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소속 의원들을 모아놓고 "4.15 총선 패배를 맛보며 느낀 긴장감, 위기김을 잊어선 안 된다"며 "의정활동을 통해 당이 지향하는 바를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새로 바뀐 정강정책에 입각한 의정활동'을 직접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 문제에 대한 당내, 특히 의원단의 반발을 진압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김 위원장은 22일 오후 온라인 의원총회에서 "제가 비대위원장에 취임해서 지금까지 정강·정책, 당명, 당색 변화를 추구해 왔다"며 "지금 비대위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느냐를 여러 의원들께서 인식해 달라"고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4.15 총선에서 역대 겪어보지 못한 큰 패배를 우리 당이 겪었다. 특히 서울에서 야당이 이같은 패배를 겪은 역사가 없다"고 지적하고는 "서울에서 엄청난 패배를 당했다는 것은 당이 앞으로 어떻게 존립할 것인가 커다란 위험을 사전에 경고한 것"이라고 위기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는 선거 결과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당이 새롭게 도약할 발판을 만들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일해왔다"면서 "비대위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국민의힘이 앞으로 어떡하면 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한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어 그는 "총선 패배를 맛보면서 느꼈던 긴장감과 위기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만이라도 당이 일치단결해 조화로운 정당으로,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줄 것을) 재삼 강조한다"고 말했다. 비대위의 당 지휘방침에 이견을 제시하지 말라는 일종의 '군기 잡기'를 부드럽게 돌려서 한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나 국민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직도 30·40대 여론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왜냐? 과연 저 당이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 그저 형식적으로 구호만 내거느냐를 현명한 국민들이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러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통해서 당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을 당부한다"며 "정강정책도 새로 바꿨다. 정강정책을 바탕으로 입법 등 의정활동을 통해 우리 당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계기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그는 또한 "'비대위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비대위에는 원내대표·정책위의장도 참석하고 있고 (비대위원인 현역)의원 2분이 참석하고 있다. 비대위에서 의원들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전제로 비대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대위에 대한 비판에 반박했다.
조해진·장제원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비대위 운영 방식이 독단적·폐쇄적이고 의원들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지적을 한 데 대한 반론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 후 취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자 "뭐가 소통인가? 내가 일일이 의원님들 한 분 한 분 찾아다녀야 소통이 되는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종인의 '군기 잡기', 배경은?
김 위원장의 이같은 작심 발언은, 이른바 공정경제 3법으로 불리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 대해 당내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나왔다. 김 위원장은 전날 비대위 회의에서도 이례적으로 공개발언을 하지 않았다가 비공개 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 관련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이날 <뉴스1> 전화 인터뷰 등에 따르면, 그는 전날 비공개 회의 당시 "과거 경제민주화에 반대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이한구 전 원내대표가 지금 어떻게 됐느냐"며 공정경제 3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또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다른 자리에서 만난 계기에도 공정경제 3법에 대한 당내 반발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각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인식이 돼서 얘기하는 건지, 일방적으로 밖에서 듣는 이야기를 반영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상법·공정거래법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정무위원회 소속 위원 다수가 공정경제 3법에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그는 전날도 "의원들 숫자가 많다. (그 중) 몇 사람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신중해야 한다', '공청회나 간담회를 통해 위원들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고 있고, 정무위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비대위원을 겸직하고 있음에도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성 의원은 전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시장적 요소가 있어서 그게 기업을 옥죄거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은 열어줘야 한다"며 "시장 여건에 따라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고 했다.
당 내에서 공정경제 3법에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는 의외로 그간 각종 사안마다 김종인 비대위에 날을 세워온 장제원 의원 정도다. 장 의원은 이날 SNS에 쓴 글에서 "경제민주화를 당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던 국민의힘이 막상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맞닥뜨리니 발을 빼기 시작했다"며 "결국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껍데기만 차용하려 했던 것이냐"고 당내 반대론을 비판하고 "경제민주화 가치를 정강정책의 핵심가치로 명시한 것은 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장 의원은 "(3법은) 재벌을 때려잡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주주가 감사권까지 갖는 것이 정상인가? 자회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고 그 자회사의 주식을 재벌 자녀들이 몽땅 가지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등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공정경제 3법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자유시장 경제를 더욱 튼튼하게 활성화시키는 길"이라고 말해 '공정경제 3법'이라는 명칭 자체에도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당이 용기있게 나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김종인-박용만 회동 10분만에 종료…경제민주화 의지 강조한 金
한편 김 위원장은 의원총회 참석에 앞서 이날 오전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접견했다. 면담 시간은 약 10분 정도였다. 면담을 마친 박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반면 회동 후 취재진에게 "(공정)경제 3법에 대해 경제인 나름대로의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가 경제관계법을 다루면서 한국 경제에 큰 손실이 올 수 있는 법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 적절히 다 심의하는 과정 속에서 (재계 우려를) 반영할 테니까 너무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자신이 박 회장에게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들었다"는 자신의 과거 이력을 언급하며 "그때는 지금 법안보다 더 강한 공약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인들이 우려하는 것과 일반적 상식으로 생각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어느 정도 접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이 면담 후 얼굴을 굳힌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박 회장은 이날 김 위원장과의 면담 이전에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예방했으나, 역시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박 회장은 이 대표에게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며 "진행되는 절차·방법에 문제가 있다", "기업들은 생사가 갈리는 어려운 지경인데 기업 옥죄는 법안만 자꾸 늘어난다", "여야가 합의하면 일사천리로 가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결과에 대해서만 규제·제한을 높이면 과도한 입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등 갖가지 호소를 했으나, 이 대표는 공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추진 과정에서 관련 분야 의견을 듣겠다"면서도 "그러나 경제계도 이해해 주셔야 할 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반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박 회장을 만난 뒤 한정애 정책위의장에게 '경제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잘 수렴하라. 필요하면 공청회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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