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현금 지급으로 '재난 가구' 살린 사례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현금 지급으로 '재난 가구' 살린 사례 있다

[서리풀 연구通] 재난을 대비하고 극복하기 위한 기본소득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과 버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위생수칙 준수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모두 함께 주의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방 행동에 뒤따르는 부담의 크기는 결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누군가에겐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정도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당장 생계와 생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손님이 끊겨 장사를 접어야 하는 작은 가게들, 동네 무료 급식소가 폐쇄되어 끼니 해결이 어려워진 노숙인과 독거노인들, 무급 휴가, 급여 삭감, 해고 통보에 떨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은 가운데 아이를 맡기거나 직접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아 고충을 겪고 있는 여성들까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재난의 시기에 더욱 심화되며,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극단으로 내몰고는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본소득’의 개념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재난 시기에 제공되는 일회성 현금은 원래의 기본소득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셈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이든, 현재의 재난 기본소득 주장은 기본적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한시적으로라도 무조건 보장해주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홍콩, 싱가포르에서 일찍이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전주시가 처음 도입을 결정한 뒤 여러 지자체에서 잇따라 도입을 결정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재난의 파괴적 효과를 막기 위한 현금 지급은 취약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실증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작년 말, 국제학술지 <재난과 위험감소>에 실린 논문이 이를 보여준다. 국제적십자·적신월 기후센터와 방글라데시, 독일, 미국, 영국, 미국의 공동 연구진이 수행한 이 연구는 2017년 방글라데시에서 적십자·적신월이 시범 운영했던 ‘일기예보에 기초한 홍수 대비 현금 지급’프로그램이 수혜자들의 재난 대응 행동과 경제적․신체적․정신적 결과에 미친 효과를 살펴보았다.(☞ 바로 가기 : '극단적 기상 사건에 대비한 일기예보 기반 현금 제공의 가구 수준 효과')

방글라데시는 인도, 네팔, 부탄 등과 함께 몬순 기후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마다 홍수로 수십만 명이 대피하고, 수백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겪는다. 2017년 여름, 방글라데시에서는 근 30~40년 만의 최대 규모 홍수가 예고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의 홍수로 전 지역의 3분의 1이 잠기고, 59만 채에 달하는 집들이 파괴되었으며, 11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홍수의 피해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적십자·적신월에서는 일기예보에 기초할 때 홍수 피해가 가장 크게 예상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전개했다.

수혜 집단은 방글라데시 내에서 홍수 피해에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인 보그라(Bogra) 구의 4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총 1039 가구로 결정되었다. 수혜 가구의 선정 기준은 ① 집의 형태, ② 과거 홍수 때의 침수 수준, ③ 월 지출액, ④ 아동, 노인, 장애인 가구원의 수, ⑤ 여성 가구주, ⑥ 주요 생계 수단을 검토하여 산출한 취약성 점수를 바탕으로 했다. 수혜 가구당 지급하기로 결정된 금액은 5000타카(약 7만 원)였다. 이는 2016/17년 기준 방글라데시 북서 지역의 최저 지출액(Minimum Expenditure Basket, 한 가구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드는 평균 비용) 평균이 5400타카였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현금 지급이 이루어진 시기는 2017년 7월 7일부터 11일 사이였다. 이는 수혜지역 4곳의 강 거점에 설치한 수위계에서 측정한 수치가 위험 임계치를 넘어 3일간 지속되면 현금 지급을 시작하기로 한 사전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수혜지역 주민들은 각 지역의 강수량이 정점을 찍기 3~7일 정도 앞선 시기에 현금을 받을 수 있었다.

현금 지급이 재난 위기 가구에 미친 효과를 살피기 위해 연구진은 현금이 지급되지 않은 인근 지역 4곳을 대조 지역으로 선정하고, 수혜 지역과 대조 지역에서 무작위로 총 410 가구를 추출했다. 이미 2016년 5월에 사회경제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 설문조사를 실시해 두었고, 홍수가 지나간 한 달 뒤인 2017년 10월에 현금 지급 효과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수혜 집단에서는 174명이, 대조 집단에서는 216명이 응답하여 총 390명이 분석에 포함되었다. 이에 덧붙여 초점집단 인터뷰와 주요 정보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여 설문 조사를 보완하고자 했다.

연구의 주요 결과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현금 지급이 재난 대응에 미친 영향부터 살펴보면, 수혜 지역 주민들이 대조 지역에 비해 재난 준비 행동을 더 많이 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음식을 구매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수혜 지역에서는 절반 이상(57%)이었지만, 대조 지역에서는 38%에 그쳤다. 수혜지역에 지급된 현금의 사용처를 살펴보니 대부분이 음식 구매에 사용되었다(92%). 집의 지붕이나 벽을 보강한 사람들의 비율도 수혜 지역(32%)이 대조 지역(17%)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았다. 반면, 어떤 대비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수혜 지역에서 극히 일부인데(7%) 비해, 대조 지역에서는 훨씬 높게 나타났다(19%).

또한 수혜 지역 주민들은 대조 지역 주민들에 비해 자산을 헐값에 팔거나, 높은 이자를 감수하며 돈을 빌리는 일이 더 적었다. 재난 상황에서는 급하게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자산, 예컨대 가구나 염소, 닭 등을 평소보다 헐값에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초점집단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수혜 집단에서는 홍수 피해로 가축을 팔았다는 언급이 세 번밖에 없었던 반면, 대조 집단에서는 18회나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롭게 대출을 받은 사람의 비율도 수혜 지역(42%)이 대조 지역(60%)보다 낮았다.

이 외에도 연구진은 재난 기간 동안 섭취한 음식의 양과 질을 비교했다. 음식의 양을 평소보다 줄이거나 식사 횟수를 줄여야 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수혜 지역과 대조 지역 모두 비슷하게 높았다(수혜 지역 89%, 대조 지역 93%). 그러나 끼니를 거르거나 식사량을 줄여야 했던 빈도는 수혜 집단이 대조 집단에 비해 3분의 1 정도 적었다. 열흘 넘게 쌀만 먹어야 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수혜 집단(8%)이 대조 집단(28%)보다 훨씬 적었다. 즉, 식사의 규칙성과 질 측면에서 수혜 지역 주민들은 대조 지역 주민들보다 훨씬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재난으로 인한 신체적․사회심리적 결과를 살펴보자. 신체적 건강 문제의 유병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수준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현금이 지급된 지역사회의 가구주들은 불행한 기분을 상대적으로 덜 느꼈고, 지난 일주일간 느꼈던 불안과 우울도 마찬가지였다. 우울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대조 지역(6.3%)에 비해 수혜 지역(24.1%)에서 훨씬 높았다.

결과를 종합해보면, 미리 현금을 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재난 대비행동을 더 잘 할 수 있었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일이 적었으며, 더 규칙적인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덜 우울했다는 것이다. 즉, 재난의 타격을 완충하는데 현금지급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는 효과가 확인된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2017년 홍수에서는 기상예측을 바탕으로 선제적 현금 지급이 가능했지만, 코로나19 유행은 그 성격이 다르다. 또한 비영리 국제구호단체의 재원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지금 국내에서 논의되는 중앙정부나 지자체 주도의 재난 지원금과는 다르다. 그러나 재난 발생 이전에 지급된 현금이 사람들의 재난 대응 행동을 돕고, 재난의 경제적․정신적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우리가 위기에 맞서 인간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갖출 수 있다면, 재난을 더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도입되는 현금 지급이 이번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기본소득처럼 정기적이 된다면, 예측할 수 있는 위기뿐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도 훨씬 든든할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촉발된 재난의 시기에 유명해진 ‘기본소득’은 지금만이 아니라 올여름 방글라데시를 다시 찾아올 홍수, 제 2의 코로나 유행, 미래의 어떤 위험 앞에서도 모두를 더 잘 대비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영세 소상공인뿐 아니라 노숙인, 독거노인, 불안정 노동자, 어린아이를 돌보는 여성을 포함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초적인 경제적 역량을 갖게 되는 것, 재난에 맞서는 강력한 예방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 서지정보

Gros, Clemens, et al. "Household-level effects of providing forecast-based cash in anticipation of extreme weather events: Quasi-experimental evidence from humanitarian interventions in the 2017 floods in Bangladesh."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ster Risk Reduction 41 (2019): 101275.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