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이 청와대의 대포폰 사용 등으로 재촉발된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와 관련해 당의 대응 방식을 문제삼고, 당·정·청, 그리고 검찰을 싸잡아 비판했다. G20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여권 내부 투쟁은 점점 가열돼 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 최고위원은 10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청와대의 대포폰 개설, 민간인 사찰 부실 수사 문제를 언급하며 "오늘 한 일간지 칼럼을 보면 검찰과 정부가 하는 일이 국민을 농락하는 수준이라고 나와 있는데 결국 세상에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고 차곡차곡 쌓여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며 "문제는 그 대가를 한나라당이 고스란히 치르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 시점에서 재집권 의지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고 안상수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정 최고위원은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며 "그 때도 정치인이 이렇게 무력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당은 뭘 하고 있는지 한심하다"고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안상수 대표는 발끈했다. 안 대표는 "정 최고위원은 발언을 신중히 하라"며 "우리가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말은 모독이며 국민이 오해할 수 있다.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검찰 수사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재수사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내 놓았다.
정 최고위원이 언급한 칼럼은 이날자 <조선일보> 칼럼이다. <조선일보>는 이 칼럼을 통해 "청와대나 검찰이 둘러대는 것을 보면 혀를 찰수 밖에 없다"며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검찰이 부리는 억지는 천안함 사건에서 야당과 좌파 세력들이 부리는 억지와 닮았다"고 맹비난했다.
정두언의 '강공'…왜?
청와대 행정관의 대포폰 사용 등을 계기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재수사 문제가 떠오르면서 정 최고위원이 움직이는 공간이 다소 넓어진 모양새다.
정 최고위원은 현재 재수사를 요구하며 "몸통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 친이계 소장파들이 제기해온 주장에 의하면 "몸통"은 '영포 라인'의 수장격인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 '영남 친이계'다.
청목회 사건도 정 최고위원에게는 '반(反) 검찰' 여론을 등에 업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특히 청목회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북부지검 이창세 검사가 박영준 차관과 동향인 경북 칠곡 출생에 박 차관의 고등학교 1년 후배라는 점에 대해 야당이 공세를 펼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포폰 사건'을 덮기 위해 청목회 사건이 튀어나온 것 같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보수 언론들도 검찰의 '이중 잣대'를 문제삼는 빈도가 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6.2지방선거 참패를 목격한 수도권 기반의 친이계 소장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대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청와대에서 민간인 사찰 재수사는 없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청목회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옹호하자, 한나라당 지도부도 이를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자 감세 철회 역시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에 막혀 당 지도부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이슈의 첨단에 서 있었던 정 최고위원의 당정청 비판 논리를 연장하면 '정부 따르면 재집권 못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뼈 있는' 지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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