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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방문진료가 우리의 존엄을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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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방문진료가 우리의 존엄을 지켜준다"

[인터뷰]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펴낸 왕진 의사 양창모

방문진료팀을 채운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SUV)에 취재진 둘도 끼어 앉았다.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이지만, 길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차량은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에 도착했다. 25일 오후의 첫 방문 진료자인 황모(83) 할머니 댁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는(황 할머니는 세 번째 만남으로 기억하고 계셨다) 진료팀을 황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가는 인사부터가 통상의 병원에서 오가는 대화와는 달랐다. 냉장고를 뒤적이는 황 할머니가 "이거 잡숴"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저희 점심 먹고 왔어요. 어서 진찰해야지. 무릎은 어떠셔?"

"아퍼 죽겄어. 아파서 잠을 두 시간밖에 못 자."

"응, 할머니 혈압부터 잴 거예요. 팔 내미시고... 옳지. 코로나19 예방접종은 받았어요?"

"어제 (맞았어). 버스가 와서 싹 다 태워가더라고."

"여기는 늦네. 저 아랫 마을에는 진작에 다 맞았는데."

황 할머니는 장기간 당뇨를 앓아 왔다. 무릎 관절염이 도져 대문 밖을 나가는 것도 일이다. 동네에서 춘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큰 길로 나가야 한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는 1.2킬로미터. 건강한 성인이라면 20분도 안 걸릴 거리다. 황 할머니에게는 천리길이다. 오전 9시 30분 버스를 타려면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걷다 멈추고, 아픈 다리를 두들기며 쉬다가 다시 걸어야 한다. 그렇게 겨우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병원 문을 힘겹게 들어선 후, 진료실에서 기다리는 의사를 만나 3분가량을 이야기하고 다시 집으로 천리길을 나서야 한다. 처방전을 받고, 한 달 먹을 약을 타려면 하루를 종일 소비해야 한다. 이 큰 일만으로 할머니는 앓아 누울 지경이다.

양창모 의사, 최희선 간호사, 정윤후 케어매니저로 구성된 3인의 방문진료팀 '호호방문진료센터(이하 방문진료팀)'는 황 할머니와 같은 이들을 방문한다. 방문진료팀, 더 익숙한 말로는 왕진 전담 팀이다.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가 소양강댐 수몰지역 거주민의 의료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실시한 방문의료 사업이 한 해 연장돼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3인의 팀이 수몰지역 반경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춘천시 신북읍, 북산면, 동면, 동내면, 사북면의 30개 마을을 돌며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간단한 시술도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존재조차 익숙지 않은 왕진 의료가 이곳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들의 의료 행위는 양창모 의사가 올해 쓴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한겨레출판)를 통해 더 잘 알려졌다. 그가 전공의 시절부터 지난해까지 경험한 일들, 총 600여 회의 왕진을 하며 본 사례들을 정리한 책은 언론에서 제법 화제가 됐다. 정부가 '세계적 수준'의 한국 의료를 홍보하며, 이제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국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자고 할 때, 원격의료를 도입해 한국 의료 서비스의 질을 한 차원 높이자고 할 때 의료 소외 지역의 누군가는 여전히 왕진 없이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한국 의료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책에 담겼다.

특히 양 의사는 책에서 기존 한국의 진료실 의료 행위를 '3분 진료'로 통칭하고, 의사와 환자가 서로 의료의 본질로부터 소외되는 문제가 극도의 효율성만 추구하는 한국 의료 시스템에 있음을 지적했다. 양 의사는 아울러 왕진을 통해 진료실 바깥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점을 직시하게 됐음을 강조했다.

▲양창모 의사(사진 오른쪽)와 최희선 간호사(가운데)의 방문진료팀이 25일 강원 춘천시 북산면 추곡마을의 황 할머니(83, 왼쪽) 댁을 찾았다. 이날 황 할머니는 양 무릎에 관절 주사와 통증 치료 주사를 맞았고, 과다 조제된 약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며, 발등까지 번진 무좀균의 존재를 알았다. ⓒ프레시안(최형락)

방문진료가 온 국민 의료접근권 보장하는 열쇠

취재진은 25일 오후를 방문진료팀과 동행했다.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약 3시간가량 겨우 두 명의 환자를 만났다.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의료와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시민의 병원 경험은 다음과 같다. 가까운 동네 병원을 찾는다. 약 10분가량 기다린다. 의사를 만난다. 3분가량 진료를 받는다. 시술이 필요할 경우, 시술을 받는다. 처방전을 받는다. 약국으로 가 약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방문진료팀의 의료행위는 이와 다르다. 수십 분을 이동한다. 길게는 댐 건너 마을을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환자를 만난다. 환자는 대부분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본래 목적의 진료를 한다. 혈압도 재고, 상담도 하고, 주사도 놓는다. 또 이야기를 나눈다. 이 대목에서 환자도 모르던, 의료진도 모르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한다. 그 문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노인이 걷기에 너무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을 발견한다.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부착한다. 이는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 대문 문턱 계단이 지나치게 높아 노인이 집 밖을 나올 수 없는 현실을 확인한다. 마을 활동가에게 부탁해 계단에 난간을 설치한다.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노인이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진료는 당연하겠지만, 특정 목적의 대화만 짧게 이뤄지는 병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방문진료에서만 가능하다. 방문진료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일인가는 오직 방문진료를 해 본 의사만이 알 수 있다고 양창모 의사는 힘줘 말했다.

"어려운 사연이 너무 많아요. 시골 노인 대부분이 평생 농사를 짓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안 좋아요. 이런 분들은 비록 와상(臥狀) 환자는 아니라 해도, 사실상 집 밖을 나가기 어려워요. 시내 병원을 가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의료 접근권이 현저히 떨어지신다는 거죠.

이런 분들에게 방문진료가 절실해요. 이런 어르신들이 단순히 약을 타기 위해, 처방전을 받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시내로 나오시지 않게끔 하려면, 의사가 이분들을 찾아가야 해요. 꼭 집을 방문할 필요는 없어요. 마을회관이든 어디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진료소를 열 수만 있다면 의료 환경이 크게 개선될 수 있어요."

더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일상이 이런 환자를 보는 것일 텐데, 양 의사는 최근의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제가 몇 달 전 만난 80대 할머니 한 분이 계신데요. 방문해 보니 혈압이 190을 넘었어요. 빨리 혈압약을 드셔야 하는 상황이에요. 병원이 사실 할머니 댁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요.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보건지소가 있었어요. 제가 왜 병원에 안 가셨느냐고 물었는데, 역시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연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한 쪽 눈을 못 보세요. 안 보이니까 넘어지시기가 쉬워요. 할머니가 실제로 넘어진 적이 있어서 고관절이 골절됐어요. 지팡이를 이용하셔야 돼요. 한 쪽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지팡이를 짚고 도로로 나가서, 대중교통을 타러 먼 길을 걸어가셔야 돼요. 할머니는 이 상황이 너무 두려우신 거예요. 혈압약을 한 번 먹으면 매달 약을 타러 가셔야 하는데, 도로로 나가기 두려우시니 의료 접근을 포기하신 거예요."

▲방문진료팀은 예상 이상으로 많은 의료장비를 갖고 다녔다. 하지만 현재 한시적 사업인 호호방문진료센터의 방문진료로는 처방전을 쓰지 못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방문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방문진료팀은 단순히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치료만 하지 않는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소외된 노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었다.

양 의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50년 된 괘종시계다. 손으로 시곗밥을 줘야만 돌아가는 예전 시계다. 오전에 방문한 한 할머니 댁에 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이란다.

"진료를 마치고 보니, 시계가 멈춘 거예요. '할머니, 이 시계 멈췄어요' 하고 돌아보니 아차 싶은 거예요. 할머니가 허리를 못 펴세요. 그런데 시계가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거예요. 예전 허리가 좋을 때는 할머니가 시곗밥을 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 되니 시계가 멈춘 거예요. 저희가 시곗밥을 주고 왔죠."

방문진료팀이 소외된 지역에 있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고, 정기적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자식 노릇도 했다. 이런 방문진료팀이 전국 곳곳에 있다면? 독거 노인의 삶의 질 하락 문제는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다. 한국 노년의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장시간 최악을 달리고 있다. 꾸준히 방문하는 이들의 존재만 있더라도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이런 관계망은 환자에게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양창모 의사는 힘줘 말한다. 왕진이 의사에게도 필요한 의료행위라고 양 의사가 강조하는 배경이다.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거기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이 의사에게 주는 정서적인 변화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는 자기 삶의 맥락 속에 앉아 있으므로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러니 과잉 진료나 3분 진료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 왕진은 진료실 안에만 갇혀 있던 의사에게 또 다른 마술을 일으킨다. 그를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료실 안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이 현상을 마술이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환자에게 왕진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 마술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험이 왕진이라고 생각한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89~90쪽.

▲25일 오후의 두 번째 방문지인 강원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의 이 할머니(81) 댁에서 방문진료팀이 할머니의 혈압을 측정하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민간의료와 공공의료 사이에 벽을 세울 때

방문진료의 필요성을 정부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2019년 정부가 시작한 왕진수가 시범사업이 증거다. 사업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왕진을 실시하고, 별도로 책정된 왕진수가를 받을 수 있다. 왕진수가는 기본수가 8만 원에 별도 행위료가 추가 산정되는 방식과 정액 수가 11만5000원이 적용되는 두 종류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보다 부진하다. 핵심은 왕진수가가 현 의료 현실 대비 지나치게 낮다는 데 있다. 다시 양창모 의사가 강조한 '3분 진료' 현실로 돌아가 보자.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제품처럼 환자가 들어오면, 의사는 3분 만에 처방전을 쓱 작성하고 다음 환자를 받을 수 있다. 한 시간이면 최대 20명의 환자를 볼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만일 시골에서 왕진을 하는 의사라면? 양창모 의사 방문진료팀의 경우 통상 오전에 2명, 오후에 2명의 환자를 본다. 하루 최대 4명에서 5명가량의 환자가 전부다. 단순히 현 왕진수가를 적용한다면, 하루 44만 원가량의 수익이 발생한다. 그 수익으로 의사는 간호사를 고용하고, 차량을 운영하고, 각종 의료 장비를 구입하고, 의원 임대료도 지불해야 한다. 얼핏 보아도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의 수익과 비교할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의사에게는 현 시범사업이 크게 매력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의사의 탐욕으로만 돌리는 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양창모 의사는 강조한다. 그는 우선 '왕진'과 '방문진료' 개념을 분리해 주길 강조했다. 그리고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방문진료의 공공화'라고 양창모 의사는 지적했다.

"제가 보기에 핵심은 왕진과 방문진료를 구분해야 한다는 거예요. 왕진은 민간의료 영역에서 동네 의원이 왕진을 원하는 근거리 거주 환자를 찾는 거고, 방문진료는 공공의료 영역이 체계를 갖춰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서비스라고 봐야 해요. '공공의료'가 '정기적'으로 (마치 우리 팀처럼) 방문하는 게 중요해요.

통상 우리는 환자가 의사를 찾아오는 것만을 의료 수요로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경우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서 의료 수요를 발견해내기도 해요. 환자는 자신의 몸을 의사만큼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당장 오늘 저희 사례를 보셨잖아요. 공공의료 영역에서 방문진료가 전국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만큼 환자에게 예방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그만큼 우리 국민 삶의 질이 올라가요.

제가 보기에 지금 정부가 왕진의를 위해 수가를 조정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체 한국 사회를 본다면 정부 정책의 초점은 방문진료 공공화에 맞춰져야 해요. 공공의료 서비스 체계 안에서 의사가 환자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실제 취재진의 눈 앞에서 환자가 모르던 의료 수요를 방문진료팀이 찾아내는 현실이 펼쳐졌다. 앞서 이야기한 황 할머니의 사례다. 무릎에 관절주사 시술을 끝내고, 진료팀은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당뇨 후유증으로 발바닥 감각이 일반인보다 떨어졌다. 그런데 할머니가 유난히 발등을 긁는 모습이 양창모 의사의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피부약을 발랐다고 한다. 진료팀이 할머니의 양말을 벗겼다. 무좀균이 발등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의료진이 즉석에서 할머니에게 바람직한 대처법을 설명해 드렸다.

다른 사례도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평소 드시는 약을 한 아름 들고 왔다. 황 할머니는 7알의 약을

하루 세 번 드셔야 한다. 양창모 의사가 약을 유심히 살폈다.

"할머니, 이 약이 전부 얼마라고요?"

"8만 원."

"음...그래요? 할머니, 약국 전화번호 알아요?"

즉석에서 약국과 양창모 의사가 대화를 나눴다. 대화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그 중 2알의 약은 필요가 없었다. 통상적으로 병원이 처방하기 마련인 위장약이 포함됐는데, 할머니가 굳이 복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양창모 의사는 지적했다. 그만큼 할머니는 약값을 과다 지출하는 중이었다.

"이 역시 '3분 진료'의 문제예요. 환자가 금세 들어오고 금세 나가니, 환자와 의사 모두 '병원에서 뭔가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생각을 처방전으로 확인해요. 더구나 통상 우리나라 만성 질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다니거든요. 이 과정에서 약이 중복처방되기 쉬워요. 실은 '왜 이 약을 써야 하는지'를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문화가 정상인데, 우리는 '왜 약을 안 써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문화가 자리잡았죠."

궁금해졌다. 양창모 의사가 대신 처방전을 쓰고, 할머니가 이 처방전으로 보건지소에서 약을 새로 타면 되지 않을까? 지금의 방문진료팀은 수자원공사의 시범사업으로 운영된다. 그로 인해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아 처방전 작성이 불가능하다. 현 시범사업의 한계다. 양창모 의사가 이번 시범 사업이 끝나면 왕진 전문의원 개원을 고민하는 배경이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의 작가인 양창모 의사. ⓒ프레시안(최형락)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느린 진료'

방문진료의 공공성을 말하는 양창모 의사의 입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의료' 사업의 핵심인 원격 의료와 배치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정부는 원격 의료 사업에 공공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환자가 언제든 주치의와 전화해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만큼 환자의 의료 접근권이 강화된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이야기처럼도 여겨진다. 의료단체들이 그토록 원격 의료를 '의료 영리화'라며 반대하는 이유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양창모 의사는 사례 하나를 들며 원격 의료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이달 초에 여든이 넘은 한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손에 근력이 갑자기 떨어져서 신경외과도 가 보고, 신경과도 가 보셨대요. 얘기를 들어보니 저를 만나기 전 병원을 다섯 군데 다니셨대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머리 혈관이 살짝 막혔다가 풀어진 후 약을 처방 받은 후 지금은 약을 끊으신 상태인데, 약을 끊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청진을 해 봤는데, 심장 잡음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리더라고요. 심장 내 판막 등에 문제가 생긴 거죠. '할아버지 숨차지 않으세요?' 물으니 숨이 차신대요. 가만히 보니, 안방에 약을 가지러 잠깐 움직이시는데도 힘겨워 하시더라고요. 심장에 문제 있다는 얘기 의사한테 못 들어보셨느냐고 물었는데 그런 적 없대요.

이게 무슨 얘기나면, 이 할아버지가 저를 만나기 전 본 의사 다섯 명 누구한테서도 청진을 안 받으셨다는 거예요. 청진이 기본이잖아요. '3분 진료'라는 효율성을 위해 청진 과정이 생략됐다는 거예요. 생각해봤어요. 만일 제가 진료실에서 환자를 가만히 받는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저도 청진을 생략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다시 생각해 보자고요. 원격의료를 하면서 청진이 가능한가요? 진료의 기본이 생략되는 의료를 '의료 행위'라고 부를 수 있겠냐고요."

양창모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기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환자와 의사의 대면 시간을 최소화하는 3분 진료가 그 상징이다. 원격진료 역시 이 같은 철학에서 나온 정책이다. 의사와 환자의 대면 거리를 기존보다 더 늘렸다.

이 '효율성'은 환자를 향하지 않는다. 의사를 위한 효율성이고, 의료서비스 기업의 수익을 위한 효율성이다.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게 이 '효율성'이냐고 양창모 의사는 물었다. 오히려 병원 바깥에서 보기에는 비효율적인 방문진료가 환자에게 훨씬 중요하고 필요한 일 아니냐는 얘기다. 더 느린 진료, 환자와 의사의 거리가 동네 이웃처럼 가까워지는 진료가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공공을 위한 의료 아니냐고 양창모 의사는 지적했다.

▲정윤후 케어매니저가 이 할머니(81)댁 화장실의 미끄러운 바닥에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부착하고 있다. 양창모 의사는 이 같은 조치 역시 중요한 의료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온 마을이 노인을 돌봐야 한다

양창모 의사는 방문진료의 공공화는 지금 당장에도 소규모 예산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전을 보면, 전국의 보건소가 사실상 민간 의원과 환자 경쟁을 하고 있었어요. 환자 지료하고 처방전 내리는 일을 똑같이 했다고요. 그건 문제예요.

대신, 전국의 보건소가 방문진료를 하면 돼요. 물론 지금은 부족한 점이 있어요. 보건소의 대부분이 군 입대를 대신해 복무하는 공중보건의예요. 1년이면 교대되죠.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지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가 방문진료에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당장 전국의 보건소가 방문진료에 집중한다면, 의료에서 소외된 독거노인 상당수가 예전보다 훨씬 좋은 의료 환경을 갖게 돼요.

물론 궁극적으로는 대학 교육 과정에 왕진을 체계화하고, 전국적 단위의 공공 방문진료 시스템을 만들어야겠죠. 아마 지금 교육 상황에서는 적잖은 의대생이 왕진 개념 자체를 모르고 전문의가 될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방문진료와 민간의료 간 '장벽'을 세운다면, 그래서 공공 방문진료 의사들이 수가 걱정 없이 월급을 받아가며 공무원으로서 의료 소외 지역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당장 은퇴자들의 귀촌, 귀농에 큰 장애물이 하나 사라지지 않겠어요?

누군가 '큰 돈 더 들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겠는데요. 이곳(호호방문진료센터가 위치한 춘천 커먼즈필드)에서 조금만 더 가면 춘천 동내면 거두리라는 마을이 있어요. 얼마 전 시가 그곳에 14억 원을 들여서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저희 팀 1년 예산이 2억 원이 안 되거든요. 그렇다면, 단순히 계산하면 놀이터 예산으로 저희 같은 방문진료팀 7팀을 운영할 수 있어요. 춘천시내에 2개 팀만 꾸려져도 충분히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마을진료소를 곳곳에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필요한 일 아닐까요? 제가 책에도 썼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노인 한 명을 돌보는 데도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합니다."

▲호호방문진료센터. 사진 왼쪽부터 양창모 의사, 최희선 간호사, 정윤후 케어매니저(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지켜 촬영했음). ⓒ프레시안(최형락)

'존엄한 죽음'을 돕는 방법

양창모 의사의 말 중 특히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왕진, 혹은 방문진료는 집 밖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를 위해서만 필요한 의료행위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다. 혹은 병원을 찾기 힘든 농촌, 산촌, 어촌에나 필요한 의료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방문진료는 도시민에게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양창모 의사는 강조했다. 방문진료가 우리 모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하다는 그의 설명이 크게 와닿았다.

"제가 최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자주 생각해요. 우리가 죽을 때 어떤 모습일까요? 기자님 죽을 때 어떤 상황일 것 같아요?

대부분 한국 사람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습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707일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머물다 죽습니다. 우리가 과거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관계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죽기 전 그곳으로 들어가 약 2년을 머물다 세상과 작별합니다. 이건 정해진 미래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이상, 이 운명을 피하고 자신이 머물던 집에서 존엄하게 죽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국인 중에 있을까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방문진료하면서 만난 누구도 요양원에서 죽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방문진료가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이뤄진다면 어떨까요? 의사가 집을 방문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지막은 요양원이 아니라 집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정기적으로 의료진의 관리를 받으면서,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가꿔온 집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방문진료만으로 이런 현실이 온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방문진료의 공공화는 내가 원하는 죽음을 국민 모두가 맞을 수 있는 첫 단추입니다."

의사가 좋은 이웃이 돼야 한다

우리 모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방문진료 서비스의 공공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보건소가 방문진료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을 새겨 들으며 새삼 현장에서 긴 시간 고민한 사람의 족적이 느껴졌다.

양창모 의사는 2006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9년까지 강원도 원주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거 의료생협)에서 일했다. 이후 춘천으로 건너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가족보건의원에서 일했고, 지난해부터 호호방문진료센터 사업에 참여했다.

그의 족적은 보통 의대 졸업생의 그것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그가 연고도 없는 강원도(그의 고향은 전남 목포고, 그가 졸업한 의대는 서울에 소재했다)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사회가 바뀌려면 시민 사회 안의 움직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젊은 시절부터 가진 생각이에요. 그래서 협동조합 병원을 선택했어요. 협동조합 병원은 시민이 병원을 설립하고 의사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요. 제 취지와 맞다고 생각했어요.

전문의 자격증을 딴 후 협동조합 병원을 찾아다녔는데, 당시 원주의 상태가 가장 안 좋았어요. 정규 채용된 의사가 없어서 병원에 의사가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거기 일하시는 분들은 협동조합의 뜻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어요.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원주를 선택했죠. 지금은 원주가 제게는 제2의 고향이에요."

그는 실제로 시민 사회 활동을 지금도 왕성히 한다. 책에 자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한편으로 그는 녹색당 당원이며, 프레시안 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저는 한 사람의 이웃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삶을 돌아볼 때, 의미 있었던 건 제가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아니라, 그간 쌓아온 관계였어요. 내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느냐가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런 취지에 맞는 게 협동조합이고, 녹색당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란?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동네에서 욕 먹지 않는 의사'죠. 하하."

▲'동네 주치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정부에서 강구된다. 의사가 좋은 동네 이웃이 된다면, 국민 모두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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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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