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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건전성 맹신에 빠진 '재정 준칙' 도입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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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재정건전성 맹신에 빠진 '재정 준칙' 도입 경계

[기고] 코로나 위기로 서민 삶은 벼랑 끝, 왜 하필 지금 재정준칙 도입하나?

경제위기가 닥치면 정부의 살림살이인 재정 수지(정부의 세수에서 지출을 뺀 것)는 악화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보험이나 누진적인 소득세 등 '자동안정화장치'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안정화장치는 경기침체로 실업이 늘고 국민소득이 줄면, 자동적으로 지출이 늘고 세수가 줄게 한다. 그렇게 경기변동의 충격을 줄여준다.

한국경제는 이 재정의 자동안정화장치가 다른 나라보다 미약하다. 그래서 시민들은 유사시 소득 단절 위험이 크고 그러다 보니 장차 닥칠 위험에 대비해 각자도생으로 저축을 늘린다. 그런데 이렇게 시민들이 저축에 적극적이면 재정정책도 효과가 떨어진다. 재정정책의 경기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세제의 누진성을 키우고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해야 하는 셈이다.

눈앞의 현실도 가리는 재정 건전성의 도그마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이달 말까지 '재정 준칙'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재정 준칙이란 재정 수지 적자나 국가 채무를 국민소득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것과 같은 정부의 재정 관련 행동 규칙을 일컫는다. 이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나라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에 내몰리고 영세 상인들의 매출이 끊기는 상황에서 재정 준칙을 준수하자면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정부가 계획하는 재정 준칙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대개 세수 범위 내에서 지출을 꾸려온 정부의 과거 관행을 감안하면, 한정된 예산 자원을 배분해 지출을 관리하는 것으로 재정의 경제적 기능을 협소하게 이해하면서 균형 예산과 재정 건전성의 강고한 도그마를 고집하는 시각이 준칙에 담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지독한 엘리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기술 관료의 사고

필자는 재정 건전성 때문에 재정 준칙이 필요하고 정치나 시민 사회의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위원회 조직을 통해 재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른 경제학자들로부터 몇 달 전에 들었을 때,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시점에 무슨 한가로운 소리인가 싶었다. 정부가 고용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약속을 깨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재정의 역할에 대한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그 약속을 깰 압력이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재정정책을 정치나 시민 사회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충격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는 보수파 재정학자가 아니면 재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지독한 엘리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는 기술 관료적인 사고의 발로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것을 인정할 리 없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재정준칙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며 홍 부총리를 질타했고 홍 부총리는 "1차적으로 9월말까지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도대체 왜 지금인가?

일단 현시점에서 재정 준칙이 도입되어야 하는 필요성부터 분명치 않다. 지금의 이 위기가 언제까지 어떤 규모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스스로 제 손과 발을 묶을 수도 있는 준칙의 도입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준칙은 그것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곤경이 닥친 시기에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영하는 편향을 가져오기 쉽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오히려 재정을 덜 쓰는, 잘못된 경기 대응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비록 정부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유연성을 두는 예외조항을 적용한다고 해도 실제 운영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위기인지에 대한 합의부터 논란이 될 법하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경제 지표가 공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칫 입법부 등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되면 재정 투입의 실효성은 그만큼 더 줄어든다. 그런 난관을 뚫고 정부의 설명대로 위기 기간에 준칙 적용이 유예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에 제정되는 준칙은 제정되자마자 곧바로 적용이 유예될 운명이다. 서두를 일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경제위기를 벗어난 초기 회복 국면에도 준칙의 적용은 최선이 아닐 것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2020년과 2021년 예산을 적자로 편성했다. 그렇다면 이 위기에서 벗어나면 재정 수지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재난지원금과 같은 정부의 재량 지출은 줄어든다. 부분적으로 자동안정화장치가 작동하면 지출이 줄고 세수가 확대된다. 그렇게 재정 적자가 줄어든다. 적자 감소의 속도는 어디까지나 경제가 회복되는 속도에 맞춰진다.

재정 수지는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정부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가계 및 기업의 저축과 투자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수출과 수입의 불균형을 반영해 그 크기가 달라진다.

설명을 쉽게 하고자 수출과 수입이 일정하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재정 준칙의 준수를 위해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정부가 빚을 덜 쓰면, 자신의 저축을 정부에게 빌려주던 가계나 기업은 이제 저축을 줄이거나 아니면 빚을 써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수출과 수입이 일정하다면 국민경제 안에서 빚을 써줄 누군가는 결국 또 다른 가계나 기업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빚을 쓰게 되는 가계나 기업은 그 빚으로 주택을 사거나 설비투자를 한다. 그런데 경기 회복이 더뎌 미래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면 기업이 선뜻 투자 확대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가계소득의 감소로 저축이 줄거나, 아니면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둘 중 하나다. 재정 준칙에 얽매이다 자칫하면 경기가 재차 침체로 빠지는 '더블 딥'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가계부채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는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위기를 벗어난다고 해도 당장 재정 준칙부터 꺼내들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중장기적으로도 분배 개선과 함께 재정 적자의 유연한 활용이 필요하다

물론 경제 회복기에 저축과 투자 사이에 바람직한 균형이 확보된다면 재정 적자의 필요성도 줄어든다. 어떤 경우에 그와 같은 바람직한 균형이 가능할까?

필자는 그 가능성은 다시 문재인 정부 초기의 경제 전환 패러다임이었던 소득주도성장에 있었다고 본다. 소득 분배가 평등해질수록 유효수요가 늘어나 과잉 저축이 해소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 분배가 개선되면 재정 적자가 덜 필요하게 될 수 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는 주로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점과 이미 그와 같은 정책 기조가 크게 약화된 사실을 감안하면, 적어도 이번 위기를 벗어나 경제가 회복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재정 적자의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당분간 더 유연하게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회복의 초기 단계보다 더 긴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재정 적자를 활용하는 것은 여전히 장점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등이 2018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가 채무 비율을 낮추려는 긴축 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국가 채무 비율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이는 채무 비율의 분모에 해당하는 경제의 체력을 키워야만, 분자의 채무 부담이 통제 가능한 범위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한 연구를 통해서도, 재정을 생산적인 공공투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경제회복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힌트를 얻는다.

오늘 한국경제에서도 재정의 역할을, 성장의 구조적 제약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2019년 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경제의 약점으로 지적된 요인들만 감안해도 사람과 지식, 기술, 사회인프라에 공공투자를 집중하면 오히려 중장기적인 재정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공공투자는 미래 세대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는 정부가 이를 위해 빚을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와 같은 견해는 현대 재정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리처드 머스그레이브(Richard Musgrave)에 의해서도 지지되었고 독일 정부의 '부채 제동 장치(debt brake)'나 영국 노동당의 재정 관리 제안에도 반영된 내용이다.

거꾸로 만약 기계적인 재정 준칙 때문에 정부가 빚을 못 내고 공공투자의 재원을 당장의 세수로 한정하면, 이는 공공투자 자체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공정성도 저해하게 된다. 미래를 위한 전략적 재정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시민의 삶을 지켜내는 국가의 역할마저 제한할 수 있는, 섣부른 재정 준칙의 도입을 경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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