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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자들은 1800년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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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자들은 1800년대에 살고 있다

[과로死회] 과로 권하는 한국의 노동법

최근 언론에 '과로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직종도 다양하다. 집배원, 검사, IT노동자, 공무원, PD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연일 과로사라는 이름으로 쓰러지고 있다.

2016년 산재 통계에 따르면, 과로사의 대표적 유형인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300명에 달했다. 이는 2016년 한 해 동안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전체 노동자 808명의 37.1%에 달하는 수치다.

위 통계는 산재보험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받은 노동자들만 담고 있다. 과로사라 할지라도 유가족이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통계에서는 누락된다. 특히 과로로 인한 자살은 산재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인정받기도 어렵다. 과로사의 실제 규모가 공식 통계치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다.

이렇듯, 우리는 과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같이 심각한 상황에서 과로사를 막아낼 유일한 법적 장치인 노동법은 왜 작동하지 않을까?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법률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조에서 신체적 피로와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작업환경 조성과 근로조건 개선을 사업주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만 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당연하게도 이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없다. 사업주의 구체적 조치 사항을 정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도 제669조에서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예방조치를 정하고 있으나 추상적 내용의 열거에 불과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과로사에 관한 고민 자체가 담겨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있다. 노동시간은 과로사를 유발하는 직접적 요인 중 하나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연장 근로는 1주 12시간까지만 허용된다. 1주 52시간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 기준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무제한적 노동이 가능하다. 100여 년 전 인류사회에 등장한 "1일 8시간 노동"이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미완의 과제다.

5인 이상 사업장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59조는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의료 및 위생사업, 광고업 등 특례업종에 대해 무제한적 노동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심지어 휴게시간마저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교통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63조와 같이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은 물론 휴일에 관한 노동자 보호를 포기하는 규정도 존재한다. 우리가 항상 만날 수 있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24시간 근무를 해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다.

과로사에 대한 산재보상 기준을 정한 산재보험법도 문제다. 산재보험법은 과로의 기준을 몇 시간으로 정하고 있을까? 근로기준법이 1주 노동시간을 연장근로를 포함해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당장에 1주 52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법은 만성 과로의 기준을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12주를 평균했을 때) 또는 1주 평균 64시간(발병 전 4주를 평균했을 때)으로 정하고 있다. 법률을 위반해야 과로가 인정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노동법은 과로사를 예방하기는커녕 과로사를 권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도 1800년대 어딘가 있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기준들을 담고 있다. 과로사 예방을 위해 노동법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1886년 5월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Haymarket Square)에 울려 퍼졌을 구호로부터 새로 시작하자.

"1일 8시간 노동 쟁취하자!"

유성규 노무사는 과로사예방센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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