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분야가 이공계인데 인문 서적인 졸저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맥스미디어)를 세상에 내놓게 된 이야기부터 하겠다. 필연은 우연과 교차한다고 했던가. 25년 전, 핀란드 친구 티모 교수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이동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보다 더 진실은 모스크바 역에서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티모가 해맑은 미소로 아르메니아산 꼬냑 두 병을 양 손에 들고 오면서부터였다. 40도짜리 독주 두 병을 밤새도록 마시게 된 것은 술맛보다도 대화에 더 빠져들어서이다.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를 쓰게 된 사연
티모의 이야기는 자기 연구소 책상에 러시아 최고 두뇌 박사들의 이력서가 쌓여있다는 자랑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말했다. 이 대목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옛날 우리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는데, 지금은 최고 두뇌들도 이민 오고 싶어서 줄 서 있다"는 한 마디이다. 일본에서 2년간 공동 연구를 하며 살았던 나는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번쩍했다. '우리는 아직 일본에게 뒤져있는 것 같은데 이게 뭐지?'라는 감정이 들었다. 밤새도록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술 두 병을 다 비웠다. 그 후 핀란드를 해마다 최소 한번은 왕래하게 됐다.
핀란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아니냐?"고 대뜸 묻는다. 복지라는 것이 부자들 돈을 뜯어다가 무능한 사람들 빈둥빈둥 놀게 하는 '빨갱이 사상'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참 이상하네요, 사회주의 빨갱이 나라라면 당연히 못살고 망해야 하는데 왜 우리보다 잘 살죠?"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나라가 작아서 그렇겠지." 나는 다시 "작은 나라라서 잘 살면 큰 나라는 다 못 살아야 되는데 독일이나 프랑스 같이 큰 나라는 왜 잘 살까요"라고 답한다. 대개 이쯤에서 상대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린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경험했던 일이다.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냥 복지 자체가 거북해서다. 복지는 좌파이고 성장은 우파라는 왜곡된 통념이 이런 대화를 만들어 놓았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의 전공이 인문계라면 몇 개월이면 완성했을 것이지만, 여기서 고백하건대 책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우연이었다. 저녁 모임 자리에서 핀란드 이야기를 들으시던 초면의 신사 분이 자기가 출판사를 하는데, 책으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했다. 나는 두 달 후 그간 메모를 정리해 지금 책 두께의 2배 분량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책이 두꺼우면 안 팔리니 줄이라고 해서 다시 일 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붙인 제목은 '가까운 미래 핀란드'였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우리나라와 너무 닮은 핀란드
한국으로부터 8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라시아 대륙 건너편 나라에 '가까운'이란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정말 가깝도록 닮아서다. 아니, 두 나라는 닮은 정도가 아니라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다.
첫째, 우리 역사와 너무 닮았다.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로 스웨덴과 러시아로부터 각각 650년과 108년의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 치하에서 착취와 압제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농기구를 들고 맞서다 대량학살을 당한, 우리의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민중 저항도 있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가 핀란드 말을 못 쓰게 하고 창씨개명처럼 이름도 바꾸라고 하자, 러시아 총독을 암살하는 등 독립운동을 거세게 하기도 했다.
둘째, 냉전과 이념 대결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1917년 12월 독립 직후 한국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이념전쟁을 벌였다. 북유럽 국가 중에서 유혈 내전을 벌인 유일한 나라가 핀란드다. 승리한 우파백군은 적군좌파를 포로수용소에 가둬놓고 총살하고 굶겨 죽였다. 전쟁 이후 소련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한때 극우운동이 거셌고 반공법을 만들어 공산주의의 씨를 말렸다. 당연히 공산국가와는 교역도 없었다. 2차 대전 중 소련과 2번의 전쟁을 벌였다. 첫 번째는 침공을 당했지만 두 번째는 나치 독일과 손을 잡고 소련을 공격했고, 결국 전범국이 되었다. 핀란드가 빨갱이 나라? 천만의 말씀이다. 공산주의 소련과 맞짱을 뜬 강력한 반공국가였다.
셋째, 초고속 경제성장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기적처럼 경제를 성장시켜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나 되는 패전 배상금을 다 갚고 7년 만에 헬싱키 올림픽을 성공시켰다.
넷째, 경제성장의 방식이다. 두 나라 모두 수출주도형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두 나라 모두 정부 주도로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했다. 자본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저축을 장려했고 외자를 도입해 성장의 동력이 되는 기간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한국은 중화학 공업을, 핀란드는 펄프 조선 등의 기계 공업을 육성했다. 핀란드 경제학자들도 자기네 경제성장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4마리 용들과 닮았다고 할 정도다.
다섯째,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했다. 핀란드 대통령은 70년 넘게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의회 해산은 물론이고, 대학교수와 교회 주교의 임명권도 갖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대통령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 개혁을 단행했고, 지금은 대선거구 비례대표 중심의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섯째, 독재자가 있다. 한국에 18년 동안 독재를 한 박정희가 있지만, 핀란드에는 그보다 한 수 위로 8년이나 더 오래인 26년간 장기 집권한 케코넨 대통령이 있다. 한국에서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부르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핀란드는 대통령 홈페이지에 케코넨을 독재자라고 명시해놓고 있다.
일곱째, 민족의 유사성이다. 핀란드인 대다수는 북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아시아 피가 섞인 민족인 핀족(Finns)이다. 핀란드의 민족성을 '시수(Sisu)'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데, 번역하자면 '은근과 끈기'이다. 이는 한국인의 그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운 우랄알타이어라는 이론도 핀란드 교수가 만들었고, 최초로 한국어를 영문 책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도 핀란드 학자이다. 피지배 고통의 경험으로 일란성 쌍둥이 간에 영혼의 끈이 이어져서 그런 것일까, 1939년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의 가난한 약소국 핀란드 학자가 한국어를 세계에 처음 알렸다.
여덟째, 진보세력이 강하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핀란드의 소위 진보좌파는 1918년 이념 내전에서 패해 몰락하다시피 했고, 한때 극우정권이 사민당의 기반인 노조를 탄압해 노조 조직률이 6%까지 오그라들었다. 반대로 이웃나라 스웨덴의 사민당은 강력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31년 간의 단독정부를 포함해 80년 넘게 연정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의 사민당은 다르다. 의회의 40%를 넘지 못했고, 지금도 15~25%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사민주의로 상징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이뤄냈다.
복지국가 핀란드의 성적표
복지국가, 뭐가 좋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국제기관의 평가들 중 몇 개만 살펴보자. 유엔(UN)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가 있는데, 156개 국가 중에서 최근 3년 연속 1위가 핀란드이며 한국은 61위다. 영국의 레가툼 연구소에서 발표하는 번영지수 상 164개 국가 중에서 핀란드가 5위인데, 한국은 26위이다. 부패인식지수는 180개 국가 중 핀란드가 3위이고 한국이 39위다. 핀란드의 사회 투명성과 신뢰도가 높다. 성 평등 지수는 153개 국가 중 핀란드가 3위, 한국은 108위다. 지난 핀란드 총선 후 새로 구성된 연립정부의 장관 19명 중 여성이 11명이다. 핀란드는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가장 앞서간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41%이며, 203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5.8%이다.
핀란드가 지나치게 분배정책을 펴는 좌파 또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시각이 있다. 자본주의를 받치고 있는 두 가지의 기둥을 꼽으라면, 단연 사유재산권과 자유시장경제일 것이다.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하는 세계경제포럼의 세계경쟁력보고서에서 141개 국가 중 사유재산권을 가장 잘 지키는 나라 1위는 핀란드이다. 한국은 39위이다. 핀란드는 2011년 이후 2016년 2위를 제외하고 2019년까지 계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1973년에 설립된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로 냉전 시절 반공주의를 앞장서 전 세계에 전파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재임 때 전성기를 누렸던 신자유주의 본산이다. 지금도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 매년 '경제자유도(economic freedom)'를 발표하는데, 180개 국가 중에서 핀란드는 20위로 한국의 25위보다 높다.
끝으로 혁신지수를 살펴보자. 세계지적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혁신지수를 보면, 131개 국가 중 핀란드가 7위, 한국은 10위이다. 우리나라도 혁신지수가 상위권인데, 이는 좋은 현상이다. 혁신은 성장, 아니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급격한 기술진보와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가나 기업 모두가 단 한순간이라도 혁신하지 못하면 성장은 물론이고 생존 자체도 어렵게 된다. 그래서 기업, 정부, 전 세계 모두가 혁신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혁신은 살을 깎는 과정이다. 탈락자도 나오고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도 수십 년 넘게 혁신을 했지만 저성장은 여전하고, 빈부격차는 늘어나고, 미래의 먹거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복지, 혁신, 성장, 그리고 다시 복지라는 '선순환'을 입증한 핀란드
'혁신과 성장'에 복지를 더해보자. 다시 말해 단순한 '혁신과 성장의 반복'이 아니라 '복지, 혁신, 성장, 그리고 다시 복지라는 선순환'을 그려보고, 어느 쪽이 더 경쟁력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자. 복지가 단순한 분배, 다시 말해 잘 사는 사람들 것을 가져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시혜 차원의 단순 분배가 아니라, 혁신의 바탕이 되고, 혁신은 성장을 이끌며, 성장의 열매가 복지로 선순환 하는 모델이 더 경쟁력이 있음을 핀란드는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 복지가 혁신을 뒷받침하고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 수 있었던 핵심은 혁신의 기본 원칙, 즉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것(acceptance of failure)에 있다. 혁신은 튼튼한 복지 안전망이 받쳐주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에서 출발한다. 실제 핀란드에서는 "실패했네, 축하하자!"(We failed, Let’s celebrate!)라는 말을 흔히 쓴다. 핀란드는 실패를 국가 차원의 자원으로 소화한다. 학교와 언론매체, 그리고 강연 등을 통해 실패 사례를 공유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한국처럼 단 한 번의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재기하기 힘든 사례는 보기 힘들다. 일찌감치 핀란드는 '실패의 날'(10월 13일)을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행사를 하고 있다.
복지도 잘 해야 한다. 복지정책도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설계와 지향하는 경로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남미 국가들처럼 포퓰리즘 정책 경로를 따르면 경제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복지국가의 실패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그리스는 경제위기가 닥치기 이전에 복지지출이 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었지만 재분배 효과가 별로 없는 조세 및 사회보장 제도 등 잘못된 구조와 경로를 택했다. 특히 기술 연구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혁신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또 그리스의 위기는 복지정책만의 실패가 아니라 유로화 도입으로 인한 통화 공급 및 조절 능력의 상실 등 복합적 상황이 개입돼 있다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높은 세율과 사회적 지출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설계와 지향하는 경로는 혁신을 통한 경쟁력의 제고와 경제성장에 둬야 한다. 복지를 단순한 시혜나 분배가 아닌 혁신의 바탕이자 점프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복지가 혁신을 받쳐주고, 혁신이 성장을 이루고, 성장의 열매로 다시 복지를 풍성하게 하는 '복지 혁신 성장, 그리고 다시 복지라는 선순환'이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선택한 설계이자 지향하는 경로이다.
복지국가는 위기 대응에도 더 효율적이다. 이는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이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신자유주의 광풍에도 실용적이며 현명하게 대처했다.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닥친 금융위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북유럽이 복지정책의 일부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복지의 축소이자 좌파의 몰락이라고 흥분했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더 강하게 단련시켰고, 복지국가 기본인 높은 세율과 큰 복지 지출은 지금도 여전하다.
1980년대부터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광풍이 세계를 휩쓸었고, 그 여파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자유주의의 본거지인 시카고 대학 경제학부 학장 시어도어 슐츠는 신자유주의를 압축해 '협력이 아닌 경쟁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핀란드를 비롯한 복지국가는 '협력'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대치하는 지점을 공존시킴으로써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높은 생산성과 뛰어난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복지와 성장'을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세력의 독점물이 아닌,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 그리고 표준으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를 겪으면서 불평등과 저성장이 지속되고, 이제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00년 유럽연합이 이른바 리스본 전략(Lisbon Strategy)에서 밝힌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 2009년 세계은행(World Bank)의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2011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와 2010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소득주도성장,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 역시 한 발 들어가 보면 그 종착점은 복지국가임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 우리도 해낼 수 있다
전 세계 지식인들도 다시 노르딕 모델,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다시 꺼내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최신작인 <자본과 이데올로기>, 데런 에쓰모글로의 <좁은 회랑(narrow corridor)> 같은 두꺼운 책의 결론도 역시 복지국가다. 인류가 발견해낸 보편적 복지국가 개념은 '협력과 경쟁', '복지와 성장'이라는 대치되고 상반되는 양극을 실용적으로 조화하고 유기적으로 통합한 모델이다. 대내외의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기후변화, 고령화와 저출산 등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진적 기술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검증된 최적의 국가 발전 모델이다.
'복지는 진보'이고 '성장은 보수'라는 낡고 잘못된 통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왜 복지국가를 외면해왔는지 되돌아보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 이후 진보진영이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주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선은 복지국가 이론을 완성해서 현실에 적응한 스웨덴에만 머물렀다. 결론적으로 스웨덴은 뿌리 깊은 사민주의 역사 등을 볼 때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포기했다. 스웨덴이 아닌 바로 옆 나라, 우리나라와 너무도 많이 닮은 핀란드를 왜 보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 정의당과 민주노총 등이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도 잘 듣지 못했다. 내부의 논의는 했을 것이지만 큰 소리로 국민을 향해 첫 번째 당 강령으로 주창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다른 정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복지'하면 세율을 올려야 하고, 이것을 말하면 표 떨어진다고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정치하는 이유, 목표와 소명, 그리고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은 "복지국가는 좋은데 이게 되겠냐?"는 패배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진보세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반공법이 있었고, 노조조직률이 6%까지 떨어질 정도로 탄압받던 나라였다.
끝으로 핀란드 26년 장기집권 독재자 케코넨을 다시 소환해본다. 독재자 한국 대표 박정희는 친일에서 좌익으로,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했다. 케코넨 역시 지독한 반공주의자에서 친소파로 변신했다. 2차 대전 초기 소련이 침략한 첫 번째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모두 항복하자고 할 때, 그는 의회에서 "무슨 항복이냐, 그냥 같이 죽자"라고 하며 유일하게 버티던 강경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랬던 그가 친소주의자로 변신해 소련의 위협을 막고 내부로는 시장경제를 지키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케코넨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 후르시쵸프에게 한 말이다. "설령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공산주의를 채택한다고 해도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제도(복지국가)를 꿋꿋하게 유지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아남고 적응하기 위해 기업과 젊은이들에게만 변신하라고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야말로 과감하게 변신해야 한다. 입을 열어 큰 소리로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복지국가를 정당의 첫 번째 강령으로 올리려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진보세력은 물론,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 정당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강충경은 1960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호서대 교수, 바이오융합연구소 소장, 충청남도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핀란드기업 Labmaster 기술고문 및 등기이사, ㈜바이오메트로 CTO와 ㈜펩스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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