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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리 미치광이'와 '리틀 로켓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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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리 미치광이'와 '리틀 로켓맨' 사이에서

[기고] 문재인 대통령, 미적거리는 관료들 이끌고 위기 돌파해야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한반도 안보정세의 시계(視界) 상태가 영(0, 零)이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다. 외교 초보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내뱉는 단어들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두 사람의 독특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주고받는 단어들 역시 기이하고 이질적이다. 주고받는 폭언 속에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낱장이 하나씩 뜯겨 나가는 듯하다. 다시 위기다.

38살에 6.25 전쟁을 일으킨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30대 혈기방장(血氣方壯)한 북한 '최고 존엄' 김정은은 미국이 보기에 분명 '시끄러운 두견새'이다. 김정은은 지난 22일 자신 명의로 낸 첫 성명에서 "우리 국가와 인민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트럼프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트럼프를 '늙다리,' '불망나니,' '깡패' 등으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핵무기에서 나오는 자신감인 듯했다.

어쩌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가능성 역시 무(無)와 영(零(영)사이에 있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트럼프 역시 김정은을 '미치광이,' '꼬마 로켓맨'으로 비하하면서 강 대 강 기조를 이어갔다. 트럼프의 돌출발언과 행동은 차치하고 더욱 위험해진 김정은을 어떻게 '침묵'시킬 것인가를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임무센터'(Korea Mission Center)를 신설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올 8월엔 한국 주재 요원을 20명 늘리는 등 대북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 동향과 우리 정부 대응 방향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미국을 비롯하여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은 국가들의 정보요원들이 은밀하게 활동 중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위기의 한반도가 세계 각국 정보요원들의 각축장이 된 셈이다. 이들이 수집한 가공되지 않은 첩보와 정보들은 시시각각 본부로 보내져 다각도로 분석 작업을 거친 후 정책 판단의 자료로 활용된다.

한편,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2일(한국 시각으로는 23일)자 보도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가 포착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타격 옵션을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시급해졌다고 주장했다.

NYT 인터뷰에 응한 미국의 전문가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작업을 미국이 인지하더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부작용이 있어서다. <워싱턴포스트>(WP)도 같은 날 사설에서 일본 위로 날아가는 미사일이 재래식인지 핵미사일인지는 중요한 순간에 파악할 수 없어 자칫 전쟁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북한이 지난 15일에 발사한 화성 12형 ⓒ노동신문

두견새는 없다.

'오다 노부나가' 방식은 얼핏 보면 쾌도난마(快刀亂麻)다. 이는 김정은만 제거한다면 핵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허상이다. 첫째, 김정은의 동선(動線)을 어떻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미국의 최첨단 정보자산을 총동원하여 위치를 찾으려고 해도 '완벽하게' 김정은의 행방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둘째, 설령 내부자 협조 등으로 소재를 완벽하게 파악하였다고 해도 북한 '최고 존엄'을 보위하는 철통같은 호위망을 어떤 방법으로 뚫고 김정은을 단숨에 예리하게 도려내느냐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북한과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한 임무다.

셋째, 김정은 이후의 북한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미국이 현재 북한 내 핵무기의 소재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방식은 대북 제재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제재의 효과는 기대만큼 도드라지지 않다. 무엇보다 북한을 매개로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강대국 정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역대 최강의 제재'라는 표현은 과장되었거나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용수철은 누를수록 더 튀게 마련이다. 김정은이 딱 그 모양이다. 지난 9월 1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 형식을 통해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대북 제재 압박 책동에 매달릴수록 국가 핵무력 완성의 종착점으로 질주하는 우리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지난 22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에서 행한 연설도 그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방식은 특히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선호했던 대북전략이었다.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그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변화하려는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소통을 중시한 오바마의 '기다림의 미학(美學)'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전략적 인내' 간판은 이내 망가졌다. 오바마와 한국의 보수 정권은 겨울철에 왜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그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 결과 미북관계,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그렇다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트럼프가 김정은을 침묵 시키는 비책은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정책 4대 기조로 첫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 셋째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넷째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천명했다. 6차 핵실험이 있기 전에 작성된 것들이라 셋째와 넷째 항목은 점차 빛이 바래지는 느낌이다. 트럼프의 평소 기질로 보면 '오다 노부나가'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미국 국민들 다수도 무력 해결에는 반대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이 전쟁 위기를 끄는 소방수 돼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ABC 뉴스가 23일(미국 시각)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언제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67%가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먼저 공격하면'이라고 답했다. 반면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답변은 23%에 불과했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에 반대하는 의견은 지지 정당을 떠나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74%가 선제타격에 반대했고, 공화당 지지자는 61%가 반대했다. 미국이 군사적 공격을 가하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더 큰 전쟁이 시작될 위험이 크다는 답변도 69%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83%가 확전을 우려했고,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52%가 이에 공감했다.

한편, 트럼프의 북핵 문제 관리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당히 또는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응답자는 37%에 불과했다. 반면 조금 믿거나 전혀 믿지 않는다는 응답은 62%에 달했다. 특히 42%의 응답자가 트럼프의 북핵 관리를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크게 갈렸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11%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관리를 신뢰한다고 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4분의 3 이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

앞서 9월18일 공개된 미국 공영라디오 'NPR'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 51%는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신뢰할 수 있다는 대답은 전체의 44%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방식에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게 됐다. 결국 한국이 물꼬를 터야 한다. 10월 하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9차 당대회에서 권력을 공고화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짓고, 11월에 트럼프가 아시아를 순방하는 기회를 틈타 북한 비핵화로 가는 대반전의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니고 있는 외교안보 역량을 여기에 '올인'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성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온갖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미적 미적거리는 관료들을 이끌고 가는 강한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북한은 이미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비핵화 시계도 덩달아 멈췄다. 어느새 북한 비핵화는 뒤돌아보면 갈 수 없는 길의 입구가 된 듯하다. 침울하고 암담한 전망이다.

하지만 비핵화 시계의 톱니바퀴는 대화라는 태엽을 감은만큼만 돌아가게 돼 있다. 북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기가 당장 어렵다면 대화의 범위를 넓히는 것도 한 방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인내심을 가지고(patiently), 지속적으로(persistently), 그리고 조용히(quietly) 그 태엽을 감아야 할 때다. 누군가가 뒤에서 어깃장만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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