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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보수의 'ABC 분류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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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보수의 'ABC 분류법'을 알아보자

[박세열 칼럼] 유령처럼 존재하는 'D그룹'이 가장 큰 잘못이다

유시민 작가의 'ABC 분류법'을 빌려와 보수에 적용해 보자. 먼저 A그룹은 보수의 정통성을 박정희에서 찾는 반공 전통의 이른바 '안보 보수'다. 지금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구(舊)주류'라고 볼 수 있겠다. B그룹은 자칭 신(新)보수, 이준석 류의 신진 세력인데, 이들은 무슨 새로운 철학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타자로부터 찾는 습성을 가진다. 즉, 상대에 대한 '혐오'와 '갈라치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고 그걸 토대로 진영을 가르는 걸 좋아한다.

C그룹은 A와 B의 교집합이다. 반공과 혐오가 만나 혼종을 이루었다. 중국과 북한 공산당이 부정선거를 획책해 나라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거나(반공의 극대화), 페미니스트와 동성애자들이 한국을 습격해 인구를 소멸시키려 한다는 류의 음모론(혐오의 극대화)을 믿는다. 제대로 된 공론장에서 환영을 못 받으니, 아스팔트에 나와 성조기나 이스라엘기, 혹은 브라질기를 들고 성경을 암송하며 한국이 곧 베네수엘라처럼 될 것이라 저주를 쏟아붓는다.

어쩌면 보수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여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A그룹은 시대에 뒤떨어져 낡았고, B그룹은 확장성을 걷어차고 있으며 C그룹은 아예 사회의 해악으로 작용한다. A, B, C 중 제대로 된 그룹이 없는 게 지금 한국 보수의 문제다.

제미나이 생성 AI 이미지

미국의 보수 세력은 '공동체'로의 회귀와 같은, 몇가지 주목할만한 가치들을 내놓는다. 마가(MAGA)와 같은 세력은 이를 극단적인 방식과 과격한 신념으로 변형시켜 폭력적으로 활용하지만, 그래도 그 중심에는 과거 '좋았던 시절'(모두가 일자리를 갖고, 이민자들이 백인 공동체를 해체시키려 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한다.

한국의 보수는 해방 이후 거의 80년동안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정작 안보는 미국에 외주를 준다.) 사회에 암약하는 간첩을 색출하자고 주장하는 걸 사상의 기반으로 삼는다. 철학이 빈약하니 2000년대 들어서는 일자리나 자산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들의 박탈감에 올라타 갈라치기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런 A그룹과 B그룹이 가장 나쁜 방식으로 결합하니, 윤석열이나 전광훈, 전한길, 고성국 같은 류의 '윤어게인'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그 주변인들은 그들을 대변하는 세력이다.

특히 C그룹은 진보의 나쁜 점들만 벤치마킹했다. 이들은 스스로 혁명 세력이라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운동권 좌파 지식인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80년대에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의 투쟁 방법론을 가져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다. 자신들이 만든 악마회된 좌파의 상상적 이미지를 정작 자신들이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재명을 히틀러에 비유하거나, 86운동권을 볼셰비키에 비유한다고 해서 중도층에 먹힐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나라가 조만간 베네수엘라처럼 붕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C그룹은 스스로를 '혁명가'로 여긴다. 그러니 이들에게 A그룹은 "당의 그늘에서 곱게 크신 영감님들(김민수 최고위원)"이고 몰아내야 할 구시대의 적폐가 된다. 또한 지금 국민의힘은 "교수, 관료, 율사. 사회 기득권층들이 모여 3류 운동권 세력들에게 판판이 깨지는(박민영 대변인)" 정당이다. 솔직하게 장동혁 일파가 순수함을 유지한 정당을 한번 보고 싶은 욕심이 없진 않다.

더 비겁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견해와, 충분한 지적 소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A그룹과 B그룹에 속하고, 나아가 C그룹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다.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윤석열 탄핵은 정당했으며 윤어게인은 불가능하고 한국이 베네수엘라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수가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권력과 자리의 욕망에만 매몰된 사람들이 지금 한국 보수를 망치고 있다. 이들을 D그룹으로 분류하겠다.

D그룹은 유령으로 존재한다. A, B, C그룹에 단일, 혹은 복수로 속하긴 하는데, 진영이 제공하는 달콤한 권력만을 취하면서도 자신의 정체는 꽁꽁 숨기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순간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작은 권력에서 밀려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장동혁 체제가 잘 못 가도, 전한길, 고성국 류의 극우 인사들에 당이 휘둘려도 완장 찬 몇몇 C그룹 스피커들에게 난도질 당할까 노심초사 한다. 한동훈과 김종혁이 당에서 쫓겨나도 내 일이 아니니 상관 없다.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텐데도 말이다. 국민의힘 107명의 의원들 중에 몇 명이나 D그룹에 속할까?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보수의 장점 중 하나는 욕망을 신봉하는 것이다. 그 욕망이란 권력을 향한 왜곡된 욕심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발휘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서로 해치지 않은 평화로운 상태를 바란다. 여기 질문이 있다.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국가가 나서서 의료보험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젊은이의 가족이나 친구, 지역 교회 같은 커뮤니티가 그를 도와야 한다." 이게 지금 보수주의의 새로운 트렌드고, 공동체 주의의 요체다.

지금 한국 보수는 가치와 철학을 먼저 세워야 한다. A, B, C니 하는 그룹의 노선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있는 남북문제에 대해 대안을 내고, 혐오와 갈라치기 대신 보수의 포용 가치를 재정립하고, 베네수엘라 타령 하기 전에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쉽게 말해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지겹도록 말하지만, 보수의 가치는 공동체, 포용, 번영이다. 인간 보편의 욕망들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욕망을 이룰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 보수 논쟁에 '종속변수'로 딸려들어가고 있는 '자칭 보수' 국민의힘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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