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들은 무장한 교리와 이념의 통제에 저항한다. (…) 비록 이 땅에 천국을 창조할 수는 없지만 이념에 사로잡히면 지구상에 지옥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정치적 정상성의 회복이 진행되는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종종 단호한 외교적 군사적 결정을 통해 질서, 정의, 자유를 훼손하려는 자들에 맞서서 버텨내야 한다."
1953년 미국에서 첫 출간되고, 2018년 4월 한국에서 첫 번역 출간된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러셀 커크(Russell Kirk) 지음, 이재학 옮김, 지식노마드 펴냄)은 보수주의가 명예로울 뿐 아니라 지성적으로도 존경받을 만하며, 나아가 미국 전통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증거 한다.
그가 보기에 '규범적 가치에 따라 확립된 사회'를 공격해온 1790년 이래 급진주의자들은 그저 "변화를 사랑하는 신자주의자(Neoterist)"일 뿐. 책은 당연히 보수주의의 시조인 에드먼드 버크에서 시작해, 비판적 보수주의자인 산타야나까지 훑어낸다. 부록으로는 러셀 커크 재단이 정리한 '보수의 10대 원칙'을 덧붙였다.
(1) 보수주의자는 불변의 도덕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2) 보수주의자는 관습, 널리 오랫동안 합의된 지혜, 계속성을 중시한다.
(3) 보수주의자는 소위 규범이라는 원칙을 믿는다.
(4) 보수주의자는 신중함이란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5) 보수주의자는 다양성의 원칙을 중시한다.
(6)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원칙에 따라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억제한다.
(7)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와 재산권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확신한다.
(8) 보수주의자는 자발적인 공동체를 지지하고 강제적인 집산주의에는 반대한다.
(9)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격정과 권력을 신중하게 자제해야 할 필요를 인지한다.
(10) 사려 깊은 보수주의자는 활력이 넘치는 사회라면 영속성과 변화를 반드시 인정하고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이때 <보수의 정신>일까? 역사성 말고 시의성은 존재할까? 그래서 묻는다. 과연, 한국에는 본래적 의미의 보수주의가 존재할까? '촛불' 말고 제대로 된 진보주의는? '남북문제에 대한 접근방식과 지역적 근거의 차이(최장집)' 말고 정당의 철학과 이념의 차이는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가치와 철학의 부재에는 과도한 정치적 변동성이 뒤따른다. 이념의 과잉이 문제라지만 이념의 부재는 더없이 공허하다.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철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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