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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네 가지 문제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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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네 가지 문제와 한계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평가와 개선 방향

공론은 '모아진 의견'이고, 공론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공론화'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론화는 일반적으로 시민에게 참여와 숙의 기회를 제공하고 논의를 통해 결정된 의견을 이해관계자의 요구, 전문가의 식견, 국회 논의와 리더의 통치철학과 결합하여 공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국민의 높아진 관심과 촛불 시위과정에서 확인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공론화의 배경이 되었으며,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할 명분 찾기가 공론화 추진의 동기로 작용하였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공론조사란 단일한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이전의 유사 사례에 비하여 진행의 완성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성 면에서 분명한 진전이 이루어졌으며, 찬반을 넘어 그 결과를 수용하는 국민의 성숙한 태도가 돋보였다. 이번 공론화는 장기간 진행된 신고리 5,6호기 갈등해소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대통령과 정부가 공약 폐지에 따른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중요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는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공론화가 정치적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였으며, 공론화를 공론조사와 등치시키면서 이 과정에서 국회, 이해관계자, 전문가가 소외되었고, 공론조사에 지나친 의미부여가 오히려 핵심 이슈를 정치적으로 변질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찬반과 수-대결에 의한 결정 방식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원전 축소 시기와 방법은 원전 갈등의 핵심 이슈이다. 신고리 5,6호기 재개여부를 묻는 질문에 원전축소 항목을 부가하고 이 비율이 높다고 해서 마치 원전 축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원전 축소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향후 공론화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론화의 목적이 공론 형성을 통해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고, 공론형성 과정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없도록 절차를 설계하고, 보다 사회통합적인 조사 수단을 발굴·선택해야 한다, 또한 대선 공간에서 후보들의 선심성 공약이 갈등의 원인인 점을 고려하여 갈등발생 가능성이 있는 공약에는 재정적 계획뿐 아니라, 갈등관리 방안도 동시에 제시해야 정치적 오해 등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공론과 공론화의 개념

여론(輿論)이 다수의 의견이라면, 공론(公論)은 공적인 일에 관한 ‘모아진 의견’이다. 공적인 일과 관련하여 다양한 입장과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 논의를 통해 이견을 좁히고 의견을 통일시켜 가는 과정을 공론화(公論化)라고 하고 모아진 의견을 공론이라 한다. 공론화는 주로 국가나 공공기관이 정책이나 사업을 계획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예방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수용성이나 정책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론이란 말이 4000번 이상 나온다. 유학자 최만리는 임금에게 불교행사 참여를 말리면서 “무릇 공론(公論)이란 천하와 국가의 원기(元氣)이오매, 예로부터 하루라도 공론을 폐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간한다. 공론을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 동력으로 보았다.

세종은 공론 형성에 능했던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불합리한 세법을 개혁하기 위해 17년 동안 공론화를 진행한다. 그는 우선 공론화의 목적을 ‘국가재정을 확충하되 백성의 고통은 줄인다’로 정한 다음, 1단계 전국 17만 백성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2단계 관리에게 찬반 이유와 효과적인 실행 방안을 연구·보고토록 하고, 3단계 토론을 통해 개혁의 반대자·피해자를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였다. 이런 공론화를 통해 전분6등 연분9등법이란 개혁 세법이 만들어졌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론에 가장 가까운 말은 시민참여결정(Citizen's Participatory Decision-making) 혹은 참여적 의사결정(Participative Decision-making), 정도가 될 것이다. 정책 결정에 시민이 참여한다(국가 입장에서는 참여시킨다)는 의미인데, 참여의 폭과 수준은 다양하다. 국가가 시민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Information Delivery)하는 가장 낮은 단계에서 청문(Public Hearing)이나 자문(Consultation)을 구하는 단계, 최종적 의사결정권은 국가가 보유한 채, 공동 협의하는 단계, 의사결정권을 자체를 공유(Collaborative Decision-making)하는 가장 높은 단계까지 다양하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초기 정부와 위원회간 위원회의 성격과 권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정부는 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고 하여 위원회에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한 듯한 태도를 보였고, 위원회는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정부의 몫이며 자신들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위원회의 공식적인 성격은 자문기구로 정리되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배경과 동기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사안을 통치권자의 정치적 결단이나, 국회 논의를 거쳐 합의를 도출하지 않고, 공론화를 명분으로 국민을 동원하여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했던 것에는 그만한 배경과 동기가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원전 사안은 주로 지역차원의 문제였다. 탈핵·환경단체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정부 대책도 원전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반 국민에게 원전 사안은 아직 자신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최근 발생한 경주 지진은 원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자신도 원전의 위험범위 안에 있으며,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인식이 전환된 것이다. 국가는 이런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지난겨울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국회를 성토했던 촛불 민심을 문재인 정권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공론화는 이런 시대적 배경 위에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더해져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창하며 탈핵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했다. 대통령 공약은 현 정부 출범 이후, ‘2080년 원전 제로’, 신규 원전건설계획의 전면 백지화, 원전 설계수명의 연장금지, 연장가동 중인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이런 탈원전 정책은 곧바로 전기공급의 안전성, 수출 등 산업에 미칠 영향, 전기세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주장하는 언론과 원전 추진 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탈원전 정책 가운데 5월말 기준 종합공정률이 28.8%에 이른 신고리 5,6호기 폐쇄에 대한 저항이 가장 심하였다. 정부로서도 공사 중단으로 발생할 매물비용, 보상 및 배상 책임,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등 천문학적인 경제·사회적 비용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출구가 필요했다. 공약과 현실 사이 간극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명분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 결론이 ‘신고리 5,6호기 재개 여부를 국민에 맡기자’, 즉 공론화였다.

공론화의 진행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의 목적을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 결정’으로 정한 다음, 우선 총리훈령으로 공론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민간자문기구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공론화의 주요 수단으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를 선택하고, 이를 위한 조사기관을 선정한다.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1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20,006명 참여), 참여 의향이 있는 가운데 시민참여단 500명을 추출하였다. 이들에게 2차 설문조사와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고, 한달 간 정보와 학습 기회, 질의응답과 논의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2박 3일간 합숙을 시작하며 3차, 끝마치며 4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최종 조사 결과, 건설재개(59.5%)가 건설중단(40.5%)를 오차범위를 벗어나 압도하게 되고, 공론화위원회는 4차 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건설재개, 원전축소, 안전기준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되, 자신의 공약인 탈원전 정책도 병행하여 추진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3개월에 걸친 공론화는 일단락되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고, 탈핵·환경단체와 원전관련단체로 소통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절차적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가와 개선과제 - (1)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특징과 효과 - ① 특징

이전에도 정책형성이나 갈등해결을 위해 시민참여결정 방식을 활용한 공론화는 여러 차례 있었다. 사용후핵연료 정책결정을 위해 2013년 10월부터 20개월 간 운영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공론조사도 몇 차례 실시된 바 있다. 2005년 재정경제부가 주도했던 8.31부동산 정책 공론조사, 2007년 부산항의 북항 재개발 공론조사, 2014년 시흥시 서울대시흥캠퍼스 유치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조사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는 이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공론화에 공론조사라는 단순명확한 방식을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단순이라는 말은 공론화를 위해 단 하나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의미이고, 명확하다는 말은 재개와 중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여 양적 비교가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지난 사용후공론화위원회가 페널토의, 타운미팅, 전문가 회의, 공론조사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나, 다양한 의견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집합하는 데 실패하였던 점과 비교할 수 있다.

둘째, 이전에 비해 진행의 완성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진행의 완성도가 높아진 이유는 실행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고, 절차가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공론조사’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안 다양한 형태의 시민참여결정 경험을 통해 시민사회에 상당한 정도의 노하우와 전문역량이 축적되어 있었고, 공론화위원회가 이번 공론조사 과정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절차의 신뢰성이 높아진 이유는 대통령과 정부의 불간섭 원칙, 이해관계자의 균형 있는 참여, 언론을 활용한 투명성 제고 등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전보다 훨씬 강화된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국민의 높은 관심과 결과에 대한 수용적 태도이다. 우선 오랜 동안 정책형성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던 국민에게 국민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공론화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공론화의 대상이 추상적 정책이 아니라, 신고리 5,6호기라는 구체적 실체라는 점이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는 이미 밀양송전탑 갈등과 2013년 국회 전문가협의회의의 핵심 이슈로 국민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주제였다. 여기에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공약의 폐지 여부가 걸린 문제이고, 경제적으로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 또는 전기세 인상 가능성 등 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찬반을 넘어 국민의 수용성이 높아진 까닭은 무엇보다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건설 재개 의견이 뚜렷한 우세를 보였고, 대통령의 설득력있는 결과 해석과 대안 제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요인은 과정이 정당하면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국민의 성숙한 태도였다.

② 효과

첫째, 이번 공론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하여 정부 입장이 정해졌고, 국민이 이를 수용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해소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공론화의 결정이 탈원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이번 공론화가 국민에게 민주주의 교육장을 제공하였다. 시민참여단으로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국민에게 이번 공론화는 국민에 의해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국회의원을 뽑고 국민투표를 하는 방식 이외에도 국민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보다 세련된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야흐로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를 넘어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셋째, 이번 공론화로 대통령과 정부는 공약 폐기에 따른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을 획득했다. 대통령 공약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공론화를 통한 국민의 의견이라는 명분으로 채움으로서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2) 문제점과 한계

첫째는 동기의 불순성이다. 이번 공론화의 핵심적 동기는 대통령 공약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국민을 동원하여 돌파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실책을 국민의 이름으로 덮은 것이다. 실책인 까닭은 신고리 5,6호기 문제는 이미 사회적 갈등 현안이었고, 후보는 이 갈등을 정치 공간에서 활용하는 데는 관심이 있었으나, 자신의 탈핵 또는 원전 폐쇄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공약과 현실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하여 국민을 동원하는 즉흥적인 기획에 의해 공론화는 시작된 것이다.

둘째, 통치와 정치의 실종이다. 공론화와 공론조사가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앞의 세종의 예에서 본 것처럼 그 대상이 국가적 현안인 한 공론화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국민의 숙려된 의견을 존중하되, 여기에 국회의 의견과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밀도있게 결합되어야 했다. 공론화는 문제해결뿐 아니라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발언,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찬반을 가르는 조사 방식은 공론화 과정에서 소외된 정치권을 긴장시켰고, 정치권은 재개·중단 이슈를 탈핵·찬핵간 세-싸움으로 확대·변질시켰다.

셋째, 사회통합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 방법을 선택했다. 시민이 숙의를 통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수없이 많다. 1991년 제임스 S. 피시킨 교수가 개발한 공론조사의 애초 목적은 결과의 양(量)적 차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숙의가 의사결정의 질(質)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러나 이번 공론조사는 찬반 결과의 양적 차이를 의사결정의 핵심적 근거로 사용하였다. 이 과정 어디에도 찬반을 넘어선 사회통합적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공론조사 대상을 신고리 5,6호기로 한정함으로 원전 갈등이 잠복된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이듬해 '에너지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를 실시하게 되는데, 이들은 공론조사에 앞서 먼저 시나리오 플래닝 (Scenario planning) 방법을 활용하여 2030년까지 발생 가능한 3개의 시나리오를 적성한 다음, 숙의과정 후에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하였다. 공론화가 공동의 비전을 형성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1994년 흑백갈등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시된 몽플레(Mont Fleur) 프로젝트 역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한 다음, 이 가운데 사회적 갈등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넷째, 설문 결과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조사 결과 국민은 신고리 5,6호기 중단과 함께 원전 축소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탈원전 사회로 가야한다는 원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시간에 따른 원전 축소비율이고, 대립과 갈등은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일어난다. 공론조사 설문항목에 포함되었고, 다수가 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원전 축소를 선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원전 폐지를 주장해온 자신의 정치적 지지세력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약속할 수 있는 사안은 더욱 아니다. 원전 축소에 관한 일반적 동의와 원전축소의 시기와 조건에 관한 동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탈핵 속도와 관련해서는 먼저 국민에게 논제를 충분히 제기한 다음,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신고리 5,6호기 재개여부를 묻는 설문에 부차적으로 끼워 넣어 한 몫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3) 교훈과 개선 방향

첫째, 공론화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론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론 형성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위력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법적 분쟁이나 다수결, 혹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또한 갈등의 일시적인 해소(Conflict Settlement)를 갈등이 해결(Conflict Resolution)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공론조사의 목표가 ‘신고리 5,6호기 재개 여부 판단’ 일수는 있으나, 공론화의 목표가 ‘재개 여부 판단’일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론화는 해결해야 할 과제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존재하였으나, 공론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부재했다. 세종은 공론화의 목적을 세제 개혁을 통한 ‘국가재정 확보와 백성의 고통 저감’에 두었다. 공론화의 목적이 명확하고 공적인 만큼, 그 효과도 커질 것이다.

둘째, 소외되는 집단이 없도록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공론 형성 과정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없도록 틀을 잡아야 한다. 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무차별적 국민의 의사만이 공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공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에 이해관계자와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해관계와 지적의 질적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종합적인 설계를 해야한다. 또한 성공적 공론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에 국회 논의 결과와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제대로 결합되어야 한다.

셋째, 수단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여론조사에 숙의과정을 결합한 공론조사는 결과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또 같은 공론조사를 하더라도 질문 문항을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에 대한 해석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공론조사처럼 재개 혹은 중단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문항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2012년 일본의 경우처럼 2030년 ‘총에너지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묻는 방식으로 문항을 작성할 수도 있다. 또한 숙의를 통해 의사결정에 이르는 조사 방법은 이미 수 없이 많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다. 적절한 방법을 찾아 사용할 수도 있고, 우리 실정에 맞게 몇 가지를 결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공론화의 목적인 공론형성과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우리 사회 많은 갈등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들이 내놓은 선심성 공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후보의 부안 방폐장 건설, 이명박 후보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박근혜 후보의 행복주택 건설 공약, 최근 강서구 특수학교 문제도 한 야당 의원의 한방병원 건립 공약 등 셀 수 없이 많은 갈등이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은 대부분 다른 지역이나 사람들에게는 비용 발생을 의미한다. 후보가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공약과 함께 재정계획뿐 아니라, 갈등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갈등관리 계획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만약 대선공간에서 문재인 후보가 ‘신고리 5,6호기 재개 여부는 이후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고 하였거나, 나는 신고리 5,6호기 폐쇄가 맞다고 판단하나, 만약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면 나는 갈등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라고 했다면 공론화 과정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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