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가 각 분야 전문가의 힘을 빌려 여러 산적한 문제의 대안을 들여다보는 기획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가기 : 시민건강연구소)
중국 우한에서 시작해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었다. 그 사이 1억1300만 명이 넘는 세계인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250만여 명이 사망했다. 전 세계 인구의 최대 3%를 죽음으로 몰아간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스페인 독감) 이후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 최대의 피해라고 할 만하다.
이런 대규모 피해가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이지 않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안착했다. 실물 경제를 대신해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 체제가 중요한 한 축을 잡게 됐다. IMF 사태 이전과 이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인류사를 나눌 수 있다는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글이 가볍게 와 닿지 않는 까닭이다. AC 1년, 관련 논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국가가 빚을 질 것이냐, 가계가 빚을 질 것이냐는 숙제는 지금도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비대한 자영업 비중이 개개인을 대재난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문제도 시급한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필수적 진료를 받기 힘든 장애인의 건강 문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도 중요한 숙제가 됐다.
당장은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금도 여전히 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한 시기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할지, 코로나19 이후 어떤 노력으로 더 좋은 변화를 이끌어낼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앞으로 매주 한 편의 전문가 글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코로나19 판데믹에서 우리가 얻은 돌봄에 관한 교훈은 많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만연해 있던 우리 사회의 에피데믹(Epidemic) 중 하나가 돌봄의 불평등과 돌봄의 결핍이었다.
2016년 고령화연구패널자료에 따르면, 식사하고 옷 입고 외출하는 기본적 일상생활이 어려운 45세 이상 성인 남녀 중 약 35%는 그들이 받는 돌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돌봄에 대한 시간적, 경제적, 정서적 지원체계를 더 갖춘 국가들은 같은 질문에 대해 약 20% 내외의 응답을 보였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는 그동안 당연시 여기던 돌봄에서도 새로운 쟁점들이 추가 생성되었다. 아동 돌봄은 보육기관, 유아교육기관, 학교의 휴교·휴원으로 인해 공백이 생겼고, 보호자의 돌봄 부담이 가중되었다. 성인 돌봄은 시설 집단 감염과 기존 돌봄서비스 중단이 핵심 쟁점이 되었다. 판데믹이 끝나고 코로나-19 종식선언이 나온다 해도, 돌봄의 불평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더 나아져야 한다.
우선, 생활환경과 삶의 조건으로 인해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이 있는지 더 살펴야 했다. 시설입소자, 저소득층, 빈곤 노인, 노숙인, 외국인, 문맹, 벽오지 거주하는 시민 등이다. 코로나-19 최대의 피해자는 요양시설, 요양병원 입소자였다. 그래서 감염병예방법 제49조의2에서는 저소득층과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및 기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자를 "감염취약계층"으로 정하고 있다. 시설 입소자의 불충분하고 열악한 돌봄서비스와 노동현실은 감염병 유행의 시작과 동시에 인지된 문제로 우선적 해결이 필요하다.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여가던 지난해 12월, 발달장애 성인 아들과 살던 노모는 지병으로 사망한지 반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기초생활수급 가족이긴 했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2인 일반가구로 분류되어 필요한 생계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이혼한 남편이 있어서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생계급여에 제한이 있었다. 복지 대응망이 촘촘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의 언론보도와 논평들이 나왔지만 이는 유사 사례가 발생할 때 마다 듣는 진단이었다.
둘째, 목소리가 작아 권리 주장이 약한 사람을 살펴야 했다. 성소수자, 이민자, HIV/AIDS 감염인, 근무환경이 열악한 노동자, 폭력피해자 등이다. 대규모 집단감염은 숨은 감염자, 감염경로 불분명 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감을 표출했다. 우리 사회는 특정 집단을 대상화하고 편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난 시기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재난 종료 후 강간, 인신매매, 가정 내 폭력 발생이 급격히 뛰어 오르는 양상을 흔히 목격하곤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성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보고들이 여러 국가에서 터져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작년 전면 이동제한 조치 이후 가정폭력 건이 30% 증가하였고, 싱가포르에서는 가정폭력 핫라인으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가 30~33% 더 증가하였다. 미국, 캐나다, 스페인, 영국에서도 역시 가정폭력 상담 건이나 응급쉼터에 의뢰 건이 상당히 증가하였다. 한국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정폭력 신고가 예년에 비해 적었다는 보고도 있었으나, 국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정폭력이 늘지 않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코로나-19 뉴스를 뚫고 아동학대 사건은 충격을 주었다. 8개월에 입양된 아이가 16개월째 학대로 인해 사망했다. 8개월 동안 10번이 넘는 골절이 발생했고, 3번의 학대 의심신고와 소아과 의사 진료도 있었다. ‘아동학대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021년 개정되고 지방자치단체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배치되어 초동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 100여 곳에만 배치되어 신속한 연계와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동 학대 예방, 조기발견, 피해 아동 보호를 제대로 하기엔 공무원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몇 년째 같은 말이 되풀이 되고 있다.
셋째, 법적 제도적 한계로 인해서 다른 우위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살펴야 했다. 특정 젠더, 장애인 등이다. 젠더는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젠더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여성이 훨씬 더 재난에 취약하고 더 잔인한 영향을 받는다. 여성과 남성은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위치를 가지고, 결과적으로 각기 다른 취약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인데,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며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라 불리는 정신건강 문제도 여성에게 더 심각한 상황이다. 2020년 상반기 남성 자살사망률은 전년 동기간보다 감소했지만, 여성 자살은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이 2019년 상반기 대비 43%나 급증했다. 여성 자살 문제는 코로나-19 판데믹 이전부터 악화하는 추세였고 코로나-19로 더 증폭되거나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제주에서 40대 어머니가 10대 아들과 숨진 채 발견됐다. 6월에도 광주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발달장애가정이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부모 10명 중 9명이 코로나19 이후 자녀 돌봄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돌봄 노동이 극대화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부디 '예비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절규였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기 쉬운 소수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결혼이민가족, 외국인근로자, 새터민 등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에서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감염병 대처와 더불어 돌봄의 구조적 취약성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 돌봄은 모든 세대에 걸쳐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살사망과 같은 건강결과에도 깊은 연관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돌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모두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정의(justice)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돌봄 정의를 향한 사회개혁을 위해 생각의 퍼즐을 완벽하게 맞추자고 논쟁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명백하게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고쳐나가는 데에 우선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개별 대응 지침들을 만들어 왔으나, 발생하는 여러 돌봄 문제들을 대처하는 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높은 현장 적용성, 적절한 관리감독, 과도한 조치 지양, 인권침해의 방지 등 적정 수준의 합리적 대응 수준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단위의 콘트롤타워가 만들어 진다면 돌봄 수요와 공급이 지역별로 파악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 맞는 돌봄서비스 개발과 제공, 관리가 이루어져 돌봄의 새로운 공백과 쟁점들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라는 천조각에 가장 약한 실 한가닥을 찾아내는 것이 공공보건의 역할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시대를 지내며 정의롭지 못한 사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각도 높아지고 있다. 돌봄 정의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관심과 반응, 자각이다. 사회적 재난에는 확산을 막는 것과 함께 사람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방향도 함께 바라보고 가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을 통한 건강관리나 사회복지 시설을 통한 식사, 보살핌, 재활, 사회관계망은 우리 사회 어느 누구에게는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이들에게는 사회보장서비스가 생명유지의 유일한 수단일 수도 있으며, 사회와의 유일한 접촉면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칩거하며 시간을 보낸 이들은 외로움과 영양결핍,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었다. 일부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만 남겨진 지역사회 속에서 어린이, 장애인, 노인과 가족은 돌봄에 지쳐 있다. 가족에게 돌아간 부담을 되돌려야 한다. 감염병 재난상황에도 돌봄서비스는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 하고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보장서비스의 신청, 등록, 전달 또한 중단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강형평성 정책의 주체이자 책임자로서 시민은 더욱 단단히 조직화하고 사회참여의 단계를 높여야 한다. 돌봄 서비스 제공 주체들은 시민과의 연계, 협력을 통해 업무를 나누고, 권한을 재배치함으로써 돌봄이 필요한 자를 돕고 돌보는 자를 돕자. 위기상황일수록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회서비스와 인프라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작업이 중요하다. 지난 1년 6개월 넘게 의료이용의 적절한 때를 놓치거나 적정한 건강관리를 받지 못한 치료 실패 사례가 축적되어 인구 전체의 건강지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건강수명 향상과 더불어 지역 간 건강격차를 완화하고 건강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건강증진정책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고려하는 건강친화적 환경과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보편적 돌봄을 전면화하자는 돌봄선언이 필요한 때이다. 만약 지금부터 돌봄의 책임을 진정한 의미의 형평성과 함께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민주적 사회를 향한 진전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 이번 글을 끝으로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 연재는 당분간 중단됩니다. 그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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