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은 자동차 판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보통 자동차산업의 판도 변화를 살피려면 월별 또는 분기별 판매량을 전년도 같은 기간 판매량과 비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국과 중국은 2월에, 미국·유럽·남미 등은 3월에 대유행을 거쳤기 때문에 올해 1~3월 판매량을 작년 1~3월 판매량과 비교하면 유의미한 분석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빅 데이터'의 시대라 할 요즘 분석의 재료로 사용할 데이터가 부족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시장에서 자동차는 연간 9000만 대 안팎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1000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곳은 미국과 중국 2개의 시장이다. 그런데 세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 2개의 시장은 각각 다른 이유로 월별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시장, 1분기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
미국에는 자동차업체 전반을 관장하는 자동차산업협회가 존재하지 않아서 민간 전문기관들이 각 업체별 데이터를 자체 합산하고 있는데 그 데이터를 보려면 만만치 않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는데, GM을 비롯한 몇몇 업체들이 분기별 판매량만 공개하고 있어서 월별 판매량을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인사이드경제> 형편이라, 전문기관 데이터에 돈을 지불할 순 없어서 각 업체별 보도자료를 뒤져 올해 1분기(1~3월) 판매량, 그리고 작년 1분기 판매량 대비 증감율을 위와 같이 표로 나타내 보았다. 대부분 업체가 –10% 안팎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차의 1.0% 플러스 성장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시장은 3월에만 전년 대비 38~39%의 판매량 하락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1분기 판매량이 10%대의 감소율이라면 1~2월에는 전년 대비 판매량이 늘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 시장은 오랜 침체를 겪다가 다시 판매량이 늘어나다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추락하게 된 것이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미국의 주요 공장은 대부분 3월 18~19일부터 장기간 휴업에 들어가게 된다. 4월 중순에 생산 재개를 희망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게 되자 대부분의 업체는 5월 초에나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3월에 2주 휴업을 한 결과가 38~39% 판매량 하락이었다면, 한 달 내내 휴업한 4월 판매량 하락의 정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40%대의 판매량 하락을 기록한 중국 시장
중국의 경우 국가가 조직한 자동차공업협회가 있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데이터는 대외 공개를 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월별, 업체별로 매우 자세한 데이터들이 공개되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전후한 올해 1~3월 데이터는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민간업체들의 자체 집계 데이터가 있지만,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인사이드 경제>의 조건상 불가피하게 민간업체들 데이터를 보도한 언론 기사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인 <just-auto> 지의 보도를 기반으로 올해 1~3월 중국 시장 자동차 판매량과 전년 대비 증감율을 표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 시점은 1월 말부터였다. 따라서 2월 판매량이 80% 가까이 하락하게 된다. 2월 말부터 공장 재가동이 시작되었지만, 중국 정부의 엄격한 '이동 제한' 정책으로 인해 춘절에 고향에 내려갔던 노동자들 복귀가 어려워져 공장 가동률은 30~40%대에 불과하다. 3월 판매량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년 대비 40% 하락을 면치 못한 이유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테슬라(Tesla)다. 테슬라는 최근 중국에 기가팩토리를 가동하며 현지생산을 시작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관세 적용도 받지 않고, 중국 정부의 상당한 특혜도 누리고 있어 1분기에만 1만 7000대를 판매했다. 중국 자동차협회가 예외적으로 테슬라 판매량만 공개한 것인데, 테슬라의 1분기 글로벌 판매량은 8만 8400대로 전년 대비 무려 40% 가까이 상승했다.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난 서유럽 3월 판매량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에는 나라별로 자동차산업협회가 조직되어 있고, 매월 중순경이 되면 전달 판매량을 웹사이트 또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비록 단일국가는 아니지만 연간 1천만 대 이상의 자동차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경우 각국 자동차산업협회만이 아니라 아예 유럽 차원의 자동차산업협회(ACEA)가 조직되어 있기도 하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4월 17일 발표한 3월 판매량 데이터에 따르면, 서유럽 18개국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절반 이하(-52.9%)로 추락했다. 특히 엄청난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은 이탈리아의 경우 3월에만 85.4%가 하락해 전년 대비 1/7 수준으로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과 프랑스 역시 전년 대비 60~70%대의 감소율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 표 참조. 단, 상용차 판매량은 제외한 것임)
*서유럽 18개국 = 2004년 이전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14개국 + 유럽연합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노르웨이·스위스·아이슬란드 + 최근에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
지난 글에서 밝힌 것처럼 유럽 역시 미국과 비슷하게 대략 3월 18~19일부터 생산공장이 일제히 휴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판매량 감소율(52.9%)은 미국(38~39%)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나, 코로나19 대유행이 미국보다 유럽 시장에 훨씬 큰 타격을 입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유럽 역시 4월에도 공장 재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라 판매량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브라질도 … 러시아·한국은 예외?
다음은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러시아·인도·브라질, 그리고 한국의 내수시장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각국 자동차산업협회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인데, 인도·브라질의 경우 상용차 판매량은 제외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단연 인도 시장이다. 3월 판매량이 전년 대비 절반 밑으로 떨어졌는데, 인도 시장의 과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마루티 스즈키 판매량도 반토막이 났다. 쌍용차의 모회사인 마힌드라 그룹의 경우 3월 판매량 감소율이 무려 88%에 달했는데, 4월 초에 곧바로 쌍용차에 대한 기존 투자계획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전격 발표하기도 했다.
인도의 경우 10억이 넘는 인구가 중국보다 훨씬 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다 보니 팬데믹의 공포가 상상을 초월한다. 인도 정부는 3월 말부터 3주간 '봉쇄(Lock-Out)' 정책을 펼쳤지만, 기간을 3주 더 연장해 5월 3일까지 봉쇄 정책이 이어진다. 이 기간 의료와 전기 등 필수서비스를 제외하고 모든 사업이 중단된다. 따라서 인도 자동차 시장의 4월은 더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의 3월 판매 감소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GM 브라질 공장이 휴업을 최소 60일 이상 연장하는 등 생산 가동은 4~5월까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아니었다면 브라질 역시 1~2월에 전년 대비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오랜 침체 끝에 다시 상승국면을 타던 중이었다.
경이로운 곳은 러시아와 한국 내수시장이다. 다른 모든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던 3월에, 러시아와 한국만 전년 대비 판매량이 각각 4.0%, 9.1% 늘어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경우 환율 하락 덕에 판매량이 이례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 대유행은 4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코로나19 영향이 3월까지는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내수판매와 생산·수출 모두 늘어난 한국
그렇다면 코로나19 대유행을 이미 거친 한국의 경우는 뭐라 설명해야 할까? 한국 자동차산업의 주력은 내수판매보다 수출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내수판매만이 아니라 생산과 수출 관련 데이터를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더 놀라운 결과치를 얻게 되었다. 내수판매만이 아니라 생산과 수출 물량 역시 1~2월 마이너스 성장 이후 3월에 플러스 성장을 한 것이 아닌가.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 시점이 2월이었으므로, 코로나19 영향력은 주로 2월에 20% 이상 줄어든 판매·생산·수출 실적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2월만이 아니라 1월에도 한국 자동차산업은 죽을 쑤고 있던 실정이었다. 생산과 수출 모두 1~2월에 20% 이상 감소율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건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브라질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오기 전인 1~2월에도 판매량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즉, 세계자동차산업은 이미 하락세를 걷고 있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 속도가 빨라진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
U자형, L자형 성장 곡선? 희망사항에 불과
일부 자본가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진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산업과 생산이 다시 가파르게 성장하는 U자형 또는 L자형 곡선을 얘기하고 있다. 사실 자본가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이익을 누릴 수 있는데, 성장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주52시간 등 규제를 대폭 풀어달라는 잇속 챙기기 목적이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현재 지구상에서 자동차 생산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두려워 학교 개학은 2개월 가까이 미루면서도, 노동자들의 간격이 1~2m도 되지 않는 콘베이어벨트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을 시켜온 것이다. 과연 이게 자랑할 만한 일일까?
어쩌면 한국의 3월 내수판매·생산·수출의 동반 성장은, 코로나 이후 성장을 주장해온 자본가들 입맛에 딱 떨어지는 데이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전세계 공장들이 모두 셧 다운 상태에서 한국 공장만 정상가동 되고 있는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다른 모든 나라의 후퇴에 기반해서 성장한 것이라는 얘기다.
자본가들이 추진해온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 덕(?)에 이런 현상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 완성차 공장이 정상가동 되기 위해서는 미국·유럽·중국에서 부품이 들어와야 하는데 과연 언제까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까? 또한 자동차를 팔아줘야 할 미국·유럽·중국 시장의 구매 후보자들이 모두 일감 없이 집에 있는데(Staying at Home) 그 많은 차는 누가 다 사줄까?
아니나 다를까 3월에 팽팽 가동되던 현대자동차가 4월 들어 휴업하는 공장이 생기고 있는데, 대부분의 이유가 재고나 선적이 밀려있기 때문이다. 즉, 3월에 너무 많이 찍어낸 탓에 4월에는 팔리지 않는 차량들이 출고장·선적장에 쌓여 있어서 생산을 잠시 중단하고 재고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총선 압승을 거둔 문재인 대통령도 '포스트 코로나'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래, 비록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제발 종식되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적 메시지가 온갖 규제완화와 반사이익 챙기려는 자본가들의 '희망사항'을 담고 있다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다. 지금의 여당은 재작년 지자체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둔 바 있다. 대선 승리 후 지자체까지 석권했으니 이제 미뤄두었던 개혁을 집행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부자 몸조심'처럼 문재인 정부는 친재벌 행보를 거듭하며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After Covid19)'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할까? 다음 글로 이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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