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은 권한을 강조했지만, 정작 책임은 지지 않았다."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지켜야 한다."
기록전문가들이 모인 한 토론회에서 터져 나온 발언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 대통령기록 참사를 지켜보면서, 수많은 기록전문가들이 상처를 받은 듯 했다. 다행히 행정안전부는 신임국가기록원장을 공무원이 아닌, 외부전문가를 영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기록공동체의 지속적인 요구를 문재인 정부가 받아들인 셈이다. 해방이후 최초로 우리는 전문성을 갖춘 국가기록원장의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8월 12일(토)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새로운 국가기록원장의 역할과 과제' 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일선 기록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상민 한국기록전문협회장은 "기록공동체의 노력으로 지난 수십 년 간 관료에게 맡겨졌던 국가기록원장을 외부전문가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며 "국가기록원장의 자격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지난 10년간 대통령기록 정치적 악용 사례를 정리해 공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8월 3일부터 - 11일까지 기록전문가들 대상으로 시행된 ‘신임 국가기록원장의 역할’에 대한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소통의 리더십, 국가기록원을 개혁할 수 있는 추진력, 국내외 기관 및 단체와의 협력, 국가기록원 업무 인지도 향상을 꼽았다.
특히 신임 국가기록원장이 역할로 국가기록원의 업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원장들은 국가기록원의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설문지에는 '국가기록원장은 영전하는 자리, 쉬다 가는 자리가 더 이상 아님'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현장에 참석한 기록전문가들도 여러 의견을 쏟아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록연구사는 국가기록원 직원들의 왜곡된 인식과 관료화 문제를 지적했다.
"국가기록원에서 세종시 기록연구사들을 간담회 초대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지역에 있던 기록연구사들이 당시 행사가 있어서 참석을 못했는데요. 국가기록원 한 담당자가 원장에게 세종시 기록연구사들이 국가기록원의 정책을 반대만 해서 참석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는 거에요. 기가 막혔습니다."
"참여정부는 현장 기록전문가들을 초대해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런 자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국가기록원 담당자들은 현장에 있는 기록전문가들과 업무협력 관계가 아니라 갑질을 했습니다. 신임기록원장은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파트너십을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행정자치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열린정부파트너십(OGP) 포럼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이 포럼을 오픈 정책을 민관이 같이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새로운 신임국가기록원장 자격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특히 최근 국회도서관장 자리에 자유한국당이 정우택 원내대표의 측근인 친박계 인사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학회 및 협회 쪽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도 6대 기록청장으로 재직했던 Robert M. Warner(역사학자, 1980-1985년 재직)씨의 노력으로 독립적인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의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문성이 핵심입니다."
이날 협회는 실제 미국의 국가기록관리기관의 기관장 선발기준을 공개하기도 했다. 선발기준으로는 리더십과 기록에 대한 책임감, 기관경영능력, 전문지식과 기록전문가로 평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인의 전문성의 탁월함과 리더십에 대한 높은 평판을 받고 있어야 한다. 또한 학문적 업적과 충분한 역량이 필요하다”고 미국의 기준을 설명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외부 개방형 국가기록원장(현직 공무원 제외)을 지난 8월 1일부터 16일까지 공모하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기록관리 문제로 국가기록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국민들이 생생히 경험했다. 이제 새로운 전문가적 리더십으로 국가기록원이 정치적 독립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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