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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직 우린 한국전쟁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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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직 우린 한국전쟁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인터뷰]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펴낸 한성훈 박사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일 경남 창원을 방문하여 "여기는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 같아서는 대번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고 발언해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홍 대표는 지금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횡행하는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는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심지어 학살당해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 되는 비극적인 존재다. 그런데 제1야당의 대표가 대낮에 그런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하고도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현기증이 든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의 사과까지 권고한 여순사건에 대해서 국방부가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며 민간인 학살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 4일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발의된 여순사건 특별법안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한 여순사건 당시 "군인과 경찰이 의심만으로 민간인을 집단 사살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여순사건 보고서>를 통해 "강태효 외 123명은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8월까지 여수시 일대에서 국군 제2연대·제4연대·제5연대·제12연대·제15연대 소속부대원, 그리고 수도경찰대, 여수경찰서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사살되었다"며 진실을 규명한 바 있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본 사건 당시 반군 활동 지역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반군에게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담 혐의의 경우 추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가담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군경의 가해는 자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또) 본 사건에서 군경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작전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즉결처분'을 남용하였다. 이에 많은 민간인들이 반군에 협조한 혐의만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됐으며, 이는 '즉결처분'이 사실상 학살이었음을 말해준다"며 여순사건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민간인 학살사건 조사팀장을 지낸 한성훈 박사는 최근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산처럼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참고서이자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마치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또 한국전쟁이 우리사회에 남긴 가장 큰 비극적 유산으로서 저자는 "국가와 사회가 대량학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도 정치권력의 잔혹한 행위를 부인하고 살았다"며 "고통과 죽음을 대면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유족을 외면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그동안) 유지되어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의 저자인 한성훈 박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 저자 한성훈 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역사와공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 '월남민 구술생애사 조사연구'와 '동아시아 시민사회 비교연구'를 수행했다. 시민사회단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다. ⓒ김성수

"근대국가의 정치시스템이 대량학살 같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했다"

- 이 책은 제노사이드 연구에서 근대의 도구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데, 근대문명을 창조한 이성과 대규모 살상을 가져온 관료제와 합리주의, 분업, 산업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근대 지식의 공공성은 민주주의 문명의 토대를 구축해왔다. 근대문명의 합리화는 사회를 과학으로 설명하기 시작하고 과학의 합리성은 인간을 해방시킨 측면이 있지만 삶의 무의미를 증대시켰다. 이성의 도구적 합리성은 정치로부터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키고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결국 근대국가의 정치시스템이 홀로코스트나 대량학살과 같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했다. 합리주의는 삶의 보편타당한 도덕적 기준과 정치적 가치의 존재에 대한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다. 효율과 분업을 최고로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합리성은 대량학살이 인류문명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청산의 주요성과는 무엇이었고 아쉬운 점은 어떤 것이었다고 평가하는지?

"얼마 전 제주4.3 7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국가기관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청산의 주요성과라면 첫째, 정보수사기관이 잘못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것을 바로잡게 되는 교훈을 남긴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정부기관에서 공권력을 행사할 때 불법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피해자 명예회복을 꼽을 수 있다. 국가의 잘못으로 피해자들이 사망한 것을 밝힌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일반 시민들에게 과거청산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성과는 보편정의의 실현이다.

아쉬운 점은 첫째, 정부기관의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정보수사기관의 권력을 분점하고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법의학 분야에 대한 권고도 실효성이 없었다. 둘째, 유해발굴 종합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과 재단을 설립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셋째, 화해를 포함한 가해자 문제와 피해자 손해배상을 진척시키지 못한 부분이다."

- 노무현 정부 이후 과거의 민간인학살 및 인권침해 사건들과 관련하여 정부기관이 자신들의 잘못을 개혁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을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사과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이것은 상징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권고사항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실제 관련기관에서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인권교육은 나름대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본적인 조치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소속 공무원들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기관 내부에서 인권침해 사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런 기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밝혀지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사찰, 대선개입, 간첩조작, 블랙리스트 이런 사례를 보면 정부기관은 스스로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이명박 정부의 민간인학살, 인권침해, 민간인사찰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불행한 일이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지금 국회와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가 할 과제가 있다면?

"국회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기본법을 개정해서 진실규명이 안 된 사건의 조사와 유해 발굴, 피해자 현황, 손해배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한 사항 중에서 각 기관이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 좋은 방안이 없어서 인권을 침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정부기관이 제도와 문화를 개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사회는 유족들이 피해자의 지위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피해자 증언채록과 현황 파악을 위해 지방정부와 협업하는 방식의 작업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본다."

- 민간인학살 현장으로서 유해발굴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유해발굴은 유해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장소가 학살 현장으로서 갖는 의미도 크다. 발굴한 희생자의 뼈와 유물이 의미를 가지려면 학살 장소가 의미를 가져야 하고, 그 장소는 사건과 연계될 때 의미를 가진다. 현재도 시민사회단체에서 유해발굴에 나서서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피해자와 사건현장으로서 장소, 일관된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최소한 현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하려는 정부의 종합대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해를 발굴하고 끝나버리면 그 현장은 사라지는 게 되지 않나. 피해 유족이 지속해서 관심을 갖는 현장이 되려면 국회와 정부가 하루빨리 이에 대한 정책을 제도화시켜야한다."

▲ 1961년 5월 경찰이 부순 제주 백조일손지지 위령비 조각. ⓒ 한성훈

- 책에서 지난 2000년부터 수집한 증언을 연구 자료로 내놓는다고 했는데, 피해자의 증언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들의 말은 하나의 소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요구하는 증언의 양식을 갖는다.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증언의 형식으로서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전형(paradigm)이듯이, 한 사람의 증언은 모든 사람의 증언이 된다. 독자 중에 누군가 학살피해자 유족의 증언을 처음 듣는다면 상상해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 흉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존자의 증언은 세상을 바꾸었고 사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 정치를 움직였다. 증언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과 한 시대를 바꾸어 놓았다. 증언에 견주거나 맞설 만한 것은 없기 때문에 희생자와 그 친족의 말은 '절대 언어'에 가깝다. 정제되지 않고 비통한 감정을 토로하는 낯선 문법이지만 그들에게 증언은 어떤 조건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절대 언어'에 속한다."

- 피해자의 증언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방대한 1차 사료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료들을 찾고 수집했을 텐데 이것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전작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후마니타스 펴냄)을 펴냈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 책의 자료들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건을 조사하면서 정부기관으로부터 모은 귀중한 자료들이고 개별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근거로 쓰였다. 모든 문건은 서지정보를 명확히 해서 조사보고서에 그대로 수록했다. 중요한 문건들은 기자회견에서 그 내용을 공개하고 원문을 밝히기까지 했는데, 어떤 책에는 출처 인용 표시도 없이 한국전쟁과 사진에 이 자료들을 영인본 형태로 싣기도 했다.

내가 진실위 팀장으로 있을 때, 생산기관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는 자료수집 보고를 한 후 조사관들에게 가능한 자세하게 해제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자료는 사건을 밝히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였고 진실규명결정서와 조사보고서에 많은 부분이 기재되어 있으며 국가기록원(서울기록관)에 이관해 보존되어 있다. 관심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조사보고서에 실린 근거를 갖고 국가기록원에 열람 신청을 하면 자료를 볼 수 있다."

"생존자의 삶에 죽은 사람들의 몫이 있다"

-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마치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는데, 그 생존자들이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분들이어서 그런 느낌이 든 것인지?
"이런 현상은 증언으로 떠올리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은 매우 남다르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쉽게 들을 수 없는 서사다. 사건이 일어난 그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 전반을 이해하는 것은 생존자의 삶에 죽은 사람들의 몫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화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뜻이다."

- 한국전쟁 중 총칼을 든 인민군의 강요에 못 이겨 짐 한번 져주고 밥 한 끼 제공했다고 이승만 정권은 자국민을 부역자란 이름으로 학살했다. 이승만은 왜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보나?
"국가의 우월성 때문이다. 남북한이라고 하는 두 개의 국가가 긴장과 대결관계에 있을 때 정치공동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다. 학살은 남한의 '국가 이성(raison d'état)'을 실현하는 통치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 이성'은 다른 모든 사회적 요구와 이익에 대해 우월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없이는 새롭게 창출된 정치적 실체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해 동기는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반대자나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고,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특정한 '정치집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된다.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학살은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자기들도 언제든지 이 죽음의 대상자가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대규모 학살이 가져오는 통치의 효과는 지배집단의 가치를 국가 이상으로 격상시키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정치체제를 각인시키는 데 있다."

- 민간인 학살의 현장에서 총칼로 자국민 학살을 수행했던 가해자도 죽은 사람들이 '좌익사상'에 투철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다고 생각하는지?
"가해자의 인식은 살해를 거부하는 도덕적 요구와 상식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성의 도구적 합리성 형태를 갖는다. 군인이나 경찰 등 가해자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애국심이나 반공주의를 자아의 이상향으로 받아들여 살해행위를 자신의 신념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간인을 죽이라는 명령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정당하게 여기면서 학살을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의 가해자는 반공이나 애국심과 일체화되어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관료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이 상태에서는 극단적인 이념의 표출이 없이도 인권침해를 일삼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 쉽게 동원 될 수 있는 적당한 형태가 된다."

"우리는 아직 한국전쟁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한성훈 지음, 산처럼 펴냄). ⓒ산처럼

- 책에서 학살 가해자가 자신의 학살행위와 관련된 희생자를 만나 고백하는 장면은 흔치 않다고 했는데 왜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일에 있어서 그토록 인색하다고 보는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책임은 반드시 형사 책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종류의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준다. 또 하나는 학살을 수행한 행위자가 볼 때 살인이 개인의 행위이긴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될 수 없는 현장지휘관과 부대책임자, 최종명령을 내린 권력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책임이라고 명확하게 느끼기 곤란한 거다. 촘촘하게 분절화 된 관료제도에서 한 개인이 그 책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해자가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게 된다.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잘못을 시인하는 자기 고백이 드문 문화도 한몫 하고 있다."


- 한국전쟁이 우리사회에 남긴 가장 큰 비극적 유산은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억울하게 죽었고 명예롭게 죽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항상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가 대량학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도 정치권력의 잔혹한 행위를 부인하고 살았다. 고통과 죽음을 대면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유족을 외면한 채 국가공동체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그렇게 참혹한 일을 당하고도 우리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시민을 해방시키는 학문의 공공성과 철학 그리고 계몽과 광기의 차이를 구별하는 비판 이성과 도덕에 관한 사회이론을 정립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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