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대구 달성공단에 소재한 종업원 147명 규모의 자동차 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의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공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블랙스톤이라는 미국계 사모펀드가 투자한 미국 게이츠 본사의 한국 자회사이자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이다. 7월 9일, 회사의 노동자들은 가동이 멈춘 공장을 지키고 대구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에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이익은 죄다 해외 주주에 배당하고 투자는 않더니 이젠 공장까지 폐쇄
대부분 40대나 50대 가장인 노동자들로서는,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휴업이 전혀 없던 회사이기에 사용자 측에서 노사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폐업을 결정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혹시 회사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경영상의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었을까?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 공시된 감사보고서로 회사의 최근 2018년과 2019년 현금흐름을 살펴보면, 세후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현금성 세후 영업이익이 2년 누적으로 130억 원을 넘어선 반면 설비투자는 2억 원에 그쳤고 주주에게는 배당으로 합계 110억 원을 지급했음을 알 수 있다. 장기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한 이익 재투자는 최소화하면서 자금 여유가 생기면 사실상 이를 그대로 주주들이 가져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생활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게 된 노동자들로서는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측의 폐업 명분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미국 게이츠 본사는 그간 대구 공장과는 별도로 중국 사업장과 서울 판매 법인을 운영해왔다. 발주처의 주문량 변동으로 대구 공장의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면 중국 사업장에서 수입해 부족분을 충당해왔다. 회사는 앞으로는 중국에서 부품을 전량 생산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할 계획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로 주주사의 배당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일 터이다. 다만 과연 국내의 발주처 입장에서도 이와 같은 부품회사의 운영 방식이 바람직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부품 조달의 안정성과 불량률을 관리해야 한다면 말이다.
해고를 더 쉽게 하라고? 비정규직이 더 필요하다고?
지역에서 이번 사건을 접하며 필자가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고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철지난 불평이 아직도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외국인투자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이 해고가 어렵고 비정규직 사용이 제한되어 경영환경이 친화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남용해 단기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 유리한 이해당사자가 아닌가? 왜 노동자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가?
이번 한국게이츠 건에 대해서도 강성노조 탓을 하는 왜곡된 시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업장에서 최근 몇 년간 노사분규 자체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노동조합을 탓한다. 노동조합마저 없으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현할 길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방법도 없는데 말이다.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근속기간 1년 미만의 단기 근속자 비율이 터키 다음으로 높은 나라이고, 근속기간 10년 이상의 장기 근속자 비율이 칠레 다음으로 낮은 나라이다. 고용안정성이 최하위 수준이다.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OECD 고용보호지수 기준으로는 34개국 가운데 22위이다. 엄연히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에 속한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국제노동권리지수 조사에서는 노동기본권이 지켜지지 않는 꼴찌 등급 국가로 몇 년째 평가되는 노동인권의 후진국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사용자 입장만 배려하는가? 왜 우리는 그들이 여전히 싼 인건비에 기대려는 것을 용인하는가? 왜 한국경제가 그간 성장해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경제운영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가?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고용 위기, 대구시와 정부의 적극적인 조정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게이츠의 자본 철수와 공장 폐쇄는 지역에서 2차, 3차, 4차 벤더까지 가는 영세업체들에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의 설명에 따르면 지역 공단에 소재한 51개 업체의 6000여 명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 가족까지 따지면 수만 명이다. 당장 하위 업체들에서는 임금 체불과 어음 부도가 이어질 수 있다. 대구의 지역경제 전체에 영향이 파급될 중대한 고용 위기 사안이다.
더구나 이번 한국게이츠의 사례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작지 않은 여파를 남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이 단기성과에 집중해 이를 배당으로 실현한 다음 이번 경우처럼 철수해 버리면 전국 각지에 버려질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 점에서 이 한국게이츠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 수립이 요구되는 사안일 수 있다.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오늘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려는 것도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일 터이다. 대구시도 일자리 지키기에 나섰다. 작년 6월 지역의 고용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대구형 일자리' 계획이 제시되었고 올해 7월 1일에는 대구형 상생일자리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는 어쨌든 지역의 중견업체와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사용자, 노동조합, 금융기관 사이에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고를 막으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한국게이츠 문제는 대구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계와 노동계, 산업계가 힘을 더해 함께 풀어가는 것이 맞다.
이번 경제위기 극복의 핵심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데에 있다. 일찍이 대공황시기 미국 민주당 뉴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법학자 아돌프 벌리와 그의 동료 경제학자 가디너 민스는 저서 <현대기업과 사유재산>에서 현대 회사는 투자자와 종업원, 소비자와 시민의 주장을 고르게 반영해야 하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공적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 바 있다. 뉴딜을 하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일자리를 지키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외국인투자기업이라고 그 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오늘 한국게이츠 문제에 대해 정부와 대구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의 노력을 부탁드린다. 한국게이츠의 대구 공장은 재가동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일터는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대구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절실한 지지와 연대를, 시민들께 요청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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