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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 하면 '꽃뱀'이라 뒷말 나올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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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 하면 '꽃뱀'이라 뒷말 나올까 걱정됩니다"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열세 번째 이야기

"지도교수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해서 고소를 했고, 가해자에게 형사 처벌도 내려졌습니다. 형사 절차에서 가해자와 아무 합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걸어 손해배상 판결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금전 지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매니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해서 고소했습니다. 가해자가 합의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저는 합의하고 싶지 않은데 가해자가 자기 이름으로 돈이 없다면서 지금 합의해 주면 합의금을 주겠지만, 자기가 처벌을 받아서 일을 못 하게 되면 민사소송을 해서 이겨도 돈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가해자가 현재 딱히 재산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가해자 가족이 저랑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민사소송을 내면 '꽃뱀'이라고 뒷말이 나올까 봐 걱정됩니다. 민사소송을 할 실익이 있을까요?"

비단 위 사연의 피해자들이 아니어도, 이런 일들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물론 이런 상황이 꼭 성폭력 사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화든 지위든 물리력이든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화가 많은 가해자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 많다. 집을 가지고 있든. 점포를 가지고 있든, 자동차와 같은 등록되는 장비를 가지고 있든, 급여를 받든 하는 경우라면, 법원에서 범죄 피해를 입은 것이 인정만 된다면 민사 청구 역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인정될 테니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지급하지 않더라도 강제집행을 하면 된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반드시 사회·경제적 우위에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가해자가 사회적 우위에는 있더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자산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성범죄에서는 이런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특히 같은 직장이나 같은 지역에 가해자나 가해자의 지인이 속해있는 피해자들은 주변에서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두고 금전을 목적으로 고소한 것으로 여길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즉 피해를 입고도 손해배상 청구를 고민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해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고, 실제 배상 판결을 받고도 당장은 금전을 지급받을 길이 없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위와 같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현실에서 많이 고민하는 손해배상 관련 고민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 똑같은 사연이란 게 없고, 그렇듯이 정답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될 일이고, 무엇이 되었든 결정한 방향으로 노력하면 될 일이다. 다만 당사자로서 이런 결정을 할 때 필요한 것은 내 안에서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아니라, 당사자가 알아둬야 할 객관적 정보들이다. 판결이 났는데도 가해자가 돈을 주지 않으려고 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해자가 현재 돈이 없으면 영원히 받을 방법이 없는 것인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해야 한다면 꼭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전배상 청구와 주변의 횡횡한 뒷이야기들이 상관관계가 있는지 등에, 위의 순서를 따라 정리해서 각자의 상황에 대입하면 각자의 답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선 민사 배상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법원을 통해 집행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집행을 하려면 가해자가 부동산이나 예금, 증권, 자동차처럼 조회 가능한 재산이 있거나 급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채권의 시효는 기본적으로 10년이다. 이후로 갱신도 가능하다. 자발적으로 돈을 주지 않는 채무자에게, 그 채무자가 언젠가 돈이 생겼을 때 돈을 받으려면 확정된 채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민사소송을 해서 채권을 만들어뒀다면 당장은 집행이 안 되더라도 언젠가는 집행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디서 벌어먹고 살든, 부모로부터 쥐꼬리만큼이라도 상속을 받든,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가해자에게라면 언젠가 채권을 집행할 수 있는 날은 올 확률이 크다. 그러니 가해자의 신상 변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라면 시효가 지나기 전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채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주기적으로 법원에 재산 명시 신청을 하든 재산 조회 신청을 해야 한다. 가해자가 돈이 있는데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재산 명시서도 내지 않는다면, 감치 재판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한편 손해가 막심하고 배상으로나마 손해를 보전하고 싶은데, 가해자가 표면상 재산이 없어 받을 길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심신에 입은 손해를 가해자에 대한 엄벌로 치유받을지, 실질적인 금전으로 배상받을지는 피해자 선택의 몫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금전 외에 피해로 인한 충격과 후유증을 보전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이를 두고 주변에서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할 바도 아니다. 배상이 필요한데 배상을 받을 길이 요원해 부득이 조기에 합의를 결정했다면, 반드시 합의서를 주기 전에 합의금을 지급받거나 합의서와 합의금을 동시이행으로 받아야 한다. 합의서를 먼저 건네주거나 나중에 합의금을 받기로 하고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데 손해배상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여러 객관적인 정보들이 얼추 전해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피해자들, 손해배상 청구로 받을 오해에 대해 고민하는 피해자들에게는 다른 정보나 통계보다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가 한다.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권리구제다. 피해가 확인된 후 당연한 권리구제를 두고 억측하는 이들이, 피해자가 권리구제를 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줄까? 더 이상 회자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모를까, 어차피 회자될 일이라면 그런 권리구제로 인하여 변질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자하는 사람들이 가진 필터와 온도에 연동되는 것이다. 피해자들 대게가 나쁜 소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쁜 소문을 억제시키는 방법이 권리행사 포기는 아니다.

가해하고 처벌받고도 민사적 책임을 외면하는 가해자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잘못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돈 안 줄 궁리를 하는 시간에도 민사책임은 조금도 줄지 않고 고이율의 이자만 쌓여가고 있다. 그 책임은 가해자들이 아예 평범한 삶의 안위와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가지 않는 한 언젠가 부메랑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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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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