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지나치게 하여 고달픔이라는 뜻의 '과로(過勞)', 과로로 인한 죽음 '과로사(過勞死)'와 '과로자살(過勞自殺)'.
일을 지나치게 하여 '고달프다'는 것은 어떠한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오랜 시간 일을 하는 것, 일을 많이 하는 것,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하는 것, 실적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일하는 것,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괴로움을 동반하는 것 등 우리사회의 과로를 유발시키는 요인은 조직마다, 각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근로자가 업무를 원인으로 하여 사망 또는 부상, 질환을 앓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안전망의 하나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산업재해보상일 것이다. 산재로 승인되면 피재자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치료비, 휴업급여 등을 보상받고, 근속기간 또한 인정받는다. 그러나 '과로'는 법에서 정한 질병은 아니다. 과로와 연계되어 인정되는 산업재해보상법상 질병은 뇌심혈관질병이다. 작년 질병사망자 808명 중 뇌심혈관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는 300명(37.1%), 질병재해자 7,876명 중 뇌심혈관질병 재해자는 578명(7.5%)이다. 그러나, 위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재해로 승인한 재해자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산재를 신청을 하지 않은 근로자, 신청했으나 불승인된 근로자의 수를 합치면 더 많은 근로자가 지나친 업무로 인하여 죽거나 아픈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뇌심혈관질병의 산재 승인율은 21.6%(2016년 2/4분기 기준)이다. 불승인된 사안이 행정소송을 거쳐 근로복지공단이 패소하거나, 근로복지공단이 패소를 예견한 불승인 사안에 대하여 소송을 취하하고 산재인정을 하는 것이 반복되는 현 상황에서 21.6%는 낮은 승인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로복지공단은 뇌심혈관질환에 대하여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과로로 인한 뇌심질환 인정 기준
고용노동부 고시는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의 산재인정 기준에 대하여,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60시간을 초과하여 근로(만성과로기준)를 하여야만 산재 승인 기준으로의 과로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있고,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1주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바(최대 1주 52시간), 위 인정 기준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직원들에게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지침이므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9시간을 초과 근로하였다고 하면, 안타깝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의 산재 승인은 어렵다. 공단의 지침상 근로자의 만성과로를 인정하는 기준은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 환경, 그 밖에 해당 근로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근로시간의 기간과 시점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량화 될 수 있는 지표가 객관적으로 인정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형식적 기준에 따른 인정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업무상 질병의 판단 여부는 해당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단의 지침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개별 노동자의 조건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심리 판단해야함을 고시 및 지침에 명시하여 정량적 자료에 치우친 현재의 판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승인 인정 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르면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 밖에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자살은 자해행위의 마지막 단계로서, 자살이 업무상 재해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적 이상 상태'가 인정되어야 한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자살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단정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과연 자살자들의 모든 죽음을 개인적인 사건으로만 볼 수 있을까. 최근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감내하기 힘든 근로시간, 직장 내 언어폭력과 괴롭힘, 결과물에 대한 조직의 압박 등으로 그는 자해행위의 마지막 단계인 자살을 하였다. 상식적으로 그의 죽음은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현행법상 그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상 사유가 원인이 되어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살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근로자측에서 입증을 해야 하며, 이를 입증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인의 자살 전 업무환경과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자살을 했다는 결과 자체가 그가 업무상의 사유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승인이 안 될 이유 역시 없다.
공단은 과로의 결과가 근로자에게 뇌심혈관질병뿐 아니라 다른 질병, 자살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판정시 반영하도록 지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과로(過勞)'는 개별 근로자들에게 뇌심혈관계질병, 원인 모를 두통 및 통증, 정신적인 질환, 자살 등으로 다르게 발현된다. '과로사회'라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기이한 현상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과로'라는 단어 자체가 불편한 단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이미 과로로 인하여 재해를 입은 근로자들에 대하여 산업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과로자살'에 대하여 '자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과로'에 방점을 찍어 업무상 재해로 포섭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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