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아웃(Lock-out, 봉쇄)이 실행되면 자동차 생산만 멈추는 게 아니라 판매 대리점도 강제 휴업에 들어간다. 그럼 자동차를 어떻게 살까? 휴대폰으로 산다. 온라인 판매망을 갖춘 매장은 요즘 VR(가상현실) 또는 AR(증강현실) 기법을 통해 휴대폰 상에서 차량을 360도 스캔해서 보여준다. 맘에 드는 차를 고른 후 전자 금융결제를 하고 나면 차가 트레일러에 실려 집 앞까지 배달된다. 마지막으로 차 키는 어떻게 받을까? 발코니에서 기다리면 드론을 통해 공중 배송된다."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미 작년부터 중국의 지리자동차가 이런 판매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많은 업체가 뒤따르고 있다. 자동차를 고르고, 사고, 인도받기까지 단 한 명도 만나지 않는, 이른바 '비대면(zero-contact)' 사업방식이 산업과 노동의 모양을 바꿔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록아웃(봉쇄)을 실행한 바 있는데, 이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업무(병원·철도·전기·가스·물 등)를 제외한 일체의 산업활동 전체를 중단시켜서 질병 확산을 막는 극단적인 조치이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비대면 방식을 도입해야만 살길을 찾을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 이름만 바꾼 한국판 뉴딜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연관성에 대한 시민들 인식이 높아지면서 '탄소중립(zero-emission)' 선언이 줄을 잇는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도 업무가 가능해지도록 만드는 다양한 비대면·온라인 기술이 도입된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한국판 뉴딜(K–New Deal)'의 핵심을 그린(Green) 뉴딜과 디지털(Digital) 뉴딜, 2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뉴딜의 내용을 보면 그닥 새로운 것이 없다. 아니,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것들이다. 정부가 지난 2018년 8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혁신성장'의 전략투자 분야를 '플랫폼 경제 구현'으로 잡고 이를 위한 3대 분야로 △ 데이터·블록체인·공유경제 △ 인공지능(AI) △ 수소경제를 꼽았다. 8대 선도사업으로는 "미래자동차, 드론,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에너지신산업, 초연결지능화, 핀테크"를 선정한 바 있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사용하는 단어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녹색성장'이 그러했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가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성장'으로 포장지를 바꾸었고, 다시 팬데믹을 만나며 '한국판 뉴딜'로 명함을 갈아치운 것에 불과하다.
산업 전환의 대표주자 : 미래차와 플랫폼
이윤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한국 산업구조에서 자본가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몇 가지 분야를 선택해 놓았다. 권력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단어만 바꿔치기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 새로운 먹거리가 무엇일까? 바로 플랫폼·인공지능(AI)·에너지신산업 3가지로 압축된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하면서 설정한 3대 분야와 8대 선도사업을 놓고 3가지 미래 먹거리를 설명해본 표이다. 이 내용이 한국판 뉴딜로 오면 플랫폼과 AI는 디지털 뉴딜로, 그리고 에너지 신산업은 그린 뉴딜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런데 3가지 먹거리를 잘 보면 '미래자동차' 분야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카쉐어링 부문에서는 플랫폼이, 자율주행차 부문에서는 AI(인공지능)가, 전기·수소차 부문에서는 에너지 신산업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나 한국판 뉴딜에서 미래차 산업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밀어붙인 비대면·온라인 사업방식의 극대화는 플랫폼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불러왔다. 음식 배달과 택배, 가사서비스와 모빌리티 등 가장 기초적인 생활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해 이제 플랫폼을 빼고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꿈꾸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았던가.
무섭게 성장하는 플랫폼 산업
아래 표는 플랫폼 산업 중 물류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마켓컬리와 쿠팡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공시한 고용 규모이다. 쿠팡만 보더라도 2개 법인을 통해 직접 고용한 인원이 2만 5000명이 넘으며, 이 수치는 올해 3월이 되면 거의 2배로 치솟게 된다. 어느새 쿠팡은 직접고용 노동력만으로 따지면 현대차에 이어 2위를 달리는 거대 공룡기업이 되었다. 마켓컬리 역시 지난해 기준 고용인원보다 올해 거의 2배 가까이 인력이 늘어날 정도로 사업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미래자동차의 경우 전기차가 각광받으면서 내연기관 부품산업의 퇴출이 예견되는 반면 배터리·모터 등의 새로운 소재·부품산업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어느 부문에서는 고용이 줄어들고 다른 부문에서는 늘어나는 편차가 있는 반면, 플랫폼 산업의 경우 비대면·온라인 사업비중의 증가로 연일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 전환의 과정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노동의 전환은 어떤 양상을 갖게 되는가의 문제이다. 모두들 '혁신' 그것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외치는데 그 과정에 노동자의 삶도 만만치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자본에도 많은 위험이 따르지만 안전망을 제대로 갖지 못한 노동의 경우 자칫하면 궤멸적인 타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동안 미래차 산업에 대해서는 <인사이드경제>가 몇 차례 기획·연재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다룬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한 추적도 진행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야기한 산업 전환과 노동의 변화 중 플랫폼 산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미래차와 함께 산업 전환을 선도하는 산업이 플랫폼인 만큼 제대로 다뤄볼 생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산업과 노동 전환의 양상과 쟁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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