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이틀차, 국회 인사청문특위에서는 전날 나왔던 이념 논란만 되풀이됐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은 김명수 후보자의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여전히 문제삼으며 공세를 쏟아냈지만, 김 후보자는 차분히 방어했다.
동성애자 인권 문제와 관련, 야당에서는 동성애를 "수간"에 비유하는 등의 반인권적 발언으로 김 후보자를 도발하려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김 후보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새로운 사실이 공개되거나 김 후보자가 화제성 발언을 내놓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정치권의 관심은 청문회 자체보다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표결 쪽으로 옮아갔다.
13일 현재 국회의 의석 분포로 보면, 지난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때와 마찬가지로 제3당(40석)인 국민의당이 캐스팅 보트를 쥔 형국이다. 여당이자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에 빗대어 "정치 공세", "존재감을 위해 사법부를 볼모로 삼는 정치"(백혜련 대변인)라며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중 청문보고서(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다음날인 14일 본회의에서 바로 표결에 부치자는 입장이다. 다만 민주당 의석은 이날 서영교 의원의 복당이 최종 승인되며 121석으로 1석 늘어났지만, 여전히 국회 과반(151석)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반면 원내 2당(107석)인 자유한국당은 "신적폐이자 부적격 인사"라며 "김 후보자도 물러나야 한다"(정용기 원내대변인)고 하고 있다. 김 후보자가 비교적 진보 성향이라는 평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수 성향인 바른정당도 부정적인 기류다. 민주당과 정의당(6석)이 찬성하고, 한국당과 바른정당(20석)이 반대한다면 찬성 대 반대가 정확히 127:127로 동률이 된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은 이날 오후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전북 지역을 찾은 자리에서 "청문회 결과를 보고 함께 의논해서 판단하려고 한다. 어떤 입장을 가질지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다"며 "오늘까지 최종적으로 다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청문회는 이날 밤중에야 마무리된다. 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11일 낙마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가 전북 고창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 민심의 이반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국민의당은 인사 투표는 자유투표가 원칙"이라며 "모든 판단 기준은 그 분이 사법부 독립을 제대로 실현시킬 사람인지, 균형잡힌 사고로 전체 재판관들을 이끌지 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안 대표는 그러면서 "대법원장도 마찬가지다. 그 2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당 입장에서 김명수 후보자 표결을 부결시키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최근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낙마했고, 이날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회가 사실상 여야 합의로 '부적격' 입장의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여전히 70% 전후로 나오고 특히 호남에서는 90%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김명수 후보자를 낙마시켜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강한 야당'이라는 존재감 과시 정도인데, 이미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때 국민의당의 존재감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충분히 드러낸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의당 의원들이 반대 투표를 많이 할 수 있는 요인도 있다. 첫째는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심화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감정 싸움이다. 민주당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이 국민의당 탓이라며 "적폐 연대"라고 비난하자, 이날 안철수 대표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금도를 넘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맞섰다. "2013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부 장관 후보자 낙마에 국회와 야당에 레이저빔을 쏘면서 비난한 일이 떠오른다"고까지 했다.
둘째, 민주당과의 감정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도, 안철수 대표 등장 이후 국민의당은 '강한 야당'을 내세우며 여당과의 차별성·선명성 부각에 주력해 왔다. 셋째, 김이수 후보자와는 달리 김명수 후보자는 호남 출신이 아니어서 지역 민심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다. 때문에 국민의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김이수 임명동의안 때보다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올 것", "지금 투표하면 부결" 등의 말이 나오기도 한다.
박성진 후보자의 거취도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 박 후보자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 이전에 사퇴하거나 청와대가 지명을 철회할 경우 야당의 반대가 한풀 누그러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할 뜻을 비친다면 야당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임명동의안의 가부를 가를 국민의당의 결정과 관련,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 간담회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하겠다"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만 했다. 국민의당은 14일 오전 9시 의원총회를 예정해 놓고 있다.
청문회 내용은?…야당 '저질' 질의에도 金 무반응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좌파 네트워크가 기득권화하면 동성애 문제가 가장 걱정된다"며 "(향후) 헌법재판관 임명에 따라 동성애 문제,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김 후보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동성애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취지의 말만 되풀이하자 "확고한 입장이 표명 안 된다는 것은 동성애 합법화에 동의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김 후보자가 사실상 찬성한다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경련 유관단체인 자유경제원 출신 전희경 의원도 김 후보자에게 "소신을 숨기는 것밖에 안 된다"며 어떻게든 동성애 관련 이슈에 대한 발언을 끌어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채익 의원은 "동성애, 항문성교를 인정하면 근친상간, 소아성애, 수간(獸奸), 시체 상간 허용까지 비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전 의원과 이 의원 등 한국당 의원들의 이같은 발언에도 동요를 보이지 않고 "논의해 보겠다"고만 했다.
김 후보자는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의 문답에서 "(군내 동성애자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전혀 없다"며 "동성애에 찬성하는 분도 있고 다른 분도 있는데, 모두 타당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동성애자 권리 문제에 대해 그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문제"라며 "제가 (대법원장) 책임을 맡게 되면 한 번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말하기 거북하다"고 피해 갔다.
그는 동성혼에 대해서는 "헌법이나 민법을 보면 적어도 현 상황에서 동성혼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제 견해"라며 "앞으로 제가 사건을 맡게 되면 고려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입장이 분명하다"고 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현행법은 그렇고, 앞으로 법 개정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느냐'고 묻자 "사회의 의사가 합치되면 그에 따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 전희경 의원이 '법외노조인 전교조가 여전히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위법이냐 아니냐'고 묻자 "위법"이라고 답한 데 이어, 이날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인 곽상도 의원이 이전 판결을 들어 '전교조가 약자라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자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한국당 의원들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좌파 사조직'이라며 이틀째 공격을 이어갔지만, 김 후보자는 "오해"라면서 "(제가)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해 이득을 본 게 없다"고 잘랐다. 그는 과거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가카의 빅엿', '가카새끼 짬뽕' 등 논란성 표현으로 물의를 빚었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일부 회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회원이나 저까지 그 프레임에 넣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해 갔다.
이날 오후 이뤄진 증인·참고인 신문에서는 최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재판이 곧 정치'라는 표현이 담긴 글을 올려 논란을 빚은 오현석 판사 등에 대한 신문이 이뤄졌다. 오 판사는 "법원 내부의 법관 전용 게시판에서 판사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짧게 표현하다 보니 표현이 미흡했다"고 사과했으나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끼리 하는 토론은 내부 토론으로 끝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데 대해 우회적으로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사법부 개혁과 관련, 상고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상고허가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국민참여재판 확대에 대해서는 "민사재판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최근의 소년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은 다른 법과의 관계가 있어서 고려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관련법을 개정해 (형사 미성년 기준 등) 연령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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