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日 문화재 보호위원회,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 지키기 위원회'였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日 문화재 보호위원회,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 지키기 위원회'였나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번외편 ④ 문화재 반환에 반대한 문화재보호위원회 (1)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한국 측과 직접 교섭을 한 것은 외무성이었다. 외무성은 한국 측과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문화재보호위원회와 관련 논의를 진행하면서 일본 측의 입장을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문화재 반환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외무성의 여러 요청에도 쉽사리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문화재 반환 교섭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문화재 반환에 강한 발언권을 가진 문화재보호위원회

외무성은 문화재 반환 교섭을 진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있는 부처를 찾고 있었다. 1953년에 외무성은 '문화재 관계 주관 관청에 대해서'(文化財関係主管官庁について)라는 문서를 통해 문화재와 관련된 여러 부처를 검토했다.

▲ '문화재 관계 주관 관청에 대해서' 문서. ⓒ 한일회담 관련 한국외교문서

먼저 문부성의 경우 반대의견을 제시할 강력한 발언권이 없고,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고고학 자료와 미술공예품만 관할하고 있으며, 내각과 궁내청의 경우 고서적에 대해 권한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화재보호위원회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문부성의 외국이지만 거의 독립에 가까운 지위를 가지고 있다. 위원장은 다카하시 세이치로(高橋誠一郞), 위원은 야시로 유키오(矢代幸雄), 호소카와 모리타츠 (細川護立), 이치마다 히사토(一万田尙登), 우치다 요시카즈(內田祥三) 네 명이며, 사무국장은 모리타 다카시(森田孝)이다.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전문위원에 학계·미술계의 유력자를 다수 가지고 있으며, 전문위원의 발언권은 극히 강하다. 고서적·미술 골동품을 불문하고, 본건 관계 문화재의 처리에 관해서는 이들 전문위원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도쿄 및 나라(奈良)의 국립박물관은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소관에 속한다.

문화재보호위원회는 1950년 8월에 문화재를 보호·관리하기 위해 문부성의 외국(外局)으로 설치되었다. 상기 문서가 작성되었을 당시 다카하시 세이치로가 문부대신(1947년)을, 이치마다 히사토가 일본 은행 총재(1946년)을 역임하는 등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전문위원은 정계·재계·학계의 유력 인물이었다.

따라서 외무성은 문화재보호위원회가 문부성의 산하에 있지만, 그들을 '무시해서는 곤란'할 정도로 문화재 반환 문제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외무성은 문화재 반환 문제와 관련하여 부처 내부의 논의와 함께 문화재보호위원와도 접촉하기도 하면서 한국 측과의 교섭에 임한다.

문화재 반환을 경계한 문화재보호위원회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시종일관 문화재를 반환하는 일은 물론이고 기증하는 일조차 반대했다. 이들은 일본정부가 교섭 방침으로 문화재 인도를 결정했을 때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외무성이 이들을 설득하고 달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와 같은 문화재보호위원회의 태도는 일본 측이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주요 원인이 된다. 한국 측도 전문가회의를 비롯하여 지지부진한 교섭의 원인이 문화재보호위원회에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초기 한일회담부터 문화재 반환에 반대했다. 일본외교문서에서 외무성이 문화재보호위원회와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1952년 2월 18일이었다. 외무성은 문화재보호위원회의 혼마 스지(本間順治) 예술공예과장에게 한국 관계 문화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고고학적 출토품은 당시 법령에 따라 조선의 박물관에 보관했고 일본에 들어온 것은 소수이며, 도굴이나 매매된 도굴품의 조사는 불가능하다', '조선 관계 중요미술품의 일람표는 없고 작성하기도 어려우며, 개인 소유 문화재도 현재의 소유자·소재지 등이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외무성은 혼마 스지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극히 경계하고 있으며 문화재 반환에 대해 "가능한 한 회피하고 싶다"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같이 문화재보호위원회가 문화재 반환을 경계하고 있는 태도는 같은 해 7월 29일에 열린 회의에서 명확히 나타났다. 외무성은 7월 19일에 문화재 목록 작성을 위해 문화재보호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외무성 측이 외교상의 수단으로서 중요 문화재를 양여하지 않을까 매우 우려하여, 좀처럼 목록을 작성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외무성은 "목록의 미술품 등을 전부 양도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문화재보호위원회와 회의와 연락을 할 테니 일단 목록을 작성해 주기 바란다"고 문화재보호위원회를 설득하려고 했다.

▲ 1952년 7월 19일에 열린 외무성과 문화재보호위원회의 문화재 반환 교섭 관련 외교문서. ⓒ 한일회담 관련 한국외교문서

이와 같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문화재보호위원회의 부정적인 태도는 이후에도 계속 나타난다. 외무성이 1953년 10월 17일에 한국 관계 문화재 약간을 증여하는 일을 문의하자, 문화재보호위원장과 문부사무차관 명의로 "찬성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신했다.

구두전달사항과 106점의 문화재 인도를 비판한 문화재보호위원회

1957년 12월 31일에 합의된 구두전달사항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일본정부는 구두전달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1958년 4월 16일에 한국에 106점의 문화재를 인도했다(칼럼 1부 ④ 참조).

▲ 106점의 문화재 인도를 비난한 문화재보호위원회 관련 외교문서. ⓒ 한일회담 관련 일본외교문서

문화재보호위원회는 1957년 2월 2일에 외무성과 구두전달사항을 협의할 때도 "취지에는 찬성하기 어렵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고려한다"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또한 구두전달사항의 내용이 문화재보호위원회가 이해하고 있던 것과 달랐던 듯 문부대신은 각의에서 외무대신에게 '인도는 증여를 의미하며 일본이 증여 품목 등을 선택해서 결정한다', '외무성은 이 범위를 넘지 않도록 교섭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위원회는 구두전달사항을 '어쩔 수 없이 고려'하여 106점의 문화재 목록을 작성했고, 외무성은 이를 한국 측에 전달했다. 106점의 문화재 인도에 대해서도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불만을 가졌다.

제7차 회담 당시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사무국장이자 문화재 반환 교섭에도 직접 나섰던 미야치 시게루(宮地茂)는 1964년 3월 24일에 열린 외무성과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현재 개최 중인 중요문화재 지정을 위한 연차심의회 자리에서 교토대학 명예교수 우메하라(梅原) 박사가 1958년 4월에 106점의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한 일을 비난했다. 문화재보호위원회 안에서도 호소카와, 야시로씨는 문화재를 한국에 증여하는 일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자신(미야지)의 일한회담 대표 발령도 비꼬았다.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문화재를 한국 측에 넘기는 일에 변함없이 반대했지만, 한일 양국 간에 구두전달사항이 합의되고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하게 되자 106점의 문화재 목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106점의 문화재 인도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일이었고 당연히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 참고문헌

한일회담 관련 한국정부 외교문서 및 일본외교문서

류미나, '한일회담 외교문서'로 본 한·일 간 문화재 반환 교섭, <일본역사연구> 제30집, 2009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엄태봉 강원대학교 교수

엄태봉 교수는 문화재 반환 문제, 강제동원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인식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한일 관계 전문가다. 역사인식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교과서 문제는 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일본 '영토·주권 전시관'의 영토 문제 관련 홍보·전시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