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8일 깊은 반성과 함께 노회찬 올림"
2005년 3월 8일 민주노동당 초선 국회의원 노회찬은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박근혜(한나라당 대표)와 장하진(여성가족부 장관), 김선옥(법제처장), 강금실(전 법무부 장관) 등 여야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 국회 여성 청소노동자들과 국회 출입 여기자들에게 장미꽃과 편지를 전달한다.
이를 계기로 이후 3.8 세계여성의 날에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이 하나의 행사처럼 됐고, 많은 정치인들과 공직자, 일반인들이 장미꽃을 주고받으며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14년이 지난 2019년 3월 6일 세계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두고 김영숙(국회 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은 "매년 잊지 않고 일하는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던 모습이 선하다"며 노회찬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2019년 3월 16일 자 '고무장갑 낀 손에 장미꽃 선물했던 노회찬이 그립다')
"노회찬 의원님은 매년 여성의 날이면 잊지 않고 엽서와 장미꽃을 선물해주셨다. 국회에서 고무장갑 낀 채 일하는 우리들의 손에 장미꽃을 안겨준 분은 의원님이 처음이었다. 이젠 그분이 없는 첫 3월 8일이다. 이날이 다가오니 유난히 그립고, 허전하다."
2005년 노회찬은 장미꽃을 보내며 "3월 8일을 명절처럼 보내는 세계 각국의 관례대로 축하와 다짐과 반성의 마음을 담아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낸다"며 "발렌타인 데이는 알아도 세계여성의 날은 배운 바 없다는 제 조카와 같은 대학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양성평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여성단체들이 바라는 바대로 3월 8일이 국가기념일로 조속히 지정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성 차별 해소, 여성의 권리 확대, 성평등 문화 실현에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기 위해 매년 각계각층의 여성들께 장미꽃을 전달했던 것이다. 노회찬의 장미꽃 전달은 2018년 3월까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2005년 장미꽃과 함께 노회찬이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1년 뒤인 2006년 노회찬의 꽃 선물은 남성 국회의원들에게도 전해졌다. 노회찬은 함께 보낸 글을 통해 "부인이나 어머님 등 가까이 계신 고마운 분들께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내시길 정중히 권하고 싶다"며 "어버이날에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듯 이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는 뜻깊은 날이 되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2015년 장미꽃과 편지 선물을 받은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트위터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린다.
3월 8일 노회찬은 왜 장미꽃을 선물했을까?
'노회찬은 왜 장미꽃을 선물했을까?'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2005년부터 14년간 노회찬이 장미꽃 선물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이 기록 정리에서 내가 주목한 물음은 이처럼 단순했다.
2004년 3월 4일(목) 노회찬은 <선대본 일기>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2005년 한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아내인 김지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2005년 '3.8 노회찬 장미꽃'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혹시 노동운동가 출신의 여성운동가 김지선의 영향은 없었을까?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만난 것은 뜻밖의, 노회찬의 오랜 동지인 조승수 의원의 막대왕사탕이었다.
발렌타인 데이 막대왕사탕을 받은 노회찬, 그것을 3.8 장미꽃으로 연결시키는 '순간 재치'를 발휘한다. 조승수의 2.14 막대왕사탕이 노회찬의 3.8 장미꽃 선물에 작은 힌트가 된 것이다. 물론 힌트는 힌트일 뿐, 그 바닥에는 오랫동안 '아내의 활동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은' 것과 함께 2004년 3월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시절의 아쉬움도 분명 작동했으리라 짐작한다.
2004년 3월 7일(일) 노회찬은 붉은 장미를 정말 사서 아내에게 선물했을까? 아쉽게도 <선대본 일기>나 여타의 기록을 통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3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 당시 진행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후보 선거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일기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의 상징', 붉은 장미꽃의 등장
'사랑, 열정, 기쁨, 아름다움'을 꽃말로 하는 붉은 장미는 진보 또는 진보정당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당 정치의 역사가 오랜 서유럽의 진보 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있고, 총선 등에서 당선자에게 장미꽃을 선사하곤 한다.
붉은 장미가 노동자들의 꽃이자 진보의 상징이 된 역사적 기원과 관련해 두 개의 설이 있다. 서유럽설과 미국설이다. 서유럽설은 19세기 서유럽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의 횡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때면 가슴에 붉은 장미꽃을 달았다. 그들은 촘촘히 붙어있는 장미 꽃잎에서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에서 투쟁을, 붉은 빛깔에서는 노동자의 피라는 비유를 읽어냈다.
다른 하나의 설은 19세기 미국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집회는 5월 4일 폭력사태로 비화됐다. 해산을 명령한 경찰에게 누군가 폭탄을 던졌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노동운동 지도자 8명 중 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메이데이(5월 1일)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8명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시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고, 이것은 세계 근대사에서 장미가 진보를 상징하는 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붉은 장미의 상징은 관습적으로 차용되는 수준이었다. 붉은 장미의 정치적 지위가 공식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부터였다.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사민주의 정당들이 당의 엠블럼으로 붉은 장미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붉은 장미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선발 주자는 1969년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이었다.
한국에서 장미꽃 이벤트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다. 1997년 11월 21일 국민승리21은 권영길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사용할 심벌 로고를 장미꽃으로 정했다. 이와 함께 상징 마크를 '웃음꽃 한반도'로 정하고 이를 장미 로고와 함께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승리21의 언론부장을 지냈던 박용진(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유럽 사민주의 정당에서 상징을 빌려왔다"며 "한국 정당사에서 장미를 상징물로 채택한 것은 국민승리21이 최초"라고 말했다.
권영길 후보는 유세를 마친 뒤 시민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영(중앙선본 정책실장)에 따르면 "97년 대선 당시 유권자에게 그냥 다가가기 밋밋해서 유럽 좌파 정당의 사례를 떠올려 나눠주게 된 것"(<진보정치>, 169호, 2004.3.8~3.14)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보도자료와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언론사를 방문하는 '아침장미팀'이 당내에 꾸려지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과 이회창, 이인제의 소위 말하는 '빅3'의 대결 속에서 군소 후보였던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에 대한 신문의 소개는 한 줄도 소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침장미팀이 맡은 일은 매일 아침 각 신문, 방송사의 정치부장 데스크에 권영길 후보의 보도자료와 함께 장미꽃 한 송이씩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고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정치부가 조금씩 권영길 후보에 대한 동향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1999년 1월 국민승리21이 진보정당 창당 제안 원탁회의(1.25)를 알리면서 장미꽃 언론 홍보를 재개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상대방의 얼굴도 제대로 모른 채 팩스로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더라도 일방적으로 부탁하고 보도자료만 건네주는 무성의한 홍보가 일반적인 관행인 점에 비춰볼 때 국민승리21의 이같은 홍보전략은 신선한 느낌을 줬던 것이다.
김현일(<중앙일보> 정치부장)은 "지금까지 개발된 홍보 전략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기사에도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지면 한정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며 국민승리21의 장미꽃 홍보를 칭찬했다. 한 정치부 기자도 "정치부장이 언제 한번 장미꽃을 받아보겠느냐"며 "삭막한 편집국에 장미꽃이 놓여 있으니 다른 기자들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미디어오늘> 1999년 2월 10일 자 '국민승리21 시들지 않는 장미 홍보')
'당선 축하', 열 송이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다
제도권 정치에서 장미꽃이, 그것도 열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난 것은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0석을 획득했다.
비례대표 후보 당선자가 최소 7명 정도가 될 것이라는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밤 11시 30분.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비례대표 후보 16명의 얼굴을 새긴 상황판에 붉은 장미 한 송이씩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선 예상자들에게는 축하를, 낙선 예상자들에게는 격려의 뜻을 담아 비례대표 후보 모두의 얼굴에 장미를 달아준 것이다. 진보정당이 44년 만에 원내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총선 이틀 전인 2004년 4월 13일 울산북구 현대자동차 앞에는 4월 15일 선거일을 알리며 투표를 독려하는 4만1500송이 장미꽃이 물결쳤다.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 승리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투표일 직전 대규모 '물량전'을 진행한 것이다.
2007년 17대 대선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노회찬. 2007년 8월 11일 마포구 합정동 '풀로 엮은 집'에서 '노회찬과 함께 집권을 꿈꾸는 당당한 언니들'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회찬 중앙여성선거대책본부' 출범식이 있었다. 노회찬 후보의 선거본부는 민주노동당 다른 후보들의 선본과 달리 여성의 참여와 활약이 돋보였다. 민주노동당 첫 여성 대표인 김혜경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공동 본부장 또한 50%가 여성으로 여성할당제 50%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노회찬 후보의 정치적 공약과 소신을 선거 과정에서도 그대로 구현하며 실천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노회찬의 여성 감성지수를 묻는 '스펀지'와 참석자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여성이 꿈꾸는 세상' 등 즐거운 분위기로 출범식 행사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행사에서 대통령 후보가 주인공인데 반해 이날 노회찬 여성선대본 출범식은 참석자들이 주인공으로 노 후보가 참석한 여성들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전달했고, 또 이날 참석자들이 여성선대본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오늘은 기쁜 날!" 장미꽃과 호주제 폐지
장미꽃의 의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호주제 문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가로막아온 핵심 장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회찬의 3.8 장미꽃 최초 전달이 있기 6일 전인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골간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재석 235석 중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 노회찬은 개인 논평을 통해 "오늘은 기쁜 날!"이라며 "새로운 신분등록부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실현, 개인정보의 철저한 보호 등 호주제 폐지의 기본취지를 그대로 담을 그릇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17대 국회에서 노회찬이 첫 대표발의 법안은 2004년 9월 14일 제출한 민법 개정안이다. '아들이 우선 승계하는 호주제가 남녀차별을 조장하고 호주와 가족 구성원 간의 가부장적인 관계를 고착시키므로 이를 폐지하고,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만을 따르도록 했던 것을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김용갑 등 당시 한나라당 남성 의원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노회찬의 행보는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다. 이 때문인지, 2005년 3월 호주제가 폐지된 직후 <한겨레21>이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본 결과 노회찬은 '여성 친화적인 남성의원' 1위로 뽑혔다.
2004년 12월 27일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야 국회의원 152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호주제의 연내 폐지 관철을 위한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날 남성 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호주제는 가부장제의 재생산을 통한 여성 통제로 실제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호주제가 15대, 16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17대까지 온 것은 우리 역사의 수치"라고 주장했다.
2007년 3월 2일 노회찬은 이경숙(열린우리당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핵심 내용은 "2년 전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유예기간인 올해 말까지 새로운 신분증명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도 호적법 대체입법이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며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호적법 대체입법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월 11일에는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2007년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가결해 '호주'를 정점으로 한 '호적'제도가 역사의 무대로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가 호주제 규정(민법 781조 1항 및 778조)의 헌법불합치 판결(2005.2.3.)을 내린 지 2년여 만의 일이다. 이로써 2007년 12월 31일까지 유보되었던 미완의 호주제 폐지가 2008년 1월 1일부터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뜻을 잇다
노회찬이 떠난 뒤 그의 장미꽃 전달은 2019년 3월 8일 노회찬재단의 1150송이 장미꽃 전달과 성평등 메시지로 이어졌다. 노회찬재단은 메시지를 통해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노회찬의 뜻을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노회찬재단은 공식 SNS를 통해 "노회찬 의원이 바라던 것처럼 세계여성의 날이 '여성에게 장미꽃'을 전하며 '성평등 실천을 다짐하는 축제일'이 되도록 노회찬 재단도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실천을 통해 '3.8 세계여성의 날'을 '로즈데이(ROH'S-day)'로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도 했다.
관련한 이야기는 '노회찬재단'의 소식지(준비4호)의 '3.8 세계여성의 날을 '로즈데이(ROH'S-day)'로!'에 잘 나와 있다. 일부 내용과 사진을 발췌해 적어본다.(☞ 바로 가기)
2020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아쉬운 일이 발생한다. 노회찬재단과 전태일재단이 함께 야심차게 공동기획한, 한국여성노동자회의 '3시 STOP 여성파업' 행사(장소: 광화문 광장) 참가자들에게 장미꽃과 빵을 나누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빵과 장미' 캠페인이 코로나19로 인해 전격 취소된 것이다.
대신에 2020년 7월 15일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열 번째' 행사가 노회찬재단 주관으로 "전태일의 '풀빵'과 노회찬의 '장미'의 만남"을 주제로 진행된다.
<이등병의 편지>의 작사·작곡가이자 가수인 김현성은, "(오늘 들고 나온 전태일평전) 책표지를 보니 아마 30년 전쯤 같다. 처음 읽고 밤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바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바보들이 선택한 길은 세상에 깊은 의미를 준다"며 '고 노회찬 의원의 2주기 헌정곡'인 <반가워요>를 불러 자리를 빛냈다.
전태일다리 위에 선 조돈문(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연대'를 외친다.
배달·택배노동자 등 야외 노동하는 노동자들에게 '쿨(cool)'한 얼음물이나 음료수를 나누는 캠페인인 '쿨(cool)한 연대'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와 함께 제안한 황복연(노회찬재단 6411사회연대포럼 운영위원장)은 전태일다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날 캠페인은 참가자들이 전태일다리를 지나가는 배달노동자들에게 얼음물과 장미꽃을 나눠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형탁(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세계여성의 날은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실천적 의제를 제시하고 주체를 호명하는 날이다. '빵과 장미'는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주제다"라고 일갈한다.(☞관련 기사 : <매일노동뉴스> 3월 2일 자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①] ‘노회찬 성평등 장미꽃’ 나눔운동을 제안하는 이유')
아무쪼록 내년 3월 8일 즈음해서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 '풀빵과 장미꽃' 연대가 무난히 성사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노회찬도 같은 마음으로 소망할 것이다.
'노회찬과 장미', 네 가지 여담
□ 첫 번째 여담: 로자 룩셈부르크와 노회찬의 장미
1992년 4월 1일 만기출소 후에도 여권을 내주지 않아 해외로 나가지 못했던 노회찬, 마침내 여권이 나와 1996년 6월 독일을 방문해 동베를린 외곽 프리드리히펠데 묘지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잠들지 않는 붉은 장미' 로자 룩셈부르크가 혁명가, 사회주의자, 반나치스 투쟁, 스페인 내전으로 숨진 사람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노회찬은 그녀의 이름인 장미를 바치고 독일 소주를 올린다.(<선대본 일기>, 2004.1.15.)
"85년 전 오늘 밤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되었다. 향년 48세. 지금 내 나이다"며 적은 노회찬의 일기는 1987년 서독 사민당이 참회의 뜻으로 제작한, 동베를린 란트베르 운하의 뒷벽 추모 동판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두 번째 여담: 수인번호 336호 노회찬과 '그해 여름의 흰장미'
인민노련 사건으로 2년 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노회찬은 부산 부모님께 매주 1회꼴로 편지를 부친다. 현재 재단에는 서울구치소 시절의 서신 12신, 안양교도소 시절의 서신 7신, 청주교도소 시절의 서신 65신 해서 총 84신(동생 앞으로 보낸 서신 포함)의 서신이 소장돼 있다. 청주교도소 시절 서신 내용 중에는 여러 꽃들과 그 꽃들이 남긴 열매들이 가끔 자주 등장한다.
해바라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살구꽃, 복숭아꽃, 달리아, 사루비아, 국화, 흰 들깨꽃, 노란 결명자꽃, 코스모스, 맨드라미, 과꽃, 딸기(꽃), 칸나, 은행나무 등.
그런데 '안타깝게도' 붉은 장미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1991년 4월 16일 자 서신에 '흰장미'가 '그해 여름'과 함께 이렇게 등장한다.
□ 세 번째 여담: <빵과 장미>, 그리고 노회찬
'문화인 노회찬'은 영화와 책을 통해 '빵과 장미'를 불러낸다. 먼저,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꾸리에 펴냄)의 '여는글'에서 노회찬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관련해 이렇게 적고 있다.
캐서린 패터슨의 책 <빵과 장미>(문학동네 펴냄)의 추천사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 네 번째 여담: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과 '장미헌정패'
2018년 5월 16일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노회찬은 '정의당 여성당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 후보자들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다. 선대위 발족식에서 노회찬은 "제가 태어나서 맡은 직책 중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영광이고 또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 이 땅에 사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가사부담, 폭력으로부터의 위협, 경력단절, 차별 등 무수한 문제가 바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성평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인사말을 한다.(정의당 원내 브리핑, 2018.5.16.)
2019년 3월 6일 정의당 여성당원 일동 명의의 '장미헌정패'가 노회찬에게 전달된다.
*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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