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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를 번뜩이는 세상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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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를 번뜩이는 세상은 섬뜩하다"

[작은책] 나쁜 유전자는 세상에 없다

여름철 서해안의 섬 여행은 즐겁다. 곳곳에 깨끗한 모래를 펼쳐 내는 크고 작은 해변은 시원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들끓지 않아 좋다. 장비 없이 오를 높이의 산에 다채로운 풀과 나무가 우거졌고 방풍림이 연출하는 해안의 그늘은 산들바람을 선사한다. 물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심한 풍랑이나 안개를 만나면 여객선의 운항이 며칠 멈춘다.

서해5도를 여행하려면 며칠 더 묵을 각오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가까우면 안심해도 좋다. 여객선 성능이 예전과 달라 몇 시간 지체되는 일은 있어도 며칠 묶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방학을 맞아 간단한 복장의 남녀노소를 맞는 인천 연안부두는 가벼운 가방을 든 승객들로 아침부터 북적인다. 요즘 웬만한 섬엔 가격이 합리적이고 쾌적한 시설을 갖춘 숙박시설과 식당이 충분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아침을 늦게 해결한 일행은 그 유명한 이작도의 풀등을 몽환적으로 체험한 후 방풍림에 기대 오후 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연안부두에서 배가 여태 출항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문한 부침개를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즈음, 일행 중의 한 분이 진한 원두커피를 직접 끓여 내 함께 마셨다. 가방에 일체의 재료와 장비를 챙겼기에 가능했는데, 감사 인사를 받은 그는 무거운 가방을 들어야 했다.

ⓒpixabay.com

'유전적 하중'이라는 개념을 대학원 시절에 배웠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있기에 그 개체를 끌어안은 집단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는 유전적 하중을 영어로 'genetic burden'(유전적 부담)'이라 했다.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를 가졌기에 개체의 삶은 고단하겠지만, 환경은 변한다. 현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가 유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일수록 순수혈통 집단에 비해 생존력이 높다. 공장축산에 적용된 양계장의 닭이나 축사의 돼지가 조류독감과 구제역에 속수무책인 이유의 설명이다.

말라리아가 자주 출몰하는 아프리카에 드물지 않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란 유전병이 있다. 돌연변이로 헤모글로빈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낫처럼 구부러지는 현상을 보이는 겸상적혈구 빈혈증은 치명적인데, 그 증상을 가진 사람은 특이하게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더라도 금방 치유된다고 한다. 만일 일찍이 아프리카에 겸상적혈구 빈혈증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했을지 모른다.

현 환경에 최상으로 적응한 유전자가 바뀐 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과학은 미리 파악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불량으로 규정한 유전자를 치료 또는 개선 차원으로 없앤다면, 환경이 변화된 이후 인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아무리 찬란한 과학 기술도 변화하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 지진대 위의 리아스식 해변을 제멋대로 매립하고 세운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과학자들이 안전을 장담하기에 설계 수명을 연장했을 것이다. 화석 연료 과다 사용으로 경신하는 한여름 무더위를 어떤 과학 기술이 통제할 수 있겠나. 심화되는 사막화, 초미세먼지, 방사성 물질, 그리고 음식 속의 조작된 유전자는 전에 없었다.

최근 세칭 '유전자 가위'라고 말하는 생명공학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 과학자가 만들었다고 언론은 일제히 반색했다. 한술 더 떠 그런 기술력을 보유해도 연구는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시대착오적 생명윤리 관련법 때문이라고 덧붙이면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고, 권력층에서 미용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시대에 추구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주도한다. 그런데 막대한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는 그 연구단체는 유전자를 교정한다고 주장한다. 교정이라니? 유전자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나?

"기회가 있으면 생명윤리학자를 찾아가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겠습니다."

지난 8월 3일 프레스센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비대성 심근경색증 치료 가능성을 인간 배아 단계에서 입증한 연구를 학술지 <네이처>에 투고해 주목된 기초과학연구원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향'을 주제로 열린 과학기술한림원 원탁토론회에서 자신의 심정을 그렇게 알렸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장차 수많은 사람의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힌 그가 생명윤리학자와 소통하고 싶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감동해야 할까? 세계적 연구자가 소수에 불과한 생명윤리학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는가. 유전자를 교정하려는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미칠 사회적 파장을 사전에 고민하고, 생명윤리학자와 연구 목적과 방법을 미리 논의하지 않았다. 불량 유전자 제거로 치료할 분야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생명윤리법의 개정을 원하는 과학자가 원하는 소통은 무엇일까? 유전자 교정을 방해하는 법을 교정하려 하니, 방해하지 말라는 점잖은 요구일까? 당신들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고통받을 사람을 생각하라는 걸까? 황우석 전 교수의 언설(言說)이 떠오르는 순간이라면 지나친 걸까?

생명윤리학자 단 한 사람이 포함된 이 날 토론회는 우리나라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도입하도록 애를 쓴 생명윤리 관련 시민단체의 참여를 일절 요구하지 않았다. 그 토론회를 생명윤리학자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며 기획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유전자 가위 연구를 희망하는 과학자들이 운집한 토론회는 차라리 어떤 부흥회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부흥회 비슷한 토론회에 참여한 생명윤리학자의 구속력은 당연히 미약했다. 과학자가 불신 받는 사회 분위기는 기술을 신봉할 뿐 부작용에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는 과학자가 자초했다고 지적했으나, 유전자 가위 기술이 미칠 윤리와 환경의 위험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과학자의 오만은 지적했지만, 과학의 비합리적 낙관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과학자가 설계하는 가능성을 믿고 연구비를 넉넉히 투자해야 다른 나라에 밀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관했기에 황우석 전 교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pixabay.com

유방암 가능성을 높이는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예방적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13년 일인데, 그 여파는 2년 만에 예방적 유방 절제 수술을 5배, 난소 절제 수술은 4.7배 증가하게 했다고 국내 한 언론이 전했다. 한데 문제의 유전자는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람에게 더욱 높다는 사실은 생략했다. 유전자가 있다고 당연히 암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데,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암을 발본색원할까? 이러다 노화나 치매 유전자를 찾아내겠다고 호언할까 겁난다.

세상에 못된 개는 없다고 한다. 덩치와 관계없이 훈련에 따라 송곳니 드러내며 사냥감을 위협하거나 순한 맹도견으로 길들일 텐데, 유전자는 교정하면 불량률이 개선되는 물질일 따름일까? 유전자는 환경과 긴밀히 관련돼 발현한다. 돌연변이는 대부분 발암과 비슷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돌연변이가 빈발하는 환경을 개선할 생각 없이 유전자 가위를 번득이는 세상은 섬뜩하다.

사고가 빈발하는 낭떠러지를 놔두고 병원 시설을 개선하는 게 옳은가? 개선 운운하며 집단의 유전 다양성을 단순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연구자와 병원은 큰돈을 벌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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