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기본계획 발표일이었던 지난해 12월 20일, '성평등'과 '양성평등'이란 단어를 놓고 용어 논쟁이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20일, 청사 앞에서 '동성애, 동성혼 개헌반대 국민연합(동반연)'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 세력은 "성평등은 성소수자도 평등하게 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라며 '성평등' 용어 퇴출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서울 세종로에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일까 우려된다"라며 "차별과 배제 없는 ‘성평등’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앞으로 5년간 제2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에서 '성평등'이란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일까.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대립 구도에 놓일 개념이 아니다"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투에 대한 응답, 성평등 개헌 : 쟁점 분석과 대안 모색'(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권미혁 의원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여성정책과 최혜민 서기관은 성평등에 대한 용어적 혼란을 야기했던 것에 대해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두 용어의 함의나 영향에 대해 저희 내부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라며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보수기독교 타협과 동성애 배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gender equality'라는 개념을 번역한 것이 양성평등"이라며 "양성평등으로 번역된 주요 이유는 불평등 해소의 주체로서 여성과 동시에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라고 했다. 양성평등의 '양성'은 남성과 여성만의 평등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의 주체에 남성을 포함시키는 여성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양성평등은 '민주적 인권사회'를 위해 사용된 정책적 언어였으며, 성불평등이 심화되며 보다 강력한 정책으로 도입된 '양성평등기본법'또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일부 기독교 세력이 주장하는 '양성평등 개헌'은 양성평등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동성애, 동성혼 개헌반대 국민연합(동반연)' 진영이 주장하는 양성평등은 기존 양성평등의 개념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동반연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거짓인권 주장"이라며 최근 논란이 된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지지하는 등 차별을 공공연하게 주창해왔다.
이에 대해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이 세력의 '양성평등'은 기존 양성평등 개념 벗어난 차별과 혐오"라고 잘라 말했다. "동반연이 주장하는 '양성평등'은 이성애 중심에서 한 가족관과 남녀 간의 위계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도구"라며 "성평등을 다양한 성적 지향의 인정만으로 기형화해 '성평등 개헌 = 동성애-동성결혼 합법화 개헌'으로 프레임을 조작했다"라고 비판했다.
양성평등과 성평등이 대립한 개념은 아니지만 명확한 정책적 용어를 위해 성평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진옥 대표는 "이러한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양성평등'은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훼손한다"라며 "바로 이러한 혐오 세력 때문에 일차적으로 성평등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도 "사실 '동성애=제3의 성'이라는 보수기독세력의 프레임은 오히려 동성애 옹호를 위한 이론 중 하나로 기능했었다"라며 "하지만 결국 이 단어가 보수 측에 의해 점유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규범은 '살아있는 문서'로 과거의 입법자가 만든 규범에 대한 현재 해석자와의 대화"라며 "현실로 존재하는 다양성의 역사와 서사를 발굴해서 개념을 전유해 낼 수 있다"라며 기존 용어를 전복해낼 가능성을 말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 국회 정문 앞에서는 300인의 여성들이 '10차 헌법 개정과 성평등·남녀동수 개헌 촉구를 위한 300인 선언'을 했다. 이들은 "국회는 여성들의 소리를 들어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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