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행정자치부 장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수도권의 편한 정치생활을 포기하고, 대구에서 당선된 정치권 인사가 행정자치부 장관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지난 장관 청문회를 보면서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질의를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재정 의원은 "기록계 블랙리스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함께 존재했다. 국가기록원 직원 중 한명이 광주민주화운동 기록전시를 추진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또한 이 직원이 수행하던 용역사업에 특정 시민단체 인사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집중감사를 받아, 결국 지방으로 강제 배제 당했다"라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단체는 제가 소속되어 있는 알권리연구소입니다. 조합원 7명에 불과한 협동조합이자, 아무런 힘도 없는 단체이지요. 우리 조합원 중 한 명이 당시 연구용역 사업에 참석했습니다. 이때 제가 국가기록원 블랙리스트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 조금이라도 일을 함께 했던 직원 및 외부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의 감시와 차별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기록혁신정책으로 가장 많은 성장을 했던 국가기록원은 퇴임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 참모들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을 고발한 것이지요. 당시 이 고발을 추진했던 인사들은 다시 문재인 정부의 코드를 맞추어 조직의 몸집을 불리고 인사상 이익을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관님은 "기록학계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동안 대통령기록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통령기록물법의 성과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기록도 1000만 건 넘게 넘어 왔다"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매우 우려되는 답변입니다. 지난 두 정권은 대통령기록물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남겨두었던 대통령기록으로 고인을 부관참시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 내정자도 10. 4 남북정상회담록을 무단 파기했다는 명목으로 고발당해 지금까지 대법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대화록은 잘못 작성된 초본을 수정한 것에 불과한 것인데, 거기다가 무시무시한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를 덮어씌운 것입니다. 이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기록원 직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대화록 초본삭제행위가 무단파기에 해당한다고 발언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심, 2심 재판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결재하지 않은 회의록은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된 것이 아니며 최종 완성본 이전 단계의 초안이나 수정본을 삭제 또는 폐기한 것은 정당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과가 이러함에도 국가기록원과 관련 직원은 별 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김부겸 장관님. 그동안 왜곡되었던 국가기록체계는 반드시 개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장을 반드시 외부전문가로 선임해야 합니다. 지금껏 국가기록원장은 행정자치부 공무원이 선임되었고, 대부분 1년 남짓 있다가 떠나곤 했습니다. 국가기록원장은 차관 및 다른 자리로 거쳐 가는 경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행자부나 청와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국가기록원은 이미 너무 막강한 권한 및 책임을 지고 있는 조직입니다. 또 다시 내부 공무원이 선임되면, 그동안 쌓인 적폐는 또 다른 갈등으로 번져갈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통령기록물 시스템을 개편하고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기록물 사태는 우리 대통령기록물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행적을 공개해 달라고 했더니,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해버렸습니다. 한일 군 위안부 관련 양국 간 대통령들의 전화발언을 공개요청을 했더니 같은 이유로 비공개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은 임기 내내 최순실에게 유출해, 자신들의 치부를 채웠습니다.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지난 9월 이후 26대의 파쇄기를 청와대에 들여와 수많은 기록을 파쇄했다는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기록원은 우리는 힘이 없어, 감시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을 고발하던 그 패기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덕분에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기록도 참고하지 못한 채 국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겼다는 1000만 건의 기록은 내실 없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 충실하고 풍부한 기록을 남기고자 만들었던 소중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대통령들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부처 현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기록전문요원(기록연구사) 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열악한 현장에서 승진도 하지 못한 채 고생하는 기록전문요원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런데도 국가기록원은 기록전문요원들의 업무에 도움을 주고 지원을 했던 것이 아니라, 계속 갑질을 해왔습니다.
일례로 지난 2015년 국가기록원은 공공기관이 생산한 전자기록을 민간 기업에 위탁·보존할 수 있도록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여기에 대해 반대한 기관담당자들에게 전화해 반대의견을 취하 하라고 압박했습니다. 국기기록원이 도대체 왜 기록보존이라는 자기 역할을 방기한 채 민간시설에 국가기록을 보존하려고 했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국가기록원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장관님이 각 기관 기록전문요원들의 노고를 한번이라도 위로한다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김부겸 장관님 행정자치부에 너무 많은 개혁과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은 지난 10년간 언론에서 가장 많은 문제로 지적된 부분입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성과를 이제는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을 개혁하지 않은 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뼈아픈 반성과 혁신으로 국가기록원을 바로 세운 후에야 기록을 통한 열린정부의 바른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문제를 짚어주시고, 끝까지 개혁을 완수해주시길 바라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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