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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디스' 하는 노사정 합의 최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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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디스' 하는 노사정 합의 최종안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전국민 고용보험, 제안으로 끝나나

'노사정 합의 최종안' - 노사정 합의인지 야합인지, 뭐라 규정해야 할지 모를 6월 30일의 문안에 대해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가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았다. 오는 23일 열릴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 '최종안'에 대한 추인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사이드 경제> 지난 글에서 얘기한 바 있지만, 민주노총의 최종안 추인 여부와 무관하게 문재인 정부 스스로 이 내용을 무시하는 행동을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그냥 무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매우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오늘도 그런 사례 하나만 살펴보도록 한다.

전국민 고용보험의 실현 가능성?

노사정 합의 최종안은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활발하게 토론이 이뤄진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문제도 다루고 있다. 특히 전국민 고용보험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특수고용 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관련해서는 조속한 시일 내에 정부 입법을 추진키로 명시했다.

과연 6월 30일 위 '최종안'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8일,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 고용보험 가입 관련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기에 이른다. 우와, 정말로 신속한 집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전국민 고용보험의 초석을 닦을 충분한 내용을 담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짱 도루묵’이다. 겉으로만 보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가입을 가로막는 진입장벽과 장애물을 겹겹이 쌓아놓았다. 입법예고안이 이 정도라면 국회 논의과정에서는 더 누더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정부가 숨겨둔 2개의 거대 장벽

우선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로까지 확장할 때 ‘특례’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은 잠시 제쳐놓도록 하자. 그것 말고도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의 문턱을 엄청나게 높여놓은 장치만 2개가 더 있으니까 말이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내용에 따르면 2가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첫 번째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하면서 '계약 체결'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이는 애초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의결한 내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직종'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

'계약 체결'이 왜 거기서 나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계약 체결’이라는 단어 하나가 상황을 얼마나 비틀어 놓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간단한 논문 하나만 보면 된다. 2017년에 고용노동부가 의뢰해 노동연구원이 수행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근로실태 파악 및 법적 보호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정흥준 부연구위원)에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당시 노동연구원은 직종별 규모에 비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 1천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관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 중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어떤 식으로 계약을 맺는지"를 묻는 문항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 결과는 아래와 같다.

즉, 서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전체의 63.3%에 불과하며 1/3이 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아무런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구두 계약만으로 일을 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이 결과에 따르면 ‘계약 체결’이라는 간단한 문구 하나만으로 1/3이 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가입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시행령에 숨어 있는 '전속성' 독소조항

고용보험 적용 직종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어떻게 보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 직종을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 입법예고에 포함된 내용은 이런 취지와는 정반대의 의도를 갖고 삽입된 조항이다.

입법예고 하루 전인 7월 7일,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고용위기 대응반 회의’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는 다양한 직종과 관련 부처가 존재하고 각각의 전속성이 달라 직종별 접근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말해 입법예고에 담긴 시행령을 통해 전속성이 높은 직종에 한해서만 고용보험 적용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2018년에 고용보험 위원회에서 논의될 때만 해도 ‘전속성’에 따라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은 옳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투 잡, 쓰리 잡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 사업주에 전속되어 일하는 노동자만을 상대로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법을 적용하는 전속성 조항을 고용보험법에는 명시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행령으로 특정 '직종'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속성 독소조항을 삽입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노사정 합의 최종안 작성에 참여한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최종안 내용을 위와 같이 해설하고 있다. 시행령을 통해 전속성 조항을 관철시켰고, ‘계약 체결’이라는 문구를 통해 전속성보다 더한 독소조항을 밀어넣었는데 말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입법예고안을 저렇게 해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날 거짓말이니 말이다.

의견 수렴해야 할 당사자들은 반대

정부 입법예고안을 확인한 특수고용 당사자들은 벌써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산재보험에서 △전속성 적용하는 방식 △시행령으로 직종을 추가하는 식으로 특례를 만들어 10년 넘게 운용했지만, 특수고용 산재보험 가입률은 10%대 초반이라는 처참한 실패를 확인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특히 산재보험의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 본인이 ‘적용제외 신청’을 할 경우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는 독소조항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킬 때 처음부터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부터 작성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전속성을 갖춘 특수고용 중에서도 90%에 가까운 규모가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빠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대표적 사례인 대리운전노조 선전물

이런 상황에서 고용보험법에서 또다시 시행령으로 전속성 높은 직종만 걸러내고, 그 중에서도 ‘계약 체결’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만 고용보험 적용 대상으로 할 경우, 산재보험 가입률 10%대 초반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미 대리운전노조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전속성 기준 폐지 △고용보험 전면 적용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 등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을 예고해놓은 상태이다. 노사정 합의 최종안에 명시된 “노사 및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되어 있는데, 당사자들의 의견이 이미 행동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쯤 되면 진짜 노사정 합의 최종안을 ‘디스’ 하는 당사자는 민주노총 반대파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의 자체가 중요했을 뿐 이행을 하든 말든, 또는 집행을 어떤 방식으로 하건, 그건 그냥 정부 맘대로 하겠다는 태도이니 말이다. 도대체 이 최종안이 제대로 이행 또는 집행되고 있는 사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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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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