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임명 나흘 만인 11일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고위 인사 중 첫 사례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후 사퇴했으나, 이들의 사퇴 시기는 정식 임명 전이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박기영 과기혁신본부장의 자진 사퇴에 관해 청와대는 본인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며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인사 실패를 자인했다는 평가가 나올 법한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일어난 황우석 사태가 박 본부장 사퇴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박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맡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를 전폭 지원한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황 전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난 데다, 전반적 연구 윤리에 문제가 있었음이 이후 드러나 박 본부장은 그 핵심 책임자로 거론됐다.
더구나 박 본부장은 보좌관 재직 당시 황 전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황 전 교수 연구에 깊숙이 관여했다. 황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연구과제 2개를 위탁받아 정부지원금 2억5000만 원을 받은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이 때문에 박 본부장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은 물론, 특히 과학기술인들이 크게 반발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주도한 박 본부장 임명 반대 서명운동에는 과학계 인사 1800여 명이 동참했다. 서울대에서만 11일 오전까지 교수 288명이 박 본부장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날(1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만약 박 교수가 자리를 지킨다면 이는 황우석과 그 비호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황우석 사태 이후 한국의 대학 사회, 학문 사회가 연구 윤리를 정립하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이며 한국 과학계에 대한 전면적인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과학기술계가 대대적으로 정부에 등을 돌리는 모양새를 보임에 따라, 박 본부장 사퇴는 전날부터 유력하게 점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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