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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권 철회' 찍고, 이제는 '살인 손배 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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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상권 철회' 찍고, 이제는 '살인 손배 철회'다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 철회한 정부, 여전히 남은 국가의 손배소

문재인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제기한 34억여 원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방해로 공사가 지연됐다며 34억4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금액은 해군이 시공사 삼성물산에 물어준 공사지연 손실금 275억 원 중 일부다.

그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 관련해서 약 600건이나 기소됐다. 2016년 말 기준으로 465건은 판결이 완료됐지만 나머지 120~130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7년 6월 기준으로 총 4억여 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의 결과가 나오면 또다시 얼마나 많은 벌금이 부과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34억 원 구상권 청구는 △ 형사처벌권을 가진 국가가 손배소로 이중처벌했다는 가중처벌금지원칙 위배 논란과 △ 국가가 사인(私人)으로 천문학적 금액을 국민에게 청구했다는 점 등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인터뷰] 나라는 어떻게 시민을 괴롭히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국가의 손배소

그간 해군의 구상권 청구소송은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의도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국가의 손배소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 4월 16일의 약속국민연대(416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총 3개의 단체와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를 비롯한 5명의 활동가 등을 상대로 약 9000만 원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이날 집회로 차량 및 장비 등의 물적 피해와 경찰관들의 치료비 등 인적피해 배상이 이유였다. 2015년 7월에 제기된 이 소송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관련해서는 집회참가자 중 일부에 의해 파손된 경찰 장비 등에 대해,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담당 활동가 등에 대해 국가가 약 5억17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31일,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고 현재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5년 5월 열린 민주노총 노동절 집회에서도 경찰은 약 2200만 원의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민대책회의, 416연대, 민주노총 등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현재 이 사건은 1심이 진행 중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크레인 고공농성을 지지하는 희망버스 관련해서도 참가자들에 의해 물품 및 인적 피해가 있었다며 약 1500만 원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일부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고, 현재 형사재판 결과가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 소송이 중단돼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국가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민중총궐기 참여자들에게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집회 중 발생한 물적 피해 등을 이유로 약 3억8700만 원을 청구했다. 이 재판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대표이사가 부당노동행위로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고,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 임직원 등 5명이 노조파괴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된 유성기업의 경우도 국가는 쟁의행위를 막는 과정에서 장비 등이 파손됐다며 노조와 조합원에게 1억1000만 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127명의 경찰관 개인에게 3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 유성기업노조는 1심 판결 금액을 변제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 경찰 헬기가 쉴새없이 도장공장 옥상 위에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봉투를 떨어트린다. 이 액체가 닿으면 무엇이든 녹아버린다. 회사 측이 가져다 놓은 차량에서는 가요와 노조에 대한 비방, 협박, 심지어 팝송까지 흘러나온다. 해가 완전히 사라진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프레시안

"법무부 장관이 소를 취하할 수 있다"

이렇듯 강정마을 이외에도 국가가 개인이나 단체 등을 대상으로 손배소를 제기한 사건은 상당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 역시도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묶은 매듭을 문재인 정부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강정마을의 경우, 법원에서 내린 강제조정 내용을 그대로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해결됐으나, 이러한 소극적 태도에서 한발 나아가 정부가 직접 손배소를 철회하는 적극적인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지영 변호사는 최근 열린 '국가/기업 괴롭히기 소송 남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지금의 문제가 되는 손배소는 원고, 즉 국가가 소를 취하하면 된다"며 "국가소송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표하기에 법무부 장관이 대표권의 일환으로 소를 취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소송법 제2조(국가의 대표자)를 보면 '국가소송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소송의 대표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소를 취하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고 윤 변호사는 해석했다.

실제 국가소송법 제3조에는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 관련, '소의 제기 및 취하, 상소의 포기 및 취하, 화해, 청구의 포기 및 인락, 소송대리인의 선임 및 해임의 소송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반면, 소 취하 요건이나 기준은 법령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에 법무부 장관은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재량권을 행사해 소를 취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배소 취할 경우, 배임죄 처벌 받는다?

반면, 국가 입장에서는 제기된 손배소를 취하할 경우, 배임죄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 윤 변호사와 같은 토론회에 참여한 송길대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은 "국가 소송 영역에서 고려되는 것은 국가 측의 최종 승소 가능성"이라며 "국가 측이 일부 혹은 전부 승소하거나 1심과 2심의 결과가 엇갈리는 사실관계 속에서 담당 공무원이 이를 취하하는 것은 배임죄의 주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소송 취하에 어려움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송 과장은 "이미 하급심에서 국가의 승소 판결 후 상급심 소송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수단을 제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공론의 장에서 좀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백히 국가가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 소송을 취하할 경우, 배임죄로 고발조치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경우에 속하는 대표적인 곳은 쌍용자동차노조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끝나지 않은 쌍용차 "새총으로 헬리콥터를 파괴했다고?")

쌍용자동차노조의 경우, 2009년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77일 옥쇄파업을 벌이던 과정에서 이를 해산하려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당시 경찰은 헬기, 기중기 등을 동원, 진압작전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각장 장비와 차량, 헬기, 기중기 등이 손상을 입었고, 경찰관들이 상해를 입었다며 16억7000만 원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노조 및 조합원 등에게 청구했다.

법원은 국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약 11억6800만 원을 노동자들이 국가에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현재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이 배상금 관련, 매일 62만 원의 지연손해금, 즉 이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2017년 12월 기준으로 지연손해금만 약 7억3500만 원이나 된다. 또한 이로 인해 조합원 67명에게 임금 및 퇴직금에 가압류가, 조합원 22명에 대해서는 부동산압류가 이뤄졌다.

▲ 쌍용자동차 노조의 옥쇄파업을 진압하는 경찰. ⓒ이명익

풀리지 않는 매듭, 문재인 정부는?

지금 국가가 제기한 손배소, 즉 고의에 의한 불법 행위 채무는 개인파산 신청을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형사처벌로 인한 벌금은 그에 맞춰 감옥을 다녀오면 사라지지만 이 손배소는 그렇지 않다. 국가가 집행을 포기하거나 누군가가 갚을 때까지 평생 따라다닌다.

그렇다 보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이중고, 삼중고일 수밖에 없는 노릇. 쌍용자동차노조는 2009년 파업으로 94명이 구속되었고 300여명이 벌금 및 형사처벌을 받았다. 2017년 5월말 기준으로 29명의 쌍용자동차노조원, 그리고 관계자들이 사망했다.

쌍용자동차 사측에서도 점거파업으로 손해를 봤다며 47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지만 2015년 말 노사 간 합의에서 손배소는 취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만은 이를 취하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겨져 있다.

윤지영 변호사는 업무상 배임혐의 관련 "대법원은 사기업의 경우, 재산상의 이익 형량을 중요한 요소로 보지만 공무원의 경우, 재산상의 손익 관계뿐만 아니라 다수인의 이해관계, 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즉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유·무형의 모든 이해관계와 파급효과를 고려한 정책 판단은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라고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보건대, 손배소에서의 소 취하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기본권의 수범자로서, 기본권의 소지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책임과 의무는 국가소송을 하는 때에도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여 국가에 손해를 가한 경우에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지만, 다수인의 이해관계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면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법적으로 명쾌하게 해결하기도 어려워 사회적 물의와 공론이 계속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수습하는 직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담당공무원이 고질적인 문제의 발생 원인과 그 책임자, 이해관계인이 제시하는 근거, 재산적인 손익관계뿐 아니라 유형·무형의 모든 이해관계와 파급효과 등을 전반적으로 따져 그 해결책을 강구하여, 그 해결책이 맡은직무를 집행·처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서 직무의 본지에 적합하다는 신념하에 처리하고 그 내용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된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정책 판단과 선택의 문제로서 그 방안의 시행에 의해 결과적으로 국가에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적 이익이 귀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만으로 임무위배가 있다 할 수 없으므로,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2008. 6. 26. 선고 2006도2222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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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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