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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독재정권에 항거했다?…소가 웃을 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21> 최시중 씨는 진실을 밝혀야

최시중 씨의 눈물이 장안의 화제다. 엊그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보인 눈물 이야기다. 최 씨는 "언론 자유를 억압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비난을 "참기 힘든 모독"이라며 울먹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난날 기자로서 독재정권에 항거해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투옥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그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언론탄압이라는 다그침이 더욱 기가 막히다는 이야기였다.

훤칠한 키에 비교적 단정하게 늙어, 연륜이 느껴지고(그는 1937년 8월 4일생이다) 강단까지 있어 보이는 노신사다. 그런 그를 울게 한 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이날 밝힌 새로운 사실, "독재정권에 항거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동아일보에서 그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들이다.

당사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나라의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러지 않아도 언론탄압시비에 휘말려있는 그가, 지난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언론투사였다는 이야기는, 그의 동료뿐만 아니라 세인들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MB정권 '권력서열 3위'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독재항거' 대목이 분명해질 경우는 어느 쪽이건, 정권의 체면에도 영향이 있을게 틀림없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 ⓒ뉴시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64년 4월 동양통신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딛는다. 이듬해인 1965년 9월 동아일보 방송뉴스부로 옮긴 뒤 1994년 6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으로 갈 때까지 국제부 지방부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국부국장 등을 역임하며 29년간 동아일보에 몸을 담는다. 그의 주장대로 '투옥'되기까지 했다면, 더구나 그게 '독재정권에 항거'해서 빚어진 일이라면, 사내에서 모를 리가 없다는 게 동료들의 이야기다.

오히려 그가 1970년대 초 '어떤' 개인비리로 구속됐던 일을 기억하는 동료들은 있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몇 달간 고생을 하고 나와, 어찌어찌해서 복직을 했다고 했다. 이 대목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투옥'된 것으로 각색되었을리는 없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투옥'된 일이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최시중 씨가 분명히 밝혀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언론사에 있는 동안의 행적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내용들을 보면, 그는 '독재정권에 항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행태를 보였다.

1988년 8월 13일 김용갑 당시 총무처장관이 "좌경세력에 대처하기 위해 올림픽 이후에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주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공교롭게도 필자는 그 일주일전인 8월 6일 아침 '청산해야할 군사문화'란 칼럼과 관련해, 정보사 현역 군인들로부터 칼부림 테러를 당했다. 그 무렵의 이 나라 분위기와 관련이 있어서 하는 소리다.)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었던 최시중 씨는 김 장관을 직접 찾아가 "소신발언에 감명받았다.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 8월에 최 씨는 또 전두환 씨와 골프를 친다. 전 씨의 초청이라 '기자의 입장'에서 응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회사가 시끄러워지자 최 씨는 이례적으로 정치부장 7개월 만에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모두가 '독재에 항거'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적들이다. 그가 어떤 연유로 언제 어디에 끌려가서 어떤 고문을 당하고, 무슨 죄목으로 투옥됐다가 어떻게 풀려나서 복직을 했는지 최 씨는 밝혀야 한다.

정말로 '언론인으로서 독재정권에 항거'했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혹시라도 '개인비리 투옥'이 '독재항거 투옥'으로 둔갑했다면, 왜 그 '투옥'이 이 '투옥'이 되었는지도 경위를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그는 다른 사람 아닌 이 나라의 언론을 다루는 '방송통신위원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최 씨는 최근 좀 자주 울었다. 작년 3월 언론관련 세미나에서도 미디어법을 이야기하면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달 들어서도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월례조회에서 자신의 3년 임기를 회고하다, 또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울음 속에는 겉보기에 '언론탄압누명'에 대한 억울함과 함께 억장이 무너질 때 눈물을 참지 못하는 인간다운 따스한 면모까지 엿보인다.

그러나 언론을 다룰 때 솜씨를 보면, 그는 앞에서 다르고 돌아서서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2008년 MB정권 출범과 함께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칼을 휘두른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동안 그는 그렇게 KBS 사장을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쳐냈고, YTN MBC의 상층부를 정리한데 이어, 최근 '최후의 골칫거리' <PD수첩>까지 '손보기'를 마쳤다.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그가 손을 댄 것은 방송통신영역에 그치지 않았다. 방송진출에 애타게 목을 매며, 자발적으로 무릎 꿇고 들어온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들의 멱살까지 쥐고 흔들었다. 말하자면 방송·신문 모두를 한손에 쥐고 이 나라 표현의 자유를 옥죄었다. 그는 군사독재나 후진국이 하는 고문과 테러 같은 불법적인 물리력을 쓰지 않았다. 사장만 '충성분자'로 바꿔놓고, 골치 아픈 기자들은 사장으로 하여금 정리토록 하는, '손안대고 코푸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동시켰다.

훨씬 야비하고 저열한 지능적인 언론탄압이었다. MB정권 출범이후 이 나라 각 방송사에서만, 그렇게 240여명이 해고·정직·감봉·출근정지·경고 등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1980년 5공 때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 이 나라 표현의 자유가 훨씬 위축됐다는 UN 조사관의 보고서가 나왔고,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는 참여정부 때 세계 30위 수준이었다가, 2009년 69위까지 추락했다.

모두 다 최시중 씨와 관계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그가 터무니없다는 듯이 눈물을 보인 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최시중 씨의 눈물을 놓고 야당의 한 의원이 '악어의 눈물'이라 했다. 악어의 눈물은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 잡아먹힌 사람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서양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악어는 실제로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해,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준다. 먹이를 먹을 때의 신체적 기능일 뿐, 먹이를 동정하거나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말할 뿐이다. 흔히 위선자의 거짓 눈물, 교활한 위정자의 거짓 눈물, 강자가 약자 앞에서 거짓 동정하는 척하며 흘리는 눈물 등의 뜻으로 쓰인다. 요컨대 가증스럽다는 이야기다.

최 씨가 의도적으로 눈물을 흘렸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30년간 현장을 지킨 언론인으로서 독재정권에 항거했다"고 밝힌 그의 주장은 아무 의도도 섞이지 않은 진실이기를 바란다. 최시중 씨가 밝히는 진실 가운데, 그 대목이 반드시 담겨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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