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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회찬의 빈소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 여덟 번째 장면 : 마지막 떠나는 길 배웅한, 국회 청소노동자들

"거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

2018년 7월 23일~7월 27일.

노회찬, 그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떠올리면 두 장의 조문 행렬 사진이 마음속 깊게 다가온다. 이 두 장의 사진에는 노회찬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는, 조문 기간 동안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입구부터 빈소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 사진이다.

▲ 조문객으로 긴 줄 만들어진 故 노회찬 의원 빈소. 2018년 7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 차례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인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조문을 마친 뒤 "거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면서 페이스북(7.25.)을 통해 이렇게 전한다. 길지만 빈소 조문 현장의 모습을 잘 그렸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해본다.

1. 어젯밤 9시에 노회찬 의원 조문을 갔다. 줄을 선 지 1시간 만에 조문을 할 수 있었다. 재난 수준의 폭염과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입구부터 지하 2층까지 이어진 추모 행렬… 거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 나라의 한다하는 고위층 인사도 추모 행렬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옮겨서야 조문을 할 수 있었다.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마음에서는 모두 평등했고, 어떤 새치기도 건너뛰기도 없었다. 줄에 서서 조문을 기다리는 고위층의 인사들을 보면서 노회찬 의원이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 조문객들은 대체로 차분했다. 뒤에 서 있는 분들이

"4000만 원이면 내가 줄 수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돌아가시다니…."

"그러게.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탓일 거야. 어떤 놈들은 수천억을 해먹고도 당당한데, 양심이 다른 거지."

그랬다. 노회찬은 다른 양심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들의 아픔을 다 끌어안을 듯하면서도 자신의 과오에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어느 정치인이 그만큼 떳떳한 양심을 갖고 있을 건가.

3. 분향소에 가까워지면서 순간 돌아서 가버리고 싶었다. 그의 죽음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서 차분한 조문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영정 속에서는 생전의 순한 그 웃음 그대로 그는 웃고 있었다. 실감 나지 않는 죽음을 보면서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고 이정미 대표, 심상정 의원, 윤소하 의원 등등의 손을 꼭 힘주어 잡아 주었다. 그게 다였다. 한 시간을 기다려 그렇게 비현실적인 조문을 마쳤다.

4. 조문객들은 조문을 마치는 대로 대체로 그곳을 떠났다. 넓은 접객실 자리는 드문드문 채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자정까지 소주를 마시는데 술이 취하지를 않고 술술 넘어갔다. 그에게 미안했다. 생전에 그에게 정치후원금 한 푼 보낸 적도 없었다. 그도 나한테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부탁했다. 용산의 현장으로, 세월호의 광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018년) 5월 30일 숭실대에서 있었던 동생 래전이 30주기 추모강연으로 불렀다. 나는 일방적으로 그에게 부탁을 했고, 그럴 때마다 바쁜 일정이 있을 텐데도 "박 위원장님 부탁인데 무조건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그를 나는 당연한 듯이 써먹었다. 그러고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술 한 잔도 사지 못한 채 그가 떠나는 자리에서 그가 내는 술을 마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5. 그의 자리가 너무 클 텐데…. 언뜻언뜻 현장에 나가면 그의 빈자리가 크게 보일 거다.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그의 있던 자리를 보는 건가. 많이많이 그리울 거다. 저 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진보정치의 아이콘, 노회찬 의원 잘 가시라….

"법 앞의 평등"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거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는 박래군의 글에서 '법 앞의 평등'을 일갈했던 노회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150억 원이 아니라 1억 5000만 원을 빈집에 들어가 몰래 훔쳐도 실형을 선고받는데, 150억 원을 사실상 '강탈'해낸 범죄에 대해 1심에서 받은 징역 3년을 2심에서 징역 1년으로 줄여주는 것을 볼 때 과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법정에서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시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 데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중략) 불법대선자금 양형 사유를 보면 '법조인으로 오랜 기간 사회에 공헌해왔다', '전문경영인으로 성실하게 국민경제에 이바지했다'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수십 년간 농부로서 국가 농업에 기여해왔다', '산업재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임금 노동을 하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해 왔다'는 이유로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양형 이유를 본 적이 없습니다."(서울고등법원 국정감사 2004.10.14.)

"우리나라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병원에 가면 재력에 따라 5인실 들어가는 사람, 2인실 들어가는 사람, 그다음에 독실, 특실 들어가는 사람 다 다릅니다. 병원은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법 앞에 5인실 있고, 2인실 있고, 1인실 있고, 특실이 있습니다. 사법부에 특실이 있어서 되겠습니까?"(이용훈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2005.9.9.)

▲ 2005년 9월 9일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왼쪽) 인사청문회 당시 상황. 노회찬이 질문하고 있다.

노회찬은 법 앞의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앞장섰다.

2016년 7월 4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회찬(정의당 원내대표)은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 삽시다"라면서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한다. 노회찬은 "가뜩이나 사회에서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이 국회인데 더 말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세비를 반으로 줄여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세 배, 최저임금의 다섯 배 가까운 액수"라고 밝혔다.

이어 '불체포특권 내려놓기'에 동의한다는 뜻도 밝혔다. 노회찬은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보고된 지 72시간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의원이 부패에 연루되었을 경우 회기 중이라도 영장실질심사에 자진출석하도록 하고, 이를 거부하면 출당 및 제명조치를 당헌·당규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특권 내려놓기 방안으로 특수활동비 폐지, 독립적 국회의원 징계기구 및 국회 감사기구 설치, 상시회기제도 도입,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을 꼽았다. 상시청문회법을 두고는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6년 7월 5일 자 '"국회의원 세비 절반으로…복지국가 위한 증세 논의"')

▲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2016년 7월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선 국회의원으로서 노회찬이 마지막 대표발의한 법안은 "국회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예산 집행을 차단해야 한다"며 한 '특수활동비(특활비) 폐지' 국회법 개정안(2018.7.5.)이었다. 개정안에는 국회의장이 예산을 편성할 때 특활비 예산 편성을 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국회의장 소속 '국회 예산자문위원회'를 구성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활비는 투명할 수 없다. 투명하게 되는 순간 특활비가 아니다"면서, 그는 "기획재정부 예산편성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쓰이는 경비로 그 사용용도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노회찬은 '정의당 서울시 지방의원단 특권 내려놓기 기자회견'('지방정치혁신, 특권없는 의회를 위한 5無 5有 약속') 자리에 참석했다. 정의당은 "항상 시민의 삶과 함께하는 지방정치가 되도록 정의당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지역의 토호들보다는 지역의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의 '5無 약속'은 △외유성 해외연수 △재량사업비 등 선심성 예산 편성 △인허가·지자체 발주공사 알선 등 이권 개입 △취업청탁·인사개입 △의원 직무와 연관된 영리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반드시 하겠다는 '5有 약속'은 △표결 실명제 △계수과정 공개를 통한 투명한 예산심사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공개 △주민감시단 제도화 △의정활동 성과·계획 보고였다.

▲ 국회 정론관에서 '지방정치혁신, 특권없는 의회를 위한 5無 5有 약속'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노회찬과 정의당 서울시당 지방의원단. ⓒ노회찬재단

기자회견을 마친 뒤 노회찬은 "대법원에서 국회 특활비를 공개하라고 결정한 것은 단순히 비공개에서 공개로 방향을 전환한 게 아니라 국회 예산의 특활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내년 예산 편성에서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활비는 비밀이 요구되는 정보활동이나 수사활동에 쓰이는 경비"라며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얘기는 국회에서 특활비 존재 근거가 없다는 것을 사법부에서 판단한 셈"이라는 것이다.

하루 전날인 7월 4일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3000만 원쯤 넘는 돈을 공개하고 반납했다"며 "절반은 은행 계좌로 왔고 절반은 5만원권 현찰로 밀실에서 1대 1로 만나서 직접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흔적이 남지 않는 방식으로 수령했다"며 "배달사고가 나도 알 수 없고 받은 돈을 어떻게 쓰든 흔적이 남지 않는 깜깜이 돈"이라고 덧붙였다.

노회찬이 떠난 뒤, 2018년 8월 13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면 폐지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정의당은 "고(故) 노회찬 전 원내대표가 마지막으로 발의한 특활비 폐지법이 결실을 보게 됐다"며 환영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국민이 볼 수 없는 곳에서,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수십억대 돈이 오고가던 관행을 이제라도 뿌리뽑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앞으로 정의당은 이번 특활비 폐지뿐만 아니라 국회의 다른 부당한 특권 또한 해체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검찰개혁의 최적기"

노회찬의 법앞의 평등과 특권 내려놓기의 조준경은 검찰에도 맞춰졌다. 검찰의 비리와 폐습은 구조화된 검찰의 '어마 무시한' 특권과 권력 독점에서 비롯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노회찬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 발의는 검찰개혁의 출발이자 핵심이었다. 2016년 7월 21일 노회찬은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검찰개혁의 최적기"이자 "사상초 유의 검찰 비리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수사권, 기소권을 갖는 독립적인 공수처 설치뿐"이라면서 공수처설치법을 발의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현직 검사장인 진경준이 120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가 15억 원이 넘는 세금을 탈세한 혐의로 기소되고, '몰래 변론' 등 전관예우 비리를 통해 수백억 원이 사건 수임료를 벌어들였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인 우병우의 비리 의혹이 연일 주요 언론사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노회찬은 "이 순간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며,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공수처를 만들어 공직사회에서부터 먼저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일이야말로 국민들께서 저를 포함한 20대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회찬 원내대표는 "현행 제도인 특검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과 '특별감찰관법'은 사상 초유의 검찰 비리를 막아내지도, 드러내지도 못했다. 이제 지난 10여 년간 무성한 논의만 한 채 결론내리지 못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20대 국회가 여야 합의로 만들어내자. 8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이 법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노회찬은 제안의 마무리를 이렇게 밝혔다.

"일각에서 공수처 설치가 검찰의 수사권을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지만, 검찰의 수사권 약화보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검찰개혁의 최적기'다. 공수처 설치를 통해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검찰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

한 달 뒤인 2016년 8월 25일 노회찬은 '검찰-청와대-검찰 회전문 인사 금지'(청와대 출신 인사가 검사로 임용되는 것을 금지)를 통해 '제2의 우병우'의 탄생을 막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회찬은 "검찰청법 제44조의 2는 검찰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막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검사가 사표를 낸 뒤 청와대에서 일하고, 재임용을 통해 검찰로 다시 돌아오는 '탈법 인사'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보좌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검사 3명이 검찰 요직에 재임용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 뒤, "오늘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은 현행 검찰청법 제44조의2에 '대통령실의 직위에 있었던 자는 퇴직 후 3년간 검사로 임용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 검찰-청와대-검찰로 이어지는 탈법적 회전문 인사를 법률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노회찬은 법무부가 제출한 '2013년~2016년 7월까지 재임용된 검사 현황' 자료를 공개해, 2013년부터 2016년 7월까지 검찰이 재임용한 전직 검사 20명 중 15명이 의원면직 후 청와대에서 근무한 청와대 출신 인사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이 중 3명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민정수석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검사이며, 민정수석실에서 퇴직하자마자 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 법무부 검찰과 검사, 법무부 인권국장 등 요직에 임용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개월 뒤인 2017년 2월 23일 검-청-검 회전문 인사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회찬은 보도자료를 통해 소감을 밝혔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신에 대한 특별감찰관의 감찰도, 검찰의 수사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검찰 조직에 대한 장악력 때문이다. 권력의 핵심 실세가 검사임용제도를 악용하여 검찰조직을 장악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번 검찰청법 개정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검찰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검찰'을 만들기 위한 검찰개혁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2016년 12월 9일 국회 앞 농성장 '박근혜 탄핵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민한마당'에 참석한 노회찬은 모두발언에서도 검찰의 권력독점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은 단순히 대통령만 탄핵하는 날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생기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부정부패 없는 나라, 정경유착 없는 나라, 검찰의 권력 독점이 깨지는 나라, 언론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나라,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는 나라, 잘못된 한·일 위안부 협상을 원천 무효시키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이제 3시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이 연설이 끝나면 의사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반드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이라는 기쁜 소식을 갖고 이 자리에 다시 오겠습니다."

몇 시간 뒤 대한민국 국회는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전체 300명 가운데 234명, 78%의 국회의원이 찬성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128명 가운데 절반가량도 탄핵안에 찬성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 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하다

그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은,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하러 나온, 국회 청소노동자 분들의 고개 숙인 행렬이다. 그날 그 시간 한 사람은 오열했고, 다른 이들도 비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 2018년 7월 27일 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민주노총 페이스북

그의 삶의 기록을 정리하다 보면, 청소노동자 관련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어떤 사람은 "그날 청소노동자의 배웅은 노회찬이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증명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며 이렇게 글을 이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노회찬은 그저 한 명의 의원이 아니었다. 그는 청소노동자들을 국회의 '동료'로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초선 때부터 청소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위해 힘썼고, '휴게실이 없어지면 정의당 사무실을 쓰라'고 말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이면 여성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장미꽃을 돌렸다."(☞ 관련 기사 : 박정훈의 브런치 '성찰하는 남자들' 2019년 3월 8일 자 '노회찬과 김근태에게 '새로운 남성성'의 길을 묻다')

"우리가 그 분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심"

"그날 새벽 4시에 출근하는데 아들이 꼭 보라면서 기사 하나를 보내줬어요. 노 의원님 추모 기사였죠. 거기에 6411번 버스를 언급한 연설 전문도 같이 나왔더라고요. 새벽버스 타는 청소노동자, 투명인간 취급 받는 사람들. (중략) 모두 제 얘기였어요. 그걸 무려 7년 전에 저희들을 대신해서 얘기해주셨더라고요. 전 그 연설을 그분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됐어요."

어느덧 1년이 지난 김영숙 국회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의 기억이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2019년 7월 23일 자 '노회찬 앞 오열한 청소노동자 "유일하게 사람대우 해준 분"')

※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2019.7.23.)에 출연한 김영숙 위원장은 비슷한 이야기를 이동형 앵커와 다시 한 번 나눈다.

◇ 이동형> 시작하면서 노회찬 의원의 생전 육성을 들었는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 김영숙> 역시 노회찬 의원님답습니다. 그리고 정말 투명인간으로서 저희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오늘 새삼 느끼게 됩니다.

◇ 이동형> 6411번 버스 연설을 하면서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다,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이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 투명인간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노 의원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영숙> 물론 딱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의 이야기고, 제 얘기입니다. 저희가 새벽에 아무도, 직원들 출근하지 않았을 때 새벽에 일찍. 집 먼 사람은 2시, 3시 반. 저 같은 경우는 4시 반에 일어나서 국회의사당에 출근하게 되는데, 정말 캄캄한 건물에 들어오면서 저희들이 일을 국회의원들이나 국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다 해놓아야 와서 업무를 보시니까요. 정말 아무도 없을 때 일을 하니까 투명인간, 곧 제 얘기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년 전 기억을 풀어놓던 김영숙은 대화 도중 수차례 휴지로 눈을 가렸다. 그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그때 운구차를 배웅할 엄두도 못 냈어요. 근무시간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우리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 빈소에 가서 문상만 할 줄 알았지. (중략) 그런데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우리를 투명인간에서 사람대접 받게끔 끌어내준 분인데 마지막 모습은 봬야 하지 않겠냐고. (중략) 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들 모아서 바로 나간 거예요. 우리가 그 분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심이었어요."

그날 김영숙은 밖에서 30분가량 서있었다. 하지만 정작 운구차를 직시한 시간은 몇 초 채 되지 않는다.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쏟아져버린 눈물 탓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군 채 한참동안 "어떻게 보내드리냐"며 오열했다. 지난해를 곱씹던 김영숙 위원장은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건 일상에서 느껴온 그의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국회 영결식이 진행된 2018년 7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10년째 청소 일을 하고 있다는 조정옥 씨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제일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대부분 의원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아요. 그런데 그 양반(노회찬 의원)은 마음을 다해서 사람 취급을 해 줬어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줬어요."(☞ 관련 기사 : <아시아경제> 2018년 7월 27일 자 '국회 청소노동자가 기억하는 故노회찬…"사람취급 해줬던 유일한 분"')

조정옥의 말이 이어진다. 목이 메어 목소리는 자꾸만 몇 초씩 끊겼다. 눈물은 닦을 새도 없이 흘러 땀과 뒤섞이며 뚝뚝 떨어졌다.

"국회에서 10년째 일하면서 여러 정치인의 장례식을 많이 겪었는데, 이렇게 나와서 본 적은 처음이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다. 그저 통탄스럽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 아깝지 않고 버릴 것이 없는 분이다."

조승교(국회 환경미화원노조 부위원장)도 "노 의원은 저희를 많이 신경 써주셔서 정말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꽉 쥔 손수건은 젖어있었다. 조승교는 "사람이 없는 새벽에 와서 일하는 우리는 노 의원님 말마따나 '그림자'다"라며 "국회에서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약한 존재를 노 의원은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고 말했다.

조영옥은 노회찬을 "저희에게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환하게 웃어주셨다"며 "겸손히 머리 숙여 인사하고, 웃어주시고, 고생한다고 격려해주신 분"으로 기억한다.(<서울경제>, 2018년 8월 4일)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던 박태점(노조 사무국장)은 2016년 5월 '노조 사무실 사태'를 떠올리면서, "때때로 노동자에게 한 번씩 식사대접을 해 주시고 늘 위로해주셨던 분"이라며 "정말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담 하나

국회 청소노동자는 사서함으로 오는 신문을 본청 각 사무실로 배달해 주며 매달 3만 원의 수고비를 받는다. 이는 30여 년째 변하지 않은 금액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노회찬만이 신문배달 수고비를 올려줬다고 한다.(<아시아경제> 2018.7.27.)

20대 국회 개원 첫날 "국민을 위해서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식사를 나누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노회찬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다 보면 식사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2016년 5월 30일 오찬 간담회 자리가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의원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노회찬은 청소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청소노동자들이 남성 따로 여성 따로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남녀칠세 부동석인가요?"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청소노동자들도 노회찬과의 만남이 낯설지 않은 분위기였다.

"국민을 위해서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들과의 식사에 앞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의 이런 행사는 사진 몇 장 찍으려고 형식적으로 하는 행사는 아닙니다. 현역 의원으로서 정의당의 의원들은 특히, 여러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국회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입니다. 비록 맡은 바 업무가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민을 위해서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을 저희는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바로 오늘 첫 행사로써 여러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행사를 가진 것은 늘 여러분들을 직장동료로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분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분들이, 저희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고,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대변해야 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소 어색하고, 다소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심과 진심이 잘 통하기 바라고 저희가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깨우쳐 주시기 바라고, 또 여러분들이 일하는 동안 겪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저희들 일로 생각하고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 2016년 청소노동자와의 오찬 간담회. ⓒ노회찬재단
▲ 2016년 청소노동자와의 오찬 간담회. ⓒ노회찬재단

당시 국회사무처(사무총장 박형준)는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퇴거 대상은 한국노총 국회환경노조 사무실로 사용되던 본관 252호실과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인 256호실이었다.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도 같은, 노회찬의 말을 빌자면 '동물의 왕국'은 국회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원들이 머무는 공간을 청결하게 관리해 주던 청소노동자들은 졸지에 노조사무실과 휴게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정의당과 노회찬은 오찬 간담회를 통해 "저희들이 노력할 것이고, 혹 일이 잘 안되면, 저희 사무실을 같이 씁시다. 정의당이 국회에 있는 한 여러분들이 외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내대표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라고 청소노동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것은 '보여주기식 정치쇼'가 아니라 노회찬의 진심이었다.

이에 대해 김영숙 위원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중에 정말 노조사무실이나 휴게실이 없으면 당신 사무실에 와서 같이 쓰자는 그 말씀에 굉장히 저희들은 큰 힘을 얻었죠. 왜냐하면 그렇게 말해주신 분이 없었고, 어쨌든 퇴거하라면 오갈 데 없이 그냥 한 구석진 자리에서 쉴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노회찬 의원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저희들이 그 이후에 노조사무실하고 휴게실도 번듯하게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셨고요. 그러면서 의원님 말씀을 저희가 계기로 해서 직접 고용하는 데도 밑거름이 됐죠. 2016년 연말에 저희가 직접 고용이 되는 길에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련 기사 : <아시아경제> 2018년 7월 27일 자 '국회 청소노동자가 기억하는 故노회찬…"사람취급 해줬던 유일한 분"')

2016년 6월 2일 자로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한 편의 글은 "이런 게 정치"라며 이렇게 말한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6월 2일 자 '청소노동자 감싸안은 정의당, 이런 게 '정치'')

"넓고 웅장한 의원회관 안에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고 주장하는 국회사무처와, 힘없는 청소노동자들의 방패가 되기로 한 정의당의 행보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중략)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소외받고 차별받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두루 살피는 것에 있다. 거대 정당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일을 원내 6석에 불과한 정의당이 솔선수범해 보이고 있다. 국민이 처해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을 그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툭하면 민생타령에 여념이 없는 거대 정당들이 정의당을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가까운 이웃"에게 장미꽃을

노회찬은 17대 국회(2004~2008) 때 현역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이들과의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설날 등 명절 때 청소노동자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왔다. 2012년 5월 31일 19대 국회 첫 공식 일정도 국회청소노동자 30여 명과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였다.

노회찬은 "저를 비롯한 국회의원들과 여기 계신 청소노동자 여러분들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노고가 많으신 이웃에게 먼저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고 인사했다. 이어 "청소노동자들과의 자리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수고해 주시는 분들에게 소박한 감사의 정을 표하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19대 국회 개원에 즈음해 의정 활동에 임하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애로사항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위탁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면서 퇴직금도 못 받다가 작년에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퇴직금과 월 5만 원의 식대를 받게 되었다"고 말한 뒤 "작년에 국회 사무총장께서 일자리 공공부문 창출 차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약속했다. 사람이 바뀌어도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노회찬에게 설명했다.

노회찬은 이에 대해 "그 약속이 지켜지도록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에게 건의하는 등 힘 보태겠다"고 약속하면서 "식대 월 5만 원 책정도 의원회관 식사 가격 인상에 따라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노회찬은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17대 국회 때도 경위 분들, 속기사 분들과도 좋은 만남을 가졌다. 이분들이 모두 국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이분들과도 좋은 만남 이어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2012년 19대 국회 점심식사 자리. ⓒ노회찬재단
▲ 2012년 19대 국회 점심식사 자리. ⓒ노회찬재단

이들의 만남은 며칠 뒤인 6월 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의 '국회 청소노동자 초청 정책간담회'로 이어졌다. 노회찬 의원실이 주최한 이날 간담회에는 전덕용(국회청소노동자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노회찬은 "국회에서 함께 일하는 여러분들을 돕는 것은 가까이 사는 이웃에 대한 애정이자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라며 "의원회관 518호를 편안하게 드나드시며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전달해 달라. 고용조건과 처우개선 등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인사했다.

전덕용 위원장은 "노회찬 의원은 평생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일해오신 것을 잘 알고 있고,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청소노동자들의 애로사항 등 건의할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노 의원님과 함께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고 답했다.

노회찬은 이후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고용 조건과 처우에 관한 세부사항을 검토해나가기로 약속했다.

▲ 2012년 6월 4일 국회 청소노동자 초청간담회. ⓒ노회찬재단

한편 노회찬은 2005년부터 14년 동안 3월 8일 즈음하며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가까운 이웃"분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회찬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이면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게 축하 편지와 함께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전달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도 빠지지 않았다. 2017년 3월 8일 노회찬은 페이스북에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입니다"는 문구가 담긴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국회 여성청소노동자 분들과 여성국회의원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드렸습니다. 여성페친 여러분들께도 장미꽃을 바칩니다. 축하합니다^^"

▲ 노회찬 페이스북 갈무리

그가 떠나던 해인 2018년 3월 8일에도 노회찬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정의당 중앙당의 여성 당직자와 보좌진, 국회 여성 청소노동자, 국회 정론관의 여성 기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그가 함께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한 여성의 아들이자 또 다른 여성의 동반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불평등하고 야만스러운 현실의 극복을 위한 가일층의 노력을 다짐하면서 세계 여성의 날이 우리 모두에게 성평등을 향한 힘찬 변화를 시작하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씨앗의 열매'와 '당당한 자부심'

노회찬이 신경을 쓴 것은 물론 국회 청소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특정 공간을 떠나 건물을 관리하는 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식사 자리' 마련을 통해 자주 표했다. 진보신당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노회찬은 2010년 4월 21일 삶의 애환과 소소한 행복이 담긴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노회찬 점심 번개'를 시작했다. 첫 번째 만남으로 연세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회찬은 이런 말을 건넸다.

"고봉으로 된 밥…, 오늘 어머니 밥상 오랜만에 받아봐서 정말 고맙습니다."

트윗밋을 통해 계속 이어진 점심 번개는 이후 4월 22일(IT 업종에 종사하는 구로디지털단지 노동자들), 4월 23일(명동 하동관 곰탕과 공원에서의 커피 한 잔), 5월 3일(대림역 채식 뷔페), 5월 4일(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 5월 6일(역삼역 대우식당), 5월 7일(여의도 공원 잔디밭 도시락 번개), 5월 11일(선릉공원 도시락 번개)로 이어졌다.

※ 이런 만남과 경청은 2010년 4월 3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인간다운 노동'을 화두로 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을 보장하는 '8+8+8 서울만들기'" 공약 제안으로 나타났다. 노회찬은 이를 위해 △공공부문 노동시간 상한제 △노동시간 단축 기업 지원 △환경미화노동자 샤워시설 제공 △판매노동자 앉을 권리 보장 △건물청소 노동자 휴게공간 마련 △장기이동 건설노동자를 위한 쾌적한 숙소 마련 △식당 아줌마에게 쉼터 제공 △'직장인 문화의 날개' 프로젝트 실시 등을 제시했다.(☞ 관련 기사 : <레디앙> 2010년 4월 30일 자 '노회찬, '8+8+8 서울만들기' 공약 "노동시간 단축부터 악기 지원까지"')

: 학교, 사무실 등에서 청소하지만 자신들의 마땅한 휴게공간이 없어 화장실과 창고, 계단 밑에서 식사를 하는 건물청소노동자에 대해서는, "관공서, 학교, 지하철 역사 등 공공시설부터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을 마련하고 민간 시설은 고용주 및 관리자에 대한 지도와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휴게 공간 설치 시 서울시가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10월 15일 진보신당 대표에서 물러나게 된 노회찬이, 당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한 공식 일정은 당사 건물 청소노동자들과 점심식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진보신당 당사가 입주해있는 건물의 청소노동자들과 평소 명절 등에 종종 식사를 함께 해온 노회찬은 "오늘이 제 대표 임기 마지막 날이라 그동안 수고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이렇게 모셨다"며 자리에 함께 한 2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마지막 공식 일정. ⓒ노회찬재단

이번 글을 어떻게 맺을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김영숙 국회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YTN 라디오의 이동형 앵커와 나눈 이야기와 청취자 댓글 가운데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내용이 담긴 글에는 '6411번 투명인간들, 故 노회찬이 바꿔놓은 것? "내 이름, 내 사진 들어간 출입증"'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바로 가기 :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2019년 7월 23일 자 '6411번 투명인간들, 故 노회찬이 바꿔놓은 것? "내 이름, 내 사진 들어간 출입증"')

- (이동형 앵커)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고용 불안, 적은 급여, 이런 문제도 있었겠습니다만, 일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떨어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규직이 되면서 어디 가서 당당하게 국회에서 청소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고, 존중을 받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 수 있고, 그런 거 같습니다.

- (김영숙 위원장) 네, 맞습니다. 아들이 지금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금 저도 어딜 가든 국회에서 일한다는 것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국회 안에서도 몇 천 명이 하루에 왔다 갔다 하는데, 그분들한테 전에는 투명인간처럼 살 때,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때는 저희들이 의기소침해서 뒤로 숨고, 부끄러워하고 했는데, 지금은 아주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애사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청취자 김추호 님) “노회찬 의원님이 심은 씨앗의 열매를 어머님들의 모습으로부터 봅니다.”

<노회찬의 약속>과 '빈 의자'

10년 전 출간된 <노회찬의 약속>(레디앙 펴냄) 뒷표지에는 노회찬의 이런 말글이 적혀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어서, 이를 불러오는 것으로 이번 톺아보기 8회 연재를 마무리한다.

"우리에게 행복해질 용기가 있을까요? 결국 미래의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빈 의자가 눈에 와 박힌다.

"여태까지의 대한민국 역사는 공동체의 연대와 자연의 보존,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키고 앞만 보고 달려온 ‘묻지마 성장’의 역사였습니다.

노회찬의 약속은 우리에게 친자연적이고 연대적이며

인간적이고 약자를 배려해주는

새로운 상식의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우리가 이 공약집에 제시된 길로 가게 되면

산업화나 민주화와 맞물리는 복지화라는 새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행복해질 용기가 있을까요?

결국 미래의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 책 <노회찬의 약속> 앞표지와 뒷표지. ⓒ레디앙

*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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