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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는 '공공성 강화'다

[복지국가SOCIETY] 선거 후보자들, 복지국가 역할 비전 제시해야

민심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국민들은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집권 여당에 180석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주었다. 그런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여러 여론조사에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면 여권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권 여당에 대한 민심이 이렇게까지 돌아선 것일까?

우리 사회가 당면한 경제·사회적 문제

촛불혁명의 염원을 받들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시기를 달려왔다. 그 기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위체계)로 인한 불안은 없어졌다. 여전히 시끄럽기는 하지만,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등의 사법개혁도 상당부분 이루어졌다.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일본의 무역 규제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이제 동북아 국제적 분업체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일본을 앞서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재난 앞에서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수준의 방역 성과를 만들어내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집권 5년차 성적으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왜 민심이 이렇게까지 차갑게 느껴질까.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권은 왜 이렇게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 하는 걸까. 그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역대 정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어진 국민의 삶을 개선해 달라는 촛불혁명의 요구가 절박했다. 경제는 성장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바꿔달라는 절박한 요구가 촛불혁명의 함성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박정희 시대가 열어놓은 경제·산업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고, 수십 년 동안 고착되어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을 바꾸어내고, 국가와 정부의 기능을 역동적 복지국가에 부합하도록 새롭게 설정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제시했던 혁신적 포용국가의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기대에 부응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문'을 여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나라들이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할 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7위로 부상했고, 조선·자동차·반도체 등의 주력 5대 산업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코로나19로 세계적인 경제 침체 상황 속에서도 수출은 흑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국내총생산이 2,000조 원이나 되지만, 하위소득 20% 계층의 소득 점유율은 6% 수준으로 오히려 낮아졌고,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도 16.3%로 OECD 주요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나쁘다. 우리 주변에서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과 여성,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세 및 사회보장 급여를 포함한 정부의 각종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지니계수의 개선 정도를 살펴보면, OECD 국가들의 평균이 32.8%이고, 독일과 스웨덴은 각각 41.8%, 44.2%나 되는데, 우리나라는 12.6%로 매우 낮다. 다시 말해, 국가가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해소 등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 고령층의 공적이전소득은 OECD 평균이 57.1%인데, 우리나라는 25.0%에 불과하다. 노인 빈곤율이 1위인 이유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사회임금과 기업임금 간의 구성비가 40.7% 대 59.3%인데, 우리나라는 12.9% 대 87.1%로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사회임금의 비중이 31.7%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주어지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국방과 치안, 방역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을 국가가 제대로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 원인에는 복지 역량을 강화하지 않는 작은 정부가 자리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프레시안(김윤나영)

정치인들과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적 요구

통상 임기 말에 추진하는 정책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고,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다니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 정책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주로 경제 정책이자 산업 정책으로서 공급자 지원 정책들이다. 한국판 뉴딜의 3대 축 중의 하나로 사회안전망 뉴딜이 언급되었지만, 실업급여 확대와 상병수당 도입 정도에 그친다.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찾는 것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득주도 성장과 포용적 복지국가를 국정의 목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수요 진작과 구매력 보강 대책이 없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민주정부의 집권 기간에도 국가는 시장 위주로 움직였고, 성장주의 담론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성장 담론의 이면에는 시장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맹신과 더불어 정부와 국가의 역할 축소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정부의 예산은 경제 정책 중심이고, 사회 정책은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그런 경제 정책조차 대기업 지원 정책 중심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농업 등의 분야는 그 규모가 작거나 후순위로 밀린다.

이번의 민주정부 3기도 역시 관료에 의한 지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관료 체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정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관료들이 단순히 정부에 머무르면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집권당에 파견 나가 정책 수립을 담당한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어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이 관료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정당 정치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 관료들이 무엇을 크게 잘못했다기보다, 정당과 정치권의 실력이 부족해서 관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부의 고용창출 역할이나 소득 재분배 역할이 경제 관료들의 머릿속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역 지원 등의 한시적인 공공 일자리 정책은 있지만, 정부의 공공 일자리 역할에 대한 인식은 너무 제한적이다. OECD 평균 수준의 공공부분 고용률에 비해, 우리나라는 50% 수준에 불과하다. OECD 상위권 국가들의 공공부문 고용률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자리는 기업과 시장이 만든다는 철학과 신념이 우리의 경제 관료들에게 너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 공공부분의 인프라도 매우 부족하다.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자는 말은 공공의료 강화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공의료뿐만 아니라 공공복지·보육·교육 등 광의의 보건복지 인프라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공공 인프라를 확대하자면 소요 재정이 엄청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는 효율성이 낮은 토목과 건설에는 투자를 이미 많이 하고 있어서 이게 문제가 되는 나라다.

1월 2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포용적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에 의하면, 고속도로 건설 단가(1㎞당 360억 원 소요)와 공공병원 설립 비용을 비교해 보니, 서울에서 대전까지 고속도로(200㎞) 건설비용이면 300병상 이상의 지방공사의료원 25개, 공공요양병원 27개 등 많은 수의 공공병원을 지을 수 있다. 경제 관료들은 도로 건설에는 여전히 돈을 쓰지만, 공공병원 확보를 위한 투자는 낭비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작은 정부이기는 해도 국가에 절대적으로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가의 역할 설정'다. 토목은 나라가 할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공공 인프라는 나라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답이 없다.

한편에서는 공공 인프라를 늘리면 국가의 고용도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철밥통'을 늘리자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공공부문의 고용은 주로 돌봄 분야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복지 인프라는 워낙 시장적 성격이 강해 시장실패 현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진다. 공공 인프라를 늘리면 당연히 정부실패의 몫도 커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합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공 고용의 확대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추진해야 한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는 시장에서 구매력을 늘리는 일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공공 고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고용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공부문 고용의 경우, 이들 선진 복지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100∼300만 명 정도가 부족하다. 만약에 공공부문의 새로운 일자리 100만 개가 생긴다면 어떨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영업자의 수가 많은 것은 취직할만한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이들 일자리에 고용된 사람들이 보육·교육·보건·의료·고용·주거·요양 등의 다양한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삶을 돌보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재의 고용 상황에서 공공부문 고용 확충은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또, 사회서비스 인프라 개혁이 고용시장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가령 100만 개쯤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간주하면, 그에 따르는 커다란 연쇄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투입되어야 노동시장이 움직이면서 분절성이 극복되고 통합된다. 시장의 민간부문에서 어떻게 그런 많은 일자리를 빨리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공공부분이 선도하고, 이어 구매력이 늘어나고 생산이 자극되면서 민간부문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수순을 밟도록 해야 한다. 공공성 강화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국정과제에 포함된 주요 분야이기도 하다.

공직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의 역할

우리 인류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준 충격이 크다.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나아갈 방향이 달라지는 세계사적 추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렇듯 비상한 시기에는 그에 맞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K-방역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사회 정책 분야에서는 각종 제도가 여전히 미흡하다. 복지국가 정부의 역할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또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현 정부가 지금까지 기울였던 노력과 성과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동시에 그것의 한계도 짚어봐야 한다. 공정한 평가와 냉정한 성찰을 할 때라야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차기 정부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정부가 무엇을 잘 했고 어떤 한계를 노정했는지, 이제 성찰과 반성의 심정으로 살펴볼 때다.

차기 정부는 지금 정부와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앞으로 대선 주자들의 경쟁과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결국 사회 공공성의 획기적 강화와 이에 대한 복지국가의 역할 확대임을 원점에서 재검토·확인해야 한다. 국가와 시장의 균형, 경제와 사회의 균형, 경제 정책 속의 균형 등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복지국가의 역할 강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함께 우리 내부의 거대한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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