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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오랜 꿈 '플랫폼'...노동시간 살살 '녹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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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오랜 꿈 '플랫폼'...노동시간 살살 '녹이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코로나와 산업·노동 전환 ③ '0시간 계약' 앞에 흔들리는 노동자성

"우버(Uber) 기사들은 앱에 접속하여 우버의 권한 행사 범위에서 일하고, 운송 배당을 기꺼이 수용해야 하는 시간 동안 일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소송을 제기한 지 꼭 5년 만의 일이었다. 올해 2월 19일, 영국 대법원은 우버 앱을 이용해 승객 운송을 해온 기사들이 우버에 고용된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위 문구는 소송의 첫 다툼 무대였던 영국 고용심판소(Employment Tribunal)가 2016년 10월에 판정한 내용이며, 대법원은 위 판정내용이 정당하다고 확인해준 것이다.

우버 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한 이유

그렇다면 영국 대법원은 어떤 근거로 운전기사들을 우버가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한 것일까? 사실 대법원이 인정한 근거는 4년 전에 고용심판소가 판정에 사용한 근거와 사실상 동일했다. 우버가 이에 불복해 진행된 2017년 고용항소심판소(Employment Appeal Tribunal)에서도 판단은 똑같았고, 우버가 다시 불복해 진행된 2018년 12월 고등법원 판결의 근거도 같았다.

▲ 영국 법원이 우버 운전기사를 우버가 고용한 노동자로 본 근거.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그 핵심적인 근거를 알기 쉽게 나열해보면 위 표와 같다. 우버는 기사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편한 시간대에 자신의 선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우버 기사들은 요금도 결정할 수 없고, 운행 경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내키지 않는 콜을 자주 거부했다가는 강제 로그아웃을 당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이렇게 운행사에 종속된 프리랜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사실상 앱을 사용한다는 것만 다를 뿐 사실상 '콜 택시'처럼 운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인사이드 경제>가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영국 대법원이 판결한 근거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 일단 승복한 우버, 그런데 …

그래서 영국 대법원 판결의 결과 우버 기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거다. 처음에 우버는 "이번 판결은 2016년 당시 우버 앱을 사용한 소수의 기사들에게 적용됐던 것"일 뿐이며 지금은 앱을 많이 바꾸었다며 판결에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한 달 뒤인 올해 3월, 우버는 7만 명에 달하는 기사를 모두 '고용된 노동자'로 대우하겠다고 발표하게 된다. 법에 따라 최저임금(시간당 8.72파운드, 약 1만 4000원)과 유급 휴가, 연금 혜택도 부여된다. 일단 대법원 판결에 승복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쟁점은 지금부터 등장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하려면 노동시간이 얼마인지 알아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적용할까? 우버가 내놓은 답은 간단하다. "기사들이 승객을 태운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승객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에서 뺀다."

언뜻 보면 뭐가 문제야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앞에서 인용한 영국 대법원 판결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기사가 앱에 접속해 운송요청을 수락해야 하는 상태에 놓인 시간 전체를 노동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해 우버 앱에 로그인 한 시간부터 로그아웃 한 시간까지 전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버는 대법원 판결 내용을 거스른 것이다. 앱에 접속한 시간 중 승객을 태우고 운전한 시간만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한 것.

"노동시간만은 내 맘대로 할 거야!"

자, 그렇다면 영국 우버의 저 행위가 왜 문제가 되는지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서 논의를 시작해보자. 여러분 스스로 편의점에서 야간에 알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손님이 뜸한 시간이어서 잠깐 휴대폰을 열어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자, 그 시간은 실제 일한 것이 아니니까 노동시간에서 뺀다고 하면?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편의점에서 손님 받아서 일하는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면 독자 여러분은 당연히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손님이 대체 언제 올지 모르는 시간이니 내가 편의점을 떠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대기해야 한다. 손님이 오면 SNS 글 올리는 거야 당연히 중단했을 거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지 않나!"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계산원이 손님이 없는 시간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그 시간은 실제로 일한 시간이 아니니까 노동시간에서 빼겠다고 하면?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일하던 중 갑자기 배가 아파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마찬가지로 일을 안 했으니 화장실 다녀온 시간을 노동시간에서 뺀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그런 미친 놈이 어디 있냐"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 영국에서 우버가 벌인 게 바로 이 미친 짓이다. "손님의 콜이 언제 올지 모르는 시간이니 앱을 꺼고 쉴 수도 없고 꼼짝없이 대기하는 시간이다. 만일 걸려오는 콜을 거부하면 강제로 로그아웃 당하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전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지 않나!"

영국 대법원은 아주 상식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로그인 한 시간부터 로그아웃 한 시간까지 모두 노동시간으로 포함해서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 노동시간에 비례해서 유급휴가 일수, 연금 혜택의 액수도 계산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우버는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판결은 따르되 '노동시간'에 대해서만은 한사코 대법원 판결을 무시했다.

플랫폼의 본질, 노동시간 녹이기

여기에 플랫폼 노동 문제를 풀기 위한 열쇠가 숨어 있다. 플랫폼 기업이 일하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처럼 둔갑시키는 기술이 바로 '노동시간 녹이기'에 있기 때문이다. 앱에 접속한 시간을 계산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승객을 태운 시간만 따로 떼어서 계산하는 건 (실제 노동시간보다 짧다는 건 차치하더라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플랫폼 종사자는 전통적인 노동자가 아닙니다. 노동시간 계산이 불가능해요." 이게 플랫폼 자본이 온갖 억지를 다 동원해 주장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노동시간 하나만 꼬아버리면 노동법 적용이 다 꼬여버린다. 근로기준법을 한번 보자. 근로시간 한도, 연장근로시간, 휴일근로시간, 주차·연차, 임금·퇴직금 계산이 모조리 노동시간과 연동되어 있지 않은가.

플랫폼 노동은 '노동시간 유연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는 플랫폼 앞에서 명함도 꺼낼 수 없는 수준이다. 플랫폼은 노동시간을 유연하다 못해 아주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린다. 오죽했으면 영국에서 이런 플랫폼 노동에 '0시간 계약(Zero Hour Contract)'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그런데 몇 년간의 논쟁 끝에 영국 대법원이 '0시간 계약'의 본질을 파헤쳐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4년 전에 고용심판소도 이미 알아챈 바 있다. 이 글의 맨앞에서 인용한 문장에 나온 것처럼 "앱에 접속하여 우버의 권한 행사 범위에서 일하고, 운송 배당을 기꺼이 수용해야 하는 시간" 전체가 노동시간임을, 즉 '0시간 계약'이란 단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말이다.

'자유로운 업무시간'이라는 사기

▲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의 인원 모집 포스터.

"자유로운 업무시간 :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세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쿠팡이츠)

"소소한 부업을 찾는 친구, 자유로운 스케쥴을 원하는 친구에게 추천해주세요" (배민커넥트)

각종 배달이나 운송 플랫폼의 광고문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자유로운 업무시간'이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내가 스스로 결정한다는 저 얘기가 사기에 가깝다는 점은 직접 일해본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식사시간에 주문이 몰리기에 그 시간대가 아니면 수입을 올릴 수가 없다. 자유로운 업무시간은 개뿔! 결국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 내달릴 수밖에 없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서비스의 경우 자연스럽게 밤과 새벽 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몰린다.

플랫폼은 이런 방식으로 일감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 자본이 지급해야 할 임금 부담과 책임을 노동에게 떠넘겨 버린다. 운행을 원하는 승객의 콜을 대기하는 시간, 다음 배달 주문을 받기 전에 잠시 기다리는 시간, 이 집에서 가사노동을 끝낸 뒤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

하지만 이런 시간들에 대해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당연히 노동시간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은 "…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 판결과 똑같은 취지인 것이다.

플랫폼은 모든 것을 기록한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만에 하나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로그인해서 앱만 켜놓고 실제 일은 안 하면서 수당만 받아 챙기는 사례도 생길 수 있고 말이다." 이건 우버나 플랫폼 자본을 너무 순진하게 보는 착각일 뿐이다.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플랫폼 자본이 저런 상황에 대비 안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우선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앱을 켜는 순간 우버는 승객 콜을 보낸다. 이 콜을 한두번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쌓이면 강제로 로그아웃 당한다.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우버 기사들은 앱이 배정한 콜을 받아들인다. 앱을 켜는 순간부터 꺼기 전까지 이런 상태에 놓이는데 도덕적 해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승객들 콜이 잘 오지 않는 산골짜기에서 앱을 켜놓고 대기하며 수당을 챙기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어떤 우버 기사들이 그런 일을 감행할지 의문이다.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태워서 운임료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데, 기껏 최저임금 받으려고 굳이 산골짜기까지 가서 시간을 때운다고?

게다가 우버를 비롯한 플랫폼은 노동자에 대한 모든 것을 서버에 기록한다. 어떤 승객의 콜을 받아 몇 시 몇 분에 어디에서 태운 후 얼마 걸려서 어디로 운행한 뒤 운임료로 얼마를 받았다 등등 미세한 시간과 장소까지 모두 기록한다. 만일 도덕적 해이 사례가 있다면 우버와 같은 플랫폼 자본이 제일 먼저 공개하고 폭로에 나서지 않겠는가 말이다.

가만히 있다간 전체 노동자로 번진다

플랫폼 자본의 이런 행태는 전체 자본가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쉬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휴대폰을 보는 시간 등 짜투리시간을 없애던지, 아니면 이 시간을 노동시간에서 빼자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에서 노동시간을 놓고 벌어지는 쟁점은 따라서 플랫폼만이 아니라 전체 노사관계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장이라 할 수 있다.

정반대로 노동시간만 확정할 수 있다면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우버가 영국에서 보여주지 않았는가. 비록 노동시간을 '승객을 태우고 운행한 시간'이라고 제멋대로 장난을 쳐놓았지만, 어찌되었건 노동시간이 확정되니 이들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영국에선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우버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다 해서 노동자들에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노조를 결성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시간을 확정하면 되니까 말이다. 현재 영국 우버 노동자들은 GMB 노조로 조직해 기초협약을 체결했으며, 이제 노동시간을 둘러싼 쟁점으로 교섭이 전개되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시급을 넘어 1분당 임금까지 계산하는 '분급제'의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대형마트가 '0.5시간 계약제'로 30분 단위로 노동시간을 쪼개서 관리하는 일도 벌어진다. 노동시간을 녹이려는 플랫폼 자본의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일하다 잠시 화장실 가는 시간, 앉아서 땀을 닦는 시간의 임금이 명세서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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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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