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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트릴레마' 깨는 역사적 '동맹 조정' 첫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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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트릴레마' 깨는 역사적 '동맹 조정' 첫 발

[이혜정-구갑우 대담] "트럼프, 한미 동맹 수정해 한반도 평화 모색"

'딜레마 게임'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뗐다.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20세기 세계 질서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14일 <프레시안>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지난 12일의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짚어보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사회를 보고,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구갑우 교수는 일견 북한의 완승으로 보이는 공동 성명의 의미를 짚으며, 이면에 문서화하지 않은 두 나라 간 구체적 합의가 있으리라고 봤다. 여태까지는 북미가 상호 불신 구조에서 안보 위협-군비 강화-더 강한 안보 위협의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 회담을 통해 이 딜레마 게임을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뒀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미국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조치를 예로 들었다. 첫 술이기는 하지만, 주고받기가 이뤄지면서 상호 불신의 틀을 신뢰의 틀로 옮겨 담을 기초가 마련됐으며, 이런 구체적 움직임은 공동 성명에서 문서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이혜정 교수는 트럼프의 일견 돌발적으로 보이는 이번 움직임이 미국 예외주의를 깼고, 북한 예외주의를 깼으며, 이를 통해 20세기 미국의 안보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모는 한반도가 '평화와 비핵화, 한미 동맹'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트릴레마(trilemma)에 빠졌고,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동맹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트럼프가 내렸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트럼프를 상징하는 게 신고립주의로까지 평가되는 미국 예외주의와의 결별이다. 대북 관계에서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그간 중점을 뒀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북한을 동등한 국가로 대우했다. 미국 예외주의가 깨졌다. 미국은 그간 북한을 정상국가로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끔 했다. 북한 예외주의가 깨졌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의 성격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럼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질서, 미국 지배 질서가 깨지려 하고 있다. 이혜정 교수는 이 같은 움직임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를 미국 리버럴과 한국 보수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두 교수는 북중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다는 점도 중요하게 짚어야 할 대목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시계열을 돌아보면 중요한 대목마다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는데, 따라서 앞으로 북핵 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중국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하리라고 두 교수는 전망했다. 트럼프가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두 교수는 평했다.

다음은 두 교수의 대담 전문이다.

'미국 외교의 충격과 공포'

-북미 정상이 지난 12일 공동 성명을 내고 관계 개선의 첫발을 뗐다. 이에 관한 국내외 평가가 많은데, 종합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두 나라 적대의 고리를 끊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있는가하면, CVID가 명문화되지 않았고 구체적 로드맵이 없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의 재탕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공동 성명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구갑우 :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 11일 북한 <노동신문>이 전한 북한의 의제는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조선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 조선반도 비핵화'다. 반면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 장관의 말을 빌려 11일까지도 CVID를 일관되게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요구가 고스란히 공동 성명에 담겼다. 여기에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이 하나 더 들어간 게 이번 공동 성명이다.

이를 되돌려 보면, 판문점 선언도 북한 요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액면만 보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에 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간 특이한 안보 위협에 처했고 국제 사회에서 고립됐던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도 협상의 한 방법 아니냐고도 볼 수 있다.

이혜정 : <워싱턴포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 외교의 충격과 공포'다. 지난 3개월, 즉 3월 8일부터 6월 12일 사이 숨 가쁜 외교 움직임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얼마나 파격적으로 나섰는가를 알 수 있다. (하단 상자 기사 참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 구성된 특사단이 지난 3월 8일 미국을 방문했다. 특사단은 같은 달 5일 나온 김정은의 메시지를 워싱턴에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과 45분 만에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했다. 한국, 일본 정상에게는 사전 통보하지도 않았다. 엄청난 파격이다. 이 방문이 대전환의 물꼬를 텄다.

잘 되는가 싶었으나 지난 달 14일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언급 후 위기가 왔다. 이틀 후인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직접 담화문을 내 북미 정상회담을 깰 수 있다고 했다. 뒤이어 24일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을 두고 '리비아와 비교하는 건 무지몽매하다'고 강경하게 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가 같은 날, 바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회담하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하거나 편지하라'고 했다. 이에 지난 달 3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정은의 친서를 들고 직접 미국을 방문해 회담을 복원시켰다. 그림상으로 트럼프가 승리한 듯하지만, 트럼프는 한편 북한의 요구를 협상 과정에서 들어줬다.

▲ 북미 정상회담은 20세기 냉전 질서의 종언이 될까. ⓒAP=연합

한반도 트릴레마 깨는 첫 발 뗐다

-이번 공동 성명을 호평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평하는 게 4대 조항으로 의제를 절차화했다는 것이다. 동의하나?

이혜정 : 그렇다. 북핵 해결 방안을 일괄 타결에서 절차적 단계(프로세스)로 바꿨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보여준 가장 큰 반전이다. 이전까지 트럼프는 계속 '올인원', 즉 일괄타결을 요구했다. 그런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프로세스, 즉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절차를 수용했다. 공동 성명의 논리구조는 '북미 관계부터 개선하고, 이에 따라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거다.

구갑우 : 지난달 16일과 24일 김계관과 최선희 담화문 핵심이 CVID 불가와 리비아식 모델 반대다. 최선희는 리비아와 북한이 다름을 강조했다. 핵물질을 겨우 보유한 나라와 핵보유국을 같은 선상에 놓고 문제를 풀려 하지 말라고 미국에 강력한 신호를 줬다. 이후 트럼프 모델이 단계적, 동시적 방향으로 변했다.

-복기하자면 미국의 CVID 요구를 북한은 김계관, 최선희의 담화로 거부했고, 이에 따라 북한의 요구가 수용됐다. 당장 미국 내 반발이 거세다.

이혜정 : 이 때문에 이번 공동 성명을 두고 미국 내에서 큰 비판이 일어났다. CVID를 명문화하지 못했다는 건 결국 북한에 밀렸다는 논리로 이어지니까.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공동 성명은 '등가교환' 원칙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한다.

정상회담 전 폼페이오가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영철을 만났다. 김영철이 뉴욕을 찾았을 때 다시 만났으니 총 세 차례 만났다. 이때만 해도 CVID냐 PVID냐 논란이 일 때였다. 그런데 뉴욕 회동 후 폼페이오가 정리한 메시지가 등가교환이다. 이 메시지의 중요성을 진보고 보수고 파악하지 못했다.

북한은 비핵화의 대가로 안보 위협 제거를 요구했다. 미국의 군사 위협을 해소하고, 체제 안전 보장을 원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계속 바뀌다가 최근 '안전 확약(security assurance)'으로 정리됐다. 이건 북한 입장에서는 큰 함정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능력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이 주는 건 안보 보장 '의지'뿐이다. '능력'과 '의지'를 맞바꾼다는 건 매우 비대칭적이다. 미국은 안전 확약을 제안하면서도 ICBM '미니트맨3' 발사 시험에 나섰다.

미국이 핵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괌이나 일본 기지에서 30분이면 핵무기를 한반도로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군사 능력은 그대로다. 따라서, 북한 설득의 의무는 결국 미국에 있다. 이 상황에서 두 나라가 등가교환에 나섰다.

-북한이 받을 수 있는 게 불투명한 상황에서 등가교환이 가능한가?

이혜정 : 북한이 등가교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이 받아들였다. 미국이 등가교환 원칙을 이번 협상에 받아들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한미 동맹 의의를 조정하는 게 불가피함을 받아들였다.

이건 구갑우 교수에게 저작권(?)이 있는 내용인데, 한반도는 '한반도 평화-비핵화-한미 동맹' 트릴레마에 빠져 있다. 분단국가 안보딜레마의 포로였다. 북한은 핵능력을 계속 키워갔고, 한미는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안보딜레마를 심화해갔다. 결과적으로 상호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안보 이익을 오히려 줄이고야 말았다.

한반도 평화-비핵화-한미 동맹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한미 동맹을 지키려면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따라서 평화도 없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려면 한미 동맹을 조정해야만 한다.

트럼프가 이 고리를 풀기로 결단한 게 이번 공동 성명의 의의다. 어떻게 이 문제를 푸나? 동맹의 성격을 조정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비핵화 과정에서 나오는 이유다.

어느 선까지 수정할 것인가. 한미 동맹 수정의 최대치는 한반도 핵우산 제거다. 그런데 이는 북미 간 거론되지 않았다고 트럼프가 못 박았다. 수정의 최소치는 북한이 요구한 쌍중단이다. 북한은 비핵화하고 미국은 핵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트럼프가 동맹 조정을 결단해 딜레마를 해결했다. 트럼프가 이번 협상에 나서면서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비교하며 '25년 간 풀지 못한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평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라고 했다. 미국 패권을 지키려면 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한국 보수의 염원대로 한미 동맹을 지키려면 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받았다. 그 결과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리고 대화의 틀을 열었다. 이에 북한이 풍계리를 파괴하고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면서 화답하고,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제공했다.

동맹을 깸으로써 '전쟁'이 깨지고, 이를 통해 트릴레마도 깨진다. 여태 미국은 정전 상태를 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를 깨고 북미가 새로운 단계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정치 선언에 변화를 줘, 대치 상태까지 바꾸려 한다. 이런 움직임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막후에서 중국이 행사한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AP=연합

북중 관계 복원도 중요한 맥락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미 동맹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던 한국 보수 언론이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혜정 : 트럼프는 '워게임 중단'이라고 했다. 핵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걸 금지하는 수준이지, 통상적인 한미연합훈련은 이어갈 것이다.

구갑우 : 그간 북미 대결 구도는 전형적인 '딜레마 게임'이었다. 딜레마 게임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주고받기다. 여태 북미간 주고받기가 잘 됐다.

이 대목에서 중국의 영향력도 주목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북한은 폼페이오를 만나기 전 항상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이 3월 25일에 시진핑을 만났고, 이후 폼페이오가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은이 5월 7일과 8일 시진핑을 만났고, 다음 날인 5월 9일 폼페이오가 김정은과 만나 10일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과 함께 귀환했다.

즉, 공동 성명 전까지 북한과 미국은 항상 중국과 핵 의제를 조율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다는 점이 따라서 중요하다.

-북미가 중국과 어떤 부분을 논의했다고 보는가? 이번 공동 성명의 핵심 내용은 대부분 북미 당사자가 풀어야 할 문제고, 그간 중국은 홀대론이 일각에서 나올 정도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구갑우 : 비핵화 범위는 물론, 이에 상응하는 보상 문제가 포괄적으로 논의됐으리라고 본다.

CVID에서 핵심은 I(irreversible,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다. 즉, 미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정 지역 임의 사찰을 북한이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핵 사찰을 받는다는 건 북한이 당장의 핵 폐기는 물론, 잠재적 핵 국가로도 남지 않는다는 의미다.

북한으로서는 당장 북미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미국 정권 교체에 따라 다시 갈등이 생길 때를 대비한 보험이 필요하다. 잠재적 핵 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만 보험이 된다. 반대로 미국은 북한의 핵 관련 능력 뿌리를 뽑아야 한다. 폼페이오는 핵 관련 데이터, 과학자 전환 배치 문제까지 얘기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핵과 별개로 들 수 있는 두 번째 보험이 바로 중국이다. 북중 관계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두 번째 보험에는 성공한 걸로 보인다. 이번 공동 성명 과정에서 사실상 북중 동맹이 복원됐다고 봐야 한다.

-폼페이오가 14일 방중했다. 북미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중국의 협조를 요구할 텐데, 구체적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구갑우 : 중국이 여러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당장 대북 제재만 해도 중국의 협조가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중국은 대북 제재의 실질 주체다. 이를 해제하는 방향에서 중국과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를 폼페이오가 얘기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을 꼭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건 북한의 친미국가화다. 북한이 베트남처럼 된다면 중국으로선 정말 곤란하다. 턱밑에 친미국가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떻게든 한반도 문제에 더 깊숙이 개입하려 할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라는 것도 의미 있다. 싱가포르는 아세안 의장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싱가포르는 중국 견제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혜정 : 폼페이오 방중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행보다. 미국은 이까지 온 이상 어떻게든 북한과 핵 문제를 담판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중국과 조율해야 한다. 중국이 앞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현실을 미국이 인정했다.

▲ 트럼프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매우 중대한 과제다. ⓒAP=연합

-당초 상당수 전문가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이 나올 가능성까지도 내다봤는데, 결국 중국이 빠졌고 종전선언은 미뤄졌다. 북미 정상회담이 분명 큰 의미를 지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까지 가지 못한 건 아쉽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구갑우 :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우리로서 종전선언을 이뤄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에 못잖은 큰 선물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얻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특히 한국 정부에 두 개의 결정적 선물을 안겼다.

선물 하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다. 이는 국내 정치 상황 상 한국 정부는 도저히 제시할 수 없는 의제다. 한국 보수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으니까. 이를 트럼프가 단박에 해결했다.

둘째가 중국과 한국이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에 참여토록 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북핵 해결에 남한 정부도 주도적으로 참여해 한반도 평화 체제를 만든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자율성 범위가 보장돼야 하는데, 한국 정부 힘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번 공동 성명에 판문점 선언을 이어 한반도를 완전 비핵화한다고 함으로써 그간 남북 관계의 자율성을 인정해줬다. 판문점 선언이 정치적으로 힘을 얻게 됐다. 한국으로서는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를 트럼프가 해결해줬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에 중국이든 한국이든 다 참여하라고 했다.

-결국 트럼프 입장에서 대외적으로 뭔가를 밝히지 않으면 여론은 따르지 않는다. 당장 11월에 중간선거가 있다. 트럼프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 일각에서는 중간선거 전에 종전선언이 나오리라 예측한다.

구갑우 : 트럼프는 지금 '북핵 폐기 리얼리티 쇼' 진행자다. 가시적인 뭔가를 보여서, 전 세계 시청자를 열광케 해야 한다. 종전선언보다 더 강력한, 예를 들어 ICBM 일부 폐기 등도 얼마든지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

이혜정 :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트럼프에 우호적인 방송사 폭스는 트럼프의 프레임을 '트랜스포머티브(transformative)하다'고 했다. 비핵화 프레임 자체를 바꿨고, 이를 통해 역사 구조 자체를 바꿨다는 큰 평가다. 폭스는 아예 오바마-트럼프의 변화를 카터-레이건 변화와 비교하고 있다. 무능한 카터를 대신해 레이건이 냉전을 종식시킨 것과 트럼프의 성과를 등가로 둔다.

공동 성명 후 CVID를 얘기하던 폼페이오가 "CVID의 'V'와 'I'가 공동 성명에 들어갔다"고 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북핵 폐기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상호 신뢰를 쌓으면 'V'가 해결된다"고 했다.

트럼프의 논리를 정리해 보자. 오바마는 기껏 이란과 핵 협상하는데 18억 달러의 돈을 썼다. 나는 어떤가? 내가 취임한 후 북한은 수개월 간 도발하지 않았고, 북한 내 억류자 3명도 풀어줬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해 평화 올림픽이 성공했다. 난 만나주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돈 한 푼 안 썼다. 내가 훨씬 낫다!

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 문제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나는 핵 전쟁 위협으로부터 3000만 명을 구했다'고 했다. 귀국하며 그는 트위터로 '내 임기 중에는 핵 전쟁 위협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트랜스포머티브'한 북핵 협상이다.

이에 관해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북한에 '숨 쉴 공간'을 제공"하는 협상이라고 평했다. 북한을 설득해서 체제 안정을 보장할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식 핵 폐기 정책에 관한 최고의 설명이다.

-미국이 이처럼 진정성 있게 북핵 문제를 풀려 하는 모습이 김정은의 말을 빌리자면 '과학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혜정 : 북핵이 실질적으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으니 미국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들인 공이 너무 크다. 더구나 트럼프의 지금 상황이 어떤가? 캐나다에서 G7 회담이 엉망이 된 후 곧바로 싱가포르로 날아와 김정은과 공동 성명을 냈다. 미국도 다급하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25시간 째 잠을 자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는 무조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구갑우 : 트럼프가 취임 후 이란 핵협상을 깼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깼고, 유럽, 중국과는 무역 전쟁 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진 동맹 질서를 전부 깨고 있다. 현재 트럼프가 보일 수 있는 가시적 업적은 북핵 문제 해결이다.

이혜정 : 이에 관해 트럼프의 행보는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예외주의를 깼고, 북한예외주의도 깼다. 최강대국 미국이 북한과 같은 '비정상국가'와 정상회담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파격이다. 이제 '트럼프 예외주의'만 남았다. 트럼프가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이를 세상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공동 성명을 두고 <조선일보>와 <뉴욕타임스>가 같은 목소리로 트럼프를 비판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예외주의가 깨지니 미국 리버럴이 불편해 하고, 북한예외주의가 깨지니 한국 보수가 견디지 못한다.

다음은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숨가빴던 북미 간 외교 일지다. 이번 대담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 일지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3월 5~6일 정의용 대북 특사 평양 방문, 김정은과 면담. ‘4월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및 북미 대화 용의’ 발표

3월 8~11일 정의용 특사 워싱턴 방문 트럼프 면담. ‘5월중 북미 정상회담’ 발표

3월 25~28일 김정은 방중, 북중 정상회담

3월 31일~4월 1일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 평양 방문

4월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핵개발-경제건설 병진 노선 폐기 및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 천명. 핵.미사일 시험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발표

4월 25일 미 공군 지구권타격사령부,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ICBM 미니트맨3 시험 발사 성공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4월 29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리비아식 북한 비핵화 언급

5월 7~8일 김정은 2차 방중 북중 정상회담

5월 9일 폼페이오 국무장관 2차 방북

5월 14일 미 공군,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ICBM 미니트맨3 2차 시험 발사 성공

5월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개인 명의 담화 발표 ‘리비아 모델 등 선 핵포기 후 보상 고집한다면 북미 정상회담 재고할 것’

5월 22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

5월 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 / 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취소

5월 25일 김계관, 최고지도부 “위임에 따라” 화해 메시지 “회담 취소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 “조미 수뇌 상봉 절실히 필요함 보여줘”

5월 26일 2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5월 27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성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 준비 위한 실무 회담 개최(이후 8차례 개최)

6월 1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백악관에서 트럼프 면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 확정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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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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