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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무허가정착지는 어디로 갔을까?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무허가정착지의 해체와 빈곤의 비가시화

2018년 11월 9일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근처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어진 지 35년 된 이 고시원은 2개 층에 각각 24개, 29개의 방이 조밀하게 붙어 있는 구조다.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복도를 포함하는 이 열악한 공간엔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도 화재 경보감지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객실 대부분 거주자는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로 사망자 7명 중 대부분은 50대 이상이었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9세였다. 고시생의 학업과 숙식을 해결했던 고시원은 현재 저렴한 비용으로 도심에 거주할 수 있는 주거 공간으로 변화했다.

이 고시원의 경우도 창문의 유무를 기준으로 27~38만 원이면 이용이 가능했으며, 무엇보다 목돈인 보증금을 지불 필요가 없어 저소득층에게 선호되는 장소다. 이렇듯 일부 저소득층의 주거지는 우리가 빈곤을 인지할 수 없는 장소로 이전되어 파악할 수 없었다.

위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야 고시원 주거에 대한 주거기준과 안전기준 수립·점검이 시작됐다. 서울에 대규모로 존재하던 저렴한 주거 공간(판자촌을 비롯한 무허가 정착지)은 도심 내에서 소멸되었고, 저소득층의 공간은 점점 파편화되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빈곤은 분명 예전과 같은 구조를 띠고 있지만 비가시화된 빈곤의 공간은 이들을 제도적으로도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무허가정착지의 형성과 해체: 자본주의적 공간의 재편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압축적 도시화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서울로 집중된 인구에 대해 적절한 주택을 제공할 수 없었다. 이주민의 대다수는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비공식(informal sector) 부문에 종사하며 서울 도심 주변 무허가 정착지(squatter settlement)에 거주했다.

1960년대 정부는 도심 반경 5~10km 내외의 무허가 정착지를 철거하면서 신림동, 사당동, 상계동, 수색 등지의 도심 외곽에 저소득층을 이주시켰다. 주택산업보다는 수출관련 산업에 노동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무허가 정착지는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는 산업화와 함께 경제성장으로 인한 생활환경개선에 대한 욕구가 증대했다. 정부는 '주택건설 10개년계획'(1972년)을 통해 주택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선분양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주택 산업이 경기 조절의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자본주의적 주택 공급과 소비체계가 본격적으로 갖춰지기 시작했다.

무허가 정착지에 대해서는 거주민들의 대규모 반발에 대비하여 이주 보조금, 시영아파트 입주권 지급 및 집단 이주 정착을 위한 단지 조성 등의 3가지 형태를 제시했으나 적정 수준의 보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80년대 정치적 혼란의 상황에서는 정부는 주민 요구를 제도적으로 일부 수용하는 '국보위도시계획지침'을 발표하고 모든 철거 가구에게 시영아파트 입주권 지급, 불량 주택에 대한 철거 보상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보상에서 제외된 세입자들은 서울 외곽까지 확대된 재개발로 인해 이주할 공간이 사라지게 되자 본격적으로 세입자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강력한 공권력에 의한 통제로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철거 보상과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켜 나갔다는데 의의를 둔다. 강제성을 가지고 있던 정부 주도의 재개발사업이 무허가 주택의 철거 보상 문제로 인해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정부는 재개발조합과 건설업체 중심의 합동 재개발 사업을 창안했다.

개발과정에서 배제된 무허가 정착지 세입자들은 집단적,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9년 영구임대주택 제도가 등장하면서 일부 세입자들에게도 그 입주자격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무허가 정착지 거주민의 일부는 일반 주택으로, 일부는 영구임대아파트로, 또 나머지는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촌 등으로 분리되어 거주하게 되면서 무허가 정착지는 해체되었다.

▲ 그림. 시기별 무허가 정착지 분포도

무허가정착지 해체의 의미

우리나라의 무허가 정착지는 서구의 슬럼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 공간은 도시의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주거공간을 제공했고 그 안에서 형성된 사회적 자본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소득의 불안정을 극복할 수 있는 취업 및 고용관계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금융, 육아 문제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복합적인 기능도 수행했다. 주택의 질과 환경적인 측면은 열악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도심 내에서 거주할 수 있는 저렴한 공간이었으며, 그들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경관으로서 의미도 있었다. 또한 대단지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본인들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그러나 합동재개발 사업 이후 대규모의 빈곤 공간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심과 도심 외곽에도 대단위로 형성된 무허가정착지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빈곤의 공간이 도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빈곤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고시원 화재에서 알 수 있듯이 빈곤은 여전히 같은 구조로 도심 내에 존재한다. 공간으로 확인 할 수 있었던 빈곤이 파편화되어 더 이상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빈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그 양상은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제도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 안에서 이들의 빈곤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빈곤의 비가시화와 대안적 빈곤공간의 등장

무허가 정착지라는 하나의 빈곤 공간은 현재 두 개의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첫 번째는 국가에서 제공한 소수의 제도적 빈곤 공간인 영구임대아파트이고 두 번째는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주해서 형성한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촌 등과 같은 비제도적 빈곤공간이다.

제도적 빈곤 공간인 영구임대 아파트는 현재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입주초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져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환경도 열악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도심의 확장과 교통망의 확충, 분양아파트의 주변 입주까지 더해지면서 생활환경 및 근린 환경이 매우 향상되었다.

또한 2009년 제정된 '장기공공임대주택입주자삶의질향상지원법'을 통해 대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영구임대 아파트 시설과 주변 환경 개선이 이루어졌다. 영구임대 아파트 주민의 개인적인 빈곤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장소 빈곤이 완화되어 전반적인 빈곤이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이전의 무허가 정착지의 장점이었던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고용 네트워크의 구축은 관리사무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적이고 저렴한 주거의 안정성 보장과 정부의 관리는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반면 비제도적인 빈곤 공간은 제도적 빈곤 공간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인다. 합동 재개발 당시 영구임대 아파트나 일반주택으로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은 도심 외곽에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거나, 일반주택의 지하, 쪽방 혹은 고시원으로 이주하며 비제도적 빈곤 공간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다수가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소득 대비 주거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들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빈곤하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연계성도 좋지 않아 각종 복지제도 및 지원에서 배제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주택의 질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또한 장기간 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웃과의 교류도 적어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지 못했다.

비제도적인 빈곤 공간은 무허가 정착지가 해체되고 20년이 지난 지금 개인 빈곤도 장소 빈곤도 모두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비가시화의 특성으로 인해 정부의 복지 정책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비제도적 빈곤공간에 대한 공간복지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빈곤 경향은 서구와는 매우 다른 패턴을 보인다. 서구에서는 제도적 빈곤 공간에서 개인 빈곤과 장소 빈곤이 지리적 고립, 빈곤 문화의 재생산으로 인해 끊임없이 문제시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무허가 정착지는 도심 내 저렴한 주거 공간을 제공했고, 그 안에서 형성된 사회적 자본은 저소득층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현재 빈곤의 공간으로 대표되는 영구임대 아파트는 20년 이상 장기 거주한 거주민들은 장소 빈곤의 개선과 공간 복지로 인해 비제도적 빈곤 공간 주민에 비해 좀더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저렴한 주거비와 잘 구축된 복지시설, 교통 환경, 근린 환경의 향상으로 장소의 질이 향상되고 이것은 곧 빈곤의 완화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반면 비제도적 빈곤 공간 거주자에 대한 지원은 최근 시작되었다. 2018년 국일 고시원 화재 사건 이후 서울시는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비제도적 빈곤 공간 거주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오는 4월부터는 그 지원대상자도 완화되고 1인 가구 기준 지원 금액도 5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증액된다.

그러나 높아진 안전 기준 탓에 입실료의 상승이 우려되며,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기간 동안 발생하는 영업보상에 대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는 그대로 입실료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비제도적 빈곤 공간의 거주자들이 원하는 것은 저렴한 입실료이다. 이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이상 주거비 지원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지원대상자 기준을 완화한다고 해도 개인 빈곤의 사각지대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응하여 국토교통부는 고시원이나 쪽방 밀집지역 비주택 거주자 이주지원을 위한 주거상향 사업(2019년 10월, 서울시 포함), 서울역 쪽방촌을 대상으로 하는 쪽방촌 정비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이 사업이 정비되면 주민들은 현재보다 15~30%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개인 빈곤을 넘어 장소 빈곤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는 단계다. 비가시화되고 파편화된 빈곤 공간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 및 관심은 개인과 가정에 대한 삶의 질 향상과 이들의 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영구임대 아파트의 경험을 통해 현재와 같은 개인의 빈곤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에서 나아가 장소에 대한 지원과 공간에 대한 복지를 더욱 다양하게 확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고시원 화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정적인 주거 공간, 그 주변에 대한 공간복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다양한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소개 >

안창진 박사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며, 도시 빈곤과 불평등, 사회적 배제, 주택문제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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