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와 전쟁을 하겠다고?
그가 정부와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는데 그가 쟁취하려는 목표는 무얼까. 문재인 케어의 폐지일까, 문재인 케어 추진 과정에서 의료계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것일까. 그는 분명 전자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번 의협 회장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모두가 문재인 케어를 적극 비판했다. 하지만, 대체로 의료계 내외부에서는 새로운 회장이 선출된다면 다시 정부와 협상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았다. 문재인 케어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활용하여 최대한 실리를 챙기려 협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집 후보는 달랐다. 최대집 후보는 문재인 케어를 '의료 사회주의'라 비판하면서 막아내는 데 감옥 갈 각오까지 되어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케어에 대한 협상보다는 폐기 투쟁을 제시해 당선된 셈이다.
최대집은 당선 직후 정부에 의정 협상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상복부 초음파 고시 중단, 복지부 협상 담당자 교체 등이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정부가 수용하기 곤란한 요구로 보였다. 최대집 당선인은 이미 준비 중인 대정부 강경 투쟁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그의 목표와 전략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케어와 협상을 통한 실리를 좀 더 챙기겠다는 게 아니라 폐지,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 정부의 정책을 전면 거부하고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감옥갈 각오로 싸우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문재인 케어를 거둬들일 수 없다는 점을 알기에.
의협 회장 자리는 정치 투쟁의 수단이 아니다
나는 의협의 수장이 된 그가 매우 우려스럽다. 이미 언론에서는 그의 특이한 경력과 과격한 언행을 조명한 바 있듯이 그는 과격한 극우 인사다. 건강보험제도를 '사회주의'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의료보장제도를 사회주의 제도로 이해하는 매우 편협한 이념의 소유자다. (☞관련 기사 : 의사협회는 왜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나?)
나는 그가 단지 극우적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우려하진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그렇다. 문제는 그는 의협의 수장으로서 의사협회라는 조직을 자신의 극우 정치 성향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 같아서다.
그는 문재인 케어 자체를 거부하고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에 대한 협상을 통해 좀더 많은 실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 자체를 거부하는 투쟁을 목표로 삼는다. 의협은 의사 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중단체인데, 이 의협을 대정부 정치 투쟁의 선봉대로 삼으려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와 싸우는 최전선에 서 있는 극우 전사로 보인다. 그래서 매우 우려스럽다.
문재인 케어는 사실 '문재인' 케어라고 이름을 붙일 만큼 대단한 정책은 아니다. 단지 과거 정부가 추진해 온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연장선 위에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대집 당선인이 갑자기 문재인 케어와의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한 행동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건강보험 보장 확대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해 왔다. 그런 보장 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부와 전쟁을 하겠다며 덤비는 행태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는 침묵했던 최대집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핵심은 '모든 비급여의 단계적인 건강보험 적용'이다. 3800여 개에 이르는 비급여를 의학적 타당성이나 비용효과성을 따져서 타당성이 있으면 보험급여로, 부족하면 예비(선별)급여로, 미용성형이나 단순 기능 개선에 해당되는 행위는 비급여(도수치료, 영양수액 등)는 존치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정책은 갑자기 탄생한 것은 아니다. 냉정히 보자면, 문재인 케어는 박근혜 정부가 시행한 여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역사에서 굵직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환자의 부담이 컸던 3대 비급여(특진료, 상급병실료, 간병료)의 보장 확대를 추진하였고, 4대 중증 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추진했다(엄밀히 말하자면, 국민요구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방식중 하나인 예비급여 제도도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시행한 선별급여를 모든 질환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최대집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속한 전국의사총연합이라는 단체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박근혜를 지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면 최대집 당선자가 당장 문제삼고 있는 상복부 초음파 고시는 어떤가.
최대집이 문제 삼는 상복부 초음파 건보 적용·예비급여 제도도 박근혜 정부 정책
최대집 당선자가 당선 직후 제시한 전제 조건 중 하나가 상복부 초음파 고시를 중단하라는 것과 급여기준 외 상복부 초음파의 예비급여 적용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복부 초음파의 건강보험 적용은 문재인 케어의 일환으로 추진한 게 아니다. 문재인 케어가 추진되지 않았더라도 상복부 초음파의 건강보험 보장 확대는 진행할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사안이다. 박근혜의 권력이 살아있던 2015년에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 수립]에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최대집 당선인이 당시 이를 문제삼았다는 주장을 들어본 바 없다.
상복부 초음파 급여 기준을 초과할 때 적용하는 예비(선별)급여 제도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하려면 비급여의 급여화가 필요한데, 의학적 타당성이나 비용 효과성이 없는 비급여까지 급여화하기가 곤란한 상황에서, 선별급여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단, 이 선별급여에는 다른 급여 항목과는 달리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율을 50%~80% 정도로 높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선별급여를 예비급여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여 4대 중증질환만이 아니라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여 국민이 보장성 확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최대집 당선자는 문재인 케어의 내용중 예비급여 제도 자체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냥 비급여로 놔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비급여 제도의 법적 기반을 다지고, 4대 중증질환에 먼저 도입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왜 반대에 나서지 않고 잠자코 있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동네의원 살릴 의료전달체계 개선조차 반대한 최대집
더욱 놀라운 것은 최대집 당선자는 이번에 의료전달체계 개선조차 적극 반대한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의료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번에 임기가 종료된 추무진 전 의협 회장은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의협 비대위의 강한 반대와 의료계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지 못한 결과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무산은 그 자체로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에 크나큰 손실을 끼친 행위다. 지금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의료기관 간에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터라,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발생하여 동네 의원과 같은 일차의료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기능 정립에 부합할 때 수가인상 등 추가적인 지원까지 논의되었지만, 의협 비대위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더구나 최대집 당선자는 자신의 임기 3년 중에 다시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그 사이 동네의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대형병원에 빼앗길 것이다. 최대집 당선자는 알까? 그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가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하지만, 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논의가 되기 시작(2016년 초)한 것도 박근혜 권력이 서슬퍼렇게 살아있을 때였고, 의사 출신인 정진엽 장관이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선협의체를 구성하고 추진했다는 것을.
최대집 당선자가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적극 반대한 이유는 그것이 문재인 케어 추진의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의사협회의 기반인 동네의원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그는 단지 그 추진이 '졸속적'이라며 애써 무시해 버렸다. 일차의료를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셈이다. 반면, 이번에 임기를 마친 추무진 회장은 문재인 케어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지만, 의료전달체계 개선만큼은 의료계가 받아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하였다. 최대집 당선자는 무엇을 위해 의료계에 이익이었던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차버렸을까.
문재인 케어는 적정 수가 보장의 절호의 기회
나는 최대집 당선자와는 정반대로 문재인 케어를 바라본다. 나도 의사지만, 문재인 케어가 의료계에 큰 손실이 되어 의료계가 더욱 경영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예측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의료계와는 달리 시민사회에서는 문재인 케어 정책이 정부의 예상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더 증가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면 의료 이용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간 병원비 부담으로 의료를 이용하지 못해왔던 환자들이 의료 이용을 하게 되니 전체 의료비는 늘어나게 된다.
나도 오히려 이를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정부와 달리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의 급여화시 발생되는 손실을 기존 수가 인상으로 보전해주겠다고 하고 있으므로, 단순 산술상으로 의료계가 입을 손실은 없다. 거기에 과거보다 심사평가 기준은 느슨하게 적용될 예정이라, 의료 이용량은 더더욱 증가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는 의료계의 우려와는 달리, 건강보험의 보장 확대로 의료계가 손실보다 수혜를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와 함께 문재인 케어는 분명히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적정 수가를 보장받을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적정수가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의료계의 우려처럼 과도하게 보험수가를 저수가로 통제하게 되면, 의사들은 과잉 진료나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그대로 지출하면서도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국민의 만족도도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의사협회가 취해야할 목표와 전략은 문재인 케어를 거부하고 무력화하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그것은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이고, 이는 의료계에게도, 국민에게도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국민, 의료계, 정부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의료계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 과정에서 손실이 없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 당연한 요구다. 정부도 이미 수차례에 걸쳐 손실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게 문재인 케어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명분이 될 순 없다.
또한, 의료계가 요구하는 적정 수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에 걸쳐 약속했다. 물론 의료계의 적정 수가와 정부, 혹은 국민이 판단하는 적정 수가의 개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 서로 신뢰할 수가 있다. 더구나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동네의원을 살리는 정책일 뿐 아니라, 의료기관이 제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면서 적정수가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계의 실리라는 측면에서 수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최대집 당선자에 대한 우려, 현실화되지 않기를
따라서, 최대집 당선자가 문재인 케어를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국민의 건강과 의료계의 이익을 염두에 둔다면, 정부와의 계속된 강경 대립과 협상의 거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 행동 등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그런 투쟁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란 어려우며, 실리를 취하는 전략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의료인에 대비해 의사집단의 정치적 입지만을 줄일 것이다.
나는 이번에 최대집 당선자가 이끄는 의협이 미래가, 또한 의사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 이 걱정은 전적으로 그의 과거와 지금 당선인 신분으로 몇 일간 그가 쏟아낸 주장과 행보에 근거한 것이다. 제발 나의 우려가 과도했기를 바란다. 나는 최대집 당선인이 극우전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소통하며 국민과 윈윈하는 의사단체의 수장이 되길 바란다.
(김종명 내만복 보건의료팀장은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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