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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캣맘 혐오를 넘어…

[함께 사는 길] "생명을 돌보는 일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죠?"

이연희 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 외에도 그녀가 챙겨주는 아이들이 있는데, 바로 길고양이들이다.

어느 날 저녁, 마당에서 들려온 '야옹' 소리에 '야옹'이라고 따라 했을 뿐인데, 그 소리를 좇아 새끼고양이가 그녀를 찾아왔다. 배고픔에 우는 새끼고양이를 모른 척할 수 없어 밥을 챙겨줬는데 그것이 '캣맘'의 시작이 되었다. 그녀의 집 마당 한쪽에 길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를 마련하고 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찾아오는 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보니, 밥그릇에 사료를 늘 그득하게 채워놓는다.

같은 마을에 사는 오은정 씨 역시 다르지 않다. 그녀도 집 마당 한쪽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해 돌보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는 구조해 입양을 보내거나 직접 돌보기도 한다. 며칠 전 현관 앞에서 발견한 새끼고양이는 결막염이 심해 현재 집에서 돌보고 있다. 이 마을에 그녀들처럼 집 현관이나 마당에 급식소를 마련하고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집 마당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한 이연희 씨. ⓒ함께사는길(이성수)

길고양이 챙겼다가 경고

3년 전 오은정 씨는 한 통의 경고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관리소장이었다. '귀하의 인간적인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단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자신의 집 앞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는데, 그걸 문제로 삼은 것이다.

"친환경을 내세운 마을이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걸 금한다고? 이게 말이 되나?"

경고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그는 고양이에게 사료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경고장은 계속 날아왔고, 급기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일부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싶어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현관 앞에 사료 한 포대와 쪽지가 있었다. 고양이에게 주라며 누군가 놓고 간 것이었다. 한 주민은 홀로 총대를 메게 해 미안하다며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녀처럼 고양이에게 밥을 주다가 경고장을 받거나 주위 시선들이 무서워 몰래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 쉬쉬했던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줘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일까?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근무해온 경비아저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전에는 길고양이들이 엄청 싸웠는데, 몇몇 사람들이 먹이를 챙겨주니깐 조용해졌어요. 밥 줘서 문제 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는 학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돌보는 일이 이리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인가 싶어 관리소장을 찾아갔다. 관리소장은 "주민들이 항의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이기적인 생각이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거 모르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누가 항의를 하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주민들에게 물어보죠.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는 그 자리에서 주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 저에게도 모험이었어요.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더 많으면 몰래 밥 주던 사람들까지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사람들을 믿었죠."

그렇게 마을 주민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됐고 크리스마스 전날, 그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밥을 줘도 된다'가 과반수였다. 그녀에게도 또 길고양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길고양이도 주민들로부터 당당한 이웃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길고양이가 이웃 된 후 변화

그날 이후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이나 마을을 찾는 고양이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전에는 멀뚱멀뚱 지나가던 아이들이 먼저 아는 척을 하는가 하면 우리 집까지 찾아와 길고양이에게 물을 줬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동안 아이들도 고양이들을 돕고 싶었는데 어른들이 못하게 하니 나서지 못했던 거죠.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것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교육이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존엄성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웃들 사이도 돈독해졌다. 한마을에 산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없었던 오은정 씨와 이연희 씨가 친해진 것도 길고양이 때문이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노랑이'가 있어요. 근데 그 아이는 꼭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녀요. 자기 새끼는 아니고 어미를 잃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도 먹이고 그래요. 그런데 다른 집에서도 이 고양이를 알더라고요."

"전 그 고양이를 '할매'라 불러요. 나이가 많은 암컷 고양이거든요. 2인 1조, 아니 2묘 1조로 다니는데 이젠 새끼들이 커서 할매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서로 고양이의 안부를 묻고 제각각 알고 있는 고양이의 사연을 하나 둘 풀어내다 보면 이야기는 한편의 동화처럼 이어진다.

물론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있다. "'내 자동차 커버가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고 다짜고짜 따지는 분도 계세요. 길고양이가 긁으면 어쩔 것이냐는 거죠. 그래도 주민 투표 때문인지 밥 주지 말란 소리는 안 듣게 됐어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반대하던 이들이 우려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먹을 것을 찾으려고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이 없어졌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급식소를 마련하거나 급식소 주변을 더 청소하는 등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 고양이들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가서 말려요. 제가 나쁜 사람으로 인식이 되면 길고양이에게도 영향이 갈까 봐 인사도 더 먼저 하고 음식도 나눠먹고 그러죠."

길고양이를 돌보며 공존의 길에 한 발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고 이들과의 공존도 모색하는 중인 것이다.

▲ 주민투표로 길고양이를 이우스로 받아들인 오은정 씨와 이연희 씨.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길에 버려졌다가 이 씨에게 입양된 '겨울'이로 함께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생명을 돌보는 일이 비난 받지 않도록

이연희 씨 집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동네 산책하러 갔다가 만났어요. 밥그릇과 가방, 화장실이 한쪽에 버려져 있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그 가방에 있었어요. 누군가 버린 것 같아 쪽지를 남기고 데리고 왔는데, 다음날 갔더니 쪽지만 사라졌더라고요."

어미를 잃고 그녀 집까지 따라온 고양이, 배에 심한 상처를 입고 찾아온 고양이도 입양해 돌보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생명은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 "새들도 와요. 고양이 사료를 탐내길래, 견과류를 주기 시작했어요. 어울려 살다 보니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근데 출판단지 들어서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야생동물들도 새들도 엄청 줄었어요"라며 안타까워한다.

길에 사는 생명을 돌보는 캣맘이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길고양이 혐오와 학대를 넘어서 캣맘에 대한 혐오도 존재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특별히 마음이 약하거나 동정심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길고양이가 살고 있던 곳에 우리가 집을 짓고 사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사람들에게 버려진 고양이들도 있을 거예요. 생명이기에 돌보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에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되어서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학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오은정 씨의 바람이다.

길고양이가 무섭고 그냥 싫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 이들도 살아있는 생명임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당부한다.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매서운 추위와 그 추위만큼이나 매서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차 보닛에 숨어있는 길고양이들이 적지 않다. 시동 걸기 전 보닛 위를 세 번만 '똑똑똑' 두들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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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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