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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삼성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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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삼성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기자의 눈] 구치소 동료 감동시켰다는 이재용, 직업병 피해자에겐 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인격에 감동했단다.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신 구치소 옆방 수감자 A씨를, 이 부회장이 위로했단다. "제 동생도 그렇게 갔는데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같아요. 힘내세요"라고.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역살이를 하는 A씨에게, 이 부회장이 껍질 깎은 감도 줬단다. "A씨는 이 부회장이 식빵 자를 때 쓰는 칼로 직접 깎은 것 같다고 했다"라는 설명도 있다. 날카로운 과일칼은 구치소 반입 금지 물품이다. 그래서 "식빵 자를 때 쓰는 칼"이 동원된 모양.

최근 출소한 A씨는 "(이 부회장이) 남의 아픔을 보고 걱정해주는 데 진심이 느껴졌다"며 <조선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단독]서울구치소 독방 이웃이 전한 이재용 부회장 인격…'아무도 안볼 때 보니'"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된 사연이다. 지난 27일 오후부터 28일 저녁까지 <조선일보> 홈페이지 상단에 떠 있었다.

재벌 총수가 난생 처음 만난 구치소 수감자를 따뜻하게 위로했다는 사연. 그게 과연 기사 가치가 있는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조선일보> 측은 기사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으므로, 기사를 내고 홈페이지 상단에 오랫동안 배치했을 게다.

구치소 이웃에게 따뜻했다는 이재용, 삼성 직업병 피해자에겐 왜?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25일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상 위증 등 기소된 혐의 다섯 가지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 부회장 측은 즉각 항소했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 재판이 열리는 법원에 갈 때면 자주 보는 풍경이 있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직업병 피해자들의 절규다. 이 부회장 재판 결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결과와도 연동하는 탓에, 이른바 '태극기 부대'도 나타난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에게 쌍욕을 한 적도 있다.

한 씨는 199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생산직으로 입사했고,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 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며, 지금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한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딸이 탄 휠체어를 민다. 태극기 휘두르며 퍼붓는 폭언과 저주가 휠체어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한 씨가 이 부회장 재판을 봐야 하므로, 휠체어를 미는 김 씨의 팔 근육엔 힘이 풀리지 않는다.

이 부회장 인격에는 '서울구치소 독방 이웃'마저 감동시키는 힘이 있단다. 워낙 짙은 감동이어서, 출소한 독방 이웃은 유력 언론에 스스로 제보하기까지 했다. 그 힘은 왜 한혜경 씨 모녀에겐 미치지 않는가. 도무지 알 수 없다.

법원의 잇따른 삼성 산재 인정 판결


어차피 세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이 부회장인들, 구치소 동료와 감을 나눠먹는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나.

이 부회장이 예상할 수 없었을 일들은 이미 한 가득이다. 한혜경 씨와 비슷한 사례가 최근 대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고(故) 이윤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5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했고, 2003년 퇴직했다. 2010년 5월5일 뇌종양 판정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2011년 소송을 냈다. 이 씨는 2012년 5월 사망했으며, 유족들이 소송을 진행했다. 사망 당시 이 씨는 32살이었다. 1심 법원은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은 다시 2심을 뒤집었다. 요컨대 이윤정 씨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탓에 뇌종양에 걸려 숨졌다.

올해 들어 법원은 비슷한 판결을 쏟아낸다. 삼성 반도체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이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삼성 LCD 공장에서 일하다 걸린 백혈병 역시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이른바 ‘삼성 직업병’이 잇따라 법원에서 인정됐다. 이 부회장에겐 낯선 장면일 테다.

법원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부실하다"

이들 판결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법원이 삼성 산업재해를 다룰 때와 다른 대목이다. 예전에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를 근거로 삼곤 했다. 삼성 공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는 대체로 작업 환경과 전·현직 노동자 노동자의 질병 사이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쪽이었다. 따라서 그 결과를 근거로 삼은 판결은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이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판결은 다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의 신뢰도를 낮게 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는 공기 중 유해인자 측정조차 하지 않는 등, 매우 부실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삼성뿐 아니라,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관련 판결 역시 마찬가지다. 각각 다른 재판부의 판결이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은 한결같다.

그 맞은편에는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진행한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 백 교수팀의 삼성 반도체 공장 역학조사 결과는 삼성에서 발생한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한 근거였다.

삼성, 법원이 기각한 조사 결과 근거로 보도 반박하는 모순

그런데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자료가 삼성 홈페이지에 잇따라 실렸다. 삼성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해명하는 코너인데, JTBC의 삼성 직업병 관련 보도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직업병이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므로, 언론 보도가 늘 정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나름의 근거를 지닌 반박이라면,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JTBC '삼성전자 희귀병 사망 분석…' 기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JTBC '삼성전자 작업장 '희귀병 사망자' 54명 확인' 기사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등의 제목으로 나온 반박 글은 읽기가 당황스럽다. 예컨대 이런 대목.

"반도체 생산라인과 희귀병 발병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돼 왔으나 국내외 여러 연구 조사에서 모두 통계적 유의성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 국내 반도체 근로자의 암 사망률은 일반인 대비 0.74로, 일반인보다 더 낮은 수준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삼성 및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인정한 최근 법원 판결의 전제가 '산업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는 믿기 힘들다'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를 내세운 반박이라니.

삼성, 법원도 "특정 시민단체의 입장을 주로 이야기"했다고 보나?

삼성 측은 "국내외 여러 연구 조사"라는 표현을 썼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내 조사는 산업안전공단과 백도명 교수팀이 각각 진행했다. 산업안전공단 조사는 법원이 신뢰하지 않으며, 백도명 교수팀의 조사는 삼성에게 산업재해 발생 책임이 있다는 쪽이다.

그렇다면, 국외 조사는 어떤가. 외국 기관이 삼성 직업병 관련 조사를 한 사례는, '인바이런'이라는 안전보건컨설팅 회사가 진행한 용역연구가 유일하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그렇다. 인바이런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와 폐암환자의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변호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전쟁참여 군인들의 건강문제는 고엽제와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요컨대 '인바이런'은 연구 용역 발주처를 위한 맞춤형 논리를 제공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바이런'에 연구 용역을 발주한 곳은 삼성전자였다.

삼성 측은 반박 글에서 백도명 교수를 가리켜 "특정 시민단체의 입장을 주로 이야기 해온 학자"라며 폄하했다. 백 교수는 못 믿고, 인바이런은 믿는다는 뜻인가? 백 교수 측 입장에 가까운 판결을 한 법원 역시 "특정 시민단체의 입장을 주로 이야기"했던 건가? 각각 다른 재판부가 한결같이 기각한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만 존중하는 삼성의 반박 글, 법원이 잘못 판단했다는 뜻인가?

<조선>과 삼성이 모두 걱정스러운 까닭

한국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이 갑자기 이상한 기사를 냈다. 확인할 수 없는 취재원의 추정 발언을 그대로 받아썼다. "A씨는 이 부회장이 식빵 자를 때 쓰는 칼로 직접 깎은 것 같다고 했다"라는 문장. 삼성은 최근 법원 판결 동향도 파악하지 않고 쓴 글을 연거푸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법원 판결이 낯설었을 테다. 기자는 자칭 일등신문과 일등기업이 쏟아낸 허술한 글이 낯설다. 적어도 일등이라면, 설령 그릇된 주장이라도 논리는 정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삼성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가, 그리고 삼성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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