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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 우분투!"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㊵] part 4 변방의 정치는 변방이 아니다 : 넬슨 만델라 下

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part 4 변방의 정치는 변방이 아니다

㊳ 들어가는 글 (☞바로가기)

㊴ 넬슨 만델라 上 (☞바로가기)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 모델과 한국의 '과거사 청산' : "단 한 번도 불의에 대한 단절이 없었던 사회의 슬픈 자화상"

▲'과거사 청산: 시각과 방법'이란 주제로 열린 제43회 참여사회포럼(2004.11.12.) (출처: 참여연대 홈페이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여러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2004년 11월 12일 '과거사 청산: 시각과 방법'이란 주제로 참여사회연구소가 제43회 참여사회포럼이 열렸다. 발표를 맡은 김동춘과 토론을 맡은 홍세화, 두 사람 모두 노회찬의 오랜 지인이자 길동무였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는 과거사 청산의 모델들에 대해 "현대의 과거청산은 보복, 총괄사면(스페인), 지속적인 처벌(독일), 화해(남아공) 등 국가와 사회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진다"고 소개했다.

또, 과거청산의 내용과 원칙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에 중점을 두고 가해자 처벌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사 청산이 어느 정도 정치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공소시효 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도 처벌 자체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진상규명을 통한 사회적 처벌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보상은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선행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진상규명의 주체와 기구 문제와 관련하여 김동춘은 "어떤 과거청산도 정치권력의 힘을 업지 않고서는 진행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며 "국가를 과거청산의 징검다리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과거 청산의 논의에 대해 "가해자집단은 상당히 단결되어 있으나 피해자 집단은 사건의 다양성으로 인해 나누어져 있는 듯하다. 이로 인해 과거사 청산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전략과 전술의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며 "우리 안의 파시즘 얘기를 하는데, 우리 안의 패배주의가 더 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에게는 프랑스가 가장 과거 청산을 잘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인구수에 비례할 때 공권력 박탈 즉 처벌이 가장 적다"며,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는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적 국면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때 청산은 필연적으로 처벌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가해자가 공권력을 가짐으로 해서 역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공권력을 박탈함으로서 역사 청산을 이루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아공 모델: '진실 고백과 사면의 맞교환 원칙' : "고백 없이 용서 없고, 용서 없이 미래 없다"

과거사 청산은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대량 학살, 식민지 지배, 파시즘 또는 국가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으로써 세계사적인 보편 현상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으로 고통 받았던 남아공을 필두로 군사독재정권 시절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던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엘살바도르 등의 중남미 국가, 내전으로 집단학살이 자행된 우간다,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르완다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한 활동이 있었거나 진행 중이다. 

유럽 국가지만 뒤늦게 민주화를 이룬 스페인은 여전히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있었던 학살과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거사 청산을 진행 중이다. (임영태, 「한국 현대사와 과거사 청산 문제」, <통일뉴스>, 2006.5.10.)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과 투투 대주교 ⓒ데스몬드투투재단

만델라는 대통령에 오른 뒤 1995년 '진실화해위원회'(TRC: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를 설치했다. 위원장이 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고백 없이 용서 없고, 용서 없이 미래 없다"며 흑인과 백인 모두를 설득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자행된 국가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진실은 밝히되 처벌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민주화 이후 흑백이 공존하는 남아공을 상징하는 말이 된 '무지개 나라'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으로 역시 노벨평화상을 받고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나는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믿을 수 없이 황홀한 느낌으로. 우리 남아공은 세계의 무지개 국민(Rainbow people)이 될 것이다."

※ 흑인이 압도적 다수이면서 백인과 혼혈인, 아시아인뿐 아니라 공용어만 11개로 많은 부족들이 어울려 사는 남아공의 미래는 공존 속의 화합을 추구하는 '무지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일곱 색깔 무지개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져 아름다운 무지갯빛으로 나타나듯이. 

남아공의 국가 구호인 '다양성의 통일'(Unity in Diversity)은 '무지개 나라'와 너무나 어울리는 말이다. 민주화 이후 새로 채택된 남아공 국기(이전에는 위로부터 오렌지‧하양‧파랑의 3색기)도 6가지 색을 사용, 여러 색의 조화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여 '무지개 국기'라고 부른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정치세력과 부족 갈등으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에도 하나의 모범이 됐다. 공소시효를 배제한 채 수천 명을 처벌했다. 다만 진실을 고백한 849명은 사면했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가 성공적으로 역사바로세우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원회보다 앞섰던 '몽플레 대타협'(Mont Fleur Conference)이 있었다. 1990년 백인 클레르크 대통령이 인종차별정책 종식을 선언한 뒤 남아공은 대혼란에 빠졌다. 백인과 흑인, 극우와 극좌, 기업과 노조가 뒤엉켜 서로를 향한 증오를 뿜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남아공에 존재하는 모든 정파와 세력은 몽플레 컨벤션센터에 모였다. 무려 2년을 토론했다. 40년 넘게 싸운 그들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대화 뿐'이라는 걸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4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1안 '타조'(백인정부가 타조처럼 머리 처박고 흑인을 외면), 2안 '레임덕'(약체 정부가 개혁에 실패), 3안 '이카루스'(흑인정부가 무리하게 개혁), 4안 '홍학'(모든 세력이 연합해 새 사회를 건설)이었다. 4개안을 놓고 다시 100차례 토론했다. 흑인과 백인은 4안 '홍학'을 택했다. 다같이 살기 위해선 서로가 자신의 뜻을 조금씩 굽힐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했다.

'몽플레 대타협'을 바탕으로 1994년 흑백이 처음으로 동등하게 참여한 총선거가 이뤄졌고 만델라 대통령이 탄생했다. 몽플레 대타협이 있었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가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엄경용 기자, 「남아공에서 '이왕 영감 얻은 김에'」, <내일신문>, 2020.5.20.)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임무는 과거의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여 사건을 마무리하고 희생자들의 보상 및 명예회복과 관련된 지침을 마련하여 그들이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1996년 이 지침에 따라 남아공 전역에서 진상규명 및 용서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 진행됐다. 청문회 내용은 인터넷 및 TV를 통해 중계됐고, 이로써 34년간 나라 전역을 감싸온 침묵을 깨게 됐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은 그들이 당한 학대를 회고했다. 

지난 7년여 간, 2만 2000명이 진술을 했고 그 중 6000여 명이 사면을 청구하고 실종자 수는 약 1000여 명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종보고서를 2003년 3월 21일 음베키 대통령에게 제출함으로써 그 임무를 마치게 됐다. (「민주주의-진실화해위원회」, 한국 주재 남아공대사관 홈페이지)

한국: "진상규명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를 통해 국민화합과 통합 달성"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부독재에 맞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과거사 청산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제주4.3사건'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이 진행됐고, 민주화운동 참가자에 대한 보상 사업(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약칭 민보상위)도 실시됐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노무현 정부 또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정권 시기 인권침해 의혹을 받은 국가기관이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혀야 강조했고, 그에 따라 국정원․경찰청․국방부는 각각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자체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했다. (임영태, 「한국 현대사와 과거사 청산 문제」, <통일뉴스>, 2006.5.10)

2004년 8월 17일에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62.1%가 "역사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데 찬성했으며 시민단체들도 과거사 청산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17대 국회가 개원하자 과거사법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고, 각 정당별로 기본법과 관련된 의안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은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 한나라당은 「현대사 조사․연구를 위한 기본법」, 민주노동당은 「진실․미래를 향한 과거청산 통합 특별법」을 제출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7대 국회였던 2005년 86주년 3·1절을 맞는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과거사 청산'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잘못된 역사는 지금이라도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한다. 누더기가 된 과거사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정치권의 반성을 촉구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늘 3.1절을 맞이하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과 고통받았던 민중들에게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올바른 과거사 청산'을 약속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숱한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여야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기본법안은 과거사 정리 방식을 '진상규명에 바탕을 둔 진정한 화해를 통해 국민화합과 통합을 달성하는' 것으로 정하고, 이를 수행할 기구로 독립된 위원회 성격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남아공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진실위원회의 모델을 한국적 방식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2005년 5월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안'이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25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159표, 반대 73표, 기권 18표로 통과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5년 5월 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고, 5월 31일 정부에서 법안이 공포됐으며 12월 1일부터 시행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 12월 22일부터 활동을 시작해 2010년 12월 31일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5년간 존속했다. 그 과정에서 1만1175건을 조사해 8450건(75%)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 10일 2기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정근식 서울대 교수)가 1기 활동 종료 후 10년 만에 출범했다. 2021년 5월 27일 2기 진실화해위는 1호 진실규명 신청 건인 형제복지원 사건 등 328건의 사건들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하며 최대 4년으로 보장된 진상규명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2020년 5.18 4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의 길"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고백과 용서'가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월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여 정의로운 정신이 됐습니다. 

(…)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 진실 등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 처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오월 정신은 더 널리 공감돼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위기는 약한 사람들에게 가혹합니다. 미래세대가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에서 꿈을 마음껏 펼치도록 연대의 힘을 키워가겠습니다."

노회찬과 '과거사 청산', '적폐 청산' : "단절되지 않은 역사의 보복을 체험한다"

2001년 5월 28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4층)에서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상임대표 권오헌)는 '국가보안법 사건 명예회복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계승연대는 공청회 취지와 관련해 "민보상위에서 지난 6개월간 400여건이 심사됐으나 유독 국보법 사건은 단 한건도 없다"며 "국보법 위반활동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이므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001.5.28.)

기조발제에 나선 조국 동국대 법학 교수는 "실정법상 국보법이 여전히 폐지되지 않은 미묘한 상황이지만 국보법 위반자들이야말로 과거 폭압적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주동적 민주화 세력"이라며 "탈냉전과 평화의 현시대에 국가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냉전적 시각을 벗고 국보법 위반활동의 대부분을 민주화운동으로 정당하게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노회찬 민주노동당 부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민주화보상법의 제정취지와 적용대상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여 각종 피해를 당했는가의 여부가 관건이다. '관련자'의 사상과 신념 등은 이 법에 따른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004년 3월 1일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출사표(<진보정치 대표선수, 국회를 흔들어라!-다시 광야에 서서>에서 "열일곱 나이에 유신반대투쟁에 나선 이래 30년을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의 외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정과 보상신청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보상받기 위해 운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 노회찬을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는 노회찬의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비아북, 2014)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대표는 한국 진보운동이 쌓아온 역사의 지층을 생각하게 한다. 반유신투쟁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보정당운동에 줄곧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운동 출신으로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투신한 첫 세대이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운동으로까지 나아간 첫 세대라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각별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장기전을 펼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는 민주화운동 보상도 신청하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을 깨달으면서 오히려 내가 구원받았다.'며 자신은 희생한 것이 아니라 혜택 받은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2004년 12월 12일 노회찬은 "단 한 번도 불의에 대한 단절이 없었던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며 <난중일기>에 「단절되지 않은 역사의 보복을 체험한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0월 법사위 국정감사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대통령만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만 보면 분명히 노무현정부인데 각료들을 보면 김대중, 김영삼 심지어는 노태우정부의 체취가 혼재되어 있었고, 밑으로 내려가면 제 5공화국, 제4공화국의 잔재가 굳건히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불의에 대한 단절이 없었던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정권교체'라는 명분으로 단절 대신 타협과 야합으로 이어 온 권력교체의 비극이 낳은 결과이다.

'이철우의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우리는 유신잔당, 5공잔당이 국가 권력의 상층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모습을 본다. 신유신세력, 신 5공집단이 재생산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단절되지 않은 역사의 보복을 체험한다. 

현역의원이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폭로'한 이 사건의 폭력성은 최근 모 지역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간첩암약설에 이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태도 역시 집단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부모들이 피해자에게 '잘 사나보자'고 협박하고, 사건수사 경찰경찰관이 '너희들이 꼬리치며 좋아서 찾아간 것 아니냐. 내 고향이 이 지역인데 너희들이 이 지역 물 다 흐려놨다'며 윽박지른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12.12사태의 주동자들은 1995년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내란죄와 반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유신잔당, 5공 잔당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국회 법사위를 점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신새벽도 노동의 새벽도 아직은 오지 않았다."

노회찬, "제대로 된 과거사 진상규명이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삼성X파일 사건'과 관련해서도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2005년 7월 <조선일보>와 KBS, MBC의 이상호 기자 등에 의해 X파일의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몇몇 예를 소개하면 이렇다.

진상규명은 하되 정치쟁점화엔 반대한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은 더운 여름에 국민들만 짜증나게 할 뿐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도청은 범죄행위인 만큼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 어두웠던 일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경제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정치쟁점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기관의 비밀스런 행위에 대해선 국가정보원이 자체 조사에 나서는 게 맞다.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엔 반대한다.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

정경 유착과 도청 문제 중 도청 문제가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이다. 정경 유착은 역사적으로 진상이 밝혀져 왔고, 구조적인 것이 다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 발언은 과거사 진상 규명이 누구를 혼내주고 보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인 만큼 보복성 과거사 조사는 불필요하다는 의미다.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

▲2005년 12월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X파일의 진실, 이대로 묻히나' 토론회에 참석한 이상호 MBC 기자와 노회찬 Ⓒ노회찬재단

정치권의 이런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은 2005년 7월 24일 <난중일기>(「역사에는 시효가 없다」)에 이렇게 적었다.

"이른바 엑스파일이라 불리는 옛 안기부 도청 녹취록 전문을 읽으면서도 똑같은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풍문으로만 들었던 얘기들, 설마 하면서 듣고 카더라 하면서 옮기던 야사(野史)들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사관(史官)들에 의해 정사(正史)의 기초가 될 사초(史草)로 기록되어 있었다.

문제의 테이프 관련 당사자들이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하여 서울 남부지법의 판사는 도청테이프의 원음을 공개하거나 그 내용을 자막으로 보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은 테이프도 듣지 않고 녹취록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려진 잘못된 판단이다. 만일 그 판사가 97년 9월 9일의 도청테이프를 직접 듣고 이에 대한 두 개의 녹취록과 10월 7일, 4월 7일 자의 또다른 녹취록까지 모두 읽었다면 이런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 

따라서 지금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도청테이프의 원음 공개와 녹취록 전문 공개이다. 

(…) 

국민들이 그 내용을 온전히 제대로 알고 있어야 이 사건 관련자들에 의한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 50년, 60년 전의 과거사도 제대로 된 '청산'을 위한 첫걸음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가? 

남부지법 판사는 테이프 원음 공개시 1건당 5000만 원씩 물리겠다고 했다. 법원이 이 결정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1건 당 5000만 원씩 내더라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 문화방송이 돈이 없다면 국민모금을 해서라도 진상이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

이어 노회찬은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한 편의 글을 기고했다, 글의 제목은 「X파일의 본질이 도청이라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 악의 커넥션 끊으려면 국조와 특검뿐」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재벌그룹과 정치권과 언론사와 국가권력기관의 검은 커넥션이다.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공세가 그 주요측면이고 이를 세상에 드러낸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은 부차적인 측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국정원과 검찰이 맡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일이다." (<프레시안>, 2005.7.27.)

삼성X파일을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는 2006년 7월 31일 한 토론회에서 '삼성자본독재'의 실상을 이렇게 고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삼성 독재 치하에 있는 형식상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 

삼성 독재는 무섭습니다. (…) 삼성 독재 하에서는 삼성에 부역하는 언론인과 그들에게 반기를 들고 처참히 부서지는 사람들 둘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잘못된 것을 지적한 이상호와 노회찬 두 사람과는 달리, '삼성X파일 사건'은 결국 "뇌물을 준 사람, 또 뇌물을 심부름한 사람, 또 뇌물을 받은 검사들은 어느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끝났다. '뇌물제공 총책'인 이건희는 소환조차 받지 않았다. 그리고 '뇌물 배달책'인 홍석현은 형식적 조사를 통해 무혐의 면죄부를 받았다. '떡값검사들' 가운데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한편 2008년 2월 26일 '과거사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2년 연속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에 뽑혔다. 이 연구 모임은 17대 국회 개원 직후 강창일 의원 통합민주당(제주시 갑)의 주도로 결성,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관련 법안 마련에 앞장서 왔으며 2007년에도 모두 18건의 법률안을 발의, 제주4.3특별법 개정안 등 7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모임에는 대표인 강창일 의원을 비롯, 임종인·김태홍·이해찬·김근태·김원웅·강기정·신학용·이영호·이화영·곽성문·노회찬 의원 등 12명이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 <마로니에 방송> 화면(2017.7.4.) 갈무리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중단된 지 7년째를 맞는 2017년 7월 4일, 역사정의실천연대와 국회의원 진선미(더불어민주당), 권은희(국민의당), 소병훈(더불어민주당), 추혜선(정의당) 공동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과거청산은 더 미룰 수 없다"는 취지로 마련된 과거청산 결의대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맞춰 국회와 정부에 과거청산을 위한 입법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입법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정당, 피해자,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자리였다.

노회찬 정의당 20대 국회 원내대표는 격려사를 통해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한다면 정의당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제대로 된 과거사 진상규명이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며칠 뒤인 2017년 7월 1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은 김어준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어준 : <세계일보>가 국정원 개입 문건 많이 내놨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여기에 대해서 왜 다 끝난 사건을 지금 던지고 다니냐 이런 얘기도 나오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 : 역사에 끝이 없죠. 우리가 과거에 친일문제 친일 과거사 청산문제 70년 80년 일도 다 들추어내서 하지 않습니까. 이건 가장 최근에 일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일이고 저는 국정원이 지금 잘하고 있다고 봐요. 

국정원이 정말 크게 요란스럽지 않게 자기 할 일을 공론화시켜서 그 내에서도 논의를 통해서 뭐뭐뭐가 조사되어야 되는가에 대해서 내부적 공감대를 구축하면서 일단 아젠다를 설정을 하고 그걸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는 그리고 저는 어찌 보면 국정원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라고 보여집니다. 

국정원이 타의에 의해서 외부의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어찌 보면 국가의 위해를 가했던 일들 아닙니까.

김어준 : 그렇죠.

노회찬 : 그 일들을 갖다 스스로 참회의 심정으로 해내는 이런 일들이 국정원만이 아니라 검찰도 해야 되요 사실은. 법무부 검찰도 스스로 해야 되고 법원도 대법원도 스스로 해야 되는 일이에요.

김어준 : 법원은 정말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영역이거든요 최근에 들어서. 정치권도 꼭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한다고 표현해 버려요. 최종적인 판단이. 그런데 법원도 어느 정도 견제나 비판이나 혹은 기록이나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합니다.

노회찬 : 모든 정치적 비리의 최종 결재하는 시스템에는 법원이 들어가 있는 거죠. 법원 결재 없이 마무리 되지 않으니까요.

▲jtbc '신년특집 대토론: 2018년 한국 어디로 가나'(2018.1.2.) 화면 갈무리

2018년 1월 2일 jtbc <신년특집 대토론>의 주제는 '2018년 한국 어디로 가나?'였다.

유시민 작가와 박형준 동아대 교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참석해 보수와 진보를 대표해 논쟁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특히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대해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김성태 의원과 박형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이 아닌 상습적인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놨고 이에 더 나아가 언제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권에 대해 '사정'을 해왔다는 악습이 있다고 밀어붙이자, 노회찬 의원과 유시민 작가는 국가 권력을 개인적 물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한 헌법 위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일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박형준 :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재미를 보고 있다. 적폐청산 하는 과정이 이전 정부를 죽이는 일이고, 현재의 정권이 그런 문제를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이 유혹을 느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서며 가장 강조한 것이 협치였다. 협치를 안 하면 우리나라가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작년에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모든 국정 과제들이 금년에 협치란 틀 안에서 풀지 않으면 해결 안 된다. 한 손으론 악수하고 다른 한손으론 계속 때리고 있다. 

결국 이를 통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협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계속 만들고 있다. 어떤 정부도 이렇게 적폐청산을 두고 1년 동안 국정과제 1호로 삼고 행한 정부가 있었느냐. 그런 정부는 없었다.

노회찬 : 아니, 5공 청산은 어떻게 했느냐, 4.19 혁명이 일어난 데는 헌법을 고쳐서까지 소급입법을 만들어서 3.15부정선거라는 최대의 적폐를 청산하는데 몇 년씩 걸려가면서 처벌했다. 

국정원 동원 등 국가적 불법 범죄 행위를 그냥 둬야 하느냐.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무엇이 중단되어야 하느냐.

김성태 : 정책 보복, 인사보복 하지 말라는 거다.

노회찬 :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정책 하자는 것 아니냐.

김성태 : 전 정권 정책을 이렇게 덮어버리면 안 된다. 4대강에 몇십억이 들어간 사업인데 지금 볼을 철거하고 지금 물 다 빼내는 것이 잘하는 짓이냐.

노회찬 : 그렇다.

박형준 : 표출된 불법은 수사를 해야 한다. 제가 문제 삼는 건 문재인 정부의 1호가 적폐청산이다. 그런 정부가 없다. 그 표적이 확실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입법 통해 과거사 정리를 했다. 

적폐청산위원회라고 하는 탁월한 정치적 기획 위해 과거 정권을 모두 탈탈 터는 거다. 의도와 관계없이 보복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짚는 거다.

유시민 : 사실 그 방식으로 했을 때 너무 반발을 해서 이 방식으로 하는 거다.

노회찬 : 불났으면 불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이다. 소방대원들이 왜 불만 끄고 있냐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적폐청산만 하는 것은 현 정부에 유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옛 정권이 남긴 오물을 치우는데 처음엔 칭찬 받아도 계속 박수를 받겠느냐. 

문제는 모든 정권이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묻고 싶은 건 이거다. 왜 이렇게 나라를 운영했느냐. 불법으로 국가 기관을 이렇게 운영했느냐. 그걸 가지고 왜 보복이라고 하느냐.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 보복이라는 것이 없다. 이게 계속 진행되면 개인 비리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 아니냐. 

그리고 청와대가 수사하느냐. 검찰이 있고 법원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도 있던 검찰과 법원이다. 그래서 지금도 구속영장 기각되고 이러지 않느냐.

닫는 글: 좌와 우를 아우르는 '소통'과 '공감'에 대하여

만델라와 '우분투(ubuntu)!':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만델라와 노회찬이 떠나고 난 뒤 '40대 아저씨의 서툰 그림일기'라는 이름의 한 블로거는 블로그에 '소통'에 대한 짧은 글(2020.8.8.)을 올리면서 두 사람을 호명했다.

"소통이란, '막힌 것을 뚫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많은 경우에 소통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상대방에게 원인이 있다고 본다. 

(…)

소통을 생각하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과 고 노회찬 의원이 떠오른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진보적인 성향으로 가진 것이 없는 이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대변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색채를 띠는 정치인과 척을 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두 사람 모두 살아생전에 좌와 우를 아우르는 소통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쩌면 이 분들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위해 평생을 살았지만, 그와 반하는 이를 만난다 하여 대립각을 세운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모두를 아우르며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아니었을까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냐 하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만델라가 럭비월드컵을 통해 백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영화 '인빅터스'로도 제작됐다. 대통령에 취임한 만델라는 당시 대다수가 백인으로 구성된 자국 럭비팀 '스프링복스'와 영국의 경기에서 국민(흑인)들이 상대팀을 응원하는 것을 보고 무엇보다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야겠다고 결심한다. 

1995년 럭비월드컵 남아공 개최를 이끌어낸 만델라는 자국 대표팀 스프링복스의 주장을 초대해 1년 뒤 열리는 남아공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을 해달라고 제안을 한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고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우승. 최약체팀이었던 남아공 대표팀은 흑백 구분 없이 하나된 4300만 국민의 응원 속에서 결국 영광의 우승을 차지한다. 

이 날의 경기는 흑과 백이 하나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미래를 함께 꿈꾸는 화합의 길로 나서자는 만델라의 설득은 진실했고, 그의 진실함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럭비의 우승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감동의 성과를 가져왔다. (「소통과 공감의 메신저, 넬슨 만델라」, 현대제철 뉴스레터 <쇠부리토크> Vol.1017, 2017.2.6.)

▲'우분투'를 상징하는 한 장의 사진 (사진 출처 찾지 못함)

'우분투'(ubuntu) 남아프리카 줄루족이 만남의 인사로 서로를 향해 하는 말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는 뜻이라고 한다. 일찍이 우분투 정신을 뿌리 삼아 340여 년이 넘도록 지속돼온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이들이 바로 만델라와 투투 대주교다. 

만델라는 "우분투가 자칫 자신을 위해 일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일하다 보면 그 공동체에 속한 자신의 위치가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굉장히 높게 칭찬하고 싶을 때 우분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관대하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사려 깊고, 공감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안의 무언가를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당신'과 얽혀있고 당신이라는 사람과 끊어질 수 없이 연결돼 있습니다."

※한 아프리카 부족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인류학자가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깜짝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했죠. 

게임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들은 시작종이 울리자 뛰어가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가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는군요. 그 모습을 본 학자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한 명이 먼저 뛰어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 데 왜 함께 갔지?"

아이들의 답은 '우분투(ubuntu)!'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 (백선기 책임 에디터, 「'우분투(ubuntu)'를 아시나요?」 (<이로운넷>, 2021.1.8.)

노회찬과 '함께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 것"

노회찬은 증오와 적대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소통과 공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갑자기 떠난 뒤, 사람들은 '소통과 공감의 정치인'으로 노회찬을 떠올렸다.

<디트NEWS24>의 류재민 기자는 「노회찬 어록과 정치인의 언어: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해야」(2018.7.27.)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노회찬 의원이 진보와 보수 정치권 모두에 존경과 찬사를 받는 이유는 정치인으로서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주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이는 면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에 '제2의 노회찬'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였던 윤영상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표현했다. (「품격 있는 그의 삶과 언어가 그립다: 故 노회찬 1주기를 맞아」,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2019.7.24.)

"그는 품격있는 정치언어로 소통하는 고급 정치인이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말과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는 저급한 정치꾼들과는 질이 다른 언어를 구사했다. 그의 언어는 정곡을 찌르는 비유, 대중적 현장감이 있으면서도 간결하고 명쾌했다. 

또 실사구시에 바탕을 두면서 현실을 바꾸고 미래를 설계하려 했으며, 혼란 속에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려 했다. 그와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그의 언어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정치는 그래서 그의 빈자리가 크다."

노회찬 스스로도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했다.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그동안 다룬 이야기 중에서 추려서 담은,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공저 <생각해봤어?: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웅진지식하우스, 2015)에서 세 사람은 소통과 공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소통과 공감은 머리가 똑같아지는 게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혹은 아파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딴지일보>와의 인터뷰(2007.4.20.)와 의원실의 '함께맞는 비' ⓒ노회찬재단

노회찬이 '인생의 한마디'로 꼽은, 일하는 공간에서 늘 함께 한 신영복 선생의 "'함께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는 글귀는 그의 소통과 공감을 집약해서 표현한다. 20년 20일 동안의 감옥생활(1968.7.~1988.8.)에서, 그리고 출소한 뒤 신영복은 '함께맞는 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1983.3.29.)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인 2005년 2월 15일 '마음의 스승'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은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왜 제게 이 글을 주셨을까 생각해보았지요.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할 때 권한을 행사하는데 그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절절한 아픔까지도 함께 느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국회의원으로 갖고 있는 많은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 데서 끝나지 말고 동고동락하는 자세로 현장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의원이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스승 신영복, 함께 맞는 비의 의미를 배우다 - 노회찬 의원」, <국회보 국회의원 25시> 2013년 1월호)

▲jtbc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솔베이지의 노래'(2018.7.26.) 화면 갈무리

오랜 길동무 조승수의 말을 빌면 "아직도 가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던 노회찬이 떠나고 넷째 날인 2018년 7월 26일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폭염의 더위 속에서 끝없는 인파가 그의 빈소를 찾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한 번 쯤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그런 언어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치권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모함과 놓으려 하지 않는 특권뿐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언어 안에 담긴 온기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되살려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승수는 「추도의 글: 그를 보내며」(노회찬, <노회찬의 진심>, 사회평론, 2019.1.)를 이렇게 맺었다.

"그는 가고 싶었던 길이, 하고 싶었던 일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원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모여든 수만 명의 조문행렬이 의미한 것은 자의도 타의도 아닌 상황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보내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를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기록이야기 <만델라와 노회찬> 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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