.)
한나 아렌트가 나치수용소를 '폭력의 실험실'이라고 칭했다면, 음악은 이 실험실의 '마취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몬 락스는 음악이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평화롭게 죽음으로 행진"하게 했다고 회상하며, 이를 사람들의 넋을 홀리는 고대 그리스의 '사이렌 음악'에 비유했다. (이경분의 <수용소와 음악> 중에서)
※ 아니타 라스커-발피슈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첼로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차출되어서 하게 된 일은 수용자들의 강제 노역을 하기 위해 공장을 향해 이동할 때 그들을 위해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후에는 수용소의 밖에 앉아서 돌아오는 그들을 위해 연주를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언제 누군가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고 나의 내일마저 오늘이라는 시간이 보장해 주지 못하는 곳에서 음악은 수용자들에게도 위로를 줬지만 무엇보다 그 음악에서 희망을 얻은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연주가 계속 될수록 그녀의 희망은 커졌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안동형, 「아우슈비츠에서 희망을 준 첼로리스트 '아니타 라스커-발피슈'」, <위드인 뉴스>, 2020,1.31)
이경분의 <수용소와 음악>(성균관대 출판부, 2021)의 「(3부) 살인 공장 아우슈비츠의 음악: 폭력 속에 명령 당한 인간의 존엄성」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수용소와 음악> '책소개'는 이렇게 덧붙인다.
소설가 장정일은 「아우슈비츠의 음악은 끔찍한 고문이었다」(<시사인>, 711호, 2021.5.7.)를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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