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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철학'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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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철학'은 존재하는가?

[고성국의 박근혜論]<3> 계파 정치 던지고, '포용'과 정치력 보여야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이 약하면 공격한다. 전쟁이나 정치나 공방의 기본 원리는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집중공격 하는 것을 '인정머리 없다'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같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기는 정치나 경제나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4대강 사업 등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박근혜를 압박했다. 이정희 대표가 답변을 요구한 이슈는 4대강 외에 감세정책, 민주주의, 인권문제였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도 "국가적 아젠다고 국민적 관심사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주요 아젠다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요구받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여·야 정치권은 주요 아젠다 및 이슈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 또는 '입장 없음'이 박근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치와 주장과 감성은 있지만 체계적인 가치관, 체계적인 비전, 체계적인 정책은 없다는 것이 박근혜가 가장 많이 공격받아 온 대목이고 박근혜 리더십의 최대 약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수첩공주'라는 별칭에도 그런 폄하의 뉘앙스가 묻어있다.

'박근혜 철학'은 담금질을 거쳤는가?

체계적인 가치관과 비전을 갖추지 못하고 단편적인 생각들과 가치들만 있다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몇몇 부분에 집착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숲과 나무를 같이 보는 균형감각과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지 못하고 특정 생각이나 가치에 고집스럽게 집착할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셀카' ⓒ박근혜

체계화 된 가치관과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눈, 코, 입을 따로 예쁘게 그려놓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가장 예쁜 얼굴이 될 것 같지만 막상 그렇게 그려놓으면 어딘지 균형이 안 맞거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런 경우가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모습이다. 매력적인 얼굴은 눈, 코, 입 하나하나도 예쁘지만 각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이 잡혀 전체적으로 개성과 매력을 풍기는 얼굴이다. 이런 얼굴은 표정이 살아있고 자연스럽다.

박근혜는 자신의 프로필 백문백답에서 이성을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느냐는 질문에 "어느 한 곳보다 전체적 느낌을 본다"고 대답한 바 있다. "어느 한 곳보다는 전체적 느낌" 바로 이것이 가치들의 덩어리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을 보는 방법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은 가치들을 단순히 정렬시키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가치관은 가치들을 용해해 차원이 다른 '가치 체계'로 재구성할 때 만들어진다. 가치관의 형성과정은 구리와 주석을 함께 녹여 청동이라는 전혀 새로운 금속을 만들어내는 합금 제조과정과 같다. 물론 청동 속에는 구리도 있고 주석도 있다. 그렇다고 구리나 주석을 청동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가치들의 덩어리와 체계화된 가치관은 이렇게 차원을 달리 한다.

가치들을 녹여 새로운 가치관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논리와 철학의 담금질 과정이다. 이는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 그리고 훈련된 논리적 추론에 의해 얻어지는 깨달음과 숙성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젊은 시절 이념적 담금질을 받은 박정희나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김대중은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부단히 단련했다. 그러나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노태우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 노무현 같은 대중 정치인도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향하는 가치는 있었지만 그것을 가치관으로 담금질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또한 아직 체계화 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몇몇 가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걸 가치관이라 할 수는 없다. 그가 젊은 날부터 치열한 지적, 논리적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박근혜,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

이 같은 약점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지적 담금질을 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화된 가치관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그들의 판단과 조언을 중하게 듣는 것이다.

두 가지 방안 중에는 첫 번째 방안이 무조건 더 좋다. 스스로 담금질을 받아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은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나 최고 지도자의 품격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 후자의 방법도 전자 즉 본인이 가치관을 어느 정도 체계화하고 있을 때 효과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박근혜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사안에 너무 깊이 매몰되는 것이 꼭 바람직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역사, 철학 등 체계화된 가치관 정립을 위한 인문적, 사회과학적 독서와 토론을 폭넓고 깊이 있게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의 스탠포드대학 연설이 의미 있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박근혜는 구체적 정책보다는 외교와 경제 분야에 대한 박근혜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대목은 경제에 대한 박근혜의 가치관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설의 백미라 할만하다. 스탠포드 연설 같은 비전이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도자는 정책 전문성을 넘어서는 비전, 가치관의 선도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두 번째 약점은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용과 통합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의 생각도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포용과 통합의 시작이다. 이 같은 겸손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고백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절대자와 인간이 맺는 종교적 관계의 출발점이고 인간과 인간이 맺는 민주적 사회·정치관계의 시작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 몸을 숙이는 예수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희구하는 진정으로 통합적인 리더십, 사랑의 정치인 것이다. 박근혜는 천주교 신자이므로 절대자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겸손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 앞에서의 절대적 겸손이 인간 간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서의 겸손함으로도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겸손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능동적 행동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통합은 없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포용은 없다. 강한 자가 먼저 다가가고 강한 자가 먼저 움직인다. 진실로 겸손한 자, 진실로 자신을 열어놓는 자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움직인다.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던질 수 있나?

그동안 박근혜에게서는 이런 능동성, 이런 자신감을 볼 수 없었다. 통합적 리더십을 세를 모으는 정치공학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아무리 다수파를 형성해도 그것이 패도정치적 방식으로 세를 모으는 것인 한 그것을 통합적 리더십이라 하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과연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홀연히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 리더십의 단점으로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박근혜의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는 언뜻 박근혜의 약점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의 브레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박근혜의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지금 시점에서 확정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그 즉시 수십 명의 인수위원들과 200~300명의 청와대 직원들, 그리고 500~1000여 명의 정부 기관, 산하기관, 각종 주요 위원회의 핵심 인사들을 배치해야 한다. 당선되자마자 임기 5년을 함께 할 최측근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적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인물들은 어떠한 검증과정도 없이 대통령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국가를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감당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사람을 보면 비전과 정책이 보이고 사람을 보면 행정 스타일이 보이는 법이다. 박근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박근혜 정부를 움직여나갈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결코 개인적인 호기심이 아니다. 유력한 대권 주자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다. 셰도우 캐비넷 수준이건 대선캠프 수준이건 그도 아니면 자문팀 수준이건 박근혜는 언제든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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