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글로벌 논의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유럽, 미국, 호주 등 주요 대륙에서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이들을 최대한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 행정처리 및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로가기 : 미국·영국·EU도 플랫폼 노동기본권 보장 흐름, 한국만 역주행?)
글로벌 대세는 입증책임 전환
미국의 AB5 법안, 그리고 유럽연합 의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킨 결의안에서 분명히 확인되는 글로벌 추세가 있다. 플랫폼노동의 기본값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만일 여기에 이의가 있다면 사용자가 이를 입증하도록 한 '입증책임 전환'이다. 즉,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자 아님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전통적인 노동자(근로자)와 프리랜서 사이의 모호한 경계가 사라지고, 노동자(근로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넓힐 수 있게 된다. 특히 유럽연합 결의안의 경우 사용자의 입증으로 프리랜서로 확정되어도 전통적인 노동자 권리보다 낮은 권리를 강요해선 안된다고 함으로써 플랫폼노동 전체로 노동자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노동법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알고리즘'에 대한 내용이 노동법의 규제 영역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조건과 관련된 알고리즘 내용은 노동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 노동조합이 그러한 알고리즘의 수정·개정을 놓고 단체교섭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인사이드경제>가 이 연재의 초반에 정부가 사용하는 구분법에 따라 2가지의 플랫폼을 별도로 정의하고 설명한 바 있다. 알바 구직 플랫폼처럼 일자리·노무제공을 실제로 중개만 하는 플랫폼이 있는가 하면, 배달·택배·대리운전·모빌리티 등 일감 배정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플랫폼도 있다.(바로가기 : 노동과 가격의 지배자 플랫폼, 불리할 땐 "우린 그저 중개만 합니다")
노무제공 중개만 하는 플랫폼에 사용자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을 통해 일자리를 구한 이들의 노동법상 사용자는 중개 플랫폼이 아니라 새로 구한 직장의 사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개인정보가 넘어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호책임, 과도한 중개수수료를 책정하지 않도록 하는 규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감 배정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플랫폼의 경우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 사실상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감 배정, 가격 결정의 원리를 담은 알고리즘은 사실상 취업규칙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들 플랫폼에게 사용자책임을, 그리고 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함이 마땅하다.
위 표에 정리된 것처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고, 앞서 소개한 방식처럼 플랫폼노동의 기본값을 '노동자'로 추정하되 사용자가 입증해야만 프리랜서로 인정할 수 있도록 '입증책임 전환' 법리를 적용하면 된다. 실제로 중개만 하는 플랫폼의 경우 직업안정법을 통해 과도한 수수료 규재나 개인정보 보호의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두 플랫폼 모두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의 교섭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거꾸로 가는 문재인 정부
그런데 노동정책에서 문재인 정부는 완전 청개구리다. 글로벌 추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다. 사실상 정부 입법안이라 할 수 있는 '플랫폼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후 '플랫폼종사자법')을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대표발의로 내놓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 법은 노동자(근로자)와 프리랜서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기본값으로 노동자를 추정하고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추세인데 말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장철민 의원은 "유리의 원칙을 명시해 노동법 적용이 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노동법을 우선 적용토록 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질문 하나만 던져도 논리가 무너진다.
그렇다.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이 어떤 자들인가? 독점의 힘으로 시장과 정치권, 사법부까지 쥐락펴락 하는 이들 아니던가. 노동자들이 소송 걸면 막강한 자금력으로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간다. 최소 7~8년은 걸리는 기나긴 소송을 거쳐야만 노동법 적용 여부를 입증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이 남아 있는 한 '유리의 원칙'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멀쩡한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오분류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고,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대 플랫폼 자본은 오히려 멀쩡한 노동자까지 프리랜서로 내몰아 노동법 적용이 안되도록 만들 게 뻔하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물론이고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오분류를 조장하려는 시도를 곳곳에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업으로 일하면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인가? 건설현장에 단 하루를 나가 일해도, 편의점에서 단 1시간만 일해도 노동자로 권리를 보장받는 게 상식이다. 배민 커넥터는 찰라를 일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노동자이며 당연히 노동법 적용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을 플랫폼 종사자로 보호한다? 이건 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 밖으로 밀어내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플랫폼종사자법 어디를 읽어봐도 과로사를 규제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최근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직종인 택배·배달·모빌리티 등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모두 노동법 적용대상이며 마땅히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과로사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들에게 노동법이 아니라 플랫폼 종사자법 적용한다는 것은 노동법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플랫폼 기업에 면책 특권까지
입증책임 전환을 통한 분명한 경계 설정과 노동자 개념 확장이 없다면 결국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책임을 경감시켜주는 꼴이 되고 만다. 플랫폼종사자법 내용에 따르면 일간 배정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플랫폼을 '플랫폼 이용사업자'라 하여 몇 가지 규제만 하고 있을 뿐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장철민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제가 지난 7일 카카오모빌리티와 대리노조간 교섭을 중재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플랫폼법은 노조나 교섭 등 권리확보와 함께 추가적으로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해명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야말로 자기 논리를 부정하는 논거 아닌가. 플랫폼종사자법이 없는 상태에서 대리노조의 투쟁을 통해 카카오모빌리티와 교섭이 성사된 것은 노동법상 권리를 적극 행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플랫폼종사자법이 생긴다면? 카카오모빌리티는 이 법의 존재를 이유로 교섭을 거부·회피할 수많은 수단과 논거를 찾으려 할 게 뻔하다.
게다가 플랫폼종사자법과 함께 발의된 직업안정법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물어야 할 플랫폼에게는 오히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직업소개·알선 관련 책임만 적용하도록 경감해주고 있다. 직업소개소로 등록만 하면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각종 책임과 의무가 면제되니, 플랫폼 자본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법안 아닌가.
"1년 365일 국정감사가 이뤄지면 좋겠어요"
올해 국정감사 기간 동안 플랫폼 자본의 비열한 모습들, 그와 반대로 플랫폼 노동의 비참한 현실이 계속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행정소송까지 갔던 카카오모빌리티가 교섭에 응하겠다고 태도를 변경하고, 무분별한 독점과 탐욕·착취에 대해 CEO들이 직접 사과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그동안 이들 플랫폼으로부터 받은 설움, 억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도 솟구쳤다. 오죽했으면 1년 365일 국정감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올까. 하지만 플랫폼기업의 탐욕이 폭로되고,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가 알려진 것 모두 플랫폼 노동자들이 지난 수 년 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워온 결과이다.
라이더유니온을 비롯한 배달 플랫폼 노조들이 쿠팡이츠를 상대로 교섭을 시작했고, 이제 곧 대리기사들이 그 뒤를 따를 예정이다. 웹툰 작가들, 모빌리티 택시기사들도 거대 플랫폼 자본을 향해 청구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들이 조직을 결성하는 꼭 그만큼 플랫폼 자본의 치부와 민낯도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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