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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다고 텀벙텀벙 내던지던 물텀벙마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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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다고 텀벙텀벙 내던지던 물텀벙마저 사라졌다

[작은책] 모래 퍼내고 갯벌 메우고…인천 앞바다의 내일이 불안하다

지난해 12월 3일 새벽 6시 10분경, 영흥도 진두항을 떠난 9.7톤급 낚싯배가 336톤급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때보다 신속한 해양경찰의 대처로 5명은 귀한 목숨을 건졌지만, 쌀쌀한 새벽을 맞아 선실에서 몸을 녹이며 월척과 풍성한 조황을 꿈꾸던 17명은 속절없이 희생되고 말았다. 그들은 우럭, 다시 말해 해양학자들이 조피볼락이라 말하는 물고기를 낚으려 했을까?

인천 앞바다에 우럭은 아직 많다. 풍랑이 낮은 물때를 맞춰 먼 바다로 나가면 아이스박스 가득 커다란 우럭을 채우는 행운을 이따금 만끽할 수 있지만, 연근해는 그리 크지 않고 잡히는 수도 적다. 먹이가 한정되고 낚시꾼이 많은 탓일까? 최근 각종 해안 개발에 휩쓸린 인천 앞바다는 어획고를 크게 잃었다. 그래도 낚시꾼 바구니에 우럭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줄기찬 치어 방생과 관련 있을 것 같다. 남동발전주식회사 영흥본부도 한몫을 한다. 터빈을 돌린 수증기를 식히고 따뜻해진 온배수를 이용해 해마다 수십만 치어를 생산해 방류한다.

흔전만전했던 민어가 인천에 드물어져도 갈치는 적지 않았다. 1960년대 작은 갈치를 뚝뚝 자른 어머니는 양념과 잘 버무려 김장김치 사이에 넣었고, 이른 봄 살얼음이 낀 김치를 항아리에서 꺼내 쫀득쫀득하게 숙성한 살점을 베어 무는 맛은 기가 막혔다. 인천 사람에게 허용된 특권이었는데, 이제 기억만 남았다. 2000년대를 지나 밴댕이도 수입하기 시작하더니, 어부들이 물텀벙이라 칭하는 아귀마저 품절이 되었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재수 없다고 텀벙텀벙 내던져 물텀벙이였는데. 어디 물텀벙이뿐인가? 낙지도 자취를 감추더니, 흔해 빠진 가무락과 동죽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삶터와 산란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드넓었던 갯벌이 뭉텅뭉텅 매립되더니 이젠 손바닥, 아니 손가락보다 비좁게 남았다. 갯벌의 터줏대감이던 가무락과 동죽은 화석으로 일부 보존되겠지만 조기와 갈치는 돌아올 줄 모른다. 아귀는 왜 사라졌을까? 갯벌보다 바닷모래가 사라진 이후의 일이다. 수도권 100만 호 주택 건설에 사용할 모래를 바다에서 공급하면서 인천의 유명했던 용현동 물텀벙이 골목이 단골손님을 잃기 시작한 걸 보면.

▲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인 어선. ⓒ연합뉴스

갯벌이 매립된 지역은 시방 휘황찬란하게 변했다. 밤바다 밝은 불빛을 내뿜는 초고층 건물 사이로 최신 자동차들이 미끄러지는 광고는 송도국제도시에서 촬영한다. 1600만 평의 갯벌을 광활하게 매립한 곳이다. 25만 인구를 자랑하는 송도국제도시에서 우리나라 13.5킬로미터의 최첨단 인천대교가 인천공항으로 이어진다. 세계 최고 지위를 10년 가까이 잃지 않는 국제공항인데,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1400만 평의 갯벌을 매립해 조성했다. 그 자리에 영종 하늘도시가 번쩍이고, 인구 9만을 헤아리는 청라국제도시는 10.3킬로미터의 영종대교로 인천공항과 이어진다. 예외 없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콘크리트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은 어떻게 지었는가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하는데, 우리나라는 20년이 지나면 노후 건물로 분류하는 듯하다. 콘크리트가 단단해도 구닥다리라며 헐어 내려는 움직임이 도처의 아파트단지에서 인다. 20년도 못 돼 금이 생기는 건물도 있다. 미국 맨해튼 마천루의 건물들은 다르다. 60년이 지나도 대부분 멀쩡하고 유럽은 외관만 바꿀 뿐 내부는 건드리지 않는다. 콘크리트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뜻이거늘, 우리나라 건물은 유난히 일찍 부서진다. 애초 난립이라는 걸 방증하는데, 의도적인지 모른다.

연약지반을 매립한 자리에 초고층으로 세운 건물은 안전할까? 건축 전문가들은 안전을 확신한다. 갯벌이 아니라 그 아래 단단한 암반 위에 지었기 때문이라는데 모든 건물이 암반 위에 올라선 건 아니다. 부지가 넓은 초고층이 아니라면 암반에 파일을 박아서 건물을 올렸다. 그렇더라도 튼튼하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지진이다. 연약지반을 액상화한 포항 정도의 지진이 인천을 뒤흔든다면? 암반을 가녀리게 잇던 파일이 꺾일 수 있다. 인천에 그 정도 지진은 내내 없을까? 없단다.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힐난으로 들린다.

독일 뮌헨은 1992년 공항을 신도시로 조성했다. 상주와 유동인구 1만 명 규모의 '메세스타트-림'이다. 1600미터 지하의 지열을 이용한 전기로 자급을 꾀하는 메세스타트-림은 절반 가까운 부지를 녹화하고 골재를 재활용했다. 기름에 오염된 철근시멘트를 철저히 정화해 사용한 것인데, 우리는 어떤가.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수도권쓰레기매립장 인근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폐골재는 민원에 시달리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재활용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폐골재를 농지에 불법 매립한 업자는 끊이지 않는다.

폐골재는 내구성이 떨어져 건설업자들이 재사용을 기피한다고 언론은 전한다. 과연 그럴까? 건설자원협회는 순환골재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비전문가이므로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천연골재를 순환골재와 섞어 활용한다면 40배 이상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은근슬쩍 농지에 매립해 발생하는 손실과 견주면 경제사회적 효과는 더욱 늘어날지 모르는데, 재활용한 순환골재는 물론 모래와 자갈로 철저하게 분리해서 정화하겠지. 그런 만큼 내구성도 뛰어날 텐데, 폐골재 재활용 기술이 확보되었어도 건설업자가 주저하는 까닭은 가격일까? 강제성 없는 제도가 주저하게 만드는 걸까?

인천 이작도에서 덕적도 인근까지 이어지는 바다는 세상 그 어느 곳도 보여 주지 않는 진기한 경관을 하루 두 차례 어김없이 연출한다. '풀등'이라 하는 드넓은 모래언덕으로, 썰물 때 바닷물이 내려가면 폭 1킬로미터 길이 5킬로미터 이상으로 몇 시간 드러났지만 지금은 예전의 3분의 1에 그친다. 수도권 건축자재를 위한 바닷모래 채취가 수십 년 이어진 이후의 사태다. 백두대간에서 오랜 세월 서서히 풍화된 화강암이 영겁의 세월 동안 흐르고 흘러 창조한 천혜의 경관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경관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발 들여놓으면 어린아이처럼 가슴을 뛰게 만드는 풀등은 인천 앞바다의 생태계를 안정시킨 생존 기반이요 어패류의 터전이고 산란장이었지만 처참하게 쪼그라들었다. 지구온난화를 가장 확실하게 막던 갯벌에 오른 철근콘크리트는 해양을 철두철미하게 파괴한 증거물이다. 그 휘황찬란한 구조물은 막대한 화석연료 없이 단 한 시간도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못한다. 전기 공급이 하루 이상 중단된다면 거들먹거리던 주민들은 코를 틀어막고 탈출하고 말 테지.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내습하자 해운대 해안을 매립한 부산 마린시티는 바닷물고기가 펄떡이는 마린시티가 되었는데, 마린시티보다 훨씬 넓은 송도신도시는 어찌 될까? 부산과 달리 인천은 태풍이 잦지 않고 오더라도 해일을 동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그런 만큼 재해를 막는 태도와 준비가 부실한데, 연약지반이 흔들린다면?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풀등이 사라지면 월미도 놀이동산으로 가면 될까? 바닷모래 사라져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공장식 축산이 줄기차게 제공하는 고기와 계란과 낙농제품을 꾸역꾸역 먹을까?

육지의 환경을 안정시키며 무한한 자원과 먹을거리를 한없이 내주던 바다는 사람에 의해 최근 질식되고 있다. 바닷모래는 바다 생명의 토대인데, 식량의 4분의 3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는 곧 구닥다리가 될 신기루를 위해 오늘도 바닷모래를 퍼낸다. 그러자 부메랑이 다가온다. 내일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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