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된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 논란의 출발점은 2017년 8월 10일 교육부(당시 김상곤 장관)가 발표한 수능 개편안이다. '수능 절반 상대평가, 절반 절대평가'인 1안과 '전 과목 절대평가'인 2안 중 하나를 결정하겠다는 게 발표 내용이었다. 2안으로 가기로 정하고, 여론을 고려해 1안을 들러리로 세웠다는 비판이 일어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결국 해당 방침을 철회했다.
이후 2018년 대입 공론화를 거치며 정시 비중을 늘리는 방향의 결론이 났고,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졌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수능 정시 비중을 더 늘리겠다"고 발표해 관련 불길을 진화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같은해 11월 교육부가 대입 전형 정시 비중을 40%로 확대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로 이어졌다. 줄 세우기식 교육을 지양하기 위해 교육 개혁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장기간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후퇴다. 사실상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 개혁 정책은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이 실종된 시기와도 겹친다. 길게 보면 '김상곤 쇼크'는 딸의 진학 논란으로 본격화한 '조국 사태'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민심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대입 제도 논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 장관이) 이렇게까지 엉망일 줄 몰랐다"고 말한 바 있는, 지난 대선 문재인 캠프의 교육 정책 설계자 중 하나였던 이범 교육평론가가 신간 <문재인 이후의 교육>(메디치)에서 당시 논란을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핵심은 '진보 교육 진영은 입시에 관심도, 전문성도 없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아울러 ‘정치권에서 교육적 가치보다 정치적 가치가 우위에 놓이는 것은 엄연히 인정해야 할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내용에 다다른다.
수능 개편안 논란이 이 평론가가 지적한 두 핵심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입시 경쟁을 완화하겠다며 수능을 상대평가에서 무작정 절대평가로 전환해버리면, 정시 전형에서 변별력은 무슨 수로 확보하느냐는 기본적 질문이 나온다. 김상곤 장관은 이에 관한 대답을 마련하지 못했다. 수능 비중이 줄어들면 자연히 학종 비중은 커진다. 학종은 이명박 정부가 입학사정관제(학종의 전신)를 전면 도입한 이후 수년 간 부모 돈으로 대학을 사는 관문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학종을 확대하게 되면, 학종에 포함된 내신 상대평가로 인해 결국 학생은 바로 옆 자리의 친구와의 경쟁에 휘말려 들어야 한다. 이건 결코 바람직하거나, '진보적'인 교육이 아니다. 대안을 고민하지 않은 교육 정책의 말로가 오히려 입시 철학 후퇴로 이어진 셈이다.
이범 평론가는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 담당자들이 줄 세우기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입시'라는 현실을 등한시한 결과, 교육 개혁은 갈 길을 잃고 파산했다고 지적하고, 이를 통해 책에서 '정치와 교육이 한 몸'인 현실, 즉 정치에 의해 교육정책이 휘둘리는 에듀폴리틱스(edu-politics)’의 영향력을 돌아봐야 한다는 중요한 주장을 이어간다. 특히 대입제도 논쟁은 우리의 기존 상식인 진보-보수 구도가 아니라, 엘리트-대중 구도라는 저자의 주장은 뜻 깊다.
책은 단순히 '진보 교육계'만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국의 입시 정책을 자세한 설명으로 비교 분석하며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환상적인 (서구의) 입시 제도' 허상을 깨는 한편, 한국 교육이 나가야 할 대안을 충실히 담았다. 근본적으로 대학 서열화를 해소해야만 입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며, 관련 대안으로 대규모 재정 투입을 매개로 명문 사립대를 광범위하게 끌어들이는 '포용적 상향평준화' 및 공동입학제를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할 교육의 미래를 구상하기도 했다. 책은 한국인이 입시에 매달리는 원인을 찾고, 학벌 논란의 쟁점을 파헤치고, 혁신학교를 쟁점화하며, 강남 사교육 현장을 정리하면서 기존 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한국 입시 교육에 관한 모든 논쟁점이 책에 다 포함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범 평론가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과정 재학 중 강남 학원가를 대표하는 '일타 강사'로 변신했다가, 2000년 손주은 회장과 함께 메가스터디를 설립해 한국의 인터넷 강의 1세대가 됐다. 2003년 학원가에서 은퇴하고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후 다수 매체에서 관련 글을 기고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과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맡으면서 민주당까지 아우른 범 진보 진영의 교육 정책 자문가로 활동해 왔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를 뒷바라지하며 (민주당이 아닌) 진보 싱크탱크의 숨은 후원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영국 런던에 머물며 교육 비교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범 평론가와 8일 인터뷰를 가졌다. 책에서 저자가 설명한 내용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평가하고, 급격히 변화하는 교육의 미래를 바라보고, 한국 입시, 나아가 한국 교육이 나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인터뷰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으로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김상곤 쇼크'가 망친 수능 개편안 논란
프레시안 :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상곤 쇼크'가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의 향방을 갈랐다. 어설픈 개혁 메시지만 내놨다가 결국 수능 비중 확대라는 후퇴로 막을 내린 느낌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저자는 '진보 교육 진영의 입시 무관심'을 꼽았다. 책에서는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시절부터의 비화가 일부분 소개되기도 했다. 가까이서 지켜본 '문재인 교육 팀'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이범 : 나는 김상곤 교육팀과 합을 전혀 맞추지 못했다. 김 전 장관과 측근들이 나를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민주당에서 써달라는 리포트를 써줬고, 문재인 캠프의 싱크탱크였던 국민성장 팀에서 관련 정책을 정리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때 작성한 리포트를 김상곤팀이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설마 설마 했지만 그정도로 준비가 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보교육계에서는 김상곤 장관이 올바른 정책을 수행하려고 했으나, 무식한 정치인들이 개혁을 가로막았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내가 본 바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프레시안 : 애초 문재인 캠프 교육 팀 수뇌부(김상곤팀)이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이범 : 수능 개편안 논란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입시 경쟁 완화를 위해) 수능 절대평가화'라는 목표가 있고, 다른 쪽으로 '정시전형 유지'라는 전제가 있으면, 이 두 가지를 기술적으로 조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하면서도 정시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원점수를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면접을 활용하는 방법, 내신을 일부 합산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나는 원점수제의 부분적 활용을 지지했다. 당시 내가 쓴 리포트에도 이런 방안들이 설명됐다.
그런데 김상곤 팀에서 이런 뻔한 문제에 관한 준비(수능 절대평가 시 변별력 확보 방안)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결국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해당 부분을 질책했고, 교육부는 수능 개편안 1안을 급조하고 2안(전과목 절대평가)을 들러리로 세웠다. 사람들은 흔히 2안을 위해 1안을 들러리로 세웠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1안을 위해 2안을 들러리로 세운 것이다.
(원점수제: 과목별로 '몇 점 만점' 중 '몇 점'인지만 보여주는 제도, 1980년대 대입학력고사가 원점수제에 따른 절대평가였다. 2020년도 현재 수능 성적표에는 상대평가 지표만 표기된다. 즉 '내 성적이 다른 경쟁자에 비해 얼마나 높거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만 나타날 뿐, 학생의 절대 성적은 표시되지 않는다. 2017년 수능 개편안 발표 시 김상곤팀은 원점수제 대신 등급제 전환을 제시했다. 일정 점수 범위를 모두 동일 등급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다. 학생들의 점수 경쟁을 줄인다는 명분이었다. 아울러 수능 영향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그러나 당시는 수능보다 학종을 먼저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이 와중에 수능 개편안이 학종 개편안보다 먼저 나왔고, 2안을 위해 1안을 들러리로 세웠다는 오해와 함께 '정시전형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여론의 질타가 잇따랐다. 이와 관련해 이범 평론가는 등급제를 도입하더라도 일부 과목의 원점수를 활용해 동점자 중 합격자를 가리는 변별력 확보 방식을 정시전형에 도입해야 한다고 2017년 당시 주장했다. 이는 대선 캠프 시절 이미 문재인 교육팀에 제시한 내용이기도 했다고 이 평론가는 지적한다. 이런 식으로 절대평가 하에서 수능 변별력을 보완할 수 있고, 아울러 상대평가에 따라 '공부 잘하는 학생과의 경쟁을 우려하여 물리와 경제를 기피하고 아랍어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프레시안 : 논란이 장기간 이어지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수능 비중 확대' 발언으로 관련 논의는 일단락된 느낌이다. 이와 더불어 학종의 비교과 전형요소는 2024학년도 입시부터 전면 폐지된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 국면이 이어지면서 현 정부의 교육 정책 개편은 사실상 끝났다. 수능 비중 확대가 결국 학생 줄 세우기 강화라는 점에서 보면 개혁은 고사하고 교육 정책이 후퇴하고 만 느낌인데?
이범 :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실물을 모르면서 부동산 정책을 펴 문제가 커졌다'는 지적이 많은데, 당시 입시 문제가 이와 같았다. 입시 현실에 관한 디테일한 연구가 전혀 안 된 상태로 거친 '구호'를 앞세워 문제 해결에 나선 결과다. 당위론으로서의 입시만 알고, 현실을 몰라서 생긴 일이다.
다만 정시 확대(학종 비중 축소)를 '후퇴'로 보는 건 교육계의 입장(진보교육계뿐만 아니라 보수교육계도 전반적으로 학종을 지지한다)이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후퇴가 아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여러 신선한 주장이 많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 정책이 문재인 정부보다 좋았다는 지적도 그렇다. 저자는 관련 통계를 인용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 시기에 유일하게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역대 정부 중 가장 치밀했다고 서술했다. 수능 난이도를 낮추고, 수능에 EBS 교재 반영률을 높이고, 특목고 및 자사고 전형을 간소화하는 정책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일제고사와 자사고 대규모 인가로 일선 교육을 황폐화했다고 보는 진보 교육계의 입장과 배치된다.
이범 : 나도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대표적 비판자이다. 입학사정관제, 자사고, 일제고사 모두 강력 반대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사교육비가 줄어든 건 팩트다. 일인당 절대 사교육비가 3년간 줄었고, 물가상승률 이하로 늘어난 기간까지 더하면 5년 정도 줄어들었다.
진보 교육계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교육적 가치'에 매몰되어 민생을 외면하지 말라는 거다. '교육적으로 좋으니 입시에 비교과도 넣고,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도 넣고, 수행평가도 늘리자'고 하면, 학생만 죽어난다. 이런 건 전부 '더하기 개혁'이다. 학생은 기존 철인 5종 경기에서 철인 10종 경기로 바뀌는 셈이니 부담이 커진다. 때로는 '빼기 개혁'도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근본적 교육 철학에 결함이 있었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빼기 개혁을 잘 했다. 후술하겠지만,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 해결을 못하겠다면, 빼기 개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프레시안 : 책은 입시와 관련한, 사실상 모든 주제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도 핵심 메시지는 진보 교육 진영의 문제 지적과 더불어 '에듀폴리틱스' 비판으로 요약된다. 에듀폴리틱스란 무엇인지, 에듀폴리틱스가 한국 교육에 미친 영향을 간단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이범 : 교육이 중요한 정치 행위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에듀폴리틱스는 극복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할 현실이다. 특정 성향의 정부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모든 정부에서 에듀폴리틱스가 작동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를 보자. 2012년 출범과 동시에 국가영어능력시험(NEAT) 도입 계획을 폐기했다. 영어 쓰기·말하기 평가 도입으로 인한 사교육 급증을 우려한 결과였다. 2014년에는 고1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고등학교 내신 절대평가 도입 계획도 시행을 불과 5개월 앞두고 폐기했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자사고와 특목고 쏠림 현상, 강남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해지리라는 우려에서였다.
교육적 기준으로만 보면 국가영어능력시험이나 내신 절대평가와 같이 좋은 제도도, 특히 강남 집값 문제, 사교육 문제라는 정치적 문제와 결합되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 당시로 돌아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가 3년간 부활했던 본고사를 단번에 폐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시에서 논술을 없애고 내신 반영비율을 자율화해서 노무현 정부 말기 문제가 된 '죽음의 트라이앵글(고난도 수능+내신 상대평가+정시 논술 도입)'을 해체했다. 전부 에듀폴리틱스가 입시제도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프레시안 :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을 평가해 달라. 앞으로 남은 임기 중 실행 가능한 개혁 방안이 있다면 제안해 달라.
이범 : 앞서 말했듯 현실은 안 보고 이상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받는 경쟁압력을 줄여주기 위해 빼기 개혁을 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는 이런 마인드가 부족했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비교과 배제'라는 빼기 개혁이라도 이뤄진 건 잘된 일이다.
이미 고등학교 일부 과목에 온라인 학점제 도입을 고려하라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제안한 바 있다. 학생의 교육 기회를 넓힐 수 있는 좋은 제도이고, 온라인 교육 인프라가 마련된 한국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입시 현실을 보려하지 않는 진보 교육계
프레시안 : 교육의 창발성을 믿고 입시 줄 세우기를 악마화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입시 시스템은 사라져야 할 무엇이다. 저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입시가 없는 나라는 캐나다와 노르웨이뿐이라며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입시 위주 교육이 유럽에서는 일반적인 교육 방식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범 : 당위로서의 입시만 고민했지, 현실로서의 입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처럼 현실을 오도하게 된다. 책에서 굳이 한 챕터를 따로 할애해 OECD 입시제도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다.
입시(대입 선발에 활용되는 외부시험, 즉 external exam)를 없애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진보진영이 모범처럼 이야기하는 프랑스에도, 독일에도, 핀란드에도 입시가 있다. 유럽의 입시는 객관식이 아니라 백퍼센트 논술형이라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변별 기능을 한다.
누구나 세계 최고 교육국가로 칭송하는 핀란드를 예로 들자. 입시에서 내신 반영 여부는 대학 자율에 맡겨졌는데, 대체로 내신 성적은 보지 않는다. 주로 필수 1과목, 선택 3과목으로 구성된 논술형 입시에 더해 대학별로 추가 본고사를 치른다.
유럽의 제도 일부만 떼 와서 이를 신화화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는 엄히 비판받아야 한다. 독일을 예로 들어 보자. 독일의 대학 상당수 학과는 학생을 중도 탈락시킨다. 이공계의 경우 학생의 40~50%가 중도 탈락한다. 프랑스 의대의 경우 80% 가량이 탈락한다. 이건 경쟁이 아닌가?
'입학은 무조건 하니 입시 경쟁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자세히 썼지만, 독일에서도 의대와 같이 인기 있는 학과 입학에는 높은 수준의 경쟁이 일어난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은 의대 못 간다. 독일의 경우 상당수 학과는 프랑스처럼 일단 학생을 받아들인 후 탈락시키지만, 의대처럼 인기 있는 학과는 학생을 선발한다. 그 때문에 독일에서도 의대 입학을 위한 장기 대기자가 있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 중 이런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는 이가 있나? 입시를 없애자고 수준이 안 되는 학생에게 무한정 기회를 부여한다면, 이를 위해 세금을 마구잡이로 투여한다면 이는 올바른가?
'입시 악마화', 즉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육 담론은 유럽이 아닌, 세계적으로 특이한 미국 교육계에서 나온 주장이다. 미국은 유일하게 입시, 내신, 비교과가 모두 입시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고, 입시와 학교 교육이 구조적으로 분리된 국가다. 즉 입시는 객관식(SAT, ACT)이지만 고교에서 직접적인 입시 준비를 해주지 않는다. 비교과가 반영되어 부모 찬스가 당당하게 일어나는 시스템의 국가다. 한국 교육 전문가 대부분이 미국식 교육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입시를 악마화했고, 학종을 늘리는 데 찬성했다. 교과를 개혁해야지, 왜 비교과를 갖다 붙이나? 이런 점에 대한 (진보, 보수를 막론한) 교육계의 반성이 없으니, 즉 경쟁 압력을 줄이지 못하는 가운데 '교육적으로 좋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저것 덧붙이니 학생 부담만 더 키우는 일이 일어났다.
프레시안 : 책에서 자신을 '대입 논쟁 양비론자'라고 소개했다. 현 수능 제도와 학종 제도 모두 문제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 문제가 결합돼 한국의 입시는 '객관식 입시+비교과 반영+내신 상대평가'라는 "매우 희한하고 기괴한 조합"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이범 : 형평성을 기준으로 보면 학종은 공정하다. 하지만 비례성을 기준으로 보자면 수능이 공정하다.
실제 통계를 보면 부모의 재력은 학종보다 수능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종에 굉장히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비교과나 세특에서 나타나는 부모찬스나 기회불평등, 즉 학종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 경험적으로 체감한다. 반면 학종의 장점인 형평성(저소득층과 비수도권 학생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함)은 입시가 끝난 후 '결과'로서만 알 수 있다. 학생이 체감하기 힘들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모두 세세히 짚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사회통합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회통합적 의미'가 무슨 말인가?
이범 : 교사만의 눈으로, 학부모만의 눈으로 한국 입시를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양면을 모두 균형있게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상곤은 잘했는데 청와대가(문재인이) 막았다', '진보 교육계와 보수 교육계의 입장은 정반대다'는 식의 주장은 전부 말도 안 되는 도시전설이다.
이런 오해와 꼬여있는 매듭을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통합적이라는 거다. 가령, 내가 진보 교육계만 무조건 비판했나? 아니다. 혁신학교 학력저하론을 적극 반박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실증 근거를 이렇게 자세히 집대성해놓은 자료는 찾기 어려우리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혁신학교 반대하는 강남 학부모들이 바보냐? 그건 또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교사와 부모 입장을 모두 살펴봐야 혁신학교와 관련한 문제에서도 시사점과 보완점을 얻을 수 있다.
교과서 완전 자유발행제가 교권 강화 핵심
프레시안 : 책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 역시 중요한 과제로 지목했다. 이를 위한 핵심으로 저자는 교권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이를 위해 완전한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얼핏 인과관계가 그려지지 않을 법한 대목이다.
이범 : 진보 교육계가 가진 핵심 문제는 대입 경쟁의 원인을 정밀하게 보려하지 않는다는 점과 더불어, '개인'에게 권한을 준다는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학생에게 권한을 주거나(고교학점제), 교사에게 권한을 준다(교과서 자유발행제, 교육과정 간소화, 교사별 평가 등)는 인식이 부족하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이 될 수가 없다.
2000년대만 해도 교과서 자유발행제에 관한 꽤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서울시 교육감을 지낸 문용린,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측근이었던 곽병선, 청와대 교육비서관과 교육부 차관을 지낸 김재춘 등도 이 당시 자유발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문을 냈다. 이후 이들이 모두 국정교과서 블랙홀로 빠져들었지만.
보수 교육계가 한입으로 두말하고 끝났다고 본다면, 진보 교육계는 무얼 했을까. 이들은 개인의 자율과 교육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니 '창의적 교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입시교육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답만 내놨다. 그럼 핀란드를 포함해 대부분의 OECD 국가에 다들 입시가 존재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나. 교사들부터 자기해방적 운동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다들 학종의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교과서를 자유발행하게 된다면, 말 그대로 교사가 직접 교과서를 집필할 권한까지 가진다. 교사가 집필·편집하거나 선택하는 교재가 수업과 평가의 기준이 된다. 교사는 더 활발히 연구하는 교육 주체가 되고, 사교육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지금은 정부가 검정하거나 표준화하는 교과서가 있으니 학원도 이를 연구할 수 있지만, 수업의 다양성과 수업-평가의 밀착성이 확보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고등학교의 경우 수능이라는 객관식 시험 때문에 그 효과에 제한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는 반드시 지향해야 할 길이다. 책에서 '콘텐츠 오픈 마켓'이라는 온라인 공공 플랫폼을 통해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진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프레시안 : 학생 선택권 강화 방안으로 현재 정부 차원에서 추진된 건 고교학점제다. 저자는 그런데 이 또한 부정적으로 본다.
이범 : 고교학점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수준의 고교학점제가 문제라는 거다. 더 확장적으로, 예를 들어 수학 과목까지 완전히 학생이 이수 여부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현실은 중학교 꼴찌 수준의 저학력자도 일반고에 들어오는데, 교육당국은 여전히 인문계(academic) 교육의 틀 내에서 고교학점제를 사고하고 있다. 책에서 포퓰리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흔히 '특목고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되었다'고 하는데, 자사고가 다수 지정된 서울 지역을 제외하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인문계 교육이 적성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 인문계고(일반고) 교실에 앉아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고교학점제는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를 패키지로 포함하는데, 이 경우 강남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결국 에듀폴리틱스가 작동해서 고교학점제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어떤 정부도 대입 과열 경쟁이라는 근본 문제 해결 없이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내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화하는 순간 강남 집값이 지금보다 더 요동칠 텐데, 이를 용감하게 시행할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도 이를 우려해 내신 절대평가를 못하지 않았는가?
프레시안 :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공교육 정상화 조치가 있을까?
이범 : 당장 국민이 원하는 건 대입 경쟁을 줄여달라는 거다. 이는 이명박 정부처럼 대입 제도를 손보는 정도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물론 이걸로는 근본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대입 경쟁 완화,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대학 서열 해소다.
공영형 사립대-국공립대 네트워크화만으로는 대학 서열 못 없앤다
프레시안 : 결국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이자 근본 문제는 대학 서열이다. 대학 서열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입시 정책 개혁이든 무조건 꼬이게 돼 있다. 대학 서열화 해소 방안으로 제시된 가장 대표적 대안이 범 진보 진영이 추진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다. 국공립대의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실시해 학벌주의를 극복하자는 방안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정책이었고, 2012 대선 당시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더 크게는 국공립대 네트워크에 일부 사립대도 참여(공영형 사립대)하는 통합 네트워크화로 가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저자는 비판적 입장이다.
이범 : 한국에 국립대가 몇 없다. 국공립대 재학생 비중이 OECD에서 일본(20.3%) 다음으로 최하위권(23.6%)이다. 더구나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국공립대 비중은 더 작다. 이 지역 수험생 대비 국공립대 입학정원이 4.1%에 불과하다.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 전국 대학 서열 1위가 서울대에서 연·고대로 바뀔 뿐이다.
프레시안 : 공동입학-공동학위 방안은 그냥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그럼 대학 서열 해소화 방안은 없나?
이범 : 서울대가 연·고대보다 좋은 학교다. 단순히 서열이 높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서열을 관념적인 무엇으로 보는데, 실은 물질적이다. 대학 서열의 핵심은 대학교육 질이다.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연·고대보다 크다. 대체로 한국인이 인식하는 서열과 대학별 교육비 투자액이 비슷하다.
학벌은 대학 서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대학 서열의 원인은 재정 격차에 있다. 포항공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등이 모두 신생 학교임에도 높은 서열을 차지했다. 이 학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 투자액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간 격차를 완화해야만 대입 개혁도 가능하다. OECD 평균 대비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교육비 투자액이 현저히 부족하므로, 이를 대폭 늘리면서 전체적으로 학부 교육 수준을 상향평준화 하자는 것이다.
나는 대학 평준화라는 총론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대학 개혁이 한국 교육 개혁의 근본 출발점이다. 다만, 이런 정책을 짤 때는 처음부터 서울의 유력 사립대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학부 교육을 상향 평준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뿐이다.
누가 생각해도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면 왜 진보 교육계는 이런 생각(서울대 뺀다고 서열 없어지지 않는다)을 안 할까. 대체로 내가 지켜본 진보 교육계의 논리는 '대학 서열화가 문제→사립대가 많아서 문제가 심화함→공공성을 높여야 서열화를 해소 가능하다→국립대를 통합하자'는 식인 듯하다.
즉, '올바른 길'을 가고 싶다는 거다. 그 올바름의 기준에는 '국공립이 선, 사립은 악'이라는 대립 구도가 자리했다. 그러나 나름의 '올바른' 길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정말 '국립대 통합'이 대입 경쟁 압력을 완화하나?
심지어 한국보다 국공립대 서열이 대체로 높은 일본의 경우도 이런 식의 네트워크화는 성공하지 못할 거다. 단순히 일부 높은 서열 국공립대를 통합한다고 해 봤자, 그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학생 수가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무슨 효과가 있겠나. 한국의 국공립대 현실은 일본보다 더 어렵고, 특히 수도권에 국공립대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이런 상황에서 국공립대 통합은 잘 해봐야 미국적 시스템, 즉 최상위권은 사립대가, 그 다음이 주립대가 자리한 현실 정도로 한국에 안착하고 끝날 것이다. 서열은 그대로 남는다. 이 정도 변화로 대입 경쟁이 줄어든다고 정말 생각하나?
프레시안 : 대학시스템 개혁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이범 : 대학 개혁의 일차 목표가 '공공성 강화'여서는 안 된다. '경쟁 완화'여야 한다. 공동입학제에 사립대, 특히 명문 사립대들을 대거 포함해야만 한다. 공동입학 규모를 한꺼번에 키워, 대규모 학생이 공동 선발되어야만 대입 경쟁 압력이 줄어든다. 내 대안은 명문 사립대를 초기부터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포용적'이고, 아울러 학부 교육 수준의 상향평준화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포용적 상향평준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떻게 하나? 강제로는 안 된다.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 공동입학제에 들어오는 사립대에 정부는 감사권 정도의 권한만 가지는 반면, 인사권, 재정권 등 핵심 권한은 고스란히 인정해줘야 한다. 아울러 지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 명문 사립대들이 공동입학제에 들어오고 싶게끔 해야만 한다.
책에 자세히 설명했지만, 공동입학제 참여 대학별로 교수 1인당 1억 원 정도의 비율로 지원금을 매년 지원해야 한다. 이러면 서울대의 경우 정부 지원금이 현재 대비 50%가량 증가한다. 여타 국립대나 사립대는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한다. 이 돈으로 대학은 학생 1인당 투자액이나 학생 대비 교수 숫자 등 학부 교육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하고, 남는 돈으로 자율적으로 연구에 투자하여 교육(학부)중심대학과 연구(대학원)중심대학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분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학부는 평준화지만 대학원은 평준화가 아니다.
프레시안 : 장기적으로 보자면 학생 수 부족에 따라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이다. 사립대가 대규모로 포함되는 공동입학제가 이뤄진다면 대학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까?
이범 : 그렇다. 이런 식의 공동입학제는 실질적으로 대학 구조조정과 연계된다. 공동입학제에 들어오는 대학의 투자액이 늘어나면 해당 대학의 평가 순위는 오르고,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는 대학의 평가는 내려가게 된다. 공동입학제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대학 구조조정이 일어난다.
이미 고졸자는 굉장히 줄어들었다. 내년부터 2032년경까지는 40만 명대 초반~중반 사이를 오갈 거다. 그 이후 고졸자는 또 줄어들 것이다.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프레시안 : 대학, 특히 학부 교육의 수준을 상향평준화하자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공동입학제 참여 대학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즉 몇 개 대학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정해야 할까? 결국 사립대 평가와 선별이 필요한데?
이범 : 만일 고교 졸업생 중 15만 명에서 20만 명 정도를 공동입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참여 대학에 교수 1인당 1억 원 정도 비율로 지원을 늘리면 매년 4조 원가량의 돈이 든다. 넉넉잡아 매년 5조 원으로 추산해도 정부 예산의 1% 미만이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고교 졸업생 15만 명은 현재 고졸자의 약 33~38% 수준이다. 20만 명이면 비율은 좀 더 높아진다. 전문대를 제외한 4년제 대학에 국한된 수치임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 네트워크에 들어올 대학은 전국 국공립 거점대학은 물론,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과 비수도권 명문 사립대를 전부 포함해야 할 것이다.
공동 입학제가 실현된 후 학생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도 물론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처럼 최대한 많은 학생을 입학 시킨 후 진급 과정에서 탈락시키는 방안이 있고, 전공별 입학 정원을 정한 후 학생을 공동 선발해, 캠퍼스(대학)는 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한국 온라인 교육 기반은 세계 제일, 하지만...
프레시안 : 현재 영국에 머물고 있다. 영국에는 언제 어떤 이유로 갔으며, 언제까지 머물 예정인가?
이범 : 영국에 온 이유는 각국 교육제도의 비교연구를 위해서인데, 2월에 탐색 차 왔다가 3월말에 코로나19로 인해 셧다운이 시작되어 일단 귀국했다. 그리고 9월초에 다시 왔다. 현재는 영국 현지의 코로나19 사정으로 인해 계획했던 모든 일정이 미뤄졌고, 두문불출하며 백신 접종만 기다리는 중이다.
프레시안 : 영국에서도 온라인 교육이 실시되는 중인데, 한국보다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현지 사정이 어렵다고 들었다.
이범 : 봄 첫 유행 당시 셧다운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사립학교들은 그나마 실시간 쌍방향 교육 등으로 잘 대처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립학교는 거의 아무 것도 못했다. 영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보편적 원격 교육을 실시한 한국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다만 실시간 쌍방향 교육 비중이 낮고, 녹화된 강의를 재생하는 VOD 강의에 안주한 면이 아쉽다. 온라인이 오프라인 교육만큼 효과를 거둘 수 없지만, 어쨌든 온라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면 VOD보다는 실시간 쌍방향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프레시안 : 공교육 부실화가 글로벌한 현상이고,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하리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전 세계의 교육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범 : 온라인 교육이라고 무조건 교육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실시간 쌍방향 교육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 일부의 경우 오히려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보다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고연령대 학생을 상대로 하는 얘기지,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사정이 어렵다. 이런 점에서 온라인 교육의 한계는 분명하다.
프레시안 : 코로나 시대 이후 'K-에듀'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이범 : 첫째는 교사 자율성 확대다. 교사가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온라인 플랫폼은 가뜩이나 협소한 한국 교사의 교권을 더 축소하고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 자유발행제 확립과 더불어, 공공 온라인 교육 플랫폼은 절대 '표준화'해서는 안 된다. 표준화는 교권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둘째는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다. 나는 콘텐츠 오픈마켓을 통해 학습 프로그램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책에 제시한 바 있다.
셋째로 보편적 접근권 확보다. 실시간 쌍방향 교육이 이뤄지려면 학생이 집중 가능한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 이를 갖기 어려운 환경의 학생이 많다. 이들을 위해 공공기관이 나서거나, 바우처 형태로 학습 공간 접근권을 학생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저자의 주장에 불편해할 이들이, 특히 진보 진영에 많을 것 같다.
이범 : 이 책을 쓸 때 처음 생각한 제목은 '진보교육 비판'이었다. 출판사가 반대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내가 무슨 보수주의자가 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나이 50이 넘도록 안 변했는데 설마 앞으로 변하겠나. 다만 보수교육계는 완전히 지리멸렬한 상황이니 나라도 진보 교육계 내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
586 세대가 진보 교육계의 주류인데, 수십년 간 굳어진 사고의 관습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절망적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이런 현실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이 책에 종합했다고 생각한다. 머리말에도 썼듯 '교육평론가로서 졸업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앞으로 한국에서 어지한간 교육 관련 논의는 이 책을 거쳐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내가 한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교육정책을 좌우할 입장이 되면 내가 고민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과의 인연은 예전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비보도를 요청했었다. 그런데 이번 책 앞부분에 직접 밝혔다. '교육평론가로서 졸업작품'이라는 주장의 배경이기도 한 듯하다.
이범 : 지난 10여년 간 교육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은밀히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진보의 주류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재를 털어 후원해왔다. 이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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