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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中 설득해 7.27 종전 선언 시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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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中 설득해 7.27 종전 선언 시도할 때"

[정세현의 정세토크] 두 정상 만남 자체가 중요...숨겨진 메시지 있을 것

드디어 만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오전 9시(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190분(단독 회담 35분, 확대 회담 100분, 업무 오찬 55분)간 만나 오랜 적대관계를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바꾸는 길에 나섰다.

두 정상은 당초 예상과 달리 공동 성명(Joint Statement)을 발표했다. 당초 일각에서는 북미의 의견 차가 뚜렷한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을 내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강했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둘의 입장을 조율한 네 가지 항목의 공동 성명을 세계에 전하는 데 성공했다.

6.12 성명은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 조항으로 이뤄졌다. (☞관련기사 : [공동성명 전문] 北美, '통큰 주고받기' 첫발 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것처럼, 세부 항목은 채워지지 않은 '포괄적 수준'의 가장 높은 차원의 선언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두 정상은 새로울 것 없는 '뻔한 원칙'만을 합의한 데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해 보이는 대목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그러나 이런 지적을 두고 "총론이 필요한 상황에 각론부터 얘기하는 건, 큰일의 절차를 모르는 소리"라며 "북미 정상이 만나 상호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두 정상이 역사적인 첫 악수를 위해 마주보고 걸어오던 장면을 복기하며 "세계 최강 대국의 대통령이 그간 악마화한 북한 최고지도자와 동등하게 만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이번 성명 각 조항의 순서에 중요한 함의가 담겼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간 미국의 입장인(제네바합의, 9.19공동성명) 비핵화 → 북미 관계 정상화 → 평화 체제 구축이 아니라, 북미 관계 정상화 → 평화 체제 구축 → 비핵화 순으로 성명이 조율된 데 큰 의의가 있다는 얘기다. 정 전 장관은 이 순서를 정리하기 위해 그간 두 나라 실무자급 대표들이 긴 협상을 이어갔으리라고 추정했다.

이 순서가 중요한 이유가 뭘까. 정 전 장관은 그간 줄기차게 '비핵화 없이는 협상도 없다'던 입장의 미국이 '북미 관계 신뢰부터 회복한 후, 비핵화를 완료한다'는 북한 측 입장을 수용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북한 외교가 트럼프 정부까지 설득해냈다는 얘기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이처럼 과감하게 북한의 입장을 수용한 한편 "두 나라가 공동 성명 이면에 문서화하지 않은 이면 합의를 했을 것"이며 이는 미국의 결단에 대한 북한의 선의라고 정리했다.

다만 앞으로도 암초는 있으리라고 정 전 장관은 지적했다. 대표적 문제가 한미연합훈련 중단 논란이다. 정 전 장관은 "이 문제에서 디테일의 악마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북미 두 나라는 평화 프로세스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도 정 전 장관은 주문했다. 그 첫 단추로 오는 7월 27일, 중국까지 끌어들여 종전 선언을 시도하는 방안을 고심할 때라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 다음 날인 13일 오전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이 서울 양재동에서 정 전 장관과 대담한 '정세현의 정세토크' 인터뷰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두 정상 만남 자체가 중요

프레시안 : 드디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두 정상이 예상보다 더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고 4개 조항으로 구성된 공동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다만, 공동 성명에 구체적 액션 플랜이 없어 아쉽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우선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총평을 듣고 싶습니다.

정세현 : 이번 합의서는 총론이에요. 총론에 각론급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소리는 하나마나인 얘기입니다. 큰일을 모르는 사람의 소리죠.

공동 성명, 조인트 스테이트먼트(Joint Statement)가 나왔어요. 이것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봐야 합니다. 공동 성명은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 형식입니다.

조항의 첫째 목록이 뭡니까? 첫째가 북미 관계 개선입니다. 두 나라 관계를 새롭게 하자, 지금껏 대결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가자는 겁니다. 이 자체에 중요한 임플리케이션(implication, 함의)이 있습니다.

프레시안 : 두 나라가 새로운 관계를 맺기로 했다는 선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총 4개 항에 합의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북미 관계 정상화가 첫째고,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도 합의되었습니다.

정세현 : 실질적으로는 한 가지 합의가 더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상회담 이후 빠른 시일 안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미국과 이에 상응하는 북한 대표단의 실무회담이 시작될 겁니다. 실제로는 다섯 항이라고 봐야죠.

공동 성명의 각 조항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껏 북미 간 중요한 합의로 제네바 합의가 있습니다. 핵 동결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이에 따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면 북미 관계도 개선한다는 거죠. 첫째가 비핵화입니다. 2005년 6자 회담의 결과물인 9.19 공동성명에서도 첫째는 핵동결입니다. 그 다음이 경제입니다. 즉, 그간 북미 관계에서 언제나 첫째는 비핵화였습니다. 북한이 비핵화해야만 북미 수교도 가능하고, 평화체제 안착도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북미 관계 개선이 첫 번째입니다.

북핵 문제가 왜 생겼습니까. 북미가 적대했기 때문입니다. 왜 적대했습니까.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두 정상은 두 나라 적대관계의 원인, 북핵 문제의 원인으로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대규모 훈련을 해서 북한을 불안하게 만든 점을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합의에서는 이 관계부터 청산하자는 게 첫 번째 조항으로 나왔습니다.

이는, 그간 북한이 주장한 논리가 미국에도 먹혀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북미 관계 개선-평화 체제 안착-북핵 완전 폐기 순서로 조항이 정리됐습니다. 자연히 트럼프로서는 국내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국내에 뭔가 보여줘야죠. 이를 위해 네 번째 조항인 전사자 유해 반환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을 또 확인할 수 있습니다. 1항의 서술어는 '약속한다'입니다. 2항은 '협력한다'입니다. 3항은 '약속한다'입니다. 즉, 미국은 북한에 '새로운 북미관계', 즉 적대를 끝내기로 약속했고, 이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두 정상은 북미 간 서로 신뢰 관계를 만들어야만 제대로 된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북미 관계 회복에서 나아가 상호 불가침을 포함한 평화 협정으로까지 가야만 비핵화가 완료된다는 점을 서로 양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개별 항목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이 바빠질 텐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영호 북한 외무상 중 누구를 만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들의 협상팀을 상대로 네 개 분야 중 어떤 부분을 어떻게 실현할 지를 논의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 적대관계 해소를 우선에 놓는 건 그간 북한의 논리였는데, 돌이켜 보면 남북 첫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관계 개선이 먼저 나오고 비핵화가 다음이었습니다. CNN 등도 이 점을 근거로 이번 북미 정상회담 성명이 4.27 판문점 선언과 비슷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정세현 : 그렇습니다. 공동 성명 조항의 순서가 이처럼 배치됐다는 건 북한의 주장을 미국이 받아들였다는 건데, 이는 달리 보면 트럼프가 김정은의 진정성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 전 트럼프가 뭐라고 했습니까. 5초면 김정은의 진정성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사람 관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직접 만나보고 대화하면 상대방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지, 진심을 담고 이야기하는지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만, 적어도 아버지 김정일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좋은 인물인 듯합니다. 트럼프는 심지어 공동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을 두고 "영리한 협상가"라고도 했습니다.

▲ 둘은 역사에 '영리한 협상가'로 기록될 것인가.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은 상호 신뢰를 쌓는 첫 걸음으로 평가된다. 앞으로는 냉철한 주고받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AP=연합

문서화하지 않은 이면 합의 있을 것

프레시안 : 당초 북미 정상회담 전 온갖 말이 많았습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리비아 모델을 거론했고, 우선 핵탄두를 가져와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둥, CVID가 아니면 안 된다는 둥의 강경한 주장이 나왔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트럼프 대통령 잔여 임기인 2년 안에 끝내자는 로드맵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로드맵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비핵화가 오래 걸리리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봐야 할까요?

정세현 : 그렇죠. 그러니 기자회견에서 20%라는 숫자까지 나왔습니다. (한 기자가 북한 비핵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고 보느냐고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20%만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즉, 잔여 임기 내 비핵화 프로세스의 20%만 달성한다면 다음 대통령 임기가 끝날 즈음인 10년 후에는 북핵 문제가 완전히 마무리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려면 북미 수교도 2년 안에 완료되어야만 합니다. 당연히 불가능하죠.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를 가상해 봅시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잔여 임기인 2년 안에 비핵화를 마무리하라고 요구합니다. 김정은으로서는 그러면 2년 안에 북미 수교를 해줄 수 있느냐고 되묻겠죠. 그렇다면 중간선거 등이 낀 트럼프로서는 그건 어렵다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다면, 갈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이야기가 됩니다. 트럼프로서는 김정은이 협상할 줄 아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겠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판을 깨지 않고, 나름의 논리로 받아들일 만한 요구를 하는 파트너라는 신뢰가 싹튼 겁니다.

둘이 이번 공동 성명을 내기까지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총 8차례 만났습니다. 둘이 세부 항목을 치열하게 조율했겠죠. 성 김이 오랫동안 북한을 상대해 미국에서는 손꼽을 정도로 북한을 잘 아는 인물입니다. 그 둘 사이에서 공동 성명의 기초 합의 사항이 조율됐고, 그 토대 위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접점을 확인했습니다. 양자가 합의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 이번 공동 성명인 셈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 내 여론이 영 좋지 않은 듯합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시간 이상 기자들에게 강한 추궁을 당했습니다. 평소 언론을 불신하는 트럼프가 기자들과 그리 오랜 시간 대화한 이유는 이번 공동 성명이 미국 내 반발을 불러오리라는 우려를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공동 성명 이면에는 양자만 아는 큰 로드맵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미국이 이번 공동 성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세현 : 문서화되지 않은 양자 간 양해사항이 있을 거예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파괴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우리가 이렇게 먼저 움직이는 만큼, 당신들도 우리 진정성을 믿고 합의를 이행해 달라'고 얘기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트럼프도 그에 화답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얘기했잖습니까. 아마 김정은이 북한으로서는 한미연합훈련이 겁난다고 얘기했겠죠. 핵무기를 실은 전략폭격기가 날아다니고, 북한은 심지어 그 폭격기가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지나간 후에야 아는 상황이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어차피 핵 문제를 풀자고 하는 마당에 상대방 겁줘가면서까지 훈련 할 필요가 있겠냐 싶을 수 있죠. 유엔 안보리 제재도 사실상 현 상황만 유지한다면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에 성실히 임하겠다, 하지만 정상회담까지 한 마당에 8월에도 변화가 없다면(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 이행된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고 김정은이 말하면 트럼프로서도 훈련 중단을 생각해 볼 만하죠.

다시금 말하지만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상호 신뢰가 구축됐다는 점을 큰 성과로 봐야 한다고 제가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당장 트럼프가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대화 계속 하겠다는 뜻입니다. '악의 축' 지도자 치고 말이 통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합의문 잘 써도 상호 불신이 계속되면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가 25년이 걸렸습니다.

단독회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일찍인 35분 만에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는데, 확대회담이 12시 35분까지 이어지는 걸 보고 안심했습니다. 트럼프의 김정은 검증이 끝났고, 그러니 빨리 합의문 만들고 밥 먹고 기자회견하고 집에 가자는 식으로 트럼프가 결심해서 단독회담 시간이 줄어든 거죠.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함께 산책하지 않습니다. 그런 연출을 마냥 폼으로 하지 않습니다. 도보다리 산책과 같은 남북 정상의 연출, 북중 정상의 연출을 이번에 트럼프도 했습니다. 상대방이 밉다면 그런 연출 하지 않아요.

프레시안 : 그러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등한 관계에서 만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정세현 : 둘이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3국에 가서, 건물의 회랑을 나란히 걸어온 후, 두 나라 국기를 6개씩 내건 회랑 가운데서 악수를 나눴습니다. 세계 최강 대국의 대통령이 그간 악마 국가로 묘사된 나라 지도자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했습니다. 김정은과 북한은 악마가 아니라는 신호를 세계에 보낸 겁니다. 북한이 정상 국가가 되는 첫걸음이었죠.

저 둘이 만나는 동선 하나하나가 모두 두 나라 의전팀이 며칠간 합의하면서 이뤄낸 겁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회의는 순항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한 이상, 이제 계속 의심만 하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북미 실무자 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겁니다. 그간에는 상호 신뢰가 없었기에 '북한의 저 말 속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 찾느라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간 낭비가 줄어들 겁니다.

북한이 반 발짝 먼저 움직여라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신뢰도가 올라갔다손 쳐도, 미국 일반 시민의 생각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대부분 미국인에게 북한은 '불량 국가'이고 '악의 축'입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미국 시민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정세현 : 그래서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북한이 자신은 믿을 만한 존재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앞으로 미북 간 합의 이행을 위해 동시행동을 합의한다면, 북한이 반 발짝 정도는 먼저 미국보다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미국이 약속 이행을 어길 빌미를 주지 말고, 북한이 합의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트럼프가 미국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불신은 아주 뿌리 깊습니다.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미국인들이 자기 머릿속에 그려놓은(악마화한) 북한을 상대로 전략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여태 미국이 그랬습니다. 미국의 북한 제재를 정당화할 모습만 국민에게 심어주면서 '우리는 군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득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급선회할 계기를 보여준다면, 트럼프도 대내적으로 재평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한미연합훈련 중단이 선례가 되는 셈이죠.

프레시안 : 하지만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우리와도, 미국 국방부와도 조율해야 할 예민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세현 : 실무자 회담에서 그 문제가 더 논의돼야 할 것입니다. 아마 우리 정부와는 사전 논의하지 않고 트럼프가 이 문제를 결정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하는 문제입니다.

그간 북한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미국의 대응 논리는 '북핵은 불법이고 한미연합훈련은 합법인데, 어떻게 불법과 합법을 맞바꾸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말 한 마디로 이 논리가 뒤집어졌습니다. 절대 상호주의로 거래할 수 없다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뒤통수를 때린 격이죠. (<로이터>는 데이나 화이트 미 국방부 대변인의 말을 빌려 한미연합훈련 중단 메시지가 트럼프 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전 논의를 거쳐 나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청와대 반응을 종합하면 트럼프는 한국 정부와는 사전 조율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시안 :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앞으로 북미 합의 이행의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정세현 : 군산복합체와 연관 있는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를 대 중단에 반대하는 여론을 일으킬 겁니다. 우리 쪽에서는 이를 받아주고, 확대재생산하죠. 자칫 미국 내 움직일 수 없는 국민적 반발을 낳을 수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습니다. 자칫하면 이 대목에서 악마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매끄럽게 풀지 못하면 다음 발걸음도 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 이번 공동 성명에 대한 미국 내 이른바 '리버럴'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트럼프는 앞으로 미국 내 반북 여론을 넘어서는 과제를 안았다. ⓒAP=연합

중국 끌어들여 7.27 종전 선언 노력할 때

프레시안 : 일각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 문제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정세현 : '중국을 넣어도 좋다'는 우리 정부 입장에 대해 미국에서 '중국을 빼자'고 강력하게 압력을 넣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중국이 강력 반발한 것 같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후 5월 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반대했는지,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이론가들이 반중 여론을 일으켰는지 몰라도, 6월 1일 <환구시보>에 "중국은 반드시 종전 선언 협상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강하게 나옵니다. 아마도 한미간인지 북미간인지는 몰라도 '중국이 빠지더라도 싱가포르에서 종전 선언을 하자'는 정보가 중국에 들어갔고, 이에 중국이 반대 입장의 쐐기를 박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 상황을 돌아보죠. 5월 3일 저녁 통일부가 "종전 선언에 중국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중국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4.27 남북 정상회담 후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남북미 3자가 종전 선언을 해도 충분하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었어요. 한중과 미중은 수교 관계고, 미북 간 적대 관계만 남았으니 남북미만 종전 선언해도 된다는, 무리한 형식 논리죠. 이후 중국 측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던지, 시진핑이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통일부 발표 후인 5월 4일에야 시진핑이 문 대통령과 전화했고, 중국이 종전 선언에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강하게 드러낸 상황이죠.

그런데 새로운 상황이 또 만들어졌습니다. 5월 7일과 8일 김정은이 중국을 재차 방문해 시진핑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마 종전 선언에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겠죠. 9일에는 폼페이오가 김정은을 만났습니다. 김정은이 '중국이 종전선언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을 겁니다. 이후 트럼프는 '시진핑을 만난 후 김정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불만을 드러냈죠.

결국 5월 22일에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 다시 '중국 빼고 3자가 종전 선언을 하자'는 미국 측 입장이 나왔고, 26일 문 대통령이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 입장을 전한 후 '일단 북미 둘만 종전 선언을 하고 불가침 선언으로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식의 조언을 했을 겁니다. 이에 김정은이 동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환구시보>가 이에 바로 치고 들어오니, 결국 미국도 주저하게 되죠. 중국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면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남중국해 문제부터 무역 문제까지, 미중 간에는 서로 부딪쳐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어려운 종전 선언은 후순위로 밀린 거죠. 일단 종전 선언에 중국이 들어온다는 건 평화 협정에도 중국이 들어온다는 건데, 이를 미국이 받아들일 시간이 또 필요하니까요.

지금 6월인데, 가장 바람직한 건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미중 4개국 고위직이 만나 종전 선언을 하는 겁니다. 정상들이 모이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급이 나와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정전협정 자체가 군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이뤄졌으니, 격도 괜찮습니다.

프레시안 : 7월 27일뿐만 아니라 9월 유엔총회도 후보일로 거론됩니다.

정세현 : 가장 좋은 건 역사적 의미가 있는 7월 27일이죠. 정전협정 65주년을 기념해 이를 폐기하고 종전을 선언하는 의의가 있으니까요.

프레시안 :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어떻게든 종전 선언을 끌어내려 할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북한으로서도 의미 있는 성과죠. 이를 위해 북한이 미국에 선물을 하나 줘야 합니다. 핵폐기와 관련해 한 발 더 나간 모습을 보이거나, NPT에 복귀하거나, IAEA의 사찰관을 복귀시키는 방법 등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가장 바라는 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탄두 폐기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ICBM 한 기를 미국에 보내 해체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일각에서 거론되는 얘기입니다.

정세현 : 그건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협상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ICBM입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사거리 1만3000㎞인 화성-15형 비행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이 대화에 나섰습니다.

이를 두고 트럼프는 그간의 압박과 제재가 효력을 발휘했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아전인수격 해석이죠. 미국이 드디어 반응을 보이니 평창 동계올림픽을 활용해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 대화를 복원한 후 이를 다리로 삼아 미국과 회담까지 성공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화성-15형이 있었기에 미국의 대북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ICBM은 그야말로 북한 최후의 카드입니다. 협상 가장 마지막 과정에 폐기해야 합니다.

이날 정세토크에는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도 동석했다. 이 부원장은 ICBM 일부를 먼저 반출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일부의 평가를 두고 "낭만적인 주장"이지만 "현실성은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 부원장은 "핵 과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이 가진 핵 성능 일부라도 미국에 넘기는 건 '범인이 자기 지문을 경찰에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것만으로도 미국은 해당 미사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느 정도 성능인지, 해당 물질을 어느 광석에서 캐냈는지까지 전부 파악 가능하다"도 지적했다. 즉 핵물질을 일부를 넘겨주는 것은 사실상 전부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이 부원장은 "IAEA가 각 나라 핵 물질 데이터를 이미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핵 개발 경로 추적이 가능하다"며 "북한이 ICBM을 실질적으로 반출하는 건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평했다.
文 정부, 운전자 벗어나 짐꾼 역할도 해야 할 때

프레시안 : 종전 선언이 나온다면, 북미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북미 대화 프로세스 상 종전 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평화협정까지 가려면 그 도중에 북미 불가침협정이 나와야 합니다. 이를 유관국들이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게 종전 선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전협정을 대체하면서 플러스 알파로 북미 간 불가침협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제대로 관찰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나서서 개입하고 조정할 역할이 필요합니다. 남북미중 4자만 종전 선언에 참여하기보다, 6국(6자 회담 당사국)이 참여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트럼프가 돈을 내지 않으려 합니다. 주한미군 유지에도 돈 많이 든다는 입장 아닙니까.

이런 트럼프의 입장은 불가침 약속을 구두로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북한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불가침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방법이 뭡니까.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입니다. 아마 북한은 이를 요구했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한국과 일본이 준비됐다고 했습니다. 미국 자본 투자를 거부했죠. 이 대목이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의 불가침 약속 진정성을 의심케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이제 앞으로를 봐야 할 차례입니다. 차후 북미 간 실무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트럼프는 다음 주라도 실무 협상이 시작되리라고 했습니다.

정세현 : 우선 폼페이오를 대표로 하는 실무진 회담이 빠른 시일 안에 열리겠죠. 형식적으로는 공동 성명 개별 조항을 패키지로 논의할지, 각 실무진이 하나씩 도맡을지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방법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그간 폼페이오의 카운터 파트는 김영철이었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이 같은 관계가 이어질까요?

정세현 : 이제는 북한에서도 리영호 외무상이 실무진으로 나오는 게 맞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이제 앞으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무엇일지를 얘기해야 할 듯합니다.

정세현 : 문재인 정부가 그간 한반도 운전자론에 입각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습니다. 그간 상호 불신하던 북한과 미국이 협상했다 깨던 걸 반복하지 않게끔, 정상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기왕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운전만 하지 말고 짐도 내리고, 승객 안내도 하고, 조수 노릇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비핵화 프로세스, 북미 수교 타임 테이블, 평화 체제 타임 테이블이 나올 겁니다. 이 과정에 우리가 들어가서 북한과 미국 양자를 계속 응원하고, 타이르고, 등을 떠밀어야 합니다.

특히 적극적으로 중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반도 문제,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입김이 아주 거세질 겁니다. 우리 정부가 중국을 설득하는 데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기존과 똑같은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이 반 발짝 앞서가야 한다고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이야 김정은만 마음먹으면 움직일 수 있지만, 트럼프는 안에서 (의회와 여론을 상대로) 또 싸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한 변화에 탄력을 주려면 북한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우리 정부가 북한을 설득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게,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칠 싱크탱크, 정치권 인사 등 여론주도층을 관리하는 겁니다. 일본이 하듯, 미국에서 관련 세미나도 열고, 기업 후원으로 관련 행사도 적극적으로 열어 미국의 대북 인식을 제고할 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본은 이런 일에 기업이 나섭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상한 데 돈 쓰지 말고 차라리 이런 데 투자했으면 합니다.

그간 제 경험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던 사람도 평양에 한 번 다녀오면 달라집니다. 겪어보면 다릅니다. 미국 국회의원들도 평양에 한 번 가서 북한 사람들 직접 만나보면 달라질 겁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만큼 진정성과 열의를 갖고 문제를 풀 각 부문 사령관을 조금 개편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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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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