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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간과하는 트럼프 '전쟁불사론'의 진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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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간과하는 트럼프 '전쟁불사론'의 진짜 의미

[정욱식 칼럼] 문재인 정부, 북미 중재할 힘을 키우려면

최근 한반도 위기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몇 가지 익숙하지만 불편하고도 불안한 현실이 응축되어 있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했다는 '전쟁불사론'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와 면담한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8월 1일 NBC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한반도)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 본토)서 죽는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 면전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악관 대변인은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급은 일단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최대의 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 사용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다 중요한 함의가 있다. 트럼프가 했다는 말은 북한이 핵탄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집착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ICBM 보유 시도는 전쟁을 한반도에 한정시킬 수 있다는 미국의 판단이 오판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지난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괌'의 의미이다. 미국령인 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략 폭격의 핵심적인 발진기지였다. 한국전쟁 때에는 주로 B-29 폭격기가 이곳에서 출격해 북한에 맹폭을 가했다. 2013년 상반기에는 미국이 괌에서 출격시킨 B-2, B-52 등을 동원해 북한을 상대로 강도 높은 무력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은 괌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괌에 서둘러 사드를 배치했다. 괌이 북미 간 군사 갈등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한 시점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 이후 미국은 괌의 전략기지화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북한을 상정한 무력시위의 핵심기지로 삼았다. 이에 맞서 북한은 작년 6월 '화성-12형'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고는 "괌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자 한미 양국은 7월에 한국 내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응수했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에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해 조기 경보 및 탐지 기능을 확보해 괌에 배치된 사드 포대의 요격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해석이다.

북한이 최근 괌을 꼭 집어 전례 없는 도발 신호를 보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8월 9일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은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화성-12형' 4발의 동시 발사로 진행하는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8월 중순까지 이러한 계획을 마련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전후해 트럼프 행정부는 "화염과 분노", "종말과 파멸", "군사적 장전 완료" 등 말 폭탄을 쏟아내 한반도 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말 폭탄을 쏟아내기에 앞서 공개적인 무력시위도 주저하지 않았다. 5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랜서 전략 폭격기를 한반도로 출격시킨 것이다. 북한이 괌을 꼭 집은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도 괌을 사정거리 안에 둔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게 된 만큼 괌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도발 위협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괌 발(發) 전략 무력시위를 중단하든지, 괌 인근 30~40km 수역에 화성-12형 미사일이 탄착되는 것을 감수하든지 양자택일하라."

김략겸의 발표 내용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대다수 언론에선 북한의 괌 포위사격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발표 내용을 보면 몇 가지 단계와 조건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계는 '북한 전략군의 검토-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김정은의 명령'으로 짜여 있다. 또한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그 실행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셋째, '강압 외교'의 불안한 상호작용과 확대재생산이다.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은 전략무기를 강압 외교의 무력한 수단으로 삼아왔고 지난 60여 년간 북한은 그 핵심적인 상대였다.

그런데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판단한 북한도 강압 외교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패턴에 잘 담겨 있다. 북한은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이해 "관련국들"에게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정중히" 제안한 바 있다. 이게 먹혀들지 않자 이듬해에는 미국 국방장관에게 '평화협정이냐, 핵전쟁이냐 양자택일하라'는 서한을 보냈고 이후에는 '평화협정에 응하던지 북한의 핵 억제력 증강을 감수하던지 선택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2013년에도 위기 지수를 한껏 끌어올리고는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도 북한은 주(駐)인도 대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유예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논의하기 위한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 바 있다. 이 역시 일축 당하자 북한은 두 차례에 걸친 ICBM 시험발사에 이어 괌 포위사격을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전략무기 한반도 투입 중단을, 보다 근본적으로는 평화협정 체결과 대북 제재 해제를 놓고 미국과 담판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핵탄두 장착 중장거리 미사일 보유로 미국과 '공포의 균형'이 도달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이러한 강압 외교에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불사론'으로 응수하고 있다. 북미 간의 치킨게임이 위험천만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호간에 위신과 강압 외교의 목표를 내걸고 말폭탄 주고받기와 무력시위가 계속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한국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북미 간에 말폭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에 가세하지 않는 것은 위기관리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트럼프를 포함한 미국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평화적 해결"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주전론에 대해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서 전쟁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냉정하게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지금 당장 북한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북한의 도발을 아무리 규탄하고 경고하고 제재에 합류해도 북한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토로한 자괴감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 평양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위싱턴을 움직임으로써 북미간에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중재·촉진할 때 평양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게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본질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DJ는 2000년 3월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기에 앞서 미국을 집중적으로 설득해 1999년 북미간에 베를린 합의에 도달케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 앞서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에서 워싱턴을 움직이지 못했거나 안했다. 출범 100일을 맞이한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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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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