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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 "딸이 연예인 오디션 봐" 자랑하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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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틀전 "딸이 연예인 오디션 봐" 자랑하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매?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④ "경찰의 '자살' 단정, '현대重 왕국'이라 가능했다"

2014년 4월 26일 오전 11시35분, 울산시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13번 셀장 2626호선에서 작업용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난간에 매달린 노동자가 발견됐다.

목격자 없는 죽음이었다.

하청 노동자 정범식 씨였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연히 그의 죽음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유가족과 동료들은 그가 '사고사'를 당했다고 했으나, 회사 측에서는 '자살'에 무게를 뒀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 죽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한 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했다. 경찰 보고서와 재판부 판결문 등을 토대로 하고 증언을 수집했다. 이것은 그의 죽음을 추적하고 톺아보는 르포다.

그 죽음의 진실과 경찰의 '몰아가기' 수사,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전문가들의 허상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① 에어호스에 목 매 죽은 노동자, 진실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②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자살?... 그의 눈에선 그리트가 발견됐다

☞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③ 법원은 '자살 아냐'...경찰은 왜 자살이라 결론 냈나?

샌딩공 박호삼 씨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8시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를 일했을까. 작업도중 동료 정범식 씨가 송기마스크를 벗은 채, 두건과 방진마스크만 착용하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가 싶었다.

그 모습을 본 지 10~15분쯤 지났을까. 작업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울리는 비상신호가 켜졌다. 일하던 곳에서 나와 보니, 누군가가 호스에 목이 감긴 채 레일에 매달려 있었다. 동료인 정범식 씨였다. 급히 목에 감긴 호스를 끊고, 정 씨를 바닥에 눕힌 상태에서 인공호흡을 진행했다. 이미 늦은 뒤였다. 정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박호삼 씨는 정 씨를 초기에 발견한 목격자로 경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정 씨가 사망한 지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울산동부경찰서로 출석했다. 경찰은 정 씨가 하는 일, 정 씨 발견한 당시 상황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의외'의 질문을 박 씨에게 던졌다.

"정범식이 스스로 목을 매기 위해 (핸드레일에) 감은 것인가요?"

"정범식이 평소 지병을 앓고 있거나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증세가 있었나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있나요?"

경찰이 정 씨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 씨는 정 씨가 자살했을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약 2시간의 경찰 조사에서 '절대 자살이 아니다'라고 정 씨의 죽음을 설명했다.

사건 당일, 사망 2시간 전에도 정 씨는 점심 먹기 싫다는 동료에게 자기가 '컵라면 가져왔다'면서 '같이 먹자'고 하기도 했다. 몇 시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그렇게 말하진 않는다. 더구나 정 씨와 7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박 씨가 보기에 그는 죽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망 이틀 전에도 숙소에서 자기 딸이 연예인 오디션에 붙었다고 자랑하던 정 씨였다. 늘 명랑하고, 주변 사람에게 친절했다. 정 씨가 자살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유다.

▲ 정범식 씨 변호인 측에서 사건을 재구성해 3D 그래픽으로 만든 당시 상황.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 법

남편이 스스로 작업호스에 목을 맸느냐고 묻는 경찰

경찰은 박 씨와 다르게, 수사 초기부터 자살로 정 씨 죽음을 단정하는 듯했다. 정 씨 부인을 참고인으로 부른 자리에서도 고인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는 듯한 질문이 쏟아졌다. 고인이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으로서는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스스로 작업호스에 목을 매었나요?"

"정범식 씨가 자살을 할 만한 이유가 있나요?"

"정범식 씨의 평소 성격은 어땠나요?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지는 않았나요?"

"정범식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나요"

"남편이 채권채무 관계가 있나요?"

정 씨와 함께 일한 현장 동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고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자살 의혹을 부인했으나, 경찰 수사 방향은 '자살'로 급물살을 탔다.

죽음의 형태도 자살이라 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경찰이 정 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단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첫 단추가 잘못 꿰매졌다. 정 씨를 부검한 부검의는 경찰의 무리한 '단정'에 '근거'를 제시했다. 정 씨의 사망 다음날 진행된 부검에서 부검의는 정 씨가 '스스로 목맴에 부합하다' 즉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감정서를 내놓았다.

총 4페이지로 돼 있는 부검감정서에서 부검의는 "타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면서 "자살과 사고사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사 관련해서는 "고인이 지면에서 작업 중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대신 4미터 위 지상에 설치된 작업장에서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부검의는 "작업레일에는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어 사고 후 공중에 부양되기까지의 과정이 설명되기 어렵다"면서 "또한 고인이 의식을 잃은 후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 관련해서도, 고인의 내부 장기에 질병이 보이지 않았고, 혈액 및 위 내용물에서 특기할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이 역시도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고인이 떨어진 곳에는 안전바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국과수 의견과 다른 부검의 소견

그러면서 부검의는 사망 원인 관련해서 "결론적으로 현장에 대한 조사 및 재연성 여부, 고인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이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며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면서 끝내는 듯했다.

한 문단으로 요약하면, '부검으로 고인의 사망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결국 당시 현장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견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한 문장이 들어간다.

"부검소견, 검안소견 및 현장소견 등을 종합해 볼 때, 고인의 사인은 스스로 목맴에 더욱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에 고인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이 문장 이전까지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던 부검의였다. 결국, 과학적 근거 없이 추정으로 사망 원인을 자살로 단정 지은 셈이다.

그리고 경찰은 이러한 소견서, 즉 고인이 자살했다는 부검의 '추정'을 근거로 수사를 '자살'에 맞춰 진행했다.

참고로 경찰의 1차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진행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 씨 사망원인을 두고 '알수 없음'이라고 감정했다.

"결론적으로 변사자의 사인은 목맴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며, 첨부된 자료의 검토를 통해 타살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다고 보이나, 자살 또는 사고사의 가능성을 감별하여 논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가 국과수와는 반대로 '자살'로 사망 원인을 써낸 이유는 추후 기사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 정범식 씨 사고 현장. 정 씨는 블록으로 오르는 계단 옆 난간에서 목이 매달린 채 발견됐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울산 동부는 현대重의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실한' 부검의 소견서를 근거로 이렇게까지 경찰이 '자살'로 몰고 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사건을 담당했던 정기호 변호사는 경찰의 행정편의주의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정 변호사는 "경찰로서는 목격자 없는 이 사건에서, '사고사'로 누군가를 기소하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형사사건으로 기소하려면, 기소내용의 대부분을 증거나 진술 등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당시 사건에서 결정적인 관련 증거나 진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반면, 자살로 수사를 종결하면, 그러한 입증 없이 '스토리'로 설명하면 된다. '어디에 묶은 뒤, 목에 호스가 감겨 떨어졌다' 이렇게 정리하면 끝난다"라며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겠다는 사명감이 없다면, 경찰도 사람인지라 쉬운 길(자살)로 가려는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고 경찰의 부실 수사 배경을 설명했다.

합리적 의심도 제기된다. 정범식 씨가 사망하기 불과 닷새 전에 두 명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LPG 폭발 사고로 숨졌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역시 하청노동자 한 명이 바다 위 비계(발판)에서 작업하다, 비계가 무너져 바닷속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 씨가 사망한 이틀 뒤에는 트랜스포터 차량 신호수로 일하던 하청 노동자가 바다에 빠져 숨졌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노동부의 2주간 특별감독이 예고돼 있는 날이기도 했다. 워낙 많은 노동자가 사망하자 노동부가 나선 셈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과 그 계열사 조선소에서 12명의 노동자(정범식 씨 제외)가 사고로 숨졌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실감케 하듯,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특히 3~4월은 추락, 폭발 등 사망사고가 집중되던 시기였다.

이처럼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그룹 오너가 국정감사에 불려나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 건이라도 사망 사고를 줄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고 당일에도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는데도, 현대중공업 안전관리자는 정 씨 시신을 내리자마자 "이건 자살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입장에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부실 수사가 진행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 씨 시신 검안이 이뤄지기도 전에, 경찰은 이미 언론에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부는 현대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경험상 로비와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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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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