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018년도 예산안 심의를 놓고 여야 간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하루 남겨둔 1일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이뤄진 진전은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예산 부수법안 9건을 먼저 처리한 것과, 쟁점 항목 가운데 일부에서 의견을 좁힌 정도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예산 처리 법정 시한을 넘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1일 오후 2시 본회의를 열고, 예산 부수법안 가운데 여야 간 이견이 없는 9개의 법안(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별소비세법, 국세기본법, 국제조세조정법, 증권거래세법, 주세법, 관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을 의결했다. 일반 법률안 52건도 함께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달 28일 예산 부수법안 25개를 지정했다. 이 가운데 여야 간 이견이 큰 항목은 소득세법·법인세법 등이다. 부가가치세법 개정안도 당초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막판 여야 간 이견이 부각되며 제외됐다. 통상 예산안 본안과 함께 처리되는 부수법안이 따로 먼저 통과된 것은 이례적이다.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은 이른바 예산 관련 '9대 쟁점 사항'에 들어간다. 앞서 예산안 본안 관련 6대 쟁점으로는 △공무원 증원, △일자리 안정자금, △아동수당, △기초연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누리과정 지원 등이 꼽혔다. 여기에 부수법안 가운데 2건과, 남북협력기금이 쟁점으로 추가됐다.
여야는 이상의 9대 쟁점 등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예결위 소위 협상과 원내지도부 협상을 동시에 '투 트랙'으로 진행해 왔지만 이날 오후 현재까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협상은 이른바 '2+2+2 회동'으로 불린다. 교섭단체 3당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에서 각각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2+2+2'에는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여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여야는 좀더 책임 있는 당사자 간 직접 의견 교환을 위해 전날부터 참여자 '급'을 원내대표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원내수석 대신 원내대표들끼리 마주앉았다고 해서 갑자기 협상이 급진전되거나 '화통한' 타결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전날 밤늦게까지 릴레이 협상을 벌였으나, 이른바 9대 쟁점 중에서는 남북교류협력기금과 아동수당·기초연금 문제 일부에서 이견을 좁히는 데 그쳤다.
여야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상황을 고려해 남북협력기금에서 837억 원을 삭감하기로 합의했고, 아동수당·기초연금은 야당의 우려를 받아들여 시행 시기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하는 데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 대해서는 '소득에 관계없이'(여당 입장) 줄 것이냐,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야당 입장)할 것이냐를 놓고 이견이 여전하다.
가장 이견이 큰 항목인 공무원 증원 예산과, 최저임금 증가를 고려한 '일자리 안정 자금' 부분은 여야 간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예결위 간사들을 제쳐 두고 원내지도부가 직접 협상을 벌인 지도 닷새째지만, 여야 모두 이 부분만큼은 양보 없이 원론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경찰·소방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 충원은 한국당 대선공약집에도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후속대책인 일자리안정자금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예산인데 깎자고 하는 것은 오로지 '정권 흠집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우원식 원내대표)라고 하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내년 1만2000명 공무원 증원은 합리적 수요 예측에 의한 추계가 아닌 '5년간 17만4000명'이라는 주먹구구식 수치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최저임금 문제도 내년 경제의 핵폭탄"(정우택 원내대표)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입장 역시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은 퍼주기 정책", "일자리안정자금 3조 원을 기업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과도한 행정비용을 유발하고 기준도 자의적"(김동철 원내대표)이라는 것으로 한국당과 더 비슷하다.
이 날선 말들은 모두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바로 이날 당 지도부 회의나 의원총회 등에서 내놓은 발언들이다. 때문에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 2일을 넘기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전날 3당 원내대표를 불러 예산안 원안(정부안) 자동 부의 시점을 '1일 자정'에서 '2일 정오'로 36시간 늦춰 놓은 것은 물론 그만큼 협상 시간을 벌어준 것이지만, 그만큼 여야 간 합의 성사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야는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다시 '2+2+2' 협상을 열고 있지만 타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만약 여야가 다음날인 2일 정오까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2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는 국회 본회의에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원안이 자동 부의된다. 2015년부터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에 의해서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의 '원안 자동부의' 조항은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을 때에야 의미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121석인 민주당이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봐야 의결 정족수(재적 과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당(116석)과 국민의당(40석)이 전원 참석해 반대하면 원안은 부결되고,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정기국회 기간(12월 9일까지) 중에는 의결 시도조차 다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12월 중 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사태가 현실화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전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여야는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지도부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이다. 우리가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예산이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한 예산이다"라며 "야당의 전향적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높은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어 야당을 압박했다.
반면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돌부처 행세"를 하고 있다며 "제 감으로는 예산안 법정시한 준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평화방송(CPBC) 인터뷰에서 말했다. 국민의당에서도 "집권 여당이 아니라 '집권 야당'"(안철수 대표), "시간이 자기들 편인가? 어디 보자. 국민의당이 여당을 도와주면 정상이고 안 도와주면 나쁜 놈인 줄 아는데, 이번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김동철 원내대표) 등 여당을 벼르는 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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