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일주일, 한반도 전역이 평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내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긍정적 반응이 압도적이다. 한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가 94%까지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언'보다 중요한 게 '이행'이다. 비핵화를 약속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 단계까지 등장할 변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할 때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1년과 2018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토론회에서 향후 변수로 미국 국내 정치 상황과 종전선언 시 중국 배제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을 꼽으며, 이 두 가지 변수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지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전 장관은 "94%의 지지율, 저는 이게 걱정"이라며 "기대가 너무 높은데 기대만큼이 될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정 장관은 북한에서는 미국에서 요구하는 시간 내에 비핵화가 가능하지만, 오히려 문제는 미국이라고 했다. 북한은 독재 체제이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로 비핵화를 서두를 수 있지만, 미국은 법적‧제도적으로 거쳐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핵과 미사일 때문에 취해놓은 여러 법적 제도적 조치들, 이를테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취소 내지 무효화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법적으로 모든 대북 조치를 묶어서 언제 무효화한다는 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북한 같으면 바로 하지만, 미국에서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25년 동안 노래를 부른 게 북미 수교인데, 의회 동의를 얻지 않으면 트럼프가 북미 수교를 약속해도 할 수 없다"며 "올해 중간선거에서 의회 권력이 어떻게 고정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대는 잔뜩 올랐는데 미국 내 정치 사정으로 인해 이행할 수 없게 되는 나쁜 가능성도 조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전 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일 또한 비핵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정상은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청와대가 밝힌 로드맵에 따르면, 종전선언에는 남북미 3개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종전선언에 꼭 중국이 참여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 양국과 이미 수교하고 있기 때문에 적대적 관계가 청산됐다는 이유다. 따라서 종전협정에는 중국을 뺀 남북미 3개국만, 이후 평화협정 단계에서 중국을 포함한 남북미중 4개국이 참여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다.
이때문에 혼선이 생기자 통일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중국의 의사에 따라 3자 또는 4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역시 명확하지 않다.
정 전 장관은 그러나 "정전협정 당사자를 뺀 종전선언이 법적으로 유효한 것인지 정부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라며 "그래서 시진핑이 (문 대통령의) 전화를 안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중간 상당히 복잡한 분쟁 거리가 될 수 있다. 종전선언 주체를 남북미로 한정하는 게 평화협정 체결 과정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며 "수정할 수 있으면 (종전선언 참가국을 남북미중 4개국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런 걸림돌로 인해 (비핵화가) 늦어진다면 판문점 선언도 다 될 것처럼 얘기해놓고 지지부진하게 되는 셈"이라며 "책임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구속력 높다"
앞서 발제는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맡았다. 고 교수는 판문점 선언을 '판문점 해체 선언'이라고 말하면서 "남북 정상들이 결단한 내용들은 분명히 역사가 바뀌는 대전환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앞선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후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이번 회담의 구속력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지난 시기 합의 불이행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구속력 있는 불가역적인 합의를 만들자고 다짐한 것을 볼 때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임기 초반에 판문점 선언을 도출함으로써 불이행의 경우 리더십에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합의 이행의 구속력을 가질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북한에서 지난 달 20일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의 결속(마감)을 선포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로 선언한 데 대해 높이 평가했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 집중'과 같은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기로 함으로써 핵무기 고도화를 위해 지속해왔던 전략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몇 가지 점을 보더라도 이번 회담의 구속력은 과거보다 높다"면서 "북한이 전제 조건 없이 완전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선언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이어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이행의 구체적 시기가 거론되지 않은 데 대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공약 대 공약을 확인하고, 북미회담에선 행동 대 행동을 확인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구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보면 미흡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구도를 이해하고 보면 지금 수순은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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