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오전 국토부는 서울 역삼동의 르네상스 호텔에서 D 건설사 등 민간 업체를 대거 동원해 '철도운영 경쟁 도입 관련 업계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예약된 좌석만 30석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부분 민영화 추진 방향과 당위성, 추진 일정에 대해 홍보하고, 참여 희망 업체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해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15년 초 개통 예정인 수서~목포, 수서~부산 간 고속철도(KTX)의 운영권을 민간기업에게 넘기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14조 원의 국고를 들여 수도권, 호남 고속철도를 만들고 그 운영권을 민간에 넘긴다는 것이다. 이는 특혜 시비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민영 KTX를 어떻게 출범시킬지에 대한 최소한의 사업 계획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업체를 불러 모으는데 사업 추진 계획서 한장 없겠나. 분명히 사업 계획서가 있을텐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비공개로 속도전을 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업계획서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를 불러 설명회부터 열고 있는 것.
▲ KTX 민영화 졸속 추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
국회 국토해양위 관계자, 철도공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1월 말에 민간업체로부터 사업 계획서를 받고, 3월 중에 사업자 선정을 마친 후 6월 중에 철도 운영에 관한 면허를 민간업체에 부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불과 1년 남짓 남은데 비춰보면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철도 분할 민영화의 추진이 '졸속'이라는 정황은 또 있다. 과거 철도시설공단이 KTX 190량(19편성)을 발주해 현대로템으로부터 인도받는데까지 걸린 기간은 45개월이었다. 즉, 열차 190량 제작 기간이 45개월이라는 것. 그런데 2015년 초 민영 KTX를 출범시킨다는 정부의 계획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KTX를 발주해도 2015년까지는 불과 3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열차의 '공기'를 맞추기 힘든 상황인데도, 정부가 2015년 민영 KTX 출범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
현재 철도시설공단은 새로 건설 중인 호남선 운행 등을 목표로 220량(22편성)을 발주했지만 두 차례 유찰이 된 상태다. 현대로템이 단독 입찰했으나, 정부가 내세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정부의 '민영 KTX 출범'에 맞추려면 36개월 안에 220량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일각에서는 민영 KTX 사업권에 특정 업체가 공을 들여왔으며, 그 업체가 열차를 직접 구입하지 않고 '리스' 형태로 운영하기 위해 시설공단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KTX 분할 민영화 계획 ⓒ국토해양부 |
각종 우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국토부는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국토부는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113년간 코레일 철도독점이 계속되고 있다. 코레일 철도독점 폐해,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고 강변했다.
국토부는 이 자료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KTX 역주행, 광명역 탈선, 잦은 고장 및 지연 등 안전과 서비스가 악화되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코레일의 철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3조 원의 부채를 탕감받은 코레일은 다시 그 부채가 9.7조 원에 이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코레일은 직원들에게 평균 5008만 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기차표를 판매하는 직원은 평균 6000만 원(최고 70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직원들의 연봉을 들먹였다.
국토부는 "저렴·편리·안전한 철도서비스를 위해 철도사업법에 따라 민간에게 고속철도 운송사업 면허를 부여하여 코레일과 경쟁시키겠다"며 "(민영 KTX가 출범하는) 2015년에는 코레일 독점이 사라져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이는 민간에게 고속철도를 이용하여 운송할 수 있는 면허만 부여하는 것일 뿐, 선로 등 철도시설은 지금처럼 국가가 소유하고, 코레일도 지금처럼 공기업 형태로 존속하는 등 민영화 대상이 없어 민영화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날부터 오는 17일까지 공석인 철도공사 사장 공모에 나섰다. 정치권 및 철도공사 등에 따르면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일 인사가 사장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퍼져 있어 철도공사 노조 등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KTX 기장들 집단 반발 "왜곡된 여론조사 갖고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
반대는 거세지고 있다. KTX를 운행하는 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 기장 427명은 10일 성명을 내고 "한국교통연구원의 왜곡된 여론조사와 명확한 근거없는 연구결과만 가지고 사회적합의 절차를 무시한 채 (정부가) 고속철도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개방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국토부는 사회적 합의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졸속적인 '철도 운영 민간 개방'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민영 철도 운영 회사로 이직을 거부하기로 했다.
▲ KTX 기장들은 전날 민영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연합 |
철도공사도 이날 '국토부에서 발표한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9개의 질의·응답' 자료를 내고 "경쟁력과 효율성이 높은 KTX 노선만을 개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거부했다.
철도공사 간부 2000명은 정부가 추진하는 KTX 민영화의 근거가 됐던 KTX 경쟁 체제 도입 관련 연구 보고서를 낸 한국교통연구원 이재훈 본부장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국토부 측이 철도공사 연봉을 들먹인데 대해 철도공사 관계자는 "우리 연봉이 갑자기 올라서 황당하다"라며 "철도공사 연봉이 27개 공사 중 25위다. 게다가 철도공사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다. 연봉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은 국토부의 여론몰이"라고 반박했다.
한나라 내부에서도 "정부, 도대체 왜 이러나"
한나라당에서도 KTX 분할 민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태 의원은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국토부의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는 '민간 대기업 배불리기'의 극치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009년 민간 기업이 철도 건설 사업을 수주한 후 짭짤한 수익률을 보장받으며 누리던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는 안전장치가 없어지고,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서 '먹거리'를 잃은 토건 대기업에 정부가 알짜 '고속철도 운영권'이라는 국민의 자산을 마지막 선물로 주려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정권말기에 아무런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는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계해야 한다"며 "국민이 쌓아올린 고속철도 인프라 위에 민간 대기업을 무임승차 시키려는 정부의 KTX 분할 민영화 정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정부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민감한 사안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데 대한 우려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 논란 때처럼, 한나라당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 김진애 민주통합당 KTX 민영화 저지 기획단장 ⓒ뉴시스 |
민주통합당 KTX 민영화저지 기획단 단장인 김진애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토해양부의 'KTX 민영화' 계획은 국민 세금으로 건설한 고속철도를 재벌기업에 특혜로 넘기는 것"이라며 "이는 국민의 교통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요금인상을 비롯한 철도 서비스의 하락을 가져올 것이며, 국가재정에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민영 KTX 도입을 막기 위한 입법 활동을 비롯해, 시민단체 등과 연대 등을 통해 이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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